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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은혜 –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허혁 옮김)에서


은혜를 값싸게 보는 우리의 견해는 교회의 대 원수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은혜를 귀하게 얻으려는 싸움이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로 팔아 버리는 상품과 같은 것으로 억지로 내맡기는 죄의 사유요 위로요 성만찬이다. 무진장한 식료품 창고에서 물품을 내오듯이 생각 없이 교회에서 털어 내는 은혜를 뜻한다. 값도 댓가도 없는 은혜이다. 이것을 은혜의 본질이라 한다. 은혜의 댓가는 이미 지불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공짜라는 것이다. 댓가를 이미 지불한 자를 생각해서라도 무엇이나 거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불된 댓가가 무한한 때문에 소비와 낭비도 무한한 것이다. 공짜가 아니라면 무엇이 은혜란 말인가? 값싼 은혜라 함은 교훈과 원리와 체계 같은 은혜를 말한다. 죄의 사유는 보편적 진리라 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교적 신 이념이라 했다. 이것이 사실임을 시인하는 자는 이미 죄의 사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은혜론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는 은혜의 흡족한 옳은 교회라 하였다. 세상은 죄를 뉘우칠 필요도, 죄에서 해방되기를 애걸할 필요도 없다. 이 은혜의 교회에서 자신의 죄를 덮어 감출 뚜껑을 얼마든지 싸게 얻을 수 있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값싼 은혜는 하나님의 산 말씀의 부정이며 하나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값싼 은혜는 죄의 의인(義認)이요 죄인의 의인이 아니라 했다. 은혜는 홀로 무엇이나 원만히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모두 옛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 좋다는 것이다. “여하간 우리의 행함이란 헛된 것이라” 하였다. 세상은 이래도 저래도 세상이니, 최선을 다해도 역시 우리는 죄인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세상과 다름 없이 살라. 모든 일을 세상과 똑 같이 처리하고 – 그것이 광신이라도 무관하다 – 은혜를 은혜로 받기 위하여 죄의 생활 이상을 바라지 말라.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거저 주는 큰 은혜에 불만하지 않도록, 부질없이 계명 같은 것을 순종하는 생활에 몰두하여 문자 숭배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라. 세상은 이미 은혜에 의하여 거저 의로와졌다. 그러므로 – 이 은혜의 참됨을 위하여 비할 데 없는 이 은혜를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 그리스도인이여, 세상과 다름없이 살라. 비범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일반 인정이라면 비범한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 합하여 드러나지 않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단념과 극기에 힘써 자신의 생활이 세상과 차별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은혜를 은혜답게 지속하여 거저 받은 은혜의 신앙을 세상에서 해소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인 자신의 세속성에 가해야 할 필요한 제재라는 것이니 세상, 아니, 은혜를 위한 것으로 모든 것을 채우는 유일한 은혜의 소유요 생활의 위로며 안전이라 했다. 잘라 말해서 따라갈 필요 없이 앉은 자리에서 위로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죄의 의인을 뜻하는 값없는 은혜일 수는 있어도 죄에서 떠나 돌아와 참회화는 죄인의 의인은 아니다. 죄의 사유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값없는 은혜는 우리 자신에 근원을 가진 우리 자신의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값없는 은혜는 회개 없이 죄의 사유가 가능하다는 설교이며 교회의 기율을 무시한 세례요, 죄의 고백 없이 베푸는 성만찬, 은밀한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산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한 은혜가 값없는 은혜라 하겠다.

그러나 귀한 은혜는 밭에 숨은 보물과 같다. 이 보물을 사려는 사람은 집에 돌아가 가진 전 재산을 기쁨을 팔아 댓가로 지불한다. 장사군이 전 재산을 내어줄 수 있는 기쁨으로 팔아 댓가로 지불한다. 장사군이 전 재산을 내어줄 수 있는 귀한 진주, 이것이 귀한 은혜이다. 인간의 비위를 거스르거나 놀라게 하는 그리스도의 지배권이 귀한 은혜요, 그물을 버리고 즉석에서 따라간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이 그것이다.

귀한 은혜는 계속해서 짓궂게 찾아야 할 복음이요, 간곡히 구해야 할 은사요 두드려야 할 문이다.

은혜는 따라오라는 부름인 때문에 비싸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오라는 때문에 은혜인 것이다. 은혜는 인간에게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비싸고 동시에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에 은혜인 것이다. 비싸다 함은 죄를 저주하는 때문이요, 은혜라 함은 죄인을 의롭게 보는 때문이다. 은혜가 비싼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신의 아들을 댓가로 세운 하나님의 희생 때문이요 – “너희를 비싸게 샀다” – 하나님께 비싼 것이 우리에게 쌀 리 없는 것이다. 이같이 비싼 은혜가 은혜임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아깝다 하지 않고 내어 준 데 있다. 귀한 은혜는 결국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을 뜻한다.

은혜가 귀함은 그것이 하나님의 신성에 속하는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항상 주의하여 은혜를 개에게 던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것은 동시에 산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의 뜻대로 말하도록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를 따라오라는 은혜의 부름은 우리를 감동시키며, 용서한다는 말씀은 불안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은혜가 비싼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멍에를 사람이 지도록 하는 때문이요 그것이 은혜로운 것은 “나의 멍에는 부드럽고 나의 짐은 가볍다”는 말씀이 예수의 말씀인 때문이다.

“나를 따라오라”는 명령이 베드로에게 두 번 내렸다. 그 중에 한 번은 맨 처음에 있었고 다른 한 번은 최후의 말씀이었다 (막 1:17; 요 21:22). 두 번에 걸친 이 부름은 이 제자의 전 생애를 감싸고 있다. 첫번 것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그 때 베드로는 부름을 따라 그물과 직업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던 것이다. 둘째 번 것도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하셨으나 이번엔 전번 것과는 달리 부활하신 몸으로 옛 직업에 다시 돌아온 베드로를 만나 “나를 따르라”고 다시 다짐한 것이다. 이 두 부름 사이에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한 제자의 전 생애가 들어 있고 이 두 번 부름이 그것을 감싸 주고 있다. 이 두 번 부름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예수에 대한 신앙 고백이 뚜렷이 솟아 있다. 즉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주요 하나님이라는 고백인데 이 고백을 베드로는 세 번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것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일어난 것이다.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는 은혜와 신앙 고백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는 은혜는 같은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은혜는 베도로에게서 세 번이나 달라졌다. 한 은혜가 경우에 따라 세 번 달리 나타났던 것이다. 이것은 은혜가 그리스도의 것이고 제자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뜻한다.

이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에게 힘을 주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가게 하였으며 온 세상이 신의 모독으로 보았던 신앙고백을 하게 하였고 변덕스로운 그를 순교의 반열에 참여시켜 이것으로 그의 모든 죄를 대신하게 하였던 것이다. 용서와 따름은 베드로의 생애에서 뗄 수 없는 양면이었다. 그렇게 그가 받은 은혜는 비싼 것이었다.

기독교는 널리 전파되고 확대됨에 따라 세속화되고 은혜는 비싼 면을 차차 상실하게 되었다. 세상은 기독교화하고 은혜는 기독교 세례의 통속적 개념이 되어 버렸다. 싸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일면이 아직 로마 교회에 남아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수도 생활이라는 것이 곧 그것이다. 수도 생활이 교회에서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과 교회 제도가 수도 생활을 아직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은혜가 비싸다는 것과 순종을 함께 포함하여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물론 교회의 한 변두리를 돌고 있음은 사실이나 여하간 모든 소유와 친지를 버리고 예수의 계명을 좇는 엄격한 훈련을 닦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 생활은 기독교의 세속화와 은혜의 무력화에 대한 모진 항의이기도 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교회는 이 항의를 기뻐하였을 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그와의 최후 결렬은 면하였으나 그것을 상대화하게 되어 결국 수도 생활은 기독교 세속화의 일종의 변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즉 이 수도 생활은 특수 개인의 특수 행위로 인정받았을 뿐 교회 대중의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는 말이다. 예수의 계명의 관철을 특별한 취미의 인간들의 특별한 집단에 한정시킨 것은 숙명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최고의 순종과 최저의 순종으로 나누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의 수도 생활의 가능성을 인정함으로 교회는 세속화에 대한 항의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또 한편 아주 저급한 세속 생활의 가능성도 절대적 변호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수도 생활에 의하여 로마 교회에 보관되고 있는 것 같은 귀한 은혜의 초대교회적 이해는 자신을 다시 세속화된 교회에 변호하여야 하는 결정적 모순에 떨어지고 말았다. 여하간 수도 생활이 결정적 과오를 초래한 것은 – 예수의 뜻의 내용적 오해는 불구하고라도 – 은혜의 길을 엄격한 따름의 길로 이해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도 생활을 그리스도적인 것에서 멀어지게 한 것은 자기 의사 결정에 따른 소수인의 특별 행위를 인정하고 이에 따른 특수 업적과 공로를 위한 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데 있다.

하나님이 그의 종 마르틴 루터를 통하여 순수하고 귀한 은혜의 복음을 다시 일으키자 루터는 수도원으로 하나님을 따라 나섰다. 그는 이제 사제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 세상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일을 착수한 것이다.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안 때문에 수도원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순종을 배웠다.

수도원에 따라 들어가는 것은 전 생명의 투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이 길은 하나님에 의하여 좌절당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간격을 두고 예수를 따라감은 개인의 공을 쌓는 어떤 특수 행위가 아니라 전 그리스도인에게서 관철되어야 할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그에게 가르친 때문이었다. 수도원 생활의 모방적 겸손한 행동은 성인의 유공 행동이었다. 이것은 결국 모방하는 사람들 자신의 극기요 경건한 자들의 결정적 자기 주장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자 세상은 다시 사제 생활 중추에 침투하여 위험한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사제의 세계 도피는 아주 교활한 세계애가 된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경건한 생활의 최후 가능성이 그에게서 좌절되자 은혜를 붙잡았던 것이다. 수도 세계의 붕괴 속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그리스도 안에 뻗고 있음을 본 것이다. 그가 은혜를 붙는 것은 “우리의 행위는 역시 최선의 것일지라도 허무하다”는 신앙에서 온 것이다. 그가 받은 은혜는 이렇게 비싼 것이었다. 그가 받은 은혜는 그의 전 생명을 꺾은 것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믿었던 그물을 버리고 따라가야 했다. 처음 수도원에 들어갈 때 그는 전 소유를 버렸으나 자기 자신 즉 경건한 자아만은 그대로 가지고 갔던 것이다. 이번에는 남은 자신까지도 버려야 했다. 이제는 자신의 공적을 위한 따름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너는 범죄하였으나 전부 용서하였으니 네가 있는 곳에 그대로 있으면서 죄사함을 감사만 하라는 말씀이 루터의 받은 것이 아니다. 루터는 오히려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세상이 선하고 성스러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수도원도 세상과 다름이 없었던 때문이다.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돌이킨 루터의 길은 초대 교회 이래 세상을 꾸짖은 힐책 중 가장 신랄한 공격을 뜻하였다고 본다. 세상에 다시 돌아옴으로 표시된 루터의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는 사제들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아이들의 장난으로 폭로시킨 것이다. 그의 싸움은 백병전이었다. 예수를 좇는 일을 세속 생활 중심에 세워 놓은 것이다. 특수한 환경 속에서 특수 행위로 알고 아무런 불평도 없이 행할 수 있는 생활 훈련이 이제는 성속의 차별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피할 수 없는 명령이 되었다. 예수의 계명을 순종한다는 일은 일상적 직업 생활 사이의 갈등이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몸을 맞대게 되었다. 이것을 백병전이라 한다. 루터의 행적을 순수한 복음적 은혜 발견이라 하여 그것을 예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의 면제를 세상에 선포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오해라 하겠다. 종교개혁적 선언은 죄 사유에 의한 세상의 의인도 성결도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세속적 직업이 의롭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루터에게 있어서 오직 그 직업에 의한 세상에의 항의가 아주 날카로울 때 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속적 직업을 예수를 따름으로 수행할 때 그것은 복음에 의하여 새 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죄를 의롭다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 하려는 것이 수도원을 나온 루터의 요건이라 하겠다. 비싼 은혜를 루터는 선사 받은 것이다. 메마른 땅의 생수며 공포에 대한 위로요, 스스로 택한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이며 모든 죄의 사유를 뜻하는 때문에 은혜인 것이다. 은혜는 책임을 불문에 붙이지 않고 오히려 따라오라는 부름을 극도로 날카롭게 하는 때문에 비싼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비싼 점에서 은혜는 은혜요, 은혜라는 점에서 그것은 비싼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자의 복음의 비의요 죄인에 대한 변호의 비의인 것이다.

