블로그를, 보시다시피, 조금 바꿨다. 스킨을 바꾼 거야 별 것 아니지만, 포럼 기능을 추가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스킨은, 봄을 맞이해, 산뜻한 꽃그림이 맘에 들어서 선택해봤다.
포럼은, 기존에 우리에게 익숙하던 게시판과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데, 내가 보기엔 게시판에 비해 ‘덜 딱딱하다’. 처음엔 조금 낯설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이다. 사실 ‘게시판’과 ‘포럼’을 대비시킨다면, 요새는 포럼이 ‘대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포럼을 가지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론}, 나아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다양한 토론의 장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운영자가 쓰고 방문자가 덧글을 다는 ‘제한된’ 쌍방향성을 넘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쌍방향성을 가진 공간 말이다. 원래는 게시판 생각을 했었는데, 진보넷/팔연대 활동가이시자 나의 ‘IT 멘토’(ㅋ) 뎡야핑 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포럼으로 한번 가보게 된 것이다. 그에게 감사드린다. (_._)
하여튼… 이 포럼을 통해, 방문자께서는 새로운 토론 또는 질의응답 주제를 만들 수도 있고, 기존의 주제에 참여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도록 해두었지만, 조만간 회원만 글을 쓸 수 있도록 개편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회원가입을 하면 본인이 올린 글의 관리 등과 관련해 좀 더 편리한 기능을 누리실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내게 개인적으로 {자본론} 등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분들도 좀 있었고 했는데.. 나름대로 성실하게 임했고 또한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아쉬웠던 것은, 그런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대개는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럴 일이 크게 줄게 되리라 믿는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답변’을 달 수 있고, 또한 일반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논의가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기서 문제는, 적정 수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적정 수준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일텐데, 그런 면에서 지금 나의 시도는 일종의 ‘실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은 두려움도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실패’의 두려움은 아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또는 {자본론}에 대한 토론이 (어쩌면 모든 토론이 그렇듯) 상당히 ‘공공적인’ 성격을 갖는 데 비해 그 장을 지금 이렇게 상당히 ‘사적일 수 있는’ 공간에 마련한다는 것, 바로 이러한 어긋남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결국엔 관심 가진 이들의 진지한 참여로써만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솜씨로 만들었기 때문에, 외관부터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앞으로 차차 고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토론의 범위, 범주 등도 일단은 매우 두루뭉술하게만 확정해두었다. 역시 어러분들의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습을 갖춰나가리라 믿는다.
끝으로, 이런 포럼을 떠올린지는 꽤 되었지만, 지금 이렇게 ‘급조된’ 듯한 모습으로 이를 내놓는 까닭은, 얼마전 재개된 {자본론} 읽기 모임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임의 회원들께서는 필히 회원가입을 하셔서, 가열찬 토론의 장을 여는 선봉에 서 주시길 바란다!
(읽기모임을 위한 포럼을 따로 두고 회원만 볼 수 있게 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모임 외부로부터 생산적인 반응들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관두었다. 혹시 의견 있으시면 주시길!)
로버트 실러, 강남좌파의 사상적 지주
오늘날 (정치)경제학을 비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그 비판의 대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누구’일까? 당연히 한 두 사람이 아니겠지만,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는 분명 그 중 맨 앞줄에 세워야 할 하나일 것이다.
실러가 최근에 또 하나의 책을 냈다고 한다(참조). 제목은 {Finance and the Good Socie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금융을 잘 길들이면 좋은 사회를 이루는 데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나아가 “그렇게 하는 데 금융은 필수적이다” 정도로 요약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간 금융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성의 글을 써온 그이기에 조금은 예외라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위에 링크한 {The Economist} 기사를 읽다가 내용이 궁금해 출판사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Introduction’을 좀 봤다(여기). 그런데…. 이건 정말, 뜨아..!! 마르크스를 언급하는 부분, 나아가 마르크스가 말한 ‘코뮤니즘’(소련이나 중국의 현실 사회주의 말고)를 전유하는 방식,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금융의 이로움을 역설하는…. 말하자면, 이 ‘삼단논법’이 정말 가관이다.
우리에겐 익숙한 ‘시초축적’, 그러니까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무산자가 근대적 임노동자 계급으로, 그리고 반대로 생산수단을 독점한 이들이 근대적인 자본가 계급으로 분화되는 것을 다룬 마르크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실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우리는 위에서 실러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꽤 ‘명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것은 ‘암묵적인 가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물적 현실임도 잘 알고 있다. 그걸 모르는 것은 그저 실러 자신일 뿐이다. 하여튼, 위와 같이 자기 멋대로 문제를 설정해 놓고 바로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공자님 말씀’을 내놓는다.
헛, 금융의 민주화라고? 카드대란도 모르냐?! 그게 니가 말하는 민주화냐!!!…라고 당신은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설마 우리의 실러 교수가 그걸 모를리가! 그러나 그는, 그런 문제는 그저 사춘기와도 같은, 성숙을 위해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아픔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쯤 되면, ‘막장’이란 말도 아깝지 싶다.
아, 조만간 이 책도 누군가가 번역해서 내겠지? 예상 독자는? 뻔하지. 한마디로, 강남좌파. 쩝… 그 자칭 ‘강남좌파’들이 위 책을 들고, 자신들의 한때 마음속 숭배대상이었던 ‘마르크스’와 자신들의 현실적인 숭배대상인 ‘금융’을 함께 품으며 젠체할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토나올라고 한다. 기분 드럽네.
마, 니들끼리 잘먹고 잘살어라!
(이쯤에서, 과거 글 ‘자본주의 질서를 둘러싼 정당성 전쟁’도 한번 더 되새겨본다. 이 글에서 스티븐 그린과 로버트 실러를 한패거리로 묘사했는데, 공교롭게도 실러의 이번 책은 벌써 그 제목부터가 그린의 ‘선한 가치’를 떠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