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봄 평전, 이렇게나 빨리 번역되어 나오다니!!

홉스봄 대장님의 평전이 번역출간되었다. 다음 자료를 참조하시길.

출판사 책소개: {홉스봄, 역사와 정치} (링크)
옮긴이의 말: ‘홉스봄 평전, “홉스봄, 역사와 정치” 옮긴이 후기’ (링크)

그리고 위 책의 번역출간을 기념해, 옮긴이와의 대화 시간을 열게 되었다. (관련 트윗)

일시: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오후 7시30분~
장소: 레드북스 (전화: 070-4156-4600, 약도)

부디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 참고로, 일찍 오시는 분들께는 약간의 특혜(?)가 있을지도 모름.. ㅎㅎ

그리고 이 참에… 이 블로그에도 홉스봄 대장님 관련된 잡글을 쓴 적이 있다.

최근 미디어에 비친 홉스봄 (홉스봄 on 지젝) (2011년 1월 20일)
홉스봄: 재즈평론가로서의 삶에 대해 (2010년 6월 4일)

간단히 검색을 해봤는데, 홉스봄… 요새는 마르크스보다도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학계’에서는 말이다. (당연한 건가?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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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지우드

1759년에 영국의 대표적인 도자기 회사 웨지우드(Wedgwood)를 설립한 조지아 웨지우드는 산업혁명 기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종종 거론된다.

공예가였던 그는 제품 디자인, 제조, 공장 관리에 모두 능했는데 마케팅에도 대단한 수완이 있었던 것 같다. Chris Freeman과 Luc Soete의 “The Economics of Industrial Innovation (산업혁신의 경제학)” 제 3판은 웨지우드가 도입한 마케팅 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47페이지).

  • 1760년대: Queensware라는 브랜드 도입 – 여왕과 로열패밀리의 동의를 얻음
  • 1770년대: 디스플레이 룸 (display room) 개념 도입
  • 1771년: 마음에 안 드시면 환불해 드립니다 (Satisfaction or money back)
  • 176-90년대: 역사적 이벤트에 맞추어 디자인한 제품 출시 – 평화조약, 노예해방 캠페인 등

아무래도 달라진 것보다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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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과 GDP

삼성 형제 간 싸움이 어떻게 되느냐가 나라 전체의 화제가 된 지 오래다. 그도 그럴 것이 1938년 창업한 삼성그룹의 2010년 총매출은 26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를 차지하고,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5%, 수출의 24%를 점하고 있다.

삼성·신세계·CJ·한솔 등 이건희 회장 형제 자매들 기업의 자산을 합하면 430조원에 이르고 총매출은 320조원을 넘어 전체 국부(國富)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XX일보 사설에서, 강조추가

이런 류의 설명을 참 많이 보았는데 (“삼성 GDP 22%”를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GDP는 부가가치의 총합이므로 순생산 개념인 반면, 매출액에는 원가가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모든 기업의 매출액을 다 더하면, GDP보다 훨씬 큰 값이 나온다). 마르크스 식으로 표현하면  C+V+S는 매출액에, V+S는 부가가치에 해당한다.

삼성그룹 전체의 통계는 찾아볼 수 없지만, 2010년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112조원, 매출총이익(매출액 – 매출원가)은 34조원이라고 한다. 부가가치에는 제조에 투입된 노무비(임금 – V!)가 포함되는 반면 매출총이익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매출총이익에 노무비를 더해 부가가치를 대략 40조원, 전체 매출액의 35-40%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다른 계열사의 경우 매출액 대비 부가가치률이 이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그룹의 총매출액이 2010년 GDP의 22%에 해당한다는 것은 잘못된 진술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우리나라 경제의 22%를 책임진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린다는 점에서 이것은 기만적이다. 삼성그룹의 2010년 부가가치 총생산은 높게 잡아 국내총생산의 8.8%(22% * 40%) 정도다. 다시 말해서 삼성그룹의 총생산의 기여분은 22%가 아니라 8.8%이다.

물론 여전히 높은 수치다. 하지만 쓸데없이 과대평가할 이유도 없다. 어느 집안 (차명)재산 다툼에 사설이 웬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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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Candlemass – Solitude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이런 감정들, 색깔이 참 다양하다. 간밤에 홀로 허벅지를 찌르는 외로움과 산업사회에서 느끼는 회색빛 소외감이 어찌 같겠는가. 이를테면 내 경우엔, 90년대 초 한국의 메탈밴드들이 함께 만든 {Power Together} 앨범에 실린 ‘Lonely Avenue’나 Loudness의 ‘So Lonely’를 외로울 때 즐겨듣곤 했지만, 지금 같은 때는 바로 Candlemass의 ‘Sulitide’가 딱이다.