그런데도 종교개혁사의 승리적 유물은 귀하고 비싼 은혜의 인간의 세속적 종교적 본능에 권리를 만들어 주는 결과가 되고 은혜는 그로 인하여 차츰 싸게 파악되었다. 이러한 본의 아닌 결과는 극히 적은 잘못된 액센트에 따른 것으로 말하자면 이 적은 과오가 가장 위험하고 저주스러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건한 생활과 일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는 때문에 루터는 그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이러한 숙명 속에서 루터는 신앙으로 죄의 사유에 의한 자유와 죄의 사유의 무조건성을 파악하였었다. 동시에 루터는 은혜가 생명의 대가라는 것과 아직 날마다 은혜를 위하여 생명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은혜에 의하여 순종을 면제 받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순종이 은혜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었다. 루터의 은혜에 대한 언급 배후에는 언제나 은혜의 힘으로 비로소 그리스도를 충실히 순종할 수 있었던 그의 생활이 밑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행하는 자’는 오직 은혜라 하였다. 자신의 모든 생활 행위 안에서 은혜의 능력을 그는 인식한 것이다. 그의 제자들도 이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시간 경과에 따라 단 하나의 차이가 그들 사이에는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즉 루터에게 가장 자연스러웠던 순종을 후계자들은 빼놓고 만 것이다. 루터는 순종에 관하여 꼬집어까지 말할 필요가 없었던 은혜의 능력에 의한 순종의 사람이었다. 그의 후계자들의 교리가 루터의 교훈에서 온 것임은 의심할 바 없으나 종교개혁이 지상에 다시 계시된 하나님의 비싼 은혜였다면 이러한 종교개혁의 본의 상실은 이미 루터의 제자들 중에 깃들었다고 볼 것이다. 세상 죄인의 의인이 변하여 세상 자체와 죄의 의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싼 은혜가 순종 없는 값싼 은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의 행위는 그것이 가장 선할 때에도 헛것이요 그러므로 “죄를 용서하는 은혜와 사랑 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루터는 전 소유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오라는 부름에 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은혜라 함은 자신의 죄의 생활을 결정적으로 끊는 일이지 결코 그 생활의 변명을 뜻할 수는 없다. 은혜는 자아 주장의 생활을 죄 사유의 능력으로 단절하는 최후 선언일 것이므로 은혜 자체 곧 따라오라는 부름의 진지성이라 하겠다. 은혜는 그 때 그 때의 ‘결과’로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후계자들에 의하여 추리의 원리를 위한 전제가 되어 버렸다. 모든 불행은 여기에 있다. 은혜를 그리스도 자신의 선물인 그리스도인 생활의 ‘결과’로 보았던들 이러한 불행이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은혜를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로 본 때문에 그것은 세상 생활에서 범하는 죄를 의롭다 하는 나의 기정 소유물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때 내가 이 은혜를 힘입어 범죄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이미 원리적으로 은혜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시민적이며 세속적인 생활에 그대로 머물러 모든 옛 것을 그대로 행하여도 좋았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오히려 보호한다는 확신에 이른 것이었다. 이 은혜로 온 세상은 ‘그리스도적’으로 화하고 기독교 자체는 이 은혜 아래서 전대미문의 형태로 세속화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적 직업 생활과 시민적 세속적 직업 생활간의 갈등은 해소되었다. 그리스도교적 생활이란, 세상에서 세상과 같이 살며 세상과의 차이를 어떤 점에서도 두지 않고 – 그렇다 은혜의 본성을 위하여 세상과 구별해서는 안 된다 – 그 때 그 때 교회에 나아가 죄 사유의 확실성만을 되풀이하며 얻으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가장 무서운 순종의 적인 참 순종을 증오하고 멸시하는 값싼 은혜에 의하여 예수를 따라가는 순종에서 해방된 것이다. 가설은 값싼 것이다. 은혜가 한 가설 구실밖에 못할 때 그것은 값싼 것이 되어 버린다. 그 대신 결과로서의 은혜는 무한히 비싼 것이다. 하찮은 표현의 차이가 복음적 교회의 진리를 이렇게 좌우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공할 일이다. 오직 은혜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은 은혜의 결과를 뜻하는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문구의 오용은 그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파괴해 버린다.

파우스트(Faust : Goethe의 시극에 나오는 주인공)가 무엇을 알아 보려고 일생 동안 노력한 끝에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였을 때, 이 말은 그의 전생애적 노력의 결과이다. 가령 이 같은 말을 대학 신입생이 이용한다면 그 뜻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키에르케고르). 결과로서의 이 말은 진리요, 전제일 때 자기 기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생활에서 얻은 인식을 생활에서 분리할 수 없음을 뜻한다. 전 소유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가는 자만이 오직 은혜에 의하여 의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오라는 부름 자체를 은혜로, 은혜를 부름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은혜의 혜택으로 오히려 순종을 모면하려는 자는 스스로 속는다.

그러나 은혜를 완전히 전도시킬 위험한 지점에 루터 자신도 빠져 들지 않았던가? pecca fortiter, sed fortius fide et gaude in Christo 즉 “죄를 범하는 데 대담하라. 그러나 보다 더 씩씩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 루터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너는 이미 죄인이므로 죄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사제가 되든 속인으로 있든 경건을 원하든 악을 원하든 세상의 올가미에서 벗어 나오기는 틀렸으며, 이렇든 저렇든 너는 죄를 행할 것이니 죄를 행할 바에는 차라리 – 이미 이룬 은혜에 따라 – 용감하게 행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은혜는 값이 싸지고 면죄부(免罪符)가 되고 순종의 해체를 뜻할 것이다. 은혜는 이 때 범죄하는 데 용기를 주는 근원이 되지 않는가? 거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핑계삼아 범죄하는 것보다 더 악마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이것을 성령에 거스르는 죄로 보려는 천주 교회의 태도는 옳은 견해가 아닐까?

옳게 이해하는 관건은 결과와 전제의 차이를 뚜렷하게 하는 데 있다. 루터의 이 말이 소위 은혜 신학의 전제가 되면 값싼 은혜의 논리가 선포된다. 그러나 처음이 아니라 끝으로, 결과로, 마지막 돌로, 최후의 말로 보면 루터의 이 말은 옳게 이해된다. 전제가 될 때, “죄를 범하는 데 대담하라”는 윤리적 원리가 되고 은혜의 본질은 이 윤리적 원리와 일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의인이다. 루터의 글은 이 때 그가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가 되어 버린다. “죄를 범하는 데 대담하라!” 이 말은 루터의 최후적 탈출구였으며 따라가는 생활 중에서 죄 없는 자가 될 수는 없음을 안 그가 죄 앞에 무서워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는 자를 위로하는 말이었다. 루터의 이 말은 불순종하는 자신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의 복음이므로 그 앞에 우리는 항상 죄인이요 복음은 우리를 죄인으로 발견하고 의롭다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죄를 고백하는 데 과감하라. 죄에서 도망하지 말고 “믿는 데는 더 용감하라” 죄인은 너다. 그러므로 오늘도 너는 죄인으로 지금의 너 이상 다른 것이 되려고 하지 말라. 그렇다. 날마다 다시 죄인이 되고 죄에서 용감하라. 그러나 누구에게 이런 말이 해당할 것인가? 이 말이야말로 충실히 죄와 항상 싸우고 예수를 따라가는 데 지장이 되는 모든 방해물에 날마다 항의하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불충실과 죄로 불안해 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겠는가? 신앙의 위태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누가 감히 이 말을 들어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주는 위로를 통하여 다시금 기운을 얻고 예수를 따르는 출발을 새로 다짐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루터의 이 문구를 이렇게 결과로 이해할 때에만 은혜만으로라는 말씀은 귀한 은혜가 될 것이다.

장을 달리하여, 은혜에 공허를 느끼고 고민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 사실을 다시 되풀이하겠거니와 특히 값싼 은혜로 그리스도의 따름을 잃고 그리스도의 따름에 의한 귀한 은혜의 이해까지도 잃어버린 것을 고백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 사실을 성실히 그리고 솔직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 여기에 우선 요약하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바로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면서도 은혜의 순수한 교리를 가진 잘못되지 않은 교회의 한 지체이기는 하나, 순종하는 교회의 지체는 아닌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때문에, 은혜와 순종의 상호 관계를 바로 이해하는 노력을 다시 해보자는 이 과제는 오늘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교회의 고민이 우리에게 점점 명백히 보여 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실생활에 대한 자세의 문제이다.

우리 자신의 길 마지막에 서서 사실 파악할 수 없는 것 즉 은혜는 순수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인 때문에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따라가 은혜로 자신을 극복하고 겸손히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하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이 은혜를 인식하고 세상 생활에서 이 인식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감으로 하늘나라가 확실하여져서 세상 생활에 사실 자유한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이 은혜의 힘에 의한 생활이니 은혜는 따라가는 것임을 아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은혜의 말씀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135) 번외편: 귀중한 역사유물론

이 글을 읽고 꽤 오랫 동안 책을 뒤적이면서 고민을 했다. 내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전제가 아니라 결과다. 강신준 교수에게서처럼 변증법이 전제로 사용될 때 변증법은 정당화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쓰는 도중 문득 본회퍼의 ‘귀중한 은혜‘ (그의 ‘나를 따르라’에 수록되어 있다)라는 글이 떠올랐다. 곧장 패러디를 해야겠다는 예술적 갈망이 솟아났고 몇몇 주요한 단어들을 마르크스, 역사유물론 등등으로 바꾸는 것으로 충분했다.


