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야당과 촛불 앞에 놓인 ‘선택’들

이번주 야권의 탄핵시도가 불발에 그치면 지금 광장에 모인 200만 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분노의 물결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 이에 대해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대로, 희미해지는 촛불과 함께 군중의 규모도 줄어들고 우리는 다시 전과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길 강요받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나는 설령 야권의 탄핵시도가 불발에 그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물러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시기도 4월까지 늦춰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사태가 그저 대통령을 포함한 정권의 ‘추악한 민낯’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껏 사태는 보통사람으로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실들과 그에 대한 대중의 이례적으로 격렬한 반응에 의해 압도적으로 추동되어 왔다. 이러한 쓰나미 같은 충격에 밀려 박근혜 대통령이 재빠른 자진사퇴를 선택하거나 국회를 통해 탄핵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현실을 우리는 지난 한달여간 경험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진사퇴나 국회의 탄핵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지금 한국의 경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현재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허용하지 못할 정도로 절박하다. 바로 이것이, 정권 차원의 스캔들과 관련된 ‘거품’이 걷혔을 때 드러나게 될 ‘바닥’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상황은 ‘자본’의 위기, 특히 ‘재벌’의 위기라고 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물론 이런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간 재벌은 국가권력과 결탁해 근로대중을 희생시키며 솜씨좋게 위기를 넘어 왔다. 그래서 그동안은 ‘자본’의 위기가 사회양극화, 고용불안정, 비정규직 확산 등의 형태로 위장되어 왔던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본은 나름대로 경제성장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가권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재벌의 뒤를 봐줬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침체로 인한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심화하는 소득(및 자산)양극화와 고용불안정 등으로 이제 더 이상 대중은 양보할 게 없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와중에 불거진 박-최 스캔들은 그간 재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조금도 남김없이 없애버렸다. 이제 자본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그야말로 ‘맨몸으로’ 맞닥뜨려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은 그러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을 것이다. 행여 그것을 겪더라도 그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내려와야 한다는 데 우리나라의 독점자본들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나는 본다. 물론 ‘질서있는 퇴진’론도 말은 된다. 여당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4월에 임기단축 형식으로 퇴진하고 이후 조기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 정부로 이행하자고 주장한다. 재벌로서는 자신의 기존 파트너들이 내놓는 이 시나리오가 잘 작동하기만 한다면 거기에 동조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새누리당의 ‘4월퇴진’ 시나리오는 재벌이 현재의 국정공백 상황을 최소한 6개월, 아마도 9개월 정도를 더 감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 사이에 삼성전자는 폭발로 인한 갤럭시 노트7 단종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낼 새 모델도 출시해야 하고, 현대자동차 또한 비슷한 처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 기업이 그렇단 얘기다. 다른 많은 수출기업들도 제대로 영업을 해나가려면 정부의 보증이 필요한데, 만약 그 사이에 미국의 금리인상에 이어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안 그래도 세계적으로 보호주의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데, 과연 우리 기업들이 그 파고를 정부의 도움 없이(또는 매우 약한 도움) 넘을 수 있을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삼성이 갤럭시 노트8 또는 갤럭시 s8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까? 혹시 미국이나 다른 어디에서 적대적인 소송이나 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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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국가신용등급을 언급했는데, 그와 더불어 향후 우리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국제기구들의 경제성장 전망치 하향조정이다. 이미 OECD가 그러한 조정을 했고(3.0% @ 2016년 6월 —> 2.6% @ 2016년 11월), 내년 1월에 전망치를 내놓을 IMF도 이미 해외매체를 통해 지난 10월에 3.0%였던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것임을 시사했다.1 과연 얼마나 내릴까? 지금도 벌써 많은 이들이 벌벌 떨고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와 같은 ‘경제위기’론은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지금 ‘위기론’을 확산시키며 일부 보수매체가 노리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의 독점자본의 선택은 이미 꽤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향후 사태의 추이에 따라 재벌은 좀 더 자신들에게 친숙한 파트너의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이것이, 어떤 일이 있어도 박근혜가 끌어내려지는 그 시간까지 촛불이 꺼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한 선택이 지금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현재 재벌이 박-최 무리와 ‘공범’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하나 갖춰지고—나는 대내적 조건보다는 대외적 조건이 훨씬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상황이 점점 ‘임계점’에 다가감에 따라 재벌의 선택이 겉으로 드러날 시점이 올 것이다. 바로 그러한 순간이 왔을 때, 그들은 타협을 시도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타협의 대상은 야권이다.

사태진행의 주요한 무대가 정치권인 지금, 200만 촛불을 배경으로 가진 야권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일부 여권과 ‘타협’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간간히 감지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움직임은 일단 적발되기만 하면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재벌의 선택’이 가시화되고 무대가 정치권을 넘어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될 때,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야권의 여당 정치세력과의 타협이 아니라 바로 저 재벌과의 타협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박근혜의 조기퇴진과 야권을 중심으로 가급적 빠른 정권안정을 전제로 할 것이다.

자, 이러한 갈림길 앞에서 현재의 야당의 선택은 무엇일까? 작금의 사태의 공범인 재벌과 타협하면서 좀 더 안전하지만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결연히 선을 긋고 조금은 더 힘들지만 정의로운 길을 갈 것인가? ‘재벌도 공범이다’라고 외치는 200만 촛불과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감언이설로 속이고 악마와 손을 잡을 것인가?

또한 200만 촛불의 선택은 또 어떠할 것인가? 박근혜가 끌어내려지는 데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재벌을 포함한 모든 공범들이 처단될 때까지 촛불을 밝힐 것인가? 물론 이런 선택이란 게 모 아니면 도 식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타협점은 어디쯤에서 만들어질 것인가? 이 경우에도, 앞서 올린 글의 말미에 내놓은 질문이 여전히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현재의 열기 속에서 박근혜가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을 때 한국경제에서 비정규직의 위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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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 4월 영국의 내년도(2017년)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했던 IMF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인 10월에는 그 수치를 1.2%로 반토막냈다.

평화시위의 한계에 관한 하나의 시각: ‘평화시위 회의론’이 보지 못하는 것

요즘 ‘평화시위’라는 방식을 두고 얘기가 많다. 한쪽에선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시위문화도 선진화해야 한다며 평화시위를 옹호하고, 다른 한쪽에선 평화시위가 가져다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은 이미 2008년 광우병 집회를 하면서 보지 안았으냐며 답답해 한다. 나는 이 후자를 ‘평화시위 회의론’이라고 부른다. 이 입장에 따르면, 평화시위로는 대중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가 없고 광장에 모인 군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별 성과 없이 흩어지기 쉽다.

그런데 ‘평화시위 회의론’이 2008년의 실패를 상기시킬 때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2008년엔 평화시위 프레임이 실패했지만, 지금의 촛불 정국에서는 평화시위의 위력이 막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한달반 정도의 기간을 돌이켜보면, 광장에 모인 군중의 ‘평화’ 기조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반면, 군중의 규모와 위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그리고 그에 이은 야권의 분열과 ‘질서있는 퇴진론’의 등장 이후에도,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촛불은 더 크게 불타올랐다(12월 3일 집회). 분명 이것은, ‘평화시위 한계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매우 곤혹스러운 문제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잠정적으로) 마련한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사안 자체에 내재된 선과 악, 참과 거짓의 구별이 2008년 광우병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박-최 게이트’에서는 명확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명확할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다양한 요소들이 ‘박-최 게이트’에는 내재해 있다. 더구나 이미 최순실은 물론 박근혜도 검찰에 의해 (사실상) 피의자로 지목된 상태다. 이렇게 도덕적으로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명확한 우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대중운동이 굳이 폭력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평화’로 일관했을 때, 운동의 효과는 극대화될 수도 있다. 실제로 평화적인 방식으로 현재 광장은 200만 넘는 사람들을 모아내었고, 이 ‘규모’ 자체가 엄청난 ‘힘'(force)이 되고 있다. 즉 현재의 시위가 만약 성공(?)한다면, 그것은 이번 시위가 평화로워서가 아니라 강해서다.

이에 비해 2008년 광우병 파동에서 제기된 문제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것인가, 수입한다면 어떤 조건으로 할 것인가, 협상과정은 충분히 투명하고 공정했는가, 장기적으로 국민의 먹거리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문제들은 훨씬 더 모호하고 비결정적이다.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에, 2008년에 평화시위 프레임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저런 비결정적인, ‘정답’이 정해지지 않고 사회세력간 이해관계 대립이 첨예한 사안에서는, ‘평화적으로’ 대중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힘’만이 사태를 해결한다.

또 이런 측면도 있다. 여태까지 평화시위라는 것은 청와대/대통령한테 뭘 좀 해달라는, 애원하는 식이었다. 그런 평화시위라는 게 먹힐리가 없다. 하지만 이번엔 바로 그 대통령이 물러나라는 게 주제다. 즉 현재의 시위에서 핵심은 ‘평화’가 아니라 ‘박근혜 퇴진’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기존의 평화시위에서와는 전혀 다른 요구다. 과거엔.. 이를테면 세월호 때를 돌이켜봐도, ‘부디 대통령께서 살펴주시라’는 식이었고, ‘박근혜 퇴진하라’,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구호는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고찰은, 올해 ‘박-최 스캔들’이 오직 ‘평화시위’에만 의존해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가리키는 반면, 그러한 ‘승리’가 내포하는 내용적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암시도 동시에 준다. 박-최 스캔들은 2016년 말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유일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진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독점재벌의 횡포, 비정규직 일반화, 남녀차별, 청년실업, 노년노동… 한마디로 경제와 사회 전체에 퍼진 비민주성을 척결(최소한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는 안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이해와 해법은, 박-최 스캔들만큼 그렇게 ‘명확한’ 것이 아니다. 앞서 광우병 파동과 관련된 문제들처럼, 그것들은 지극히 비결정적인, ‘정답’이 없는 문제다. 각각의 사안을 둘러싼 물질적 이해관계, 사회 세력들 간의 대립 속에서, 즉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에 대한) 상당한 폭력을 수반하면서 오직 잠정적으로만 ‘타협점’이 형성될 것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비정규직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면, 얼마나 줄여야 하는가? 소득의 재분배는 어느 정도까지 정당화될 것인가? 여성에 대한 차별은 어느 선까지 교정될 것인가? 과연, 이런 문제들이 지금과 같은 ‘평화시위’로 근로대중의 바람에 부합하는 정도로까지 해소되겠는가?

지난 한달 반의 과정을 통해, 현재의 평화시위는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힘을 가졌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거기에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성취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 이후, 우리가 위에서 말한 한국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진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평화시위의 무력함을 다시금 절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 평화시위의 이중적 성격이며, 흔한 ‘평화시위 회의론’이 보지 못하는 측면이다. 그리하여 중요한 질문은, 이를테면, 현재의 열기 속에서 박근혜가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을 때 한국경제에서 비정규직의 위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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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울프, ⟪왜 세계화는 작동하는가⟫ (2004) 서문

마틴 울프(Martin Wolf)는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칼럼니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서 일하기 시작해 지금은 수석 경제 칼럼니스트(chief economics commentator)다. 이분은 단행본도 몇 냈는데, 지금 소개하는 ⟪왜 세계화는 작동하는가: 범지구적 시장경제 옹호⟫(Why Globalization Works: The Case for the Global Market Economy, 2004)도 그 중 하나다. 국내에는 ⟪금융공황의 시대⟫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 (이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보시길.)