Candlemass는 고딩때 인천 배다리 빽판가게에서 처음 접한 뒤로 한동안 즐겨듣던 밴드다. 스웨덴 출신의 데스/둠메탈 밴드로, 그때 내가 손에 넣었던 앨범은 {Nightfall}(1987)이었다. Messiah Marcolin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을 새로 맞아 처음 발표한 이 앨범엔, 밴드의 역사에 길이남을 명곡들이 많이 들어있다. 물론 내가 이 앨범을 들을 당시엔 이런 사항들을 잘 알지도 못했다.ㅎㅎ

지금 소개할 ‘Solitude’라는 곡은 그들의 정식 1집 {Epicus Doomicus Metallicus}(1986)에 첫 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보기에 따라 가사가 매우 유치할 수도 있지만, 팬들 사이에선 ‘고전’으로 꼽히기도 한다. 아… 예전엔, 이런 것만 좋아했는데! 진심으로..

I’m sitting here alone in darkness, waiting to be free,
Lonely and forlorn I am crying
I long for my time to come, death means just life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Hate is my only friend, pain is my father
Torment is delight to me
Death is my sanctuary, I seek it with pleasure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Receive my sacrifice, my lifeblood is exhausted!
No one gave love and understanding
Hear these words, vilifiers and pretenders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dust

Sitting here alone in darkness, waiting to be free,
Lonely and forlorn I am crying
I long for my time to come, death means just life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dust

And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

기분과 날씨가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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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김순자

엄마한테, 진보신당 비례후보 1번 김순자씨의 동영상과 글을 이메일로 보내드렸다. 반응이 궁금해 전화로 확인해보니, 글과 동영상 모두 잘 봤다고 한다. (우리 엄마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이것을 참조ㅋ)

“그래서, 무슨 생각이 들어?”

“부러워.”

부럽다… 이건 내게 조금 충격이었다.

김순자씨를 두고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에게 ‘부럽다’고 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부럽단다. 아니,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부럽다니?! 이유를 캐물었다.

“나는 못 그랬으니까.”

그랬다. 우리 엄마도, 적어도 1990년대 초부터 이후 약 15년 동안 김순자씨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김순자씨를 보면서, 아마도 (지금은 팔자가 늘어졌지만ㅋ) 자신의 지난날들이, 그 오랜 시간동안 숨죽여 지내왔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새삼 떠오르지 않았을리 없다. 그래서 한편으론 울화통이 치솟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김순자씨가 고마웠을 것이며, 또 그래서 그가 부러웠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건,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적어도 웹상에서 떠도는 김순자씨에 대한 온갖 ‘담론들’을 초월하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물질성’을 내포하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김순자씨에 대해 칭송하고 그가 ‘비례후보 1번’이 된 상징적 의의를 설파하는 네티즌들과는 달리, 자신을 실제로 김순자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김순자씨는 자신이 ‘비정규직을 대표하겠다’라고 했는데, 적어도 우리 엄마에게 그는 이미 ‘대표’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엄마와 김순자의 관계가, 노빠와 노무현의 관계와 갖는 유사성. 다시 말하면, ‘비례후보 1번으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세우는 파격성의 정치’ 이후에 무엇이 있겠는가, 또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것은 부르주아 국가에서의 정치, 대의제 정치의 근본적인 한계라는 측면을 포함할 테지만, 그러한 정치를 넘어서고자 하는 이들에겐 경계해야 할 대목임엔 틀림없다.

암튼, 우리 엄마 브라보! 김순자도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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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실러, 강남좌파의 사상적 지주

오늘날 (정치)경제학을 비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그 비판의 대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누구’일까? 당연히 한 두 사람이 아니겠지만,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는 분명 그 중 맨 앞줄에 세워야 할 하나일 것이다.