귀중한 역사유물론

역사유물론을 값싸게 보는 우리의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의 대 원수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역사유물론을 얻으려는 싸움이다. 값싼 역사유물론은 싸구려로 팔아버리는 상품과 같은 것으로, 억지로 내맡기는 자본주의의 극복이요 혁명이다. 무진장한 식료품 창고에서 물품을 내오듯이 생각 없이 마르크스주의에서 털어 내는 역사유물론을 뜻한다. 값도 댓가도 없는 역사유물론이다. 이것을 역사유물론의 본질이라 한다. 역사유물론은 이미 마르크스가 발견했기 때문에 언제나 공짜라는 것이다. 역사유물론을 이미 발견한 마르크스를 생각해서라도 무엇이나 거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통찰이 엄청난 때문에 소비와 낭비도 엄청난 것이다. 꼭 인간의 실천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이 과연 역사유물론인가? 싸구려 역사유물론이라 함은 교훈과 원리와 체계 같은 역사유물론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긍극적인 종말은 보편적 진리라 했다. 역사유물론은 인간사회의 근본적인 발전 원리이고 이념이라 했다. 이것이 사실임을 시인하는 자는 이미 자본주의를 극복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유물론을 소유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는 그 이론이 흡족해할만한 옳은 마르크스주의자라 하였다. 세상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기를, 자본주의에서 해방되기를 애걸할 필요도 없다. 이런 종류의 역사유물론을 신봉하는 마르크스주의자로부터 자본주의의 폐해를 덮어 감출 뚜껑을 얼마든지 싸게 얻을 수 있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싸구려 역사유물론은 마르크스의 이론의 부정이며 인간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마르크스의 역사관의 부정이다.

싸구려 역사유물론은 자본주의의 극복에 대한 것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생활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극복에 대한 것은 아니라 하였다. 역사유물론은 홀로 무엇이나 원만히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모두 옛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좋다는 것이다. “여하간 우리의 행함이란 헛된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어쨌든 견고하게 구조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도 결국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자도 자본주의사회의 구조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름 없이 살라.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처리하고 역사유물론이 자연법칙으로 관철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본주의적 생활 이상을 바라지 말라. 역사유물론을 저버리지 않도록, 거저 주어진 큰 역사유물론에 불만을 갖지 않도록, 부질없이 자본론 같은 것을 성실히 연구하거나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활동에 몰두하여 주의주의와 인간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자본주의는 이미 역사유물론에 의하여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 이 역사유물론의 참됨을 위하여, 비할 데 없는 이 역사유물론을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여, 세상과 다름없이 살라. 비범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일반 인정이지만 비범한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적 세상과 합하여 드러나지 않게 사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단념과 극기에 힘써 자신의 생활이 자본주의적 세상과 차별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역사유물론을 역사유물론답게 지속하여 거저 받은 역사유물론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자본주의 세상에서 해소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 자신의 세속성에 가해야 할 필요한 제재라는 것이니 이것은 세상, 아니, 역사유물론을 위한 것이며, 우리 의식 저편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는 역사유물론을 우리가 소유하게 된 것이며 생활의 위로며 안전이라 했다. 잘라 말해서 따라갈 필요 없이 앉은 자리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과는 무관한) 역사의 자기실현을 뜻하는 싸구려 역사유물론일 수는 있어도 자본주의적 폐해와 악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가는 것과는 무관하다. 자본주의의 극복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싸구려 역사유물론은 우리 자신에 근원을 가진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잊으면 안 된다. 싸구려 역사유물론은 자본주의의 타도 없이 자본주의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설교이며,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무시한 이론적 이해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뼈아픈 통찰 없는 정신 승리, 자각과 반성 없는 진보의 확인이다. 투쟁 없는 역사유물론, 고통 없는 역사 유물론, 자본주의 타도에 앞장성 이들을 애써 무시하는 역사유물론이 싸구려 역사유물론이라 하겠다.

그러나 귀한 역사유물론은 밭에 숨은 보물과 같다. 이 보물을 사려는 사람은 집에 돌아가 가진 전 재산을 기쁨으로 팔아 댓가로 지불한다. 장사군이 전 재산을 내어줄 수 있는 귀한 진주, 이것이 귀한 역사유물론이다. 인간의 비위를 거스르거나 놀라게 하는 역사의 진보의 흐름이 바로 역사유물론이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즉석에서 따라가게 하는 역사의 부름이 그것이다.

귀한 역사유물론은 계속해서 짓궂게 찾아야 할 이론이요, 간곡히 구해야 할 세계사적 이론이요, 두드려야 할 문이다.

역사유물론은 따라오라는 부름인 때문에 비싸고 역사의 진보의 길로 따라오라는 때문에 보물인 것이다. 역사유물론은 인간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에 비싸고 동시에 인간에게 진보를 선사하기 때문에 보물인 것이다. 비싸다 함은 자본주의를 저주하는 때문이요, 보물이라 함은 인간 하나하나의 가능성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역사유물론이 비싼 이유는 무엇보다도 역사의 흐름을 좇는 사람들이 역사와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 때문이요 –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 마르크스에게 비싼 것이 우리에게 쌀 리 없는 것이다. 이같이 비싼 역사유물론이 보물임은 무엇보다도 역사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에 있다. 귀한 역사유물론은 바로 우리가 역사의 에이전트가 된 것을 뜻한다.

역사유물론이 귀함은 그것이 인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항상 주의하여 역사유물론을 개에게 던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것은 동시에 마르크스가 명료하게 제시한 것이므로 그의 뜻대로 말하도록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역사의 진보의 길로 따라오라는, 자본주의의 극복의 길로 나서라는 부름은 우리를 감동시키며,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패망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확신에 찬 이론은 불안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역사유물론이 비싼 것은 자본주의의 극복의 길에 널려 있는 멍에를 사람이 지도록 하는 때문이요 그것이 가슴뛰게 하는 것은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오솔길을 기어 올라”간다면 그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선례 때문이다.

역사유물론에 대한 깨달음이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그가 독일 이데올로기를 저술한 초창기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 자본론을 저술할 때 사용한 방식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은 하나의 총체의 계기들인 것으로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가 이 학자의 전 생애를 감싸고 있다. 첫번째 것은 주로 경제학-철학 초고에 나타나는데, 그 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의 문제에 주목했다. 두번째 것은 자본론의 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 내재적 비판에 나타나는 것으로 여기서 관심은 인간의 아픔 그 자체 보다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자기파괴적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상호연관된 관점 사이에 역사의 진보를 따라가는 마르크스의 전 생애가 들어 있고 이 두 가지의 관점이 그의 생애를 감싸 주고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의 중심에는 역사유물론에 대한 신념이 뚜렷이 솟아 있다. 즉 역사는 마침내 진보할 것이고 자본주의는 패망할 것이라는 고백인데 마르크스는 이 고백을 여러번 남겼다. 자본주의의 참상에 대한 즉각적인 분노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열정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노력, 그리고 학적 연구를 통해 통찰하게 된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성은 같은 역사유물론의 두 가지 다른 모습일 뿐이다.

역사유물론은 마르크스에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중 하나만을 취하고 다른 것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역사유물론이 그에게 힘을 주어 마르크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진보의 길로 나서게 하였으며 온 세상이 신성모독이라 간주하는 이론을 세상에 내놓게 하였다. 이렇게 마르크스가 이해한 역사유물론은 비싼 것이었다.

사회의 진보에 대한 사상이 널리 전파되고 확대됨에 따라 세속화되고, 역사유물론은 비싼 면을 차차 상실하게 되었다. 세상은 진보의 이름 속에 보수화되고 역사유물론은 진보에 대한 신뢰라는 통속적 개념이 되어 버렸다. 싸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일면이 아직 사회에 남아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 전업운동가, 학자들의 존재가 곧 그것이다. 이들이 사회에서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것을 사회가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의 극복에 비싼 값을 치루어야 하며 인내를 요구한다는 인식이 물론 사회의 진보적인 사람들의 한 변두리를 돌고 있음은 사실이나 이들의 생활의 핵심은 여하간 입신양명과 부귀안락의 가능성을 버리고 자본주의의 극복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엄격한 훈련을 닦는 일이었다. 전업운동가, 학자들의 존재는 역사유물론의 세속화와 이의 무력화에 대한 모진 항의이기도 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사회는 이 항의를 기뻐하였을 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그와의 최후결렬은 면하였으나 그것을 상대화하게 되어 결국 이러한 생활은 진보운동의 세속화의 일종의 변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즉 활동가로서, 혁명가로서, 학자로서의 삶은 특수 개인의 특수 행위로 인정받았을 뿐 사회 대중의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는 말이다. 역사유물론의 현실적 관철을 위한 노력을 특별한 취미의 인간들의 특별한 집단에 한정시킨 것은 숙명적으로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을 최고의 노력과 최저의 노력으로 나누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렇게 마르크스주의 전업활동가, 학자의 존재를 인정함으로 진보 세력은 세속화에 대한 항의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또 한편 아주 저급한 세속 생활의 가능성도 절대적 변호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들의 노력에 의하여 사회에 보관되고 있었던 역사유물론에 대한 저 충실한 이해는 자신을 다시 보수화된 진보진영에 변호해야 하는 결정적 모순에 떨어지고 말았다. 여하간 이러한 전업활동가, 학자들이 결정적 과오를 초래한 것은 – 역사유물론에 대한 내용적 오해는 차치하더라도 – 역사유물론의 길을 엄격한 따름의 길로 이해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생활을 역사유물론에서 멀어지게 한 것은 자기 의사 결정에 따른 소수인의 특별 행위를 인정하고 이에 따른 특수 업적과 공로를 위한 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데 있다.

마르크스는 본래 학자의 길을 택했으며 그를 통해 순수하고 귀한 역사유물론이 일어났다. 그는 사회의 진보와 자본주의의 극복에 전념하는 학자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버렸다. 세상을 버리고 역사를 진보하게 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오직 이를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을 알았다. 노력을 통해서만 이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안 때문에 그는 밤낮없이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했다.