이하는 ⟪왜 세계화는 작동하는가⟫에 실린 자전적 성격의 서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사상은 중요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짤막한 글에서 그는, 자기가 가진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의 우월성과 그것이 어떻게 해서 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상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진정 열심히 달려 왔기에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이 없는 지식인답게,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자기가 살아온 길을 꽤 소상하게, 그리고 상당히 ‘솔직하게’ 서술한다. 그러나 이 글의 진정한 특징은, 그런 서술의 과정에서, 평소 그의 신문 칼럼에서는 보기 어려운 온갖 비논리적이고 억지스러운 진술들이 난무한다는 거다. 특히 그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등등에 대한 혐오는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다. 아아… 그의 빛나는 신문칼럼 뒤에는 정녕 이런 일그러진 ‘사상’이 있었단 말인가! (아,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겠다. 그런 판단에 영향을 줄 마음은 없다. 그리고 나는 그의 결론적인 생각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저정도면 좋다’라고 인정하는 편이다.)

야니스 바루파키스(왼쪽)와 함께. 런던에 있을 때 마틴 울프를 몇 번 보았는데, 이분, 좀 '펭귄맨' 닮으셨다. 글을 많이 읽다보니, 친근해져서 더 그런 것 같기도.. ㅎㅎ
야니스 바루파키스(왼쪽)와 함께. 런던에 있을 때 마틴 울프를 몇 번 보았는데, 이분, 좀 ‘펭귄맨’ 닮으셨다. 글을 많이 읽다보니, 친근해져서 더 그런 것 같기도.. ㅎㅎ

더군다나, 이 책이 나오고 나서 몇년 뒤 ‘선진국발’ 세계경제공황이 났고, 그로부터 8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세계경제는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는 ‘세계화는 끝났다’라는 말을 질리도록 듣고 있다! 적어도 울프가 이 책에서 했던 말들의 상당 정도는 좀 더 신중하게 재고되어야만 할 것이다.

어쨌거나 아래의 ‘서문’은 그 자체로 꽤 재밌는 글이다. 이 글은 비단 마틴 울프 자신만이 아니라 그 세대의 영국의 (또는 유럽의) 한때는 좌파 사상에 매력을 느꼈으나 지금은 거기에서 멀어진, 그러나 여전히 이 사회의 진보를 믿는다고 스스로 자임하는 중도 자유주의자들이 으레 살아왔을 법한 모습을 담고 있다고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원래 이 번역문은 2008년 8월에 내 과거 블로그에 올려뒀던 것이다.


Martin Wolf, Why Globalization Works: The Case for the Global Market Economy, New Haven: Yale Nota Bene, 2004, pp. x-xviii.
(원문에 달린 미주는 번역하지 않음.)

서문―왜 나는 이 책을 썼는가

정부가 인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은총의 하나인
자유무역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기가 없다.
— 토머스 맥콜리(Thomas Macaulay), 1824

사상(ideas)은 중요하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내 아버지 고 에드먼드 울프(Edmund Wolf)로부터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그는 히틀러로부터 도망 온 오스트리아 유태인 난민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영국으로 건너왔다. 극작가이자 열정적인 지식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미치광이 사상과 그것과 거의 같은 정도로 미치광이 사상인 공산주의자들의 그것이 과연 어떻게 세계의 커다란 부분에서 문명화한 삶을 파괴했는지, 그리고 파괴하고 있는지를 내게 가르쳐줬다. 나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 태어났으므로, 이와 같은 위험이 그다지 오랜 얘기가 아니었다. 독일은 내가 태어나기 겨우 일 년 전에 패망했다. 내가 외부세계를 지각하기 시작할 무렵, 나는 사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예컨대 나는 내 양친이 무장한 사상을 피해 달아난 난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비록 내 친가와 외가 직계가족들은 유럽을 떠남으로써 살아남긴 했지만, 그들의 대부분의 친척들은 오늘날 홀로코스트라 불리게 된 것―나는 이를 그 히브리어 이름, 쇼아(Shoah, 파괴)라고 부른다―에서 사라져갔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네덜란드 유태인 집안 출신인 내 어머니는 그녀의 아저씨, 아주머니, 사촌들 중 거의 서른 명이 나치 치하에서 죽었다는 얘길 우리에게 해 줬다. 나는 또한 공산주의 독재정권들이 유럽을 분할해 놓고도 내가 자라난 나라의 자유와 평온까지도 위협하고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내 아버지는 정직한 사람이자 작가였으므로, 그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 추측에 의거하기보단 사실에 바탕을 뒀다. 그런 까닭에 그는 수많은 그의 동시대인들과는 달리 결코 공산주의에 매료되지 않았다. 그는 공산주의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며 비난했는데, 그 위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고무된 폭군들이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고문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민주주의에 우호적이었고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다. 당시는 많은 지식인들이 반(反)공산주의를 꽤 부끄러운 일로 여겼지만, 그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그래도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이 그랬듯, 그는 사회주의―온건하고 신중한 종류의 것이긴 했지만―에는 끌렸었다. 사회민주주의가 당시 그의 천성에 맞는 지적 거처였다. 그가 한 인간으로서 토니 블레어(Tony Blair)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의 정치는 좋아했을 것이다. 언론인이자 방송인 및 작가로서의 긴 경력을 거치며(다른 뭣보다도 그는 1950년대에 BBC의 독일어 방송의 프로그램 편성자였고,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런던 통신원이자 나중엔 칼럼니스트였으며, 독일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 감독 겸 극작가였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고는 했다. 이 당시는 많은 독일 지식인들이 급진적인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종들에 놀아나던 때였다는 게 중요하다.

내 아버지는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아버지보다 덜할 것 없이 훌륭한 어머니로부터 담백한 인간적 품위가 갖는 영속적인 가치를 배웠다. 나는 내 부모님의 가치관에 저항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민주주의자 즉 ‘사회적 자유주의자’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자(classical liberal)―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통틀어 ‘자유주의자’라 했을 때 의미하는 바다―로 바뀌어 갔다. 나는 자유(freedom), 민주정부, 무관심적 진리추구와 같은 계몽주의적 이상들은 한없이 귀중하지만 동시에 끔찍스러우리만치 취약하다는 것을 배웠다. 또 나는 이런 가치들에는 수많은 적들이 있으며, 그 중 몇몇은 공개돼 있지만 다른 몇몇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오직 자유민주주의만이 제공할 수 있는 자유를 통해 혜택을 보면서도 그것을 공격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지식인들이다. 이들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공격했던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었음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매 세대마다 되돌아오며, 순진한 젊은이들을 망쳐놓고는 한다.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었던 피리 부는 사나이(pied piper)는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였다. 좀 더 최근에 그것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였지 않나 한다.

1965년 10월, 나는 옥스퍼드대학교의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Corpus Christi College)에 입학해서 고전학(classics)을 공부했다. 내 세대를 휩쓸었던 저항의 파도가 휩쓸기 직전이었다. 그런 저항들 중 몇몇―특히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것 같은―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정당해 보인다. 개인의 해방을 위한 요구에 나는 공감했다. 비록 지금은 혁명들이 다들 그렇듯 그것 또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그러나 많은 저항들이 나는 이미 그로부터 면역되어 있었던 유치한 좌익급진주의의 형태를 띠었다. 나는 수많은 마르크스주의 아류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그들 사이의 차이들이 중요하다고 믿는 듯했다. 나는, 별 볼일 없는 두 시인의 장점들을 구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즉 해충과 벼룩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따져볼 필요는 없다는 거다. 어차피 나는 모든 종류의 마르크스주의들이 사악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자유―또는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대한 적대는 혐오스러웠다. 그 이후 역사는 내가 내 부모님으로부터 일찌감치 배운 나의 태도를 승인해 마지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옥스퍼드에서 좀 더 긍정적인 것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특히 1967년 고전학에서 정치학/철학/경제학(PPE)으로 전공을 바꾼 뒤였다. [그 때 배운 것으로서] 이 책과 관련된 주요한 교훈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단의 집단주의 이데올로기―제국주의, 군사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마침내 파시즘―의 공격으로 자유주의가 무너짐에 따라 빚어진 폐해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좋은 경제정책―당시 많은 수의 옥스퍼드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현명한 케인스주의 정도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긴 하지만―이 자유로운 사회와 경제를 그런 공격들로부터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것도 배웠다. 1930년대에처럼 경제가 실패하면 정치의 안정과 사회의 조화는 커다란 위험에 처한다. 번영이 비록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경제학은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에 관여한다. 경제학은 우리가 문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려 할 때에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 자녀들을 위한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동의에 기반을 둔 사회는 주저앉는다.

내가 옥스퍼드로 갔을 때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전히 사회민주주의자―그 당시 죽은 지 얼마 안 됐던 노동당수 휴 개츠켈(Hugh Gaitskell) 성향의―였다. 나는 16살 때부터 노동당의 ‘젊은 사회주의자들’(Young Socialists) 그룹에서 철두철미한 반마르크스주의자로 활동했다. 옥스퍼드에서 나는 ‘노동당 클럽’(Labour Club)에 가입했다. 첫 번째 학기가 끝날 무렵, 해롤드 윌슨(Harold Wilson) 당시 노동당 정부에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기존 ‘노동당 클럽’을 장악하자 나는 ‘옥스퍼드대 민주 노동당 클럽’(Oxford University Democratic Labour Club)이라는 이탈조직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 1967년 나는 1966년 초에 우리가 세웠던 ‘민주 노동당 클럽’의 의장이 되었다. 나는 1970년대 초까지 노동당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

1969년, 나는 옥스퍼드의 너필드 대학(Nuffield College)로 가서 지금은 경제학 석사(Master of Philosophy)라고 부르는 것을 했다. 거기서 나는 주로 세 명의 스승―이안 리틀(Ian Little), 모리스 스콧(Maurice Scott), 맥스 코든(Max Corden)―에게서 번영, 특히 제3세계의 번영을 위해 국제무역이 중요함을 배웠다. 맥스 코든은 당시 실효적 보호에 대한 중요한 저작을 끝마쳤고, (나처럼) 수학에 자신 있는 학생들에게 특히 유의미한 방식으로 무역이론을 가르쳤다. 다른 둘은 (예일대의 티보 스키토프스키Tibor Scitovsky와 함께) 이전 반 세기동안의 경제발전에 대해 당시로서는 가장 중요한 저작의 하나인 ⟪몇몇 개발도상국에서 산업과 무역⟫(Industry and Trade in Some Developing Countries)을 1970년에 펴냈다. 우리 시대의 ⟪국부론⟫이라 할 만한 이 훌륭한 책은 여러 나라의 무역정책과 경제발전에 대한 연구로서, 리틀 교수가 OECD의 ‘발전센터’(Development Centre)에서 행한 것이다. 그것은 수입대체가 아닌 외향적 무역 체제(regime)의 중요성을, 그리고 통제경제정책(dirigisme)이 아닌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하나의 반혁명 선언(counterrevolutionary manifesto)이었다. 나중에 이런 접근은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나쁜 인습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 책은 내가 시장경제가 그에 대한 다른 어떤 대체물보다도 뛰어나다는 믿음으로 개종하도록 만들었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민주주의에 대해 했던 기막힌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것[시장경제]은 이제껏 시도되었던 모든 형태의 것들만 빼면 가장 형편없는 경제시스템이다. 이와 같은 관점의 변화는 영국의 주택정책에 대한 짤막한 논문을 쓰면서 굳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지대에 대한 통제와 공공임대주택의 증가가 재앙적인 결과를 낳을 것임을 알았다. 당시 너필드 대학에 있다가 나중에 런던정경대(LSE)로 옮겨간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는 내가 이 주제로 ‘젊은 페이비안들’(Young Fabians)을 위해 짧은 팸플릿을 쓰도록 설득했다. 이 팸플릿은 익명의 심사자로부터 즉각 거부되었고, 나중에 나는 그가 그 바로 전에 장관을 지냈던 리처드 크로스만(Richard Crossman)이었음을 알게 됐다. 이런 일을 통해 나는 노동당이 낡고 작동 불가능한 국가주의(statism)와 결합한 채 지적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믿게끔 되었다. 이런 확신은, 영국의 재앙적인 주택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 말에 [크로스만보다] 훨씬 더 지적인 앤써니 크로슬랜드(Anthony Crosland)마저도 설득되지 않는 것을 보고 더 굳어졌다.