실러가 최근에 또 하나의 책을 냈다고 한다(참조). 제목은 {Finance and the Good Socie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금융을 잘 길들이면 좋은 사회를 이루는 데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나아가 “그렇게 하는 데 금융은 필수적이다” 정도로 요약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간 금융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성의 글을 써온 그이기에 조금은 예외라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위에 링크한 {The Economist} 기사를 읽다가 내용이 궁금해 출판사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Introduction’을 좀 봤다(여기). 그런데…. 이건 정말, 뜨아..!! 마르크스를 언급하는 부분, 나아가 마르크스가 말한 ‘코뮤니즘’(소련이나 중국의 현실 사회주의 말고)를 전유하는 방식,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금융의 이로움을 역설하는…. 말하자면, 이 ‘삼단논법’이 정말 가관이다.

우리에겐 익숙한 ‘시초축적’, 그러니까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무산자가 근대적 임노동자 계급으로, 그리고 반대로 생산수단을 독점한 이들이 근대적인 자본가 계급으로 분화되는 것을 다룬 마르크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실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크스는 왜 노동자들이 자본[=생산수단]에 접근할 수 없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본주의 하에서는 사회의 목표들이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윗대가리들—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자들—에 의해 설정된다고 암시할 뿐이다. 가난한 노동자가 은행으로부터 신용대출을 하거나 부유한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암묵적인 가정이 있을 뿐이다. (p. 5)

물론 우리는 위에서 실러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꽤 ‘명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것은 ‘암묵적인 가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물적 현실임도 잘 알고 있다. 그걸 모르는 것은 그저 실러 자신일 뿐이다. 하여튼, 위와 같이 자기 멋대로 문제를 설정해 놓고 바로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공자님 말씀’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상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훌륭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그것[자본을 구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자본주의 제도들이 아직은 그 정도의 이상에 걸맞게 성숙하진 못했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금융의 민주화, 즉 모두에 대한 금융 기회의 개방으로 향하는 장기추세가 관찰된다. (p. 5)

헛, 금융의 민주화라고? 카드대란도 모르냐?! 그게 니가 말하는 민주화냐!!!…라고 당신은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설마 우리의 실러 교수가 그걸 모를리가! 그러나 그는, 그런 문제는 그저 사춘기와도 같은, 성숙을 위해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아픔이라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금융 자본주의(financial capitalism)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금융 자본주의를 민주화하고 인간화하며 그것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마르크스의 새로운 사회에도 깃들어 있다. (pp. 5-6. 강조는 원문.)

이쯤 되면, ‘막장’이란 말도 아깝지 싶다.

아, 조만간 이 책도 누군가가 번역해서 내겠지? 예상 독자는? 뻔하지. 한마디로, 강남좌파. 쩝… 그 자칭 ‘강남좌파’들이 위 책을 들고, 자신들의 한때 마음속 숭배대상이었던 ‘마르크스’와 자신들의 현실적인 숭배대상인 ‘금융’을 함께 품으며 젠체할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토나올라고 한다. 기분 드럽네.

마, 니들끼리 잘먹고 잘살어라!

(이쯤에서, 과거 글 자본주의 질서를 둘러싼 정당성 전쟁도 한번 더 되새겨본다. 이 글에서 스티븐 그린과 로버트 실러를 한패거리로 묘사했는데, 공교롭게도 실러의 이번 책은 벌써 그 제목부터가 그린의 ‘선한 가치’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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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코멘트 하나

워낙 (정치)경제학을 싫어한 분이라 각종 다양한 방식으로 독설을 날리시긴 했지만, 어쨌든 오늘 읽은 자본론 1권 3장에서 발견한 구절 정말 마음에 든다. 분명히 여러 번 읽었는데 왜 이제야 눈에 띄는가?

초보적인 평범한 것을 가지고 그처럼 굉장히 떠들어대는 것은 [정치]경제학 이외의 다른 과학에서는 없는 일이다. (비봉판, 146)

In no science other than political economy does there prevail such a combination of great self-importance with the mouthing of elementary commonplaces. (펭귄판, 209-210)

In keiner Wissenschaft außer der politischen Ökonomie herrscht so große Wichtigtuerei mit elementarischer Gemeinplätzlichkeit.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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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파 경제학, 우리 시대의 연금술

경제현상을 ‘균형’ – 현실 속에서는 오직 로또당첨만큼의 확률로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 에 입각해서 설명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항상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그들 중 일부는 경기변동(business cycle)을 ‘움직이는 균형(moving equilibrium)’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대단하다. 이 몽상 속에 비자발적 실업이란 없다. 오직 시점 간 효용극대화를 위한 자발적 실업만 존재한다.