학자의 길을 택한 것은 삶 전체의 투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이 길은 역사유물론에 의하여 좌절당하고 말았다. 역사유물론을 따라감은 개인의 공을 쌓는 어떤 특수 행위가 아니라 자본주의 극복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관철되어야 할 분명한 요구사항임을 그가 깨달은 때문이었다. 학자로서의 겸손한 행동은 훌륭한 다른 학자의 선례를 따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모방하는 사람들 자신의 극기요 연구에 몰두하는 자들의 결정적 자기 주장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세상은 학자들의 삶의 중추에 침투하여 위험한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학자의 세계 도피는 아주 교활한 세계애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아탑에서의 생활의 최후 가능성이 그에게서 좌절되자 역사유물론을 붙잡았던 것이다. 학자 세계의 붕괴 속에서 마르크스는 도리어 역사유물론의 섭리의 작동을 본 것이다. 그가 역사유물론을 붙든 것은 “개인은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며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본 그가 그의 엄청난 개인적 노력의 허망함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얻은 역사유물론은 이렇게 비싼 것이었다. 그는 역사유물론에 투신하기 위해 그의 삶 전체를 꺾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헤겔의 책을 버리고, 우선은 세계를 해석하고자 했던 그 생각을 버리고 역사유물론이 이끄는 길로 따라가야 했다. 이제는 학자로서의 자신의 공적을 위한 따름이 아니고 역사유물론의 흐름에 그 몸을 내맡기기 위한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끔찍한 것이나 결국 망하게 되어 있으니 네가 있는 곳에 그대로 있으면서 자본주의의 붕괴의 날을 기다리라는 깨달음은 마르크스의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오히려 안정적인 학자로서의 삶의 가능성을 버리고 자본주의 사회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선하고 정의로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상아탑도 이와 다름이 없었던 때문이다.

학자의 길을 버리고 세상으로, 자본주의 사회로 돌이킨 마르크스의 길은 세상을 꾸짖은 힐책 중 가장 신랄한 공격을 뜻하였다고 본다. 세상의 길을 택한 마르크스의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는 학자들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아이들의 장난으로 폭로시킨 것이다. 그의 싸움은 백병전이었다. 자본주의의 극복을 생활의 중심에 세워 놓은 것이다. 특수한 환경 속에서 특수한 사람들의 역할과 책임으로 간주되었던 일들이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피할 수 없는 명령이 되었다. 역사유물론을 따른다는 것이 일상적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세상과 몸을 맞댈 수 밖에 없다. 이것을 백병전이라 한다. 마르크스의 이론, 특히 역사유물론을 순수한 학적 연구의 결실이라 하여 더 이상의 이론적, 실천적 노력/투신의 면제를 세상에 선포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오해라 하겠다. 역사유물론의 발견, 곧 자본주의의 필연적 패망의 이론의 선포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화도 그것의 긍정도 아니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행동에 의한 자본주의적 세상에의 항의가 아주 날카로울 때 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활을 역사유물론을 따르는 방식으로 수행할 때 그의 생활은 정당화될 수 있다.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 왜냐하면 사람은 역사유물론의 부름에 응답할수 있으므로 – 상아탑의 길을 포기한 마르크스의 목표라 하겠다. 마르크스는 역사유물론을 비싼 값을 주고 산 것이다. 메마른 땅의 생수며 공포에 대한 위로요, 스스로 택한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이며, 모든 자본주의적 패악의 소멸을 뜻하는 때문에 그것은 보물인 것이다. 이 보물은 책임을 불문에 붙이지 않고 오히려 따라오라는 부름을 극도로 날카롭게 하는 때문에 비싼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비싼 점에서 보물은 보물이요, 보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비싼 것이다. 이것이 반자본주의자의 이론의 비의요, 인간을 그가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임에도 변호할 수 있는 비의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 승리적 유물은 귀하고 비싼 보물이라는 마르크스적 인식이 아니라 인간의 세속적, 자본주의적 본능에 권리를 만들어주는 결과가 되고 역사유물론은 그로 인하여 점차 싸구려로 전락해 갔다. 이러한 본의 아닌 결과는 극히 적은 잘못된 액센트에 따른 것으로 말하자면 이 적은 과오가 가장 위험하고 저주스러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건한 생활과 일에서 세상의 진보 그 자체보다는 자기 자신을 찾는 때문에 마르크스는 그러한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자본주의적 극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이러한 숙명 속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를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연사적 과정으로서의 자본주의의 극복이 생명의 대가라는 것과 그리고 이를 위하여 아직 날마다 생명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역사유물론이라는 이론에 의하여 인간의 노력이 면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이 이론을 통해 비로소 올바른 노력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었다. 역사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 배후에는 언제나 엄청난 노력을 통해 역사유물론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려 하였던 그의 생활이 밑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타도를 위한 노력과 역사유물론은 하나였다. 자신의 모든 생활 행위 속에서 그는 역사유물론의 도도한 흐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제자들도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시간 경과에 따라 단 하나의 차이가 그들 사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즉 마르크스에게 가장 자연스러웠던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후계자들은 빼놓고 만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 이해에는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그 중심까지 스며들어 있어 인간의 노력의 중요성을 꼬집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후계자들의 이론이 마르크스에게서 온 것임은 의심할 바 없으나 그의 역사유물론이 비싼 보물이었다면 이의 본의 상실은 이미 마르크스의 제자들 중에 깃들었다고 볼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그리하여 개인을 사회의 산물로 간주하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이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한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비싼 역사유물론이 인간의 행위와 노력을 무시하는 싸구려 역사유물론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마르크스는 역사유물론에 투신하라는 부름에 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공부하고 깨닫는 것은 자신의 잘못된 생활을 결정적으로 끊는 일이지 결코 그 생활의 변명을 뜻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적 주장과 선호를 사회의 진보라는 대의에 맞추어나가기 위해 끊어내는 최후 선언을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붕괴는 ‘결과’적으로 자연사적 과정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후계자들에 의하여 추리의 원리를 위한 전제가 되어 버렸다. 모든 불행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의 자동붕괴를 인간의 행위와 노력의 ‘결과’로 보았던들 이러한 불행이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에 기인하는 자본주의의 궁극적 자기파괴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전제로 본 때문에 그것은 자본주의적 이념에 부합한 생활을 이롭다하는 나의 기정 소유물이 되고 만 것이다. 이때 내가 이 이론에 힘입어 자본주의적 생활에 영합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이미 원리적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시민적이며 세속적인 생활에 그대로 머물러 모든 옛 것을 그대로 행하여도 좋으며 이론이 도리어 이러한 생활을 지지한다는 확신에 이른 것이었다. 이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는 진보적인 사회로 화하고 마르크스주의는 이 이론 속에서 전대미문적으로 보수화하였다.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적 이론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상적 생활간의 갈등은 해소되었다. 마르크스주의적 삶이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살며 자본주의와의 차이를 어떤 점에서도 두지 않고 – 그렇다 이론을 위해서라도 나를 자본주의로부터 구별해서는 안된다 – 그때 그때 자본론을 읽으며 자본주의의 궁극적 붕괴의 확실성만을 되풀이하며 얻으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성에 대한 가장 무서운 적인, 참 인간성을 증오하고 멸시하는 싸구려 역사유물론에 의하여 자본주의 극복에 투신해야 한다는 필요와 의무에서 해방된 것이다. 가설은 싸구려다. 이론이 한 가설 구실밖에 못할 때 그것은 싸구려가 되어 버린다. 그 대신 결과로서의 이론은 무한히 비싼 것이다. 하찮은 표현의 차이가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의 진리를 이렇게 좌우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공할 일이다. 자본주의가 그 모순으로 인해 마침내 자동붕괴할 것이라는 이론은 결과로서의 이론으로 옳다. 그러나 이같은 문구의 오용은 그것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파괴해 버린다.

파우스트가 무엇을 알아 보려고 일생 동안 노력한 끝에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였을 때, 이 말은 그의 전생애적 노력의 결과이다. 가령 이 같은 말을 대학 신입생이 이용한다면 그 뜻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키에르케고르). 결과로서의 이 말은 진리요, 전제일 때 자기 기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생활에서 얻은 인식을 생활에서 분리할 수 없음을 뜻한다.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역사유물론이 제시하는 길을 따르는 사람만이 오직 이 역사유물론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름을 역사유물론으로, 역사유물론을 부름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유물론의 혜택으로 오히려 자본주의의 부정을 모면하려는 자는 스스로 속는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전도시킬 위험한 지점에 마르크스 자신도 빠져 들지 않았던가? 즉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의 역사적 과제이며 그것의 역사적 정당성이다. 바로 이를 통해서 자본은 무의식중에 더욱 고도의 생산형태를 위한 물적 조건을 창출한다.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 생산력의 발전을 저지하게 된다면 자신의 역사적인 소명에 불성실한 것이 된다.”고 한 마르크스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너는 이미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거기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학자이건 혁명가이건 아니면 마르크스주의에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건, 자본주의의 극복을 원하건 유지를 원하건 자본주의의 올가미에서 벗어 나오기는 틀렸으며, 이렇든 저렇든 자본주의와 더불어 그 패악에 참여할 것이니 어차피 그럴 바에야 차라리 – 게다가 자본주의는 어차피 결국 망할 것인데 – 용감하게 주저하지 말고 효용과 이윤을 극대화하며 살아가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론은 싸구려가 되고 면죄부가 되고 인간성은 해체되고 말 것이다. 이론은 이때 인간성의 파괴에 필요한 용기의 근원이 되지 않는가?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전해준 역사유물론을 핑계삼아 이러한 자해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반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이것을 반마르크스주의적인 것으로 보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태도는 옳은 견해가 아닐까?

옳게 이해하는 관건은 결과와 전제의 차이를 뚜렷하게 하는 데 있다. 마르크스의 이 말이 소위 자본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의 전제가 되면 싸구려 역사유물론의 논리가 선포된다. 그러나 처음이 아니라 끝으로, 결과로, 마지막 돌로, 최후의 말로 보면 마르크스의 이 말은 옳게 이해된다. 전제가 될 때, “자본의 역사적 과제”는 윤리적 당위가 되고 이론의 본질은 이 윤리적 당위와 일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정당화다. 마르크스의 글은 이 때 그가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가 되어 버린다. “자본의 역사적 과제”, 이 말은 마르크스의 최후적 탈출구였으며 결국 극한의 개인의 노력에 드리워져 있는 허망함을 안 그가 이 허망함에 좌절하여 결국 포기 외에 다른 길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이었다. 마르크스의 이 말은 자본주의가 주는 안락과 평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역사가 그 얼굴을 드러낸다는 이론적 낙관주의이다. 자본주의의 장점을 보는데 과감하라. 자본주의에서 도망하는 대신 자본론을 읽으며 정신을 가다듬어라. 우리는 결코 자본주의의 사슬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도 너는 벗어날 수 없는 멍에를 지고 있는 너는 너 이상 다른 것이 되려고 하지 말라. 그렇다. 날마다 다시 자본주의에 사로 잡히고 포로로서 용감하라. 그러나 누구에게 이런 말이 해당할 것인가? 이 말이야말로 항상 충실히 자본주의와 싸우고 역사유물론을 따라가는 데 지장이 되는 모든 방해물에 날마다 항의하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장애물과 능력의 한계로 불안해 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론의 위태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누가 감히 이 말을 들어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주는 위로를 통하여 다시금 기운을 얻고 역사의 진보를 향한 출발을 새로 다짐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마르크스의 이 문구를 이렇게 결과로 이해할 때에만 역사유물론은 귀한 역사유물론이 될 것이다.