이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작품들, 특히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과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을 통해 나는 시장경제는 안정되고 내구성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함을 확신하게 됐다. 시장경제는 그와 같은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이 아닐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조건이기는 한데, 계획경제에 내재된 권력의 집중은 아래로부터의 압력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은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개인적 선택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준다. 시장은 자유의 차원(dimension)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신념들은 나를 사회민주주의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로 돌려세워 놓았다. 지금도 여전히 난 자유주의자인데, 그것은 내가 개인의 자유에 최상의 가치를 두기 때문만이 아니라 주제넘게 나서는 정부(intrusive government)의 지력과 능력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내가 사회민주주의자들(미국에서라면 그들이 말하는 자유주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이는 사회주의의 소멸이 건전한 이들의 계획경제와 국가소유에 대한 믿음을 말살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광신자, 반(反)계몽주의자, 극단적 환경론자, 파시스트,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오늘날의 반(反)지구화론자와의 전투에서 자유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온건한 보수주의자는 같은 편에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폭넓은 범주에 속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며, 바라건대 그들이 범지구적 시장경제가 매우 바람직한 것임을 믿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물론] 중요한 문제는 그것 자체라기보단 이 범지구적 시장경제를 어떻게 운영(govern)하고 규제할 것이냐다.

너필드 대학에서의 마지막 해에 나는 세계은행(World Bank)에 젊은 전문가(young professional)로 지원했다. 당시 은행의 경제국 수장이었던 데이빗 헨더슨(David Henderson)이 나의 이런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데, 역설적이게도 그는 은행의 총재였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와 함께 얼마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은행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왔고, 1980년대에는 OECD의 수석 경제학자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만났던 또 다른 자유주의 대의의 전사로, 당시 [너필드] 대학의 연구원이었던 디팍 랄(Deepak Lal)이 있다.

1971년 세계은행에서 내 경력은 훌륭한 영국인 경제학자 스탠리 플리즈(Stanley Please)가 이끌던 부서에서 시작됐다. 그런 선택을 한 까닭은, 그것이 매력적이고 보람 있는 기회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경제학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현대적 과업이라고 당시에―그리고 지금도―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최고의 훈련이었음이 드러났다. 많은 평생의 친구들도 사귀었다. 그 중 몇몇은 그들의 모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해서 했다. 그 초창기 동료들 중에는 나중에 인도의 개혁적인 재무 비서관이 되는 몬텍 싱 알루왈리아(Montek Singh Ahluwalia), 나중에 인도의 수석 경제자문관이 되는 샹카 아카리야(Shankar Acharya)가 있었는데, 이 둘은 1990년대 인도의 시장 지향적 개혁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1972-74년에는 동아프리카, 1974-77년에는 인도를 담당하는 경제학자로 일하면서 나는 국가가 통제하고(dirigiste) 내향적인 경제정책이 행하는 폐해를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이는 기괴한 비효율성 때문만이 아니고, 그것이 낳는 부패라는 돌림병 때문이기도 하다. 은행에서의 10년에 걸쳐 나는 주로 시장 메커니즘과 무역에 더 많이 의존할 것을 주장했다.

세계은행에서 내가 쓴 첫 번째 주요 보고서는 케냐의 민간부문에 대한 것이었다. 얼마 뒤 나는 잠비아에서 행해지고 있던 정책들의 반(反)농업적 편향에 대해 연구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무척 기가 꺾였는데, 이 두 나라가 세계은행의 꽤 열정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서도 경제적 낭떠러지 위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에서 내가 가장 오랜 기간 매달린 것은 인도의 터무니없이 반무역적이고 개입주의적인 정책에 대한 연구였다. 인도가 큰 나라라는 이유로, 세계은행의 지원은 비록 작게나마 계속 유지되었다. 기업들에 어떤 기술과 투입물로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를 명령하도록 고안된 면허제도가 빚어낸 결과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이 작업은 인도의 수출에 대한 한 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인도에 대해 연구하는 동안 수많은 친구들을 사귈 기회를 가졌다. 그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이가 만모한 싱(Mannohan Singh)이었다. 당시 그는 인도정부의 수석 경제자문역이었고 나중에는 개혁적인 재무장관이 되었다.

세계은행에서 나는 1978년에 출판된 첫 번째 ‘세계개발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 작성을 위한 팀원으로 일 년 간 일한 적도 있다. 이는 당시 은행의 총재였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가장 창의력 있는 기획의 하나였으며, 당시 은행의 사업부문 수장으로 막 뽑혀서 나중에 그 자리를 약 20년 지켰던 어네스트 스턴(Ernest Stern)이 지휘했다. 여기서도 나는 무역에 초점을 맞췄다. 은행에 있는 동안 내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젠 고인이 된 벨라 발라사(Bela Balassa)가 있다. 그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와 세계은행에 소속되어 있었고, 수출지향적 무역정책을 장려하기 위해 끈기 있게 일했다. 다른 중요한 지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당시엔 MIT에 있었고 지금은 콜럼비아 대학교에 있는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와 당시엔 미네소타 대학교에 있었고 지금은 IMF 부총재인 앤 크루거(Ann Krueger)가 있다. 이 두 학자 모두 외국무역체제 및 경제발전에 대한 고전적 연구의 개론서를 1970년대에 낸 바 있다.

1970년대 말에 이르자 나는, 세계은행은 그 직원들의 훌륭한 의도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기관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의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것이 돈을 빌려주는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는 거의 무관심한 채로 대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데 있었다. 이것은 불가피한 단점인데, 왜냐하면 세계은행은 그것이 제공할 수 있는 것―돈―이 종종 [그 돈을 받는 나라에] 별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점은 과거 미 국방장관을 지냈고 1967년부터 1981년까지 은행 총재였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성격 때문에 더 증폭됐다. 맥나마라는 무지막지한 의지의 사나이로, 빈곤경감에 개인적인 사활을 걸었으며 끔찍하리만치 상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본성상 그는 계획자이자 수량화에 능했다. 그의 수석 경제자문관이었던 고(故) 홀리스 치너리(Hollis Chenery)의 보좌 아래 그는 스탈린식 발전관을 실행시켰다. 즉 (1) 빠른 성장이 투자증대와 이용 가능한 외환의 증가에 뒤따를 것이다, (2) 이 둘은 외부로부터 추가적인 자원을 필요로 한다, (3) 이런 자원의 상당 부분은 세계은행에서 나오게 된다. 그의 관리 아래 은행과 은행의 대부는 엄청나게 커졌는데도, 모든 부서는 프로젝트의 질이나 수혜국의 발전 프로그램에 사실상 상관 않고 돈을 더 많이 대출하라는 압력에 시달렸다. 이는 은행 직원들의 전문성을 훼손시켰고, 돈을 빌리는 쪽으로 하여금 뻔한 결과를 무시하고 부채를 쌓아 나가도록 부추겼다. 이런 상황은 계속될 수 없었고 실제로 그랬다. 몬텍 알루왈리아가 언젠가 내게 말했듯, 세계은행은 죽어가는 산업의 성장하는 기업이었다. 그 성장의 한계에 다다를 것은 뻔했고, 맥나마라가 은행을 떠난 뒤 곧 그렇게 됐다.

이런 일에 질색이 날 때쯤, 나는 부서의 선임 경제학자로서 인도를 대상으로 3년째 일하고 있었다. 이 기간에 은행과 관련한 내 주요한 기능은 엄청난 양의 원조제공을 정당화하는 일이었다. 바로 이 돈이 인도정부로 하여금 그들에게 절실한 정책전환을 보류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이 정책전환은 거의 20년을 낭비한 끝에 1991년 외환위기의 깊은 수렁 속에서 단행되었다. 당시 재무장관이던 만모한 싱이 이 전환의 책임자였고, 몬텍 알루왈리아가 경제비서관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재무비서관으로 그를 도왔다. 이와 같은 경험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훈을 확인시켜줬다. (1) 정책전환은 경제성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2) 그런 정책전환은 똑똑하고 의욕있으며 규율이 잘 잡힌 비교적 소수의 팀에 의해서도 실행될 수 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3) 그런 정책전환은 바깥에서 부과될 수는 없다.

불행히도 세계은행의 잘못은 과도한 대부만이 아니었다. 은행은 또한 정부들에도 대부를 해줘야만 했다. 이는 두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1) 은행은 정부가 해당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가정해야만 했다, (2) 은행은 부당하게도 그 국가이익에 대한 집단주의적 견해를 강화시켰다. 은행의 대부는 부패하고 종종 사악한 정부들이 그들 국민들의 이해관계와 바람을 무시하는 것을 쉽게 만들었다. 은행을 그만둘 무렵 나는 은행의 대부자들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1)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부자, (2) 도움을 이용하지 않으려 하는 대부자, (3) 도움을 필요로 하고 또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대부자. 세계은행은 그 구조상 통상 매우 작은 그룹인 이 세 번째 범주의 대부자들에게 그것의 역량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그 결과 그것이 행하는 노력들은 불필요하거나 소모적이었다. 따라서 나는 고(故) 피터 바우어(Peter Bauer) 경이 오래 전에 원조에 대해 했던 비판의 대부분에 동의하게 되었다.