(참고로 이윤극대화와 효용극대화를 기본 도구로 사용하고  균형조건, 후생 운운하는 이론들은 나에게는 모조리 신고전파적 경제이론이다. ‘좌파’를 참칭하는 신고전파 이론들에 속지 말자)

그래서 나는 항상 신고전파 경제학이 달걀 세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춘분에는 달걀을 세울 수 있다는 속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누가? 그런데, 얼마 전에 유행한 아래 사진에서 보듯 달걀 세우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달걀 세우기는 무지 어렵고 왜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간단한 이론을 복잡한 수학으로 어렵게 설명하고 그래서 별로 쓸 데가 없다. 결정적으로 신고전파 경제학은 거꾸로 선 현실에 대한 이론, 곧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이론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우리 시대의 연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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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개편: 포럼기능 추가!!

블로그를, 보시다시피, 조금 바꿨다. 스킨을 바꾼 거야 별 것 아니지만, 포럼 기능을 추가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스킨은, 봄을 맞이해, 산뜻한 꽃그림이 맘에 들어서 선택해봤다.

포럼은, 기존에 우리에게 익숙하던 게시판과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데, 내가 보기엔 게시판에 비해 ‘덜 딱딱하다’. 처음엔 조금 낯설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이다. 사실 ‘게시판’과 ‘포럼’을 대비시킨다면, 요새는 포럼이 ‘대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포럼을 가지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론}, 나아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다양한 토론의 장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운영자가 쓰고 방문자가 덧글을 다는 ‘제한된’ 쌍방향성을 넘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쌍방향성을 가진 공간 말이다. 원래는 게시판 생각을 했었는데, 진보넷/팔연대 활동가이시자 나의 ‘IT 멘토’(ㅋ) 뎡야핑 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포럼으로 한번 가보게 된 것이다. 그에게 감사드린다. (_._)

하여튼… 이 포럼을 통해, 방문자께서는 새로운 토론 또는 질의응답 주제를 만들 수도 있고, 기존의 주제에 참여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도록 해두었지만, 조만간 회원만 글을 쓸 수 있도록 개편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회원가입을 하면 본인이 올린 글의 관리 등과 관련해 좀 더 편리한 기능을 누리실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내게 개인적으로 {자본론} 등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분들도 좀 있었고 했는데.. 나름대로 성실하게 임했고 또한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아쉬웠던 것은, 그런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대개는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럴 일이 크게 줄게 되리라 믿는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답변’을 달 수 있고, 또한 일반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논의가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기서 문제는, 적정 수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적정 수준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일텐데, 그런 면에서 지금 나의 시도는 일종의 ‘실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은 두려움도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실패’의 두려움은 아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또는 {자본론}에 대한 토론이 (어쩌면 모든 토론이 그렇듯) 상당히 ‘공공적인’ 성격을 갖는 데 비해 그 장을 지금 이렇게 상당히 ‘사적일 수 있는’ 공간에 마련한다는 것, 바로 이러한 어긋남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결국엔 관심 가진 이들의 진지한 참여로써만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솜씨로 만들었기 때문에, 외관부터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앞으로 차차 고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토론의 범위, 범주 등도 일단은 매우 두루뭉술하게만 확정해두었다. 역시 어러분들의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습을 갖춰나가리라 믿는다.

끝으로, 이런 포럼을 떠올린지는 꽤 되었지만, 지금 이렇게 ‘급조된’ 듯한 모습으로 이를 내놓는 까닭은, 얼마전 재개된 {자본론} 읽기 모임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임의 회원들께서는 필히 회원가입을 하셔서, 가열찬 토론의 장을 여는 선봉에 서 주시길 바란다! :) (읽기모임을 위한 포럼을 따로 두고 회원만 볼 수 있게 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모임 외부로부터 생산적인 반응들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관두었다. 혹시 의견 있으시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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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그 화려한 영광과 그늘 속에 핀 우담바라

넬슨과 윈터의 진화경제학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괜찮은 논문 하나를 발견했다.

경제학, 그 화려한 영광과 그늘 속에 핀 우담바라

저자는 이민원 교수인데, 참여정부 시절에 국가균형발전 위원장을 역임했고 이번 총선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광주에서 출마하신다고 한다. 이채언 선생님과 함께 꼭 동반당선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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