장을 달리하여, 이론에 공허를 느끼고 고민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 사실을 다시 되풀이하겠거니와 특히 싸구려 역사유물론으로 인해 인간의 치열한 노력의 길을 잃고, 이 이론에 대한 이해까지도 잃어버린 것을 고백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 사실을 성실히 그리고 솔직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 여기에 우선 요약하면 우리는 올바른 이론을 가진 사람일지는 모르나 그 이론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때문에, 결과로서의 역사유물론과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인간의 노력 사이의 상호관계를 바로 이해하는 노력을 다시 해보자는 이 과제는 오늘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고민이 우리에게 점점 명백히 보여 주는 것은 마르크스를 따르는 사람들의 실생활에 대한 자세의 문제이다.

우리 자신의 길 마지막에 서서 사실 파악할 수 없는 것, 즉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은 순수하고 이것은 결과로서의 자연사적 과정인 덕분에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할 것이다. 역사유물론에 대한 신뢰로 자신을 극복하고 겸손하고 묵묵하게 인류를 진보의 길로 이끄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활에서 이 인식을 지키고, 역사유물론을 따라감으로 자본주의의 극복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어 세상 생활에 사실 자유한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역사유물롬을 따름이 사회의 진보에 대한 확신에 뿌리내린 생활임을 알기 때문에 역사유물론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역사의 흐름 속에 함께하며 역사의 축복을 받은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134)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론적 변증법

다윈은 자연의 기술사, 즉 동식물의 기관들 – 동식물의 생활의 영위를 위한 생산도구들이다 – 의 형성(Bildung)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회 속 인간들(Gesellschaftsmenschen)의 생산적 기관들의 형성사, 모든 특수한 사회조직체(Gesellschaftsorganisation)의 물적토대의 형성사에도 동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것이 더 용이하게 수행될 수 있지 않을까? 비코(Vico)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는 자연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인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기술(Technologie)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행동(Verhalten), 즉 인간 생활의 직접적 생산과정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 생활조건(Lebensverhältnisse)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정신적 표상들(Vorstellungen)을 밝혀준다. 심지어 어떤 종교사도 이러한 물적토대를 추상하는한 몰비판적이다. 사실 분석을 통해 종교적 환영들(Nebelbildungen)의 현세적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 거꾸로 현실의 생활조건들로부터 그것들의 신성화된(verhimmelten) 형태를 전개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후자가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따라서 학적인 방법이다.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추상적인 자연과학의 유물론의 약점은 이들의 대변자들이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벗어나자마자 사용하는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개념들(Vorstellungen)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자본론 1권 15장; MEW 23, 392

참고: 기존의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새롭게 번역했다 (아래 비봉판, 길판, 펭귄판, MIA판 번역 참조)

1. 기술을 – 그리고 기술의 구현체인 도구와 기계를 – 기관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다. 특수한 동식물의 종별성이 기관구조의 종별성에 있다면 어떤 사회조직체의 종별성을 기술과 도구의 종별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에서 “손절구는 봉건영주가 있는 사회를 산출하고, 증기 제분기는 산업 자본가가 있는 사회를 산출할 것이다”(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273)라고 썼다. 하지만 자립적으로 발전하는 생산기술 혹은 생산력이 생산관계, 생산양식을 변화시킨다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생산력의 발전 역시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2. “사회 속 인간들의 생산적 기관들의 형성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산적 기관들의 형성사가 생산양식과 사회적 관계들의 형성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들은 생산력들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새로운 생산력을 획득함으로써 인간들은 그들의 생산 양식을 변화시키며, 그들의 생산 양식,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인간들은 그들의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변화시킨다” (철학의 빈곤, 앞의 책, 273)

3. 비봉판에는 “기술학”, 길판에는 “공학”으로 번역되어 있는 Die Technologie는 그냥 기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4. (어떤 특정한) 기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드러낸다:

  •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행동(Verhalten) = 인간 생활의 직접적 생산과정] – 사용가치의 관점에서의 기술
  • [인간의 사회적 생활조건(Lebensverhältnisse)] –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치의 관점에서의 기술
    • Lebensverhältnisse는 보통 생활수준으로 번역하지만 여기서는 생활조건으로 번역했다. 이 단어가 단순히 물질적/문화적 생활수준을 넘어 사회적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사회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봉판과 길판에는 모두 “생활 … 관계들”로 되어 있는데 – 아마도 Verhältnisse를 보통 관계로 번역하기 때문일 것이다 –  생산력의 의미가 배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 생산기술은 협업의 방식을 규정하고, 역으로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지배적인 협업의 방식을 반영한다. 기계는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생산의 보조자로 전락시키는데, 이것은 노동자들의 비숙련화를 전제로 한다.
  • 인간의 사회적 생산조건으로부터 생겨나는 정신적 표상들(Vorstellungen) – 다시 한번 [철학의 빈곤]에서 인용
    •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성에 조응하여 사회적 관계들을 확립하는 바로 그 인간들이 또한 그들의 사회적 관계들에 조응하여 원리들, 이념들, 범주들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이 이념들, 이 범주들은 그것들이 표현하는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하지 않다. 그것들은 역사적이고 과도적인 산물들이다.
      생산력들 속에는 끊임없는 성장의 운동이, 생산 관계들 속에는 끊임없는 파괴의 운동이, 이념들 속에는 끊임없는 형성의 운동이 존재한다 ;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운동의 추상뿐이다 – 불사의 사.” (철학의 빈곤, 앞의 책, 273, 강조는 원문)

5. 행동(Verhalten)이라는 표현은 비슷한 맥락에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도 사용된다 – “인간들의 표상함, 사유함, 정신적 교류는 여기에서 또한 그들의 물질적 행위(Verhalten)의 직접적 유출로서 나타난다” (독일 이데올로기, 앞의 책, 201)

6. 환영들로 번역한 Nebelbildungen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안개의 형성이다. 영어로는 보통 Phantom이라고 번역한다. 자본론 1권 1장 4절의 상품물신주의에 관한 절에서 마르크스는 비슷한 의미를 갖는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는 phantasmagorische (환영과 같은, 환상과 같은)이고, 다른 하나는 Nebelregion (안개영역 – 비봉판에는 “몽롱한 … 세계”, 길판에는 “신비경”으로 번역되어 있다)이다.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와 가치관계는 … 인간의 눈에는 물건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phantasmagorische)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인간들 사이의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는 몽롱한 종교세계(Nebelregion der religiösen Welt)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된다 – 자본론 1권 1장, 93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도 Nebelbildunge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인간들의 뇌 속의 환영들(Nebelbildungen) 또한 인간들의 물질적인,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그리고 물질적 전제들에 연결된 생활 과정의 필연적 승화물이다. – 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202

[철학의 빈곤]과 [독일 이데올로기]의 이 부분들만 놓고보면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1846년 이래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독일 이데올로기에는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 방법”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도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독일 철학과는 정반대로 여기에서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책, 202-3

7. 과학적 방법 대신 학적 방법이라는 표현이 낫다. 학회의 주제를 정하고 제출된 논문을 심사하는 Scientific Committee를 과학적 위원회로 번역할 수 없는 것 아닌가.

8. 추상적인 자연과학의 유물론이라 함은 곧 기계적 유물론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유물론은 역사적 과정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대상의 고정성을 부정하는 유물론이다. 그것은 현실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 놓여 있다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그리고 그의 변증법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출발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이다.

이 고찰 방식은 현실적 전제들에서 출발하여, 그 현실적 전제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이 고찰 방식의 전제들이란 어떤 환상적 (phantastisch) 격리와 고정 속에 있는 인간들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들 아래의 현실적인, 경험적으로 일목요연한 발전 과정 속에 있는 인간이다. 이러한 활동적 생활 과정이 표현되자마자 역사는, 경험론자들 – 그들 자신 아직 추상적인 – 의 경우처럼 죽은 사실들의 집적이기를 멈추고, 혹은 관념론자들의 경우처럼 상상된 주체들의 상상된 행동이기를 멈춘다. –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책, 202

독일어 원문

Darwin hat das Interesse auf die Geschichte der natürlichen Technologie gelenkt, d.h. auf die Bildung der Pflanzen- und Tierorgane als Produktionsinstrumente für das Leben der Pflanzen und Tiere. Verdient die Bildungsgeschichte der produktiven Organe des Gesellschaftsmenschen, der materiellen Basis jeder besondren Gesellschaftsorganisation, nicht gleiche Aufmerksamkeit? Und wäre sie nicht leichter zu liefern, da, wie Vico sagt, die Menschengeschichte sich dadurch von der Naturgeschichte unterscheidet, daß wir die eine gemacht und die andre nicht gemacht haben? Die Technologie enthüllt das aktive Verhalten des Menschen zur Natur, den unmittelbaren Produktionsprozeß seines Lebens, damit auch seiner gesellschaftlichen Lebensverhältnisse und der ihnen entquellenden geistigen Vorstellungen. Selbst alle Religionsgeschichte, die von dieser materiellen Basis abstrahiert, ist – unkritisch. Es ist in der Tat viel leichter, durch Analyse den irdischen Kern der religiösen Nebelbildungen zu finden, als umgekehrt, aus den jedesmaligen wirklichen Lebensverhältnissen ihre verhimmelten Formen zu entwickeln. Die letztre ist die einzig materialistische und daher wissenschaftliche Methode. Die Mängel des abstrakt naturwissenschaftlichen Materialismus, der den geschichtlichen Prozeß ausschließt, ersieht man schon aus den abstrakten und ideologischen Vorstellungen seiner Wortführer, sobald sie sich über ihre Spezialität hinauswagen. – MEW 23, 392

비봉판

다윈(Darwin)은 자연의 기술사 [즉, 생명의 유지를 위해 생산도구의 역할을 하는 동식물의 기관들의 형성]에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인간사회의 생산적 기관의 형성사[즉, 모든 사회조직의 물질적 기초가 되고 있는 기관의 형성사]에도 그와 동일한 주의를 돌릴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더 용이하게 저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비코(Vico)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자연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학은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생산과정을 밝혀 주는 동시에, 인간생활의 사회적 관계들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관념들의 형성과정을 밝혀 준다. 이 물질적 기초를 사상하고 있는 모든 종교사는 무비판적이다. 안개처럼 몽롱한 종교적 환상의 현세적 핵심을 분석에 의해 발견하는 것은, 현실의 생활관계들로부터 그것들의 천국형태를 전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일이다. 후자의 방법이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따라서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이다. 자연과학의 추상적 유물론(즉, 역사와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유물론)의 결함은, 그 대변자들이 일단 자기의 전문영역 밖으로 나왔을 때에 발표하는 추상적이며 관념론적인 견해에서 곧 드러난다. – 501

길판

다윈은 자연의 기술사, 즉 동식물이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생산용구로서 자신들의 갖가지 기관을 어떻게 형성해왔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회적 인간의 갖가지 생산기관의 형성사나 각 개별 사회조직의 물적 토대에 의한 형성사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기울일 만한 분야 아닐까? 그리고 사실 이 분야가 더 쉬운 분야가 아닐까? 왜냐하면 비코(Vico)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와 구별되는 까닭은, 전자는 우리가 만든 것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공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태도, 즉 인간생활 [따라서 인간생활의 온갖 사회적 관계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정신적 표상들]의 직접적인 생산과정을 밝혀주고 있다. 이 물적 토대를 무시한다면, 어떤 종교사도 몰비판적인 것이다. 분석을 통해 종교적 환상의 현세적인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거꾸로 그때그때 현실의 온갖 생활관계들에서 그것의 종교적인 형태를 설명해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후자가 곧 유물론적인[따라서 과학적인] 방법이다.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추상적, 자연과학적 유물론의 결함은 그 대변인들이 자신들의 전문영역을 벗어나자마자 보여주는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견해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 508