성공적인 발전을 위해 통합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세계경제의 몇 가지 측면들을 감시하도록 디자인된 기관들이 실패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오늘날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자유로운 세계경제를 수호하는 것이 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 특정 기관을 수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관들은 그들 자체로서 판단되어야―그리하여 개혁되거나 폐기되거나 해야―한다. 이 단계에서 이런 깨달음을 통해 나는 은행의 보호막을 나와 비교적 불확실한 민간연구소(think tank)의 세계로 들어갔다. 1981년 9월, 나는 런던에 있는 무역정책연구센터(Trade Policy Research Centre)에 연구국장으로 들어갔다. 이 자리는 전후(戰後) 국제무역이론의 거성인 고(故) 해리 존슨(Harry Johnson)이 차지했던 것이기도 하다. 정력적인 소장 휴 코벳의 지휘 아래 센터는 무역자유화와 다자간무역체계에 대한 연구로 그에 합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나는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던 마지막 두 해에 센터와 처음 접촉했다. 동료 도널드 키싱(Donald Keesing)과 함께 나는 개발도상국의 섬유/의류 수출품에 대해 선진국들이 행하고 있던 수입할당제도에 대한 건실한 연구보고서를 썼다. 그것은 빈국의 비교우위에 대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의 반응에 들어있는 위선에 대한, 그리고 몇몇 무역정책기조의 복잡성과 불합리성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제공했다.

나는 센터에서 6년간 연구국장을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대부분의 작업은 다자간무역협상의 여덟 번째 라운드를 열 것을 촉구하는 일이었다. 이는 나중에 우루과이 라운드로 알려지게 된 것으로, 결국 1986년에 시작됐다. 센터는 서비스에 관한 무역협상을 위한 의제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내가 한 가장 중요한 기여는 무역체계에서 개발도상국의 역할에 대한 연구들을 기획한 것이다. 이 연구들의 목적은 개발도상국이 호혜적인 방식으로 무역협상에 나서기를 꺼리는 오랜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특례 및 우대 조치’(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를 옹호하기 위함이었다.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연구는 저명한 국제무역법 학자이자 당시엔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던 로버트 휴덱(Robert E. Hudec)에 의해 수행되었다.

아아, 적어도 영국에서 민간연구소의 재정은 고질적으로 취약하다. 1986년에 이르자 센터는 문을 닫아야 할 것임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었고, 머지않아 그렇게 됐다.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데 1987년, 나는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편집인이던 저프리 오웬(Geoffrey Owen)으로부터 거기의 수석 경제학 필자가 되어 달라는 초청을 뜬금없이 받았다. 이것은 그로서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내가 그 신문에 몇 번 글을 낸 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언론인은 아니었고 그렇게 될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이었고, 결국 나는 1987년 9월에 ⟪파이낸셜 타임스⟫에 들어갔다.

이 무렵 경제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은 수차례의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주어진 현실의 결과들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를 미세조정할 수 있다는 순진한 케인스주의적 신념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깨져버린 바 있다. 그것은 화폐적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대체되어, 물가안정(inflation targetting)―나는 이 개념을 1970년대 모리스 스콧으로부터 처음 들었다―이라는 목표가 널리 채택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었다. 통제경제정책과 보호주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영국에서 환율통제는 1979년 쌔처(Thatcher)정부에 의해 폐기됐다. 민영화가 1980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세계를 휩쓸었다. 1980년대의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영국 경제학자 존 윌리암슨(John Williamson)이 만든 용어―는 경제발전에 있어 건전한 재정/통화정책과 적극적인 시장의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게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것은, 내향적 무역정책의 실패 및 무역자유화의 뛰어남이 널리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부분적으로는 이런 이유로 개발도상국들은 과거 무역라운드에서보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더 큰 역할을 실제로 했다. 이는 1995년 1월에 세계무역기구(WTO)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시장관계를 기반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경제라는 아이디어가 한동안의 집산주의적 휴지기 뒤에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1989년-91년 사이 소비에트제국(Soviet empire)의 붕괴―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깜짝쇼―는 정치와 경제정책에서의 범지구적 변환을 확정짓는 것만 같았다. 사회주의는 죽었다. 미국 분석가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심지어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런 시각은 그것을 부당하게 희화화한 자들에 의해 경멸받았다. 후쿠야마가 주장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앞선 경제와 사회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거였다. 이 점에서 그는 옳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적들은 그것의 생존을 여전히 위협할 수 있고, 역사가들이 거의 확정적으로 황금시대라고 보는 것을 끝장낼 수도 있다. 이 명제가, 대부분의 인류역사를 훼손시키는 어리석은 짓과 범죄가 앞으로 이런 저런 형태로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무질서가 다시금 세계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만약 역사가 무언가를 가르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또는 더 나쁜 세상을―고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학문적인 것이라기보단 설득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시장을 통해 통합된 세계는 인류 대다수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줄 거라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시장은 생활수준을 높임에 있어 지금까지 발명된 그 무엇보다 더 강력한 제도(institution)다. 사실 그에 필적할 상대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시장을 필요로 하듯 시장은 국가를 필요로 한다. 이 둘이 잘 결합했을 때 우리는 한 사회를 운영하는 데 가장 훌륭한 방식인 현대 자유민주주의를 갖게 된다. 그것의 혜택은 더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 오늘날의 문제는 너무 많은 범지구화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너무 적다는 데 있다. 더 많은 자유시장과 더 많은 협력적 세계운영(co-operative global governance)을 잘 조합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국가를 다른 무언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될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국가가 협력적 세계경제질서에서 그들의 장기적 이익에 대해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명제들을 정당화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첫 번째 자유주의적 질서의 붕괴는 30년 동안의 대재앙을 낳았고, 내 부모세대는 그것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수백만의 생명들이 그런 실책 때문에 사그라져갔다. 이제 우리 모두는―또는 거의 모두는―철이 들었다.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신념에 흠집을 내는 사상들은 잘못됐다. 사회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실수였을 뿐만 아니라 범죄였다. 제국주의는 일종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군사주의와 민족주의는 유럽문명을 파괴했다. 이제 우리는―분별력 덕분일 뿐 아니라 요행수로―전보다 나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다시 창조했다. 이는 기회를 세계 전체로 확장한다.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내던져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 후손에 대한 우리의 의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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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보다 더 큰 문제는 경기 침체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예측을 깨고, 그리고 우리의 ‘문명수준’에 대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믿음을 배반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뽑혔다.

그의 당선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두고 다양한 해석과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마도 가장 솔직한 대답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것일 듯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열성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 당선이 확실시된 뒤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칼럼에서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 트럼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언행이 기존의 ‘정치문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정치적 입장 또는 프로그램에도 입각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결과를 ‘공화당의 승리’라고 할 수도 없다. 부시 전 대통령처럼 공화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요 인물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선언할 정도였다.

특정한 정치적 의제나 가치를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했다기보다 트럼프는 노련한 사업가답게 미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어떤 ‘바람’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내고 거기에 자신을 성공적으로 던져 넣었다. 그 바람이란 바로 ‘분노’다.

분노는 결코 이성적인 반응이 아니다. 대중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은, 분노의 원인이 제거되어 자신의 분노가 풀리기를 이성적으로 원하기도 하지만 뭐라도 한 대 쳐서 당장의 분을 삭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인들의 분노는 현재 미국 경제가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유래한다.

지난 8년간 오바마 행정부는 다른 선진국들의 정부에 비해 경제위기를 잘 관리한 편이지만, 대중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실질임금 상승은 정체되거나 뒤집혔고, 지표상의 실업률 하락과는 반대로 장기실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소수의 가진자들의 배만 불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전체가 분노의 원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원인’을 건드린 게 아니다. 그가 한 일은 화난 미국인들의 발 앞에 깡통을 던져준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그 깡통을 힘껏 발로 참으로써 트럼프에 화답했지만, 선거 뒤에도 트럼프가 대중의 분노에 봉사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침묵하는 다수’라고 불렀던 그들은 이제 다시 침묵을 강요받을 것이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 앞에는 그들을 분노케 했던 거대한 ‘시스템’이 놓여 있다.

이 시스템의 ‘주인’이 월스트리트 안팎의 자본가들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고 동원하기 위해 트럼프가 내놓았던 약속들이 저 ‘주인’의 의사에도 부합한다고 보긴 어렵다. 트럼프 말대로 당장 외국인들을 미국 경제에서 몰아내면 미국의 거대자본에게 좋겠는가.

그런데도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현재 체제의 실질적인 주인들도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침체 앞에서 ‘속수무책’임을 방증한다. 적어도 그들로서는 대중의 분노가 자신들을 향하는 것보다는 트럼프 같은 이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되는 편이 낫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국의 선거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싸움이었다기보다는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함을 정확히 지적한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졌을 때 이미 끝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클린턴의 중요한 패착은 대중의 분노를 진보적으로 받아 안았던 샌더스의 ‘유산’을 적절히 계승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였더라면 이겼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좀 더 핵심적인 문제들이 제기됐을 것이고 ‘싸움’은 좀 더 볼 만했을 것이다.

결국 앞으로 일정한 혼란은 있겠지만, 특히 경제 영역에서는 ‘트럼프 변수’보다는 기존의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침체 변수’가 더 중요한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세계경제의 보호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은 트럼프 같은 ‘대중추수적’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이 아니고 이른바 ‘자유무역의 이득’이라는 것이 실현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에 활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러한 활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개별적인 자본보다는 각국 정부들과 그들의 세계적 연합체들(국제기구 등)이 전면에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트럼프의 미국 앞에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 글은 뉴스1에 먼저 실린 것으로,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원문에 사소한 수정을 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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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진보성’에 대하여 (제1회 ‘낮은책들’ 월례강좌)

지난달 말일에 있었던 기본소득 강좌(링크)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깜짝 놀랐다. 이 강좌는 새움의 새로운 총서 ‘낮은책들’이 기획한 것으로 앞으로 이런 자리를 계속 만들 거라고 한다. 많은 관심들 가져주시길.

강연에 함께 나선 다른 두분과 달리 나의 준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실했던 것 같다. 제갈현숙 원장(민주노총 정책연구원)께서는 엄청난 퀄리티의 ppt를 준비해 오셨고, 이종태 기자(시사인)께선 최근에 기사를 쓰시면서 모은 다양한 사례들을 들려주셨는데, 나는 좀 날로 먹은 느낌;; 그래서 나름 AS(?)한다는 생각으로 그날 한 얘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참고로,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몇 개 썼다.

  1. 기본소득론: 그 계급적 성격 명확히 해야 현실성도 있다 (이 블로그, 2014년 2월 24일)
  2. ‘진정한’(?) 기본소득론 (한겨레, 2016년 8월 22일자)

1. 하나의 진보적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론은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 얼마씩을 나눠주자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한해 일인당 GDP가 미화로 2만달러라고 하면, 모든 개인에게 해마다 2만달러를 나눠주자는 게 기본소득론이다. 물론 일정한 사회적 비용이 있을 것이고, 또한 개인이 ‘능력껏’ 벌어가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니 그 액수는 1만달러 정도가 될 수도 있다. 하여간 이렇게 무조건 나눠주는 거다. 그게 기본소득론이다.