펭귄판

Darwin has directed attention to the history of natural tech­nology, i.e. the formation of the organs of plants and animals, which serves as the instruments of production for sustaining their life. Does not the history of the productive organs of man in society; of organs that are the material basis of every particular organization of society, deserve equal attention? And would not such a history be easier to compile, since, as Vico says; human history differs from natural history in that we have made the former, but not the latter? Technology reveals the active relation of man to nature, the direct process of the production of his life, and thereby it also lays bare the process of the production of the social relations of his life, and of the mental conceptions that flow from those relations. Even a history of religion that is written in abstraction from this material basis is uncritical. It is, in reality, much easier to discover by analysis the earthly kernel of the misty creations of religion than to do the opposite, i.e. to develop from the actual, given relations of life the forms in which these have been apotheosized. The latter method is the only materialist, and therefore the only scientific one. The weaknesses of the abstract materialism of natural science, a materialism which excludes the historical process, are immediately evident from the abstract and ideological conceptions expressed by its spokesmen whenever they venture beyond the bounds of their own speciality. – 493-4

MIA판

Darwin has interested us in the history of Nature’s Technology, i.e., in the formation of the organs of plants and animals, which organs serve as instruments of production for sustaining life. Does not the history of the productive organs of man, of organs that are the material basis of all social organisation, deserve equal attention? And would not such a history be easier to compile, since, as Vico says, human history differs from natural history in this, that we have made the former, but not the latter? Technology discloses man’s mode of dealing with Nature, the process of production by which he sustains his life, and thereby also lays bare the mode of formation of his social relations, and of the mental conceptions that flow from them. Every history of religion, even, that fails to take account of this material basis, is uncritical. It is, in reality, much easier to discover by analysis the earthly core of the misty creations of religion, than, conversely, it is, to develop from the actual relations of life the corresponding celestialised forms of those relations. The latter method is the only materialistic, and therefore the only scientific one. The weak points in the abstract materialism of natural science, a materialism that excludes history and its process, are at once evident from the abstract and ideological conceptions of its spokesmen, whenever they venture beyond the bounds of their own speciality.

 

(133) 비판적인 기술사

이미 왓트(Wyatt) 이전에도 매우 불완전한 것일지언정 방적기가 – 아마도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 사용되고 있었다. 비판적인 기술사는 18세기의 발명 중 한 개인의 업적으로 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 자본론 1권 15장, 501; MEW 23, 392

안타깝게도 마르크스는 비판적인 기술사(Eine kritische Geschichte der Technologie; a critical history of technology)에 관해 상술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 비판적 기술사에 대한 내 해석을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1. “비판”은 다음의 구절에서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상품에 포함된 노동의 이러한 이중적 성질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heesnag: 입증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 자본 1권 1장, 96 (길판), 강조 추가

Diese zwieschlächtige Natur der in der Ware enthaltenen Arbeit ist zuerst von mir kritisch nachgewiesen worden – MEW 23, 56

마르크스가 노동의 이중성의 발견을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간주했음을 감안하면, “비판적으로”라는 표현에 상당한 무게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EM님이 지적했듯이 비판은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긍정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비판’ 이란 무엇인가? 흔히 분석을 긍정적인 것으로, 비판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데, 어원적으로 보든 아니면 그 개념이 실제 지성사에서 쓰인 방식으로 보든 ‘비판’이란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개념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원적으로 ‘비판’(critique)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까지 소급되는데, 이때 그것은 ‘위기’(crisis)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crisis란 일종의 의학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 환자의 병세가 하나의 국면에서 다른 하나의 국면으로 넘어가는 어떤 고비 같은 것을 뜻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의미에서 crisis는 사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물론 그에 기반해서 내려질 냉철한 ‘판단’까지도 포괄하게 되는데, 이후 이런 ‘분석’이나 ‘판단’의 문제는 대체로 critique이라는 단어로 독립되었다. 나아가 critique은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밝힌 바 있듯이 근대 서유럽 지성계에서 심지어 ‘이성(reason)의 사용’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렇다고 ‘비판’에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이 말의 어원을 보자. 그것은 crisis와 맥을 같이 한다고 했고, 그런 의미에서 ‘비판’이란 비판 대상이 일정한 ‘위기’ 상황에 있다는 판단을, 나아가 그런 판단을 가능케 하는 그 대상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을 전제한다고 했다. 예컨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을 비판하겠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현재 정치경제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며, 이런 판단을 설득력 있게 내어놓으려면 정치경제학을 면밀히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후자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그 자신 하나의 정치경제학 체계를 결과로서 내놓을 텐데, 우리는 그 결과를 《Das Kapital》이라는 형태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Das Kapital》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존 정치경제학을 지양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로 또 다른 정치경제학이기를 지향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비판적이지 않은 경제학, 과학적이지 않은 경제학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이렇게 진정으로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경제학을 내놓고 증진시키며 예의 그 잘못된 경제학에 그것을 대비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비판적’인—‘부정적’ 의미에서의—기획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What’s in a name? 자본론 vs 자본: ‘비판’의 의미에 대하여, 강조는 원문

기존의 기술사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이를 “면밀히 파헤치”는 것을 통해 “필연적으로” 새로운 기술사 체계 – 비판적인 기술사 – 를 “결과로서 내놓”을 수 있겠다.

2. 그런 측면에서 “18세기의 발명 중 한 개인의 업적으로 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라는 언급에는 이미 비판적인 기술사의 싹이 담겨 있다. 이것은 우선 발명을 개인의 (천재성의) 산물로 이해한 당대의 보편적 이해에 대한 부정적 비판이지만, 동시에 과학기술의 사회적 성격 – 과학기술은 사회적 산물이며 동시에 사회의 규정적 요소이다 – 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을 보여준다.

3. 당연하게도,

현재까지는 그와 같은 저술은 아직 없다.

마르크스 당대에도 없었으며 현재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적 STS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이론은 노동과정론과 인지자본주의론 정도를 들 수 있는데, 전자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후자는 잘못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석사 혹은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Sussex 대학의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Research (SPRU)을 택할 것 같다.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알란 프리만(Alan Freeman)의 더 유명한 아버지인 크리스 프리만(Chris Freeman)이 맹활약한 곳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비판적 기술학”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다면 꽤 근사하지 않을까. 혹시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대한 전문적 연구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이런 루트를 추천드리고 싶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연구에서 전형 논쟁, 오키시오 정리와 같은 기술적인 주제들이 과대평가되는 것을 나는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다. 나름 의미 있는 주제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비판적 자본주의 이론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전형과 오키시오 정리 에 대한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많지 않다. 긴요한 것은 마르크스 가치론의 정합성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비판적 이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비판적 기술학, 비판적 교육학, 비판적 예술학, 비판적 정치학 등등등등.

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계사사화인가 계사환국인가

흥미로웠다. 정상회담에서는 보통 이런 얘기들을 나누는구나.

조금 실망스러웠다. 정상회담이라고 해서 그다지 새롭고 비밀스러운 논의를 하는 것은 아니구나.

노무현 대통령, 참 집요한 사람이다. 회담에 별다른 관심도 기대도 없어보이는 김정일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해주항에 대한 합의는 전적으로 그의 끈질김이 얻어낸 성과였다.

그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NLL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김정일에게 보고를 한 건 노대통령이 아니라 김계관이더군. 이 정도 내용을 가지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고 전직 대통령을 부관참시해?

나라의 체면이니 외교적 실리니 하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국가안보와 관련된 1급 기밀 누설을 우선 반역죄로 다스려야 한다.

지금 권력을 쥔 반역자들이 국청을 열고 죽기살기로 계사사화(癸巳士禍)를 시작하려 한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응당 계사환국(癸巳換局)으로 응수해야하지 않겠는가.

 

(132) 경제학적 설명과 역사적 요소

수학자와 기계학자는 – 약간의 영국 경제학자들도 그런 말을 모방하고 있지만 – 도구는 단순한 기계이고, 기계는 복잡한 도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 그러나 경제학적 입장에서는 그러한 설명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그 설명에는 역사적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 자본론 1권 15장, 500; MEW 23, 492

어떤 설명이 경제학적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역사적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이상하게 들린다. (상품관계에 바탕을 둔) 경제학적 설명이 일반적으로 질적 차이를 사상하고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반면, 역사적 설명은 연속성보다는 질적 변화와 구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설명은 역사적 요소를 포함해야 하기는 커녕 오히려 배척해야 하는 것 같다.

이것은 경제를 고유한 논리를 갖는 하나의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영역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 논리는 수치화하는 논리, 효율화하는 논리, 개별성과 사익을 강조하는 논리이며, 경제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의 영역이 바로 경제다. 사회는 필연적으로 경제의 영역과 비경제의 영역으로 분할되며, 경제적 논리는 비경제적 논리와 대립하고 경쟁한다. 여기서 공세를 취하는 것은 물론 경제다. 경제영역은 비경제영역을 하나하나 복속해 나가고 (민영화, 규제완화, 자유무역협정), 경제논리로 비경제영역의 작동원리를 해명하는 방식으로 계몽을 시도하며 (인적자본론, 조폭 경제학), 그것이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한 이후에는 비경제영역을 경제논리의 산물인 것처럼 이론화하여 적군을 아군으로 만드는 (신제도주의 경제학) 정신승리의 단계에까지 나아간다.

경제의 가열찬 공세는 그 한계를 모른다. 고리타분하고 비효율적이며 현상유지에 급급한 비경제의 영역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의 경제의 투쟁은 계속된다. 이러한 세계관에 역사의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GDP로 표현되는 ‘양’의 역사 뿐이다. 기계와 도구 사이의 허다한 질적 차이는 ‘양’의 용광로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경제적 논리와 비경제적 논리가 외적으로 대립하는 대신 내적 (대립 속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우선 종적으로 경제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지배관계(즉, 비경제)의 존재양식이다. 횡적으로는 공공부문, 가정 등과 같은 비경제영역은 경제영역과 마찬가지로 이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지배관계의 원활한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서 기능한다. 그래서 경제영역의 무차별적 확장보다는 경제영역과 비경제영역 사이의 적절한 분할선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경제위기를 통해 재확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입장”에 입각한 설명에서는 역사적 요소가 빠질 수 없다. 첫째, “경제학적 입장” 그 자체의 역사성의 측면에서 그렇다. 석기시대의 도구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과 기계제 대공업 시대의 기계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설명의 틀을 제공하는 경제학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원불멸의 경제학적 입장 같은 것은 없다. 둘째, 비슷한 맥락이지만, 경제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회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매뉴팩쳐시대의 자본주의가 대표하는 사회관계와 기계를 사용하는 대공업시대의 자본주의가 대표하는 사회관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달리 표현하면 도구를 사용하는 생산에서 기계를 사용하는 생산으로의 이행은 사회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며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형식적 종속에서 실질적 종속으로의 변화), 동시에 이러한 물적 생산조건의 변화 없는 사회관계의 변화란 있을 수 없다. 경제학적 설명의 대상이 역사적 변화의 산물인 이상, 제대로된 경제학적 설명은 사회관계의 변화 – 즉 역사적 요소 – 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기계와 도구의 차이에 대한 경제학적인 설명은 보통 기계가 도구에 비해 더 높은 노동생산성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설명은 기계와 도구를 동질화하는 것에서 출발하므로 애초에 글러먹었다 – 기계는 기껏해야 고도화된 혹은 배수화된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진정한 경제학적 설명은 기계와 도구가 각각 표현하는 사회관계들의 차이, 이들 사이의 역사적 이행에 주목한다.

(131) 지식, 판단력, 의지의 상실과 지식의 저질화의 시대

야만인이 모든 전쟁기술을 개인의 책략을 발휘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작은 규모에서이기는 하나 독립적인 농민 또는 수공업자도 지식과 판단력과 의지를 발휘했다. – 자본론 1권 14장, 487; MEW 23; 382

지식, 판단력 (또는 이해력 혹은 통찰력), 의지라는 세 단어에 주목하자. 노동에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것이건, 혹은 타인의 것이건.

그러나 매뉴팩쳐에서는 그러한 능력은 다만 작업장 전체를 위해서만 요구될 뿐이다. 생산상의 정신적(geistig) 능력이 한 방면에서는 확대되면서 다른 여러 방면에서는 완전히 소멸된다. 부분노동자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에 집적된다. 부분노동자들이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을 타인의 소유물로 또 자기를 지배하는 힘으로 상대하게 되는 것은 매뉴팩쳐적 분업의 결과다 – 487-8; 382

1.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 (die geistigen Potenzen des materiellen Produktionsprozesses) – 물질적 생산과정에는 물리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능력도 필요하다.

2. 자본주의의 논리적, 역사적 발전과정은 지식, 판단력, 의지 –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 – 을 개별노동자들로부터 자본으로 이전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분리과정은, 개개의 노동자에 대해 자본가가 집단적 노동유기체의 통일성과 의지를 대표하게 되는 단순협업에서 시작된다. – 488; 382

1. 단순협업의 경우에는 ‘의지’ 정도만 자본가의 몫이다. 매뉴팩쳐에서는 ‘의지’에 더해 ‘지식’과 ‘판단력’마저 자본에 이전된다. 물론 부분노동자의 작업을 위한 ‘의지’, ‘지식’, ‘판단력’은 노동자에게 남지만.

2. 집단적 노동유기체 대신 사회적 노동유기체라고 번역해야 한다. 물론 의미상 차이는 없다. 자세한 내용은 (111) 집단적 노동, 사회적 노동, 결합노동, 공동노동, 공동체적 노동 참조.

그리고 이 분리과정은 노동자를 부분노동자로 전락시켜 불구자로 만드는 매뉴팩쳐에서 더욱 발전한다. 끝으로, 이 분리과정은 [과학을 노동과는 별개인 생산잠재력으로 만들고, 과학을 자본에 봉사하게 만드는] 대공업에서 완성된다.

1. 단순협업에서 의지를, 매뉴팩쳐에서 지식과 판단력을 자본으로 이전시켰다면, 대공업에서는 자본에 이전된 지식이 과학적 지식으로 된다. 매뉴팩쳐에서는 과학이 그래도 자본의 통제 바깥에 있었다면, 대공업에서 과학은 자본에 복속된다.

2. ‘별개인’으로 번역된 selbständige는 ‘독자적인’ 혹은 ‘자립적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기계제 대공업에서의 과학의 독자성을 더 강조하는 것이 더 좋겠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단순협업 -> 매뉴팩쳐 -> 기계제 대공업 이후의 새로운 단계를 상정할 수 있을까?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우리는 이미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징적으로 이 단계에서 노동자들은 (과학적) 지식, 판단력, 의지를 다시 자본으로 빼앗아오고 있다고 한다.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기계제 대공업의 시기까지 자본이 이윤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 판단력, 의지를 통제했었기 때문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이들이 다시 노동의 손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서는 자본에게 돌아갈 이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 이제 자본가에 남은 카드는 지적재산권뿐. 자본가는 이윤 대신 지대를 수취하는 지주로 변신하는 중이다. 더 할말 없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 논증은 올바른 대전제에서 출발해야 할뿐.

이유는 다르지만 나도 우리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단계의 특징은 (과학적) 지식의 자립화를 넘어선 지식의 상품화다. 지식은 상품이 아니므로 결코 상품이 될 수 없지만, 상품을 닮아갈 순 있다. 팔기 위해 지식을 생산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자본의 통제 하에 지식을 생산할 때, 지식은 상품화된다. 지식은 본질적으로 상품과 다르므로 지식의 상품화는 지식의 저질화다. 사람이 개를 닮아가면 사람이 저질화되고, 개가 사람을 닮아가면 개가 저질화되는 것처럼.

관심있는 분은 주류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필립 미로스키(Philip Mirowski)의 [과학마트 – 미국 과학 민영화하기(Science-Mart – Privatizing American Science)]를 참조. 미로스키에 따르면 지식경제니 창조경제니 하는 중립적인 척하는 용어들 모두 신자유주의의 소산이다. 이 책에 대한 괜찮은 리뷰 아티클은 여기 참조.

(130) 전제와 아나키의 (외적) 이중성

우리는 앞에서 작업장 안의 분업과 사회 안의 분업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일반적 전제이므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 안의 분업이 이미 일정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을 것을 필요로 한다. 또한 거꾸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적 분업에 반작용해서 그것을 발전시키며 증가시킨다. – 자본론 1권 14장, 477; MEW 23; 374. (128) 보편적 분업, 특수한 분업, 개별적 분업 참조.

마르크스는 작업장 안의 분업과 사회 안의 분업을 서로 대조하여 분석한 후, 상호연관의 수준을 넘어 이들을 아예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총체 의 두 계기로 파악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업에서의 무정부상태[heesang – 아나키]와 매뉴팩쳐적 분업에서의 독재[heesang – 전제]가 서로 다른 것의 조건으로 되고 있[다]. – 482; 377

1.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의 원문에는 ‘지배하는’이 없다. 직역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사회에서는 (in der Gesellschaft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sweise)’이지만 좀 어색하긴하다. 길판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라고 풀어서 써 놓았다.

2. Anarchismus혹은 anarchism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것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선은 무정부상태라고 하면 누구나 혼란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아나키스트들이 사회적 질서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은 필요에 따른 분배를 주장하는데, 이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회적 질서다. 여기에 더해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권력의 철폐라는 부정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합, 상호부조를 강조한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은 자유연합주의나 그냥 아나키즘을 선호한다고. 나도 무정부상태 혹은 길판의 무정부성 대신 ‘아나키’를 쓰기로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아나키는 상호부조와 호혜의 아나키가 아니라 살벌한 경쟁과 이윤추구로 대표되는 아나키다. 그래도 등가교환이라는 질서에 따른 아나키므로 무정부상태는 아님. 여담이지만 얼마전에 자서전 읽었는데 크로포트킨 정말 매력적이다.

3. ‘독재’가 아니라 ‘전제’인 이유는 (117) 자본가의 전제적 지휘 참조. 지휘 기능은 협업 일반의 산물이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지휘가 협업에 반작용하여 가능한 많은 잉여가치를 쥐어짜내는 역할을 한다. 지휘 그 자체는 전제적일 필요가 없지만, 자본주의적 지휘는 전제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4. ‘서로 다른 것의 전제가 되고 있다’의 원문은 ‘einander … bedingen’. 길판에는 ‘서로를 제약하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본주의의 아나키는 경쟁의 아나키다.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단가를 끊임없이 낮추어야한다. 심하게 얘기하면 ‘너 죽고 나 살자’의 아나키. 생산단가를 낮추려면 노동일을 늘리거나 (절대적 잉여가치), 노동생산성을 높이거나 (상대적 잉여가치), 노동강도를 높여야 한다 (절대적 잉여가치). 자본가가 노동과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의 뜻대로 생산유기체를 작동시킬 수 있을때만 가능한 방식들이다. 결국 전제적 통제 없이 아나키는 불가능하며, 아나키가 없다면 굳이 전제적 통제가 필요하지 않다.

5. 다시 한번 이중성이다.

[가치 vs. 사용가치]. [추상노동 vs. 구체노동]. [상품관계 vs. 화폐]. [노동력 vs. 인간]. [가치증식과정 vs. 노동과정]. [자본 vs. 기계].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 vs. 정치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자본가의 전제적 지휘 vs. 협업에 필요한 지휘].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관계 vs. 초역사적이고 영속적인 존재]. 그리고 [작업장에서의 전제적 통제 vs. 아나키]

전자가 본질이고, 후자가 존재양식이다. 전자는 후자를 통해 후자 속에만 존재하지만, 후자는 전자를 은폐한다. 전자는 보통 관계고, 후자는 보통 존재다. 전자를 잊고 후자에 집중하면 물신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중성은 동일한 존재의 이중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별도의 존재로 쪼개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상품이 가치이면서 사용가치라는 내적 모순은, 상품과 화폐의 외적 대립으로 지양된다. 마르크스가 말한대로, “모순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순들이 운동할 수 있는 형태를 제공”(133)하는 경우다. 전제적 통제와 아나키 사이의 외적 대립도 비슷한 경우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불평등한 계급관계에 입각한 생산이며 동시에 평등한 상품관계에 입각한 생산, 곧 계급관계의 상품형태에 입각한 생산이다. 불평등하면서 평등한, 불평등이 평등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모순적인 생산방식이다. 이 내적 모순은 전제적 통제(=불평등한 계급관계)와 아나키(평등한 상품형태)의 외적대립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모순은 운동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를 얻었다.

자본주의의 산물로서의 작업장 안의 분업, 전제적으로 통제되는 이 분업에는 자본주의의 도장이 찍혀 있다:

전체사회 안의 분업은, 상품교환에 의해 매개되든 아니든, 매우 다양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존재할 수 있지만, 매뉴팩쳐에서 수행되고 있는 바와 같은 작업장 안의 분업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혀 독특한 창조물이다. – 485; 380

이후 마르크스는 매뉴팩쳐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다룬다.

(129) 가치법칙과 내적유대의 역습

매뉴팩쳐 안에서는 비례관계의 철칙이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일정한 기능들에 종속시키지만, 매뉴팩쳐 밖의 사회에서는 우연과 자의가 작용해 사회적 노동의 각종 부문들 사이에 생산자와 그들의 생산수단이 분배되는 것은 제멋대로다 – 자본론 1권 14장, 481; MEW 23, 376

1. 매뉴팩쳐 안과 매뉴팩쳐 밖의 사회의 비교/대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촛점은 매뉴팩쳐 밖의 사회에서 사회적 분업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에 있다.