이런 세상이 되면 빈곤도 없어지고 사람들도 일중독에서 벗어나며 기존 복지체계의 비효율성도 사라질 것이라고들 한다. 즉 기본소득론은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제기하고 또 해소하는 하나의 진보적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제기되고 있다. 나는 기본소득론에 그런 성격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빈곤이 사라진다거나 하는 것은 그다지 핵심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빈곤퇴치는 현재의 복지자본주의 하에서도 (적어도 기본소득제도 하에서 가능한 정도로는)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거꾸로 가장 잘 발달한 복지국가에서조차 빈곤이 100% 퇴치되지 않았다면, 기본소득제 하에서도 장담하긴 어렵겠다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진보적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기본소득제도의 최대 매력은,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켜준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하에서 인간은 태어나면 누구나 교육을 받고 학교에 가면 학용품을 나눠준다. 아, 우리나라 얘긴 아니다 ^^ 그러나 학교에서 나눠주는 공책이 죄다 파란색일 수 있다. 난 빨강이 좋은데… 기본소득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준다. 공책을 나눠주지 말고, 돈을 주고 각자가 원하는 공책을 사게 하는 것, 그것이 기본소득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복지자본주의 하에서 억압된 개인의 자유를 만개시켜주는 성격이 있다. 이런 성격은 역사의 발전을 개인의 자유의 발전과 연관시켰던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위와 같은 중요한 ‘진보성’을 내포한 반면, 하나의 ‘진보적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기본소득제도는 매우 심각한 결함이 있다. 바로 거기엔 ‘생산론’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본소득론은 분배론이고 소비론이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어떤 청충은 ‘기본소득론에 생산론이 왜 없는가? 노동-소득 연계를 끊는다는 것, 그것이 기본소득론의 생산론이다’라고 반박했다. 맞다. 바로 그래서 기본소득론이 ‘생산론’이 아니라 ‘분배론’인 거다. 소득의 분배가 노동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특수한 분배론이다.

바로 이러한 중대한 결함 때문에, 나는 하나의 ‘진보적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기본소득제도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본다(하지만 이 길은 ‘막다른 골목’일 수도 있음을 덧붙여야 공정하겠다. 그것이 역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대안담론들에 닥친 운명이었다). 개인적으론 그래서 기본소득론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냥 ‘좋은 얘기’ 정도로 본다.

물론 이런 결함을 근거로 기본소득론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보더라도 현재 우리 좌파들의 상황은 조그마한 차이나 결함 때문에 나와 다른 입장들을 억압하고 배제하기보다는 서로 장점을 북돋아주면서 함께 커가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고 본다. 이것은 기본소득 찬성과 반대 양편에 공히 해당되는 얘기다.

2. 기본소득의 이상과 현실: 기본소득론의 출현 배경

기본소득론의 출현배경으로 얘기되는 것들이 있다. 기존 복지자본주의의 과잉에 따른 한계, 기계화/자동화 진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개인의 욕구 다양화, 예술이나 비평 같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가치를 생산하지만 시장적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활동들의 존재/증식 등등.

그런데 실제 현실 역사에서 기본소득론이 등장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게 된 배경은 정반대에 가깝다. 즉 복지국가가 ‘한계’(이 한계에는 복지국가가 개성을 억압한다는 것도 포함된다)에 부딪혔다기보다는 1980년대부터 약화되고 변형되었다. 국가가 공급하는 재화/서비스의 양과 질이 떨어졌고, 더욱이 그 수혜조건으로 고용과의 연계가 강조되면서 ‘welfare’가 ‘workfare’로 전환하였다.

기계화/자동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났다. 일자리의 현황을 묘사하는 좀 더 정확한 용어는 ‘양극화’다. 다수의 저임금, 저질의 일자리가 급속도로 증식하였다. 그 배경은 기계화/자동화 진전보다는 세계화에 따른 자본간 경쟁의 격화, 자본의 전반적인 수익성 약화 등이 더 중요한 힘이었음이 두루 인정되고 있다.

복지국가의 후퇴는 일반적인 복지뿐 아니라 국가의 각종 지원제도의 축소도 의미한다. 그에 따라 직접적으로 자본관계에 종속되지 않았지만 국가의 지원으로 유지되어 온 다양한 ‘가치로운’ 활동들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 예술가들이 그 주된 피해자다.

이러한 복지국가 후퇴는 자본이 노자관계를 압도하고 국가의 정책결정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결정에서 민중의 힘이 크게 줄어들고 있음을 반영한다. 노조 약화는 그 중요한 계기다.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지만, 바로 그 개별적인 문제의 장에서 사태에 맞닥뜨릴만한 힘이 우리 ‘대항세력’에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약한 힘도 뭉치면 (상대적으로) 강해진다. 따라서 이제는 ‘약한 고리’를 치는 게 아니라 모든 역량을 긁어모아서 ‘중앙정부’에 요구한다! 하지만 세세하게 이것저것 시시콜콜 따지기는 어렵고(사실은, 그럴 능력이 없고), ‘돈으로 달라, 내가 알아서 할게’… 이것이 현실의 기본소득론이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선 일정에 페북에 끄적거린 게 있다: ‘운동의 무기력함과 국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그리고 “세월호”의 난처함에 대하여’)

3. 최근 기본소득론의 인기가 반영하는 것

그러니까 현실의 기본소득론은 ‘힘든 사람들에게 소득보조를 해주자’, ‘청년들의 취업이 어려우니 일정한 생활자금을 지급하자’, ‘최저임금을 올리자’, ‘법인세를 올리자’ 등의 어쩌면 식상할 정도의 (그러나 매우 절실한) 사회적 요구들을 다르게, 좀 더 ‘섹시하게’, 그리고 좀 더 확장성 있게 나타내는 ‘언어적 포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기본소득론은—만약 그것이 ‘기본소득론’이라고 불릴 수 있다면—애초 그것이 개념적으로 내포하듯이 기존의 복지자본주의를 해체하기는커녕 오히려 보완하는 성격을 갖는다. 즉 그 현실적 지향점은 기본소득의 옹호자들의 주장과는 전혀 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론의 최근 인기가 반영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복지국가와 (좀 더 일반적으로는) 국가기능의 축소와 형해화이지, 그 과잉이나 한계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즉 국내적으로는 공화주의적 복지국가체계가 미발달한 상황에서 글로벌한 차원에서는 복지국가의 위기가 중첩된 우리나라 같은 후발국에서는, 기본소득론의 확산은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에 대한 불신까지도 내포한다. 이 불신은 전통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의견일치’의 근거였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불신은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시행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청년수당정책이 기본소득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도 있지만, 현재 맥락에서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에 기본소득론의 증식에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위에서 현실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론이 기존의 복지자본주의를 (해체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보완하는 성격이 있다고 했는데, 그 보완의 ‘방향’이 기본소득론 하에서는 왜곡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진정으로 국가의 기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현재 65세 이상 시민에게 지급되는 20만원의 기초연금 상당부분이 별 도움도 안되는 의료비로 나가는 현실에서(동네 아주머니들이 동네 한의원 물리치료 침대에 집단으로 매일 누워계시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이를 40만원으로 획기적으로 인상하는 것과 그 재원으로 노인에 대한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확충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방향으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청년 고용의 문제도 그렇다. 기껏 어렵게 쥐어준 청년수당/청년배당이 토익책 사는 데, 또는 그 토익책을 보기 위해 들어간 커피숍 비용으로 고스란히 나간다면, 과연 그런 청년수당/배당이 바람직한 것일까? 여기서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일까?

[강연에서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선 특별히 기본소득론 증식은 자본주의 미발달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선 링크 후반부 참조.]

4. 기본소득, 옹호냐 반대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주류 정치권에서도 받아들이기 시작한 기본소득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낫다고 본다. 까칠하게 굴 거 없다는 얘기다. 냉정히 말하면, 그것이 겉보기엔 기본소득론 지지로 나타나더라도 내용상으로 여기서 지지되는 것은 기본소득도 아니다. 그저 힘든 사람들 돕자는 정도의 수준이고, 어차피 1인당 월 20~30만원 정도는 기존 복지제도 하에서도 얼마든지 명목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이니, 오히려 그런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체계를 보완하는 성격이 있다. 이렇게 좀 더 전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현재의 기본소득론 인기가 향후 세수확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기본소득, 그러니까 ‘기본소득이라고 주장되는 현실의 다양한 형태들(청년수당, 기초연금 등)’에 지지를 보낸다면,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이 기본소득이 아니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제도를 확충합시다’라는 요구보다 ‘기본소득 해봅시다’가 전술적으로 ‘더 잘 먹힌다면’ 괜한 고집 피울 것 없다는 거다.

이것이 ‘무조건’ 옹호가 아님을 다시금 강조한다. 그러나 논쟁이 필요하다면 추상수준을 좀 낮추는 게 좋다. 적어도 ‘그건 기본소득이니까 반대’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기본소득 옹호자들도 이런 사정을 인정하고 좀 더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옳다고 본다. 이 세상은 어느 개인이나 세력의 사상을 펼치는 장이 아니다.

[덧. 강연회에서 한 청중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깜빡 잊었다. 질문은 ‘그럼 당신은 “진정한”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어찌 보느냐, 그것도 옹호하자고 할 거냐’였다. 앞서 쓴대로, 나는 ‘알파고의 영향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커지고…’ 따위의 주장은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하고 이론적으로는 심각하게 반박할 정도로 성숙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때때로 비판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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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국민투표, 그 의의와 전망—1달 경과 기념

영국에서 자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 Britain + Exit)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있은지도 이제 꼬박 한달이 지났다. 지난 한달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당초 예상을 뒤엎고 ‘탈퇴’로 결론이 나자 세계의 외환・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고, 투표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한 데이비드 캐머런을 대신해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 신임 총리로 빠르게 임명되었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의 해안도시 니스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는가 하면, 터키에서는 군부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그밖에 남중국해를 두고 벌어진 중국과 주변국들 간의 갈등이나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는 미국의 대선 등은, 우리로 하여금 한달 전 영국에서 벌어진 국민투표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다.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브렉시트의 의미를 차분히 곱씹어보기에 제격인지 모른다.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투표 결과가 갖는 ‘고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국민투표를 전후해서 쏟아진 브렉시트에 대한 분석들은 주로 경제적인 것이었다. 즉 브렉시트가 현실화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것이다. 쉽게 예상 가능하듯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 영국은 당장 유럽 안팎의 기존 교역국들과 통상관계를 새로 수립해야 하며, 영국 국민은 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은 어떤 정해진 시나리오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기에, 여기엔 불확실성도 따른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경제적 성과의 후퇴로 귀결될 것이다. 때마침 지난 19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영국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1.3%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것은 직전 전망치(4월)보다 무려 0.9%포인트 낮은 수치다.

영국의 EU탈퇴시 영국의 GDP 감소 예상치(자료: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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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위 표에 나타나는 수치들이 아무리 스펙타클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결국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전망’일 뿐이다. 여기엔 수많은 ‘가정들’이 전제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었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에 투표한 영국 유권자의 51.9%가 브렉시트에 찬성하더라는 것뿐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영국 의회에서 결정될 사항이며,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오직 그 결정과정에서 참조사항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돌이켜봐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번 국민투표 결과 그 자체의 의미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고유의’ 의미는?

사실 이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분석들이 제출된 상태다. 대체로 그런 논의들은 광신적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부활, 민주주의의 한계 노정 내지는 후퇴, 범지구화의 종말, 기존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 등의 주제로 수렴되는 것 같다. 딱히 ‘좌파’에 속하지는 않더라도 분별 있는 논자라면 이러한 사태들의 ‘경제적 배경’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흔히 대처리즘 또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1980년대 이후 영국의 정책기조와 범지구화(globalisation)가 더 이상 경제성장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그나마 그간의 성장의 과실은 인구의 최상위 1%가 모조리 가져갔다는 등의 내용이다. 실제로 영국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유럽연합이 출범한 이래 비교적 빠른—특히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경제성장을 달성해 왔지만 노동소득분배율은 계속 하락했다.