2. 우선 “우연과 자의가 작용해 … 제멋대로다”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원문에는 “treiben Zufall und Willkür ihr buntes Spiel…”, 펭귄판에는 “the play of chance and caprice results in a motley pattern”(476)이라고 되어 있다. 길판은 원문을 따라 “우연성과 자의성이 복잡하게 작용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적절한 번역이다. 비봉판과 펭귄판의 번역에는 마치 사회적 분업이 우연과 자의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 탑다운 방식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사회적 계획자가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개별생산자의 우연과 자의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우연과 자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곧바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물론 여러 가지 생산영역들이 끊임없이 균형(Gleichgewicht; equilibrium)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각각의 상품생산자는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해서 일정한 사회적 욕망[heesang – 필요]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며 (이 욕망[필요]들의 크기는 양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이 상이한 크기의 욕망들을 하나의 자연발생적 체계에 분배하는 내적 유대가 존재한다) – 481; 376-7

1. ‘물론 … 사실이다’의 원문은 zwar인데, zwar에는 ‘즉’, 혹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이라는 뜻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사용된 것 같다. 앞 문단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려는 용도로. 즉, 마르크스는 우연과 자의가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생산영역들이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비봉판, 길판, 펭귄판 모두 ‘사실은 이렇다’류의 번역을 채택했는데, 이 경우에는 두 문장 사이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2. 균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 신고전파 경제학에서와 같이 개인의 의사결정이 필연적으로 사회적 균형을 성립시킨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에서 사용한 ‘비례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그리고, 길판에는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미 균형이 성립되어 있다는 뜻이 담겨 있으므로 오역이다. 균형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균형을 성립시키려 한다는 것이 원뜻이다.

3. 상품생산자가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48) 상품의 결사적인 도약 참조.

4. 자연발생적 체계에 대해서는 (49) 사회적 필연이 개별적 우연으로 나타난다 참조. 다만, 사회적 필요의 체계가 아니라 사회적 분업의 체계를 위주로 설명하고 있다.

5. 내적유대는 예를 들면, 자동차 10,000대가 필요하면 타이어는 적어도 40,000개가 필요하다는 것.

6. ‘자연발생적 체계에 분배하는’ – 분배하다의 원문은 verketten인데 ‘연결하다’라는 의미다.  다양한 사회적 필요들을 서로 잘 연결해서 하나의 자연발생적 체계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7. 균형을 지향하는 첫번째 이유는 비봉판에서처럼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적 유대’의 존재 때문이다. 길판에는 “한편으로는 각 상품생산자가 하나의 사용가치를 생산함으로써 하나의 특수한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이 욕망의 크기는 양적으로 달라서 하나의 내적인 유대가 다양한 욕망을 하나의 자연발생적인 체계로 결합시키기 때문”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의 가치법칙은 사회가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전체 노동시간 중 얼마만큼을 각각의 상품종류의 생산에 지출할 수 있는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 481; 377

어떤 상품을 얼마나 생산할지가 개인의 입장에서는 우연과 자의의 산물처럼 보일지라도 사회전체적으로는 가치법칙의 통제 하에 있다. 사회적 필요들 사이에도 내적인 유대가 존재하듯이, 사회적 분업의 체계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생산 부문들 사이의 내적인 유대가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1868년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다..

1년이 아니라 단지 몇 주 동안이라도 생산을 중단하는 나라는 소멸하고 만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서로 다른 필요들(needs)에 대응하는 생산물이 사회적 총노동의 서로 다른 그리고 양적으로 규정된 부분을 요구한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 역시 없다. 사회적 노동이 특정한 비율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이러한 필연성을 사회적 생산의 특수한 형태를 통해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단지 이 [필연성 – heesang]이 나타나는 형태가 달라질 뿐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 (강조는 원문)

사회적 노동의 상호연관이 개별적 노동생산물의 사적 교환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에서 노동의 비례적 배분이 관철되는 형태는 바로 이들 노동생산물의 교환가치이다. (강조는 원문)

자 이제 가장 핵심적인 문장으로….

그러나 여러 가지 생산영역들이 균형으로 향하는 이 끊임없는 경향은 이 균형의 끊임없는 파괴(Aufhebung)에 대한 반작용(Reaktion)으로 작용할 뿐이다 – 481; 377

1.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균형은 개인들의 의사결정의 필연적인 종착점이다. 개인들은 효용을 극대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행동을 하지만, 그 이기적 행동은 경제를 사회전체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균형점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이기적 인간만이 진정으로 이타적 인간일 수 있다.

2. 마르크스에게 균형은 개인적 행동의 결과로서의 필연적 종착점이 아니다. 균형은 (좀더 엄밀하게는 자본주의 경제의 내적 질서, 내적 비례관계는) 개인적 행동과 무관하게 우선 존재하고 개인들의 행동을 규정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에게서 언제나 그런 것처럼, 형태는, 존재양식은,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특히 개별적 의사결정에서는 우연과 자의의 영향을 결코 배제할 수 없으며, 개별적 의사결정의 총합은 언제나 균형, 내적 질서, 내적 비례관계로부터 괴리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균형의 끊임없는 파괴”라는 표현을 썼다 (파괴의 원문이 Aufhebung이므로 ‘지양’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자신 없으므로 패스). 어쨌든  이렇게 마르크스가 균형을 신고전파 경제학의 균형과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아예 균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 균형은, 내적질서는, 내적 비례관계는 이런 괴리를 일단은 두고 보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 여기에 반응 혹은 반작용(Reaktion; reaction)한다. 가격과 가치의 괴리는 어느 순간에는 해소되어야 하고, 무질서와 우연과 자의도 어느 순간에는 사후적으로 바로잡혀야 한다. 나는 이러한 내적 유대, 가치법칙의 파괴적 관철이 경제위기에 대한 가장 추상적인 수준의 해명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한 내용은 (26) 달이 지구와 부딪히는 날이 올까 참조.

[작업장 안의 분업이 의거하고 있는] 계획되고 규제되는 사전적 체제는 사회 안의 분업에서는 [생산자들의 규제받지 않는 변덕을 통제해야 하는] 자연적인 사후적 필연성(이것은 시장가격의 변동에서 알 수 있다)으로 변한다. – 481; 377

1. 길판에는 사전적(a priori), 사후적(a posteriori)이 각각 선험적, 경험적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어색하다.

2. ‘변덕’으로 번역된 Willkür는 앞에서는 ‘자의(恣意)’로 번역되어 있다.

3. 규제되는 사전적 체제 vs. 규제받지 않는 변덕에 주목.

(128) 보편적 분업, 특수한 분업, 개별적 분업

만약 우리가 노동 그 자체만을 염두에 둔다면, 농업, 공업 등과 같은 주요부문들[heesang – 속(屬; Gattung; genus)]로의 생산의 분할을 일반적[heesang – 보편적] 분업, 그리고 이들 생산부문[heesang – 속]의 종(種; Art; species)이나 아종(亞種; Unterart; sub-species)으로의 분할을 특수한 분업, 그리고 하나의 작업장 안의 분업을 개별적 분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자본론 1권 14장, 475: MEW 23, 371

1. 일단 종 < 속 < 과 < 문 < 강 < 문 < 계에 대응하는 영어 표현은 species < genus < family < order < class < phylum < kingdom, 독어 표현은 Art < Gattung < Familie < Ordnung < Klasse < Reich.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만, 이에 맞추어 번역을 하는 것이 올바르다.

2. 보통 철학에서 보편-특수-개별의 틀을 사용하니까 일반적 분업보다는 보편적 분업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길판에도 일반적 분업으로 되어 있음.

3. 그런데 마르크스는 굳이 왜 보편적 분업, 특수한 분업, 개별적 분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보편-특수-개별은 철학에서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하나는 개념들을 계층화해서 삼단논법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가령 부천시, 경기도, 대한민국이 각각 개별, 특수, 보편에 대응하는 경우다. 부천시는 경기도의 일부이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일부이다, 고로 부천시는 대한민국의 일부이다는 삼단논법의 논증이 가능하다. 개별이 특수의 일부이고, 특수가 보편의 일부이므로 개별이 보편의 일부라는 것.

4. 다른 하나는 헤겔의 용법이다. 헤겔은 보편-특수-개별의 삼단논법을 논리학의 후반부에서 다루는데 여기서는 삼라만상의 내적연관, 일종의 세계일화(世界一花)가 전제되어 있다. 베이징에서의 나비의 날개짓이 태평양에 폭풍을 일으키고, 이때 먹구름 속에서 우는 천둥이 봄부터 울던 소쩍새와 더불어 한송이 국화꽃을 피워낸다는 식이다. 이러한 개별적 대상, 사건, 개념들 사이의 연관은 특징적으로 특수와 보편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하나하나의 개별자는 (특수자를 매개로 한) 보편자의 인스턴스이며 – 다시 말해 근원이 같으므로 개별자간 상호연관이 가능하다 – 보편자는 (플라톤의 이데아에서처럼) 개별자, 특수자와 별도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자와 개별자 내부에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보편-특수-개별 사이의 이러한 물고 물리는 연관관계 때문에 헤겔은 개별 < 특수 < 보편의 단방향 삼단논법 외에도 특수 < 개별 < 보편, 개별 < 보편 < 특수 등의 다양한 방식의 삼단논법을 다루었다. 셋 중 하나만 빠져도 모든게 무너져 내리고 만다.

5. 부천시의 경우는 다르다. 부천과 경기도 그리고 경기도와 대한민국 사이의 관계는 순전히 외적 관계이다. 부천을 없앤다고 대한민국의 존립에 문제가 될 이유는 없으며, 부천을 인천광역시에 편입시키면 안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

6. 분업의 경우는 어떨까. 시계테엽생산노동, 시계생산노동, 제조업 노동을 개별, 특수, 보편의 틀을 통해 살펴보자. 1) 제조업 노동은 시계테엽생산노동과 같은 다종다양의 구체적 유용노동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2) 시계생산노동, 마차생산노동과 같은 사회 내의 제품별/산업별 분업은 경제 내의 제품간 산업간 연관관계를 반영한다. 3) 시계테엽생산노동은 조밀하게 짜여진 사회적 분업의 체계 속에서 예를 들어 마차바퀴생산노동과도 연관되어 있다 (생산된 시계를 마차로 배송하는 경우를 상정해보라).

심지어 작업장 내 분업은 사회 안의 분업에 의해 규정될 뿐 아니라 거꾸로 사회 안의 분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수가 개별을 포함한다는 계층적 이해를 버려야 하는 까닭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다.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일반적 전제이므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 안의 분업이 이미 일정한 정도로 발전학 있을 것을 필요로 한다. 또한 거꾸로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사회적 분업에 반작용해서 그것을 발전시키며 증가시킨다. 노동도구의 분화에 따라 이 도구를 생산하는 산업들도 더욱 더 분화된다 – 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