영국의 실질GDP 증가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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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노동소득분배율(자료: ONS. Bank of England에서 재인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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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분석도─그 자체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갖는 ‘고유의’ 의미를 드러내기엔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번 투표결과와 관계없이 원래부터 존재하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즉 이번 투표결과의 찬반이 뒤바뀌었다고 해서, 곧 51.9%가 브렉시트 반대에 표를 던져 ‘브리메인’(BRIMAIN: Britain + Remain)으로 결과가 나왔다면, 당신은 신자유주의 범지구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겠는가?2 또는 사람들이 거기에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영국에서 외국인 혐오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범지구화의 후퇴, 좀 더 구체적으로 세계교역의 둔화는 지난달 영국의 국민투표 훨씬 이전부터 우려의 대상이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올초부터 순수출이 매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0% 이상씩 줄어 경제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지금 전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민중이 신자유주의적 범지구화와 그에 따른 소득불평등 심화에 진저리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불만은 때로는 월스트리트 점령과 같은 대중의 집적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선 외국인이나 기타 약자에 대한 혐오, 허황된 민족주의적 동원 등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것은 꽤 일반적인 현상이며 거대 독점자본과 거기 결탁된 정치인들은 이를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고 때로는 부추긴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주로 극우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이번 국민투표의 본질이 이민문제라고 호도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3 하지만 반대로, 그 이민문제란 사실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표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해서 만족할 일도 아니다. 이런 식의 ‘근본적 힘’으로의 환원은 이번 국민투표 및 그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민도 아니고 경제도 아니다? 정치제도의 정당성 위기

이민도 아니고 경제적 토대에서의 양극화와 대중의 삶의 기반 잠식도 아니라면, 브렉시트 사태의 의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번 브렉시트 사태의 ‘고유의’ 의미는 그것이 ‘국민투표’라는 정치적인 형태로 나타났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 봐도,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이민에 대한 우려가 사회 전반에 걸쳐 깊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극우 정치세력에 의해 조장되고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해 사실상 방조되어 온 것일 뿐, 통계상으로는 영국의 유럽인 이민들은 영국경제의 성장에 해롭기보다는 이로웠다. 사실 노동력의 질도 영국인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흔히 영국의 유럽이민에 대해 말할 때, 폴란드 등 동유럽 출신의 하층노동자를 떠올리지만, 사실 영국에 있는 유럽출신 이민들 중 상당수는 고학력의 엘리트들이다. 이 두 부류 공히, 영국으로 몰려듦으로써 자국의 경제발전은 거꾸로 저해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영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통제가 강해지면, 그것은 그 이민의 출신국에 대해선 ‘기회’가 되기도 한다.4

미시적・부분적으로는 영국이 유럽연합 바깥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제주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통계자료는 그것이 전체적으로는 성립되지 않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브렉시트 찬성이라는 국민투표 결과는 적어도 영국의 자본가와 그 주변의 지배세력에게 바람직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자본에도 해로운 결과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렇게 ‘자해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방치했는가?

영국에서 출신국별 고용의 GDP 성장률 기여도(자료: 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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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는 그 결과가 아주 정당한 과정,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를 따랐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가 ‘대의’하는 것은 ‘민의’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것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소수의 자본가와 자산계급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일 뿐이다. 현대의 정치제도는 이러한 소수의 이해관계를 다수의 이해관계, 즉 ‘민의’인 듯이 포장하는 데 능하다. 선거라는 장치가 있지만, 여기서 대중의 선택은 근본적으로 심각하게 제약되어 있고, 그마저도 대중매체를 통해 조작되기 일쑤다. 따라서 힘을 가진 이들은 민의를 따르는 체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킨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만 해도 그렇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양극화로 흉흉해진 민심이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등으로 나타났고, 일부 소수파 극우 정치세력은 이를 이용하고 조장하면서 성장해 마침내 주요 정치세력을 위협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집권 토리당의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한다(2013.1). 그는 선거에서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고(2015.5) 유럽연합으로부터 영국의 특수한 지위를 약속받는(2016.2) 등 일정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나서야 국민투표 실시 일정을 공포했지만, 결과는 브렉시트 찬성! 즉 지배적인 정치세력과 그들이 대변하는 자본가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자해적인 결과는 그들이 그토록 찬양하고 자랑하던 민주주의적 방식을 따른 것으로, 거대 자본과 정치권력들은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난감함이 이번 브렉시트 사태의 핵심이다.

향후 사태의 전개방향: 국민투표 이전으로 되돌리기

그렇다면 이번 브렉시트 사태에서 훼손된 정치제도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겉보기에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찬성 결정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이상, 그 정치적 형태로서의 유럽연합에 대한 거부가 표면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에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영국 정도의 규모와 영향력이 있는 나라에서 이런 결과가 벌어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추가탈퇴 움직임이 있을 것인가? 나아가 유로존 회원국이 탈퇴하는 일도 벌어질 것인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충격을 이미 겪었으므로 유럽의 지배계급들은 ‘회원관리’에 더욱 철저를 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 추가탈퇴는 탈퇴 당사국과 유럽 전체에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영국과 유럽의 자유주의적 지배 엘리트들은 이번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를 가능한 한 무력화시키고 국민투표 이전으로 사태를 되돌리기 위해 힘쓸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번 영국민의 브렉시트 찬성 결정이 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정당성 훼손이다. 민주주의적 방법, 그것도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인 국민투표의 결과를 되돌릴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이, 대의 민주주의 안에서 어떻게 찾아질 수 있을까? 현재 영국과 유럽의 지배계급들은 바로 그러한 불가능한 수단을 만들어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일부 중도적인 성향의 싱크탱크에서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더라도 최대한 탈퇴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일종의 로드맵으로 내놓고 있다. 메이 총리 취임 뒤에는 영-EU 간에도 국민투표 결과 발표 직후의 냉랭한 분위기—영국, 정확히는 이번 사태를 주도한 유럽의회의원 나이젤 패라지 등에 대한 ‘괘씸죄’, 다른 EU회원국의 추가탈퇴 방지 등을 위해 조성된—가 조금씩 가시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돈다.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브렉시트를 무력화시키고, 유럽과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여론과 정치적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5

결론에 대신하여

정치제도의 정당성의 측면에서 브렉시트 사태의 의의를 찾는 이상의 설명은 비유물론적인, 정치 우위적인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의 공황에 이은 장기침체와 극심한 양극화가 몇몇 국지적인 소요를 낳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침내 정치제도 자체를 뒤흔드는 정도로까지 발달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특히 좌파들에게 제기되는 하나의 어려움은, 그러한 정치제도의 위기가 좌파들의 정치적 실천 또는 대중의 현체제에 대한 불만이 적극적으로 표출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브렉시트에 대한 찬성-반대는 현체제에 대한 찬성-반대, 일반적으로 말하면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입장차를 반영할 수 없는 틀이었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서,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지도부가 처했던 난처함도 비롯된다. 국민투표 직후 코빈 지도부는 브렉시트 반대 입장을 좀 더 강하게 견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당내에서 받았다. 그러나 과연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것, 결과적으로 현재의 유럽연합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진보 좌파의 길인가?6

국민투표를 영국 국민들의 브렉시트 찬성 의사가 확인된 만큼 브렉시트의 실현을 위한 정치일정이 이제 하나씩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브렉시트는 영국과 유럽의 자본가들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지배계급들은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를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좌파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현재 경제적 토대로부터 상부구조의 다양한 영역으로 번지는 위기 상황을 어떻게 진보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지금부터 한동안 영국(과 유럽)의 좌파들에게 제기될 핵심 문제일 것이고, 브렉시트 찬성-반대라는 꽉 조이는 틀에서 벗어난 이제부터가 진정한 ‘브렉시트 정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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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황 이후에 살짝 올라간 것은, 임금이 늘어서라기보다는 기업이윤, 자산소득 등이 줄어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런 소득들에 비해 임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격이 있다.

  2. 이것은 그저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최근의 세계무역 감퇴를 곧장 범지구화의 종언으로 해석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브렉시트만 놓고 보더라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글로벌 경제침체와 관련된 것일뿐 아니라, 이를 통해 오히려 유럽 외 지역의 연결고리가 더 탄탄해질 수도 있다고 보는 게 현명한 태도다. 물론 그 ‘연결고리’의 성격이 결코 주변국들과 중심부의 민중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범지구화 찬양론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3. 그러나 이민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보는 게 극우세력만은 아니다. 중도적 자유주의 세력 또한 현재의 사태를 이민에 대한 관용이냐 불관용이냐라는 ‘도덕적’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동시에) 자유주의적 가치 아래 대중을 동원하고자 한다.

  4. 물론 유럽의 주변국들의 경제 및 사회의 발전이 중심국의 이주민 통제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5. 여기서, ‘늬들 사이좋게 지내’라는 대서양 반대쪽의 리버럴 지식인들의 ‘충고’가 연이어 나올 것이다.

  6. 그런 의미에서, 가장 진보적인 길은 애초부터 국민투표를 보이콧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저 어리석은 국민투표를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민투표를 거부하기는커녕, 실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대중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선거와 같은 정치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정치적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이른바 대의 민주주의가 담보하는 이 ‘교육적’ 기능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된 시민들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 임금삭감에 혈안이 된 정부

이번 정부 들어서 진행되는 일련의 움직임들을 보면, 이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임금을 어떻게든 줄여서 기업의 수익성을 높여주려고 혈안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정부의 책임 또한 방기하고 있다.

이를 간단한 그림으로 보자. 먼저 평균적인 사람의 수명이 70살이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보통 태어나서 20살까지는 소비만 하고, 대략 20~60살에는 일을 하지만 동시에 이래저래 소비도 증가한다. 그러다 60살에 은퇴하고 소비만 하면서 10년쯤 살다가 죽는다. 아래 그림은 이를 단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먼저 (가)와 같이 사람의 생애를 나누면, 보통의 사람들은 (나)와 같이 소비를 하는 반면, (다)와 같이 생산활동에 참여해 임금소득을 얻는다. 소득이 나이에 따라 증가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성행하는 ‘연공서열제’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듯, 사람들은 (라)에서 A로 표시한 파란색 부분의 잉여를 소비가 소득을 초과하는 부분에 배분할 것이고, 결국 평생을 놓고 보면 (소득)=(소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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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신이 미래에 벌 돈으로 유아/유년기에 필요로 하는 소비수요를 충당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 삶의 재생산은 가정을 단위로 이뤄지므로, 이 재생산은 세대간에 중첩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분석에서 아무런 어려움을 제기하지 않는다.

또 하나.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삶의 ‘정상적인’ 재생산이 가능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일단은 그랬다고 가정하자. 그래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볼 수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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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하다. 일단 앞서의 그림에서 마지막 것을 초기 상태로 두자. 최근 정부가 맹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마)에서 보듯이 애초에 노동자가 받기로 되어 있던 임금의 일부를 안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55살 먹은 노동자와 이제 갓 입사한 20대 노동자를 놓고 보면 전자의 임금이 터무니없이 높아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저 50대 노동자가 젊은 시절에 자신의 기여분(?)보다 덜 받았음을 의미할 따름이다. 연공서열제를 통해 기업은 노동자로부터 충성심을 얻고 노동자는 노후의 안정적 설계를 쉽게 할 수 있다. 어쨌든 임금피크제라는 것은 애초 노동자가 받기로 된 부분을 안 주겠다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임금삭감은 노동력 재생산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것이다.

다음으로 (바)를 보자. 임금피크제로 우리 사회가 진통을 겪기 전에, 한동안 국민연금이 문제로 되었었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조만간 재원이 고갈된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가 연금기금 기여금을 더 내든지 아니면 덜 받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연금문제의 핵심은, 애초 그 연금이 설계될 때 상정된 것보다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국민연금은 적립식(funded system)이기 때문에, 원칙상으로는 생산가능인구 감소 따위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순전히 이것은 수명연장의 문제다. 즉 애초엔 수명이 70년이라고 상정해서 연금제도를 설계했으나 수명이 80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늘어난 기간 동안 소비액(위 그림 바에서 B 부분)을 위한 재원이 어디에서 나오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가 연금기여금을 더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생애임금 총액 자체가 B만큼 늘어야만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의 임금 삭감이다.

이 문제와 관련, 노동자의 수명연장에 비례해 임금을 올린다면 자본가의 이윤이 낮아질 수 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인가? 또한 예전 같으면 경제학자들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노동자의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진보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존 스튜어트 밀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가진 이론적 오류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이 그런 정책을 공공연히 내놓을 정도로 낮은 ‘문명’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이에 대해선 다음 글 참조: 국민연금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끝으로 (사). 위의 두 그림에서 보듯이.. 임금피크제가 그 일부인 노동개혁이나 연금개혁은 모두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 둘이 국지적인 성격의 임금삭감이라면, (사)는 생애 전체에 걸친, 일반적인 임금삭감 노력이다. 최저임금을 필요에 맞게 주지 않고, 특히 올해 최저임금 협상에서 문제되고 있듯이 법에 명시된 주휴수당 등을 노동자에게 주지 않으려 하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

(참조: ‘주휴수당 논란’을 넘어)

이번 정부가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연금 ‘개혁’, 최저임금제 등은 모두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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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독립성의 두 가지 의미

요즘 중앙은행 독립성 가지고 말이 많다. 여기서 하나 재밌는 것은, 전통적으로는 ‘진보’에 속하는 이들이 이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반면 요즘엔 오히려 진보진영의 인사들도 중앙은행 독립성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즉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중앙은행은 ‘독립성’ 따위에 구애받지 말고 정부와 합심해 뭐라도 좀 해야 한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중앙은행의 독립성/중립성에 깃든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를 편의상 ‘내용적 독립성’과 ‘형식적/절차적 독립성’이라고 각각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특히 우리나라에서—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것은 지난 군사독재 시절 그것이 권력의 사금고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중앙은행 고유의 통화신용정책이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구사된 결과, 어떤 이들은 이득을 보았겠지만 사회의 다른 모든 세력에겐 손해가 갔다.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형식적/절차적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그것을 통해 실행되는 정책들이 내용적 독립성/중립성도 견지하지 못한 것이다.

한편 중앙은행의 독립/중립성이 세상만사와는 별개로 ‘마이웨이’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2007-08년의 위기와 그에 잇따른 장기침체에서 선진각국의 중앙은행이 해온 일을 떠올리면, 최근 10년간 중앙은행의 ‘세속화’는 그야말로 스펙타클했다. 흔히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절간’이라고 부른다. 하는 일이 별로 티도 안 나고, 구성원들도 조용조용하게 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선진각국의 중앙은행들을 보면, 도탄에 빠진 나라를 보다 못해 스스로 떨쳐 일어나 의병장이 된 우리 역사속의 고승들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곧장 독립성 포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독립성이란 중앙은행의 일의 내용보다는 그 일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방식과 절차에 일차적으로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 어떤 특정한 경제주체에게 비대칭적인 이득이 가는 방식의 행위를 했다는 것, 즉 ‘내용적 독립/중립성’을 견지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중앙은행이 이러한 겉보기에 중립적이지 않은 행위를 하지 않으면 경제가 더 나빠져 모든 경제주체들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그와 같은 중앙은행의 행위를 기계적인 ‘독립성’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발권력 동원이라는 행위를 어떤 경위에서 결정했는가다. 이를테면, 권력의 요구에 못이겨 결정한 것인가? 자본가들의 로비와 압력에 녹아들어간 것인가? 아니면, 한국은행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그 의결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의 책임감 있는 위원들의 수준 높은 토론을 거쳐 결정된 것인가? 다시 말해, ‘형식적/절차적 독립/중립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냐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국책은행 구제안에 한국은행이 참여하기로 한 결정은 그렇다면 어느 쪽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의 고찰은 비단 중앙은행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국가 일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군사독재정권의 권위주의적 개입에 대하여 국가의 불간섭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기도 하였지만, 작은 정부와 불개입주의를 신조로 삼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때에는 국민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정부를 희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개입주의’라는 겉모습만 보고서 군사독재 시절의 권위주의적 정부와 오늘날 진보진영이 옹호하는 민주공화적 정부를 등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두 개입주의적 국가를 구별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의사결정의 메커니즘, 그 민주성이라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내용적인 차원에서의 질적 차별성을 낳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요구되는 중앙은행의 중요한 덕목이 적극성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정책이 그 중립성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은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한 것이어야만 하지, 특정 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중앙은행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은행 의사결정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요컨대, 오늘날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들이 ‘내용적 독립/중립성’을 포기한 듯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절차적 독립성’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중립성의 문제는 오히려 후자의 관점에서 재구성되고 반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심각하게 제기하여야 한다: 이제까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행한 (양적 완화(QE)를 포함한) 비전통적 통화신용정책들은 정말로 중립적이었는가? 그것들은 100% 공공선을 위한 것이었는가? 혹시 그것은 거대자본의 이해관계에만 특수하게 복무한 것은 아니던가? 등등. 선진국 진보진영 일각에서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와 같은 대안들이 나오고, 여기에 (운동가뿐 아니라) 진지한 경제학자들까지도 동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참고) 몇 년 된 기사이지만, 이상의 내용과 관련, 다음 글을 참고할 수 있다:  http://www.independent.co.uk/news/business/analysis-and-features/what-price-the-new-democracy-goldman-sachs-conquers-europe-62640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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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넘어: ‘사내유보금’ 논의의 일보 전진을 위한 노트

1.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것에 대한 ‘오해’도 다방면으로 커지고 있다. 사내유보금에 문제제기하면서 거기에 세금을 물리자거나 환수하자는 주장들에 대해 많은 비판들이 가해지고 있는데, 나는 이러한 비판들이 너무 편협하고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점은, 사내유보금 문제제기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우파’들만 하는 게 아니라 진보진영에 속하는 적지 않은 세력들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쨌든 유감스럽고 슬픈 일이다. 조금 더 상대방을 이해하고, 유익한 방향으로 이 사회를 이끄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문제제기의 골자는 (가) “기업들이 고용이나 배당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면서 막대한 양의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다”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분석에 따른 실천적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데, (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겨 기업이 임금이나 배당으로 더 많이 분배하도록 하거나 더 많이 투자하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이 그 중 하나이고, (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은 기업들이 그간 노동자들과 하청업체에 ‘제값’을 주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사내유보금을 환수해 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쓰자”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골자는 “사내유보금의 개념도 모르는 소리”라는 거다. 마침 최근에 {조선일보}의 김기천 논설주간의 칼럼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은 바 있는데, 그의 총평은 ‘조롱’에 가깝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시비는 대부분 재무제표에 대한 몰(沒)이해의 결과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거나 “사내유보금을 환수하면 민생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사내유보금을 이유로 야당이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습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위 (가)~(다)에 사내유보금에 대한 일정한 ‘오해’가 담겨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한다’라는 오랜 금언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또한 김 논설주간은 그 ‘오해’가 아주 대단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별것도 아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범하는 다른 종류의 오해(?)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 (가)~(다)에 어떤 오해가 있는지를 보자.

2. 먼저 사내유보금이란 간단히 말하면 매년 기업이 거두는 순이윤(총매출액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 배당금 등을 뺀 순수한 이윤)의 축적분 총량이다. 어떤 기업이 1천원의 초기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해 매년 20%의 이윤을 거둔다고 해보자.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50년 뒤 이 기업의 자본은 무려 9백10만원이 넘게 된다.

사내유보금

물론 이 돈은 보통 생산설비의 형태로 투자되어 있거나 각종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쌓이고 있다”라는 것은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면 (가)는 틀린 말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핵심은 사내유보금이 막대하다는 게 아니고, “기업이 고용, 배당, 투자에 소홀하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용, 배당, 투자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자체로 사내유보금 축적의 결과는 아닐지라도) 사내유보금과 무관한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사내유보금은 축적된 이윤 총량으로서 저량(stock) 개념이지만, 매년 쌓이는 축적분에 주목하면 유량(flow)이기도 하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게 가능하다면, “기업들이 지금까지 쌓은 막대한 이윤(=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을 투자하고는 있긴 하지만, 최근들어 이윤은 많이 거두는데도 고용이나 배당, 투자에는 인색하다”라고 하는 진술도 100% 가능하다. 이상으로부터 (가)를 가다듬으면 다음과 같다:

(가) 기업들이 고용이나 배당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면서 막대한 양의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다.
(가’) 최근들어 이윤축적으로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기업들은 고용, 배당, 투자에는 소홀하다.

3. 기업들이 이윤을 거두면서 고용/배당/투자에 소홀한 것은—어떤 이들은 그게 뭐 잘못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충분히 사회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서, 만약 기업을, 특히 현대의 대법인기업을 단순히 특정인의 소유물이기보다는 사회적 기관으로 본다면, 고용/배당/투자에 쓰지 않을 돈을 기업 안에 묵혀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같은 불황기에는 더더욱 말이다. 기업들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어 투자를 꺼리지만, 사회적으로 투자가 필요없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나)의 주장처럼 세금을 물려 내부유보의 비용을 높임으로써 기업들이 고용/배당/투자에 더 힘쓰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기업이 노동자를 더 고용하거나 기존 노동자에게 임금을 더 주면—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윤이 줄어들 것이고 그에 따라 사내유보금(총량)도 보다 천천히 증가할 것이며, 증가한 소득으로 개인들이 소비를 늘린다면 경기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일정액이 넘는 이윤은 그냥 세금으로 국가에 넘길 수도 있겠다. 국가는 이를 재원으로 개별 기업이 감행하지 않는 사회적 투자를 함으로써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낮춰 결국 기업경쟁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나)는 다음과 같이 교정하면 되겠다.

(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겨 기업이 임금이나 배당으로 더 많이 분배하도록 하거나 더 많이 투자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 매년의 이윤 중 사내유보금으로 쌓이는 부분에 세금을 매겨 기업들이 임금/배당/투자를 늘리거나, 국가의 세수를 늘려 공공투자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내유보금 총액이 아니라 매년의 증가분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고, 실제로 지금 시행중인 ‘기업소득환류세제’도 그렇게 설계돼 있다. 물론 세금을 물리는 데는 찬성해도 그 방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법인세 인상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로서 추후에 전문가들끼리 결정해도 될 사안이다.

4. 한편 어떤 이들은 현행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전체 사내유보금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데 불만을 갖기도 한다. 이런 이들은 사내유보금 총액 중 일부를 아예 ‘환수’하자고까지 주장한다. 바로 (다)의 주장이다. 그러면 여기엔 어떤 오해와 ‘몰이해’가 깃들어 있는가?

앞서 예로 든 그림을 다시 보자. 1960년에 한 자본가가 단돈(?) 1천원을 들여 세운 기업의 규모가 50년 뒤에 무려 9천1백배가 되었다. 마르크스(Karl Marx)에 따르면 이러한 축적분은 모두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로서, 2010년에 기업이 보유한 9,100,438원 중에서 1천원을 뺀 나머지는 몽땅 노동자에게 돌려져야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런 주장을 적어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거니와, (다)와 같은 ‘사내유보금 환수론’도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는 굉장히 ‘개량적인’ 문제제기다.

엄밀히 말해 ‘환수론’은, 기업이 지난 50년간 축적한 총이윤(=사내유보금) 9,100,438원이 ‘정상적인’ 착취에 입각한 것이라면 그것은 기업의 것임을 순순히 인정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노동자에게 마땅히 주었어야 할 임금을 주지 않고 거둔 것이라면, 노동자를 위한 작업안전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아껴서 거둔 것이라면, 하청업체를 후려치고 소비자를 기만하면서 거둔 것이라면, 거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간 이런 ‘부당행위’를 통해 거둔 ‘부당이윤’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환수’가 지금 특히 문제로 되는 까닭은, 이상과 같은 그간 대기업들의 ‘부당행위’의 결과들이 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노동인구 절반에 육박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꿈을 잃었다. ‘초일류’ 대기업에서 직업병으로 수십명이 죽어나가고, 용광로에 빠져 죽고, 지하작업작에 매몰돼 죽고, 떨어져 죽고, 기계에 끼어 죽는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누군가 비용을 내야 한다. 누가 낼 것인가? 당신이 낼 것인가? 결국 ‘환수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환수’는 이미 현행법체계 아래서도 이뤄진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같은 것이 그런 성격이다. 그러니 핵심 쟁점은 ‘환수’ 자체가 적절하냐 여부라기보다는, 환수론자들이 제기하는 저임금 등이 환수의 ‘대상’이 되느냐 여부인 것이다. 자, 우유회사 몇몇이 담합해서 가격을 높여 부당이득을 취하면 아마 당신은 이를 환수의 대상이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공모해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고 사지로 내몰면서 취한 이득은 ‘부당이득’인가? 이를 ‘환수’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법전에 의지해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사회의 양식 수준에 따라, 세력관계의 양상에 따라 결정될 따름이다.

사내유보금은 이미 투자되어 있는데, 이를 어떻게 환수하겠느냐고 대거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 인용한 김기천 논설주간도 그 중 하나다. 나는 묻고 싶다. 그러면 내돈을 훔쳐간 사람이, 또는 빌려간 사람이 “그 돈은 이미 저 차를 사는 데 썼소. 저 차는 내 생활밑천이오”라면서 그의 앞마당에 주차된 포르쉐를 가리키면, 나는 돈을 돌려받길 포기해야 하는가? 공정위가 우유회사에 과징금을 물 때, 그런 사정을 참작하는 게 옳겠는가? 핵심은 ‘책임’이고 ‘비용지불’이다. 그러니 그간 ‘부당행위’로 덕을 본 주체들이 그 비용을 사내유보금으로 하든 다른 무엇으로 하든, 그 책임이행과 비용지불을 요구하는 측이 신경쓸 필요는 없다. 또한, 만약 ‘환수’라는 해법이 마음에 안 들면, 대안을 내놓으면 된다.

5. 이상을 정리하고 약간의 제언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의 상당부분은 ‘축적된 총량’과 ‘신규 축적분’만 제대로 구별해도 풀린다.
둘째, ‘환수론’의 핵심은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그간 기업들이 저지른 ‘부당행위’에 대한 책임이행과 비용지불을 기업이 해야한다는 데 있다.
셋째, 진짜 오해를 하는 것은, 그럼으로써 절박한 사회적 문제제기를 무시하려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넷째, 기업의 본질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데 사내유보금은 괜찮은 ‘entry point’였지만, 본격적인 문제제기에는 사내유보금보다는 ‘이윤’이라는 좀 더 직접적인 형태에 대해 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6. 그밖에 몇 가지…

(1) 이상의 내용을 다음 글로 발표하기도 했다: ‘재벌 ‘사내유보금’ 754조…기업들 사회적 책무 져야’(한겨레, 2016년 6월 3일자).

(2) 위 글의 제목은 다소 misleading하다. 사내유보금 총액이 얼마냐는 것은 나한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와 관련, 흔히 800조원을 넘나든다고 하는 사내유보금을 두고 ‘막대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 수치가 매우 과소추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총 국부가 1경이 넘어가는데, 기업이윤축적총량이 저것밖에 안 된다고? 훗. 아마 전경련 등은 속으로 좋아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사내유보금’ 문제제기의 의의와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문제삼는 진영은 그래서 여기 머물지 말고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3) 역사적으로 보면,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입장은 진보든 보수든 복잡미묘하게 변해왔다. 최근 나는 이에 대해 간략히 훑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한겨레, 2016년 6월 6일자)

(4) 이제까지의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흔히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노동/사회운동 진영이 ‘사내유보금’을 공략하는 것은 운동의 강성의 표현이 아니라 약화의 표현이다. 나름대로 대중적 소구력이 있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문제제기로 역량을 결집해, 좀 더 본질적인 영역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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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호] 정운영, ‘경제민주화의 방향과 과제’

경제민주화의 방향과 과제
정운영

영국의 경제학자 모리스 돕은 언젠가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국민이 그들이 원하는 정부를 선택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사실 원하는 정부를 세우고 원하는 상품을 만드는 사회를 ‘이상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최초의 기본적 요구마저 쉽사리 수락되지 않는 현실의 온갖 갈등 때문에 그것을 이상적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습관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여기서 ‘원하는 정부’라는 뜻 안에는 유권자의 의사가 완벽하게 개진되고 전달되는 과정, 그 중에서도 특히 자유의 신장이라는 항목이 가장 중요한 몫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사상, 정치, 문화 등 사회의 상부 구조에 속하는 여러 영역에서의 사고와 행위에 대한 제일차적 지표가 되어야 한다.

‘원하는 상품’의 의미 역시 사회의 재생산에 필요한 소비재의 질과 양이 사회 전체의 합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소비재의 질에 대한 판단은 예컨대 추위를 가릴 서민의 집과 한가함을 달래기 위한 호화로운 별장 가운데 무엇을 먼저 지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벽돌을 찍느냐 아니면 대리석을 수입하느냐는 토론은 단순히 비용이나 효율성의 측면이 아닌 사회의 양식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와 직결된다.

소비재의 양이 결정되는 방법도 한 개인의 근면이나 한 개인의 자비심에 맡길 일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불과 몇 장의 지폐를 봉급 봉투에 보태기 위해서 소리 지르고, 얻어터지고, 잡혀 다니고 그러다가 어떤 때는 목숨을, 단 하나뿐인 그 목숨을 잃기도 하는데, 어째서 다른 한편에서는 수억원이 선거마당으로 풀려나가고, 수십억원이 나라 밖으로 도망나가고 수백억원의 돈이 성금이란 이름으로 호기롭게 한 사람의 주머니를 채워줄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우리는 사회 전체에 제기해야 한다.

자유의 보완 개념인 평등은 간단히 말해서 인간의 수고와 노력의 댓가인 생산물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서로 나누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 사회의 양식 또는 공정한 분배를 사회의 정의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방하다면, 원하는 정부와 원하는 상품에 대한 강조는 한마디로 자유와 정의에 대한 요구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요컨대 자유가 숨쉬고 정의가 흐르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고 바라고 세워야 할 사회이다. 그 과정을 당분간 ‘경제의 민주화’라고 불러도 좋다.

실제로 자유를 신장시키는 정치 행위와 정의를 확보하려는 경제 행위가 전혀 별개의 사항이 아니다.

우선 사회의 재물이 몇몇 선택된 사람들에게 집중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정치권력이 필요하며, 반대로 권력은 자신이 수행한 경호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 독점된 이익의 일부를 떼어주도록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다시 설명하기 위해서 정경유착이니 국가독점 자본주의니 하는 어려운 이론을 끌어댈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에 축적된 재산을 그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되도록 사용하기 위해서도, 합의된 본래의 궤도로부터의 이탈을 예방하고 바른 진행방향을 꾸준히 일깨우는 정치 세력의 존재가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는 앞서 가고 있으나 정치는 뒷걸음을 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현실을 잘못 진단한 실수이거나 사실의 한 면을 고의적으로 가리려는 음모일 수밖에 없다. 되풀이하자면 경제가 성장한 만큼 정치가 발전했다고 말하거나 정치가 낙후된 만큼 경제도 불안하다고 말해야 정확하게 그 뜻이 전달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전자의 주장에 흔쾌하게 찬표를 던질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다수가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됨으로써 소수가 인간 이상답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추방된 니카라과의 독재자가 훔쳐 달아난 재산이 그 나라의 성장과 관계가 없었고, 폐위된 이디오피아의 황제가 마차 밖으로 뿌리고 다녔던 동전 역시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듯이, 정녕 경제에서의 성장이 정의라는 내실을 갖출 때에만 그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경제는 바로 이 점에서 실로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는 약속은 1961년 5월 총을 들고 한강을 넘어 온 사람들이 내건 명분 가운데 하나였다. 그 당시 그들이 하나의 밀알 이야기를 꺼내면서 지금 먹지 말고 더 불려서 나누자는 논리를 폈을 때 아무도 거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제 그 밀알은 15곱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각성제를 먹고 제 살을 찔러가며 재봉틀을 돌려야 하는 ‘자유’와 밖으로 닫아건 방 속에서 불이 나면 고스란히 타죽을 수밖에 없는 ‘정의’가 절망과 기아선상을 대신했을 뿐이라면, 그 밀알을 키우는 데 쏟았던 우리의 노동과 애정은 도대체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인가?

역사가 가르치는 바가 그렇고 우리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도 그러하듯이, 비록 그 밀알이 1백50배로 켜져도 자발적으로 나누어 주지 않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러므로 경제의 민주화는 밀알을 키우는 노력을 중지하지 않으면서, 그 수확이 모두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분배되도록 규제하는 힘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 고정관념의 하나는 분배가 성장을 방해한다는 그릇된 믿음이다. 분배가 반대하는 것은 소수를 향한 독점이지 결코 전체를 위한 성장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의가 성장의 적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정의는 한쪽에서의 애걸과 다른 한쪽의 동정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강인한 투쟁과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정부만이 국민이 원하는 소비재를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실로 확고한 것이라면, 그 소망을 성취시키려는 작업이 바로 ‘민주경제’ 건설의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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