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PPE(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 소개

IIPPE를 소개하기 전에,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마르크스”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되었다는 그 특수한 역사적 사정 때문에, 통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면 흔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순화시킨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에 비해 서유럽/북미에서 “정치경제학”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참조: Wikipedia] 이런 여러 의미들은 저마다 제각각 쓰이게 된 (지성)사적 맥락이 있겠지만, 대체로 그것들은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그 각자가 주로 직면하는 기존의 학문적 입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해당 대상에 대한 보다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을 시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이런 현대적인 맥락만 보더라도 “정치경제학”이란 말하자면 역사/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주류적 입장에 대비되는) 비판적 접근법을 통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지성사적으로 봤을 때 정치경제학이란 오늘날 우리가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옛이름이기도 하다. “경제학”이 고대 그리스부터 쓰이면서 대체로 “가계의 운영”을 가리키는 용어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가계”란 핵가족 시대인 오늘날 흔히 의미되는 것보다 대체로 훨씬 더 크고 시기/장소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범위/크기의 경제적 단위들을 일컫는데, 실은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서유럽의 범위 안에서는) 역사적으로 상당기간 동안 “가계운영으로서의 경제”란 곧 공동체 자체의 운영에 대한 것으로 유비(analogy)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가 근대초(early modern)에 이르자 이런 유비가 더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왔는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는 “공동체의 경제”를 의미하기 위해 “가계의 경제”와는 다른 용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공동체”의 운영은 이제 “가계”의 운영만 참조해가지고는 제대로 행해질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문제들을 동반하게 된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경우를 놓고 보면 그 시기는 대체로 절대주의 왕정의 확립과 일치하며, 우리가 흔히 “근대사회에서의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고 말하는 현상이 이때부터 현저하게 관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상황, 즉 기존의 “경제(학)”이라는 용어로는 더이상 “공동체” 전체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반영해서, “공동체 경제”를 일컫기 위해 “정치경제(학)”이라는 말이 새롭게 요구되었고 또 그것은 실제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보면 동시다발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누가 가장 먼저였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결국 이렇게 보면, “정치경제학”이란 다름아닌 “사회” 자체에 대한 학문, 즉 (어떤 사상가의 말을 빌면) 근대사회의 물적(재)생산관계 자체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정치경제학”이란 명백하게도 오늘날 그 적자인 “경제학”이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그 관할범위가 넓으면서도 규정적(definite)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경제학 이외의 여타 사회과학들을 너끈하게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학을 비판하고 나아가 비판적 사회과학의 전통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가 “정치경제학”을 모토로 삼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이것은 결코 “경제학”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What is IIPPE?

IIPPE는 다음과 같은 목표 아래 2006년에 설립되었습니다:

  1.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MPE)을 장려하고,
  2. 그를 통해 주류경제학을 비판함과 동시에,
  3. 그 밖의 다양한 비주류적 이론들과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교류하며,
  4. 경제학을 넘어 다른 사회과학 분과들에 두루 정치경제학을 장려할 뿐만 아니라,
  5. 진보적 정책들을 내고 진보적 운동들을 지원함으로써 실천활동과 연계를 꾀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IIPPE가 MPE를 장려한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집단이라고 보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IIPPE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MPE학자로 여기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IPPE가 MPE를 전면에 내세우는 까닭은, 실제로 비판적 사회과학의 역사를 봤을 때 MPE야말로 (물론 적지 않은 오류도 있었지만) 상당한 영향력과 지적 일관성을 가지고 주류사회과학에 대적해왔기 때문입니다. 즉 적어도 MPE는 우리에게 “대안”이라고 할만한 일관된 이론적 체계를 제공해주는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인 것입니다.

What does IIPPE do?

IIPPE의 일상적인 활동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다양한 주제의 소모임(working group)을 단위로 이뤄집니다. 현재(2010년 1월) 활동중인 소모임은 14개에 이르며, 각 소모임은 자체적으로 연구 및 토론을 할 뿐만 아니라 세미나나 소규모 컨퍼런스 등의 형태로 그 성과를 외부와 공유하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누구나 일정한 조건만 채우면 소모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IIPPE는 설립이래 매년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연례 워크숍을 열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워크숍은 터키 Ankara에서 2009년 9월에 열렸습니다(2007년엔 그리스 Crete에서, 2008년엔 이탈리아 Procida에서). 그러나 앞으로는 좀 더 규모와 완성도를 높여 컨퍼런스도 열 것입니다. 첫 번째 국제 컨퍼런스는 올해(2010년) 9월 그리스 Crete에서 열립니다.

그 밖에 IIPPE는 현재 몇몇 학술저널로부터 특별호 요청은 물론 새 저널 창간이나 book series 제안도 받고 있으며, book series의 첫 번째 권이 Pluto 출판사로부터 2010년 1월에 나왔습니다. [링크]

Why now, why political economy, and why IIPPE?

경제학 내부에서 비주류는 완전히 씨가 마르고 있지만 여타 사회과학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합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경제학에 의해 식민화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지적 관심이 떠나고 있는 것에 발맞춰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배경 위에서 우리는, 맨앞에서 간단히 설명한 바의 그 “정치경제학”을, 특유의 편협함으로 사회과학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는 경제학을 비판하고 진정한 “사회에 대한 과학”으로서 사회과학 전체를 재구성할 때 내세웁니다. 이와 같은 지적 배경에서 IIPPE와 같은 기획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으며, 특히 이제 막 새로 생긴 연구집단인 IIPPE엔 국내 진보적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무한하고 이를 통해 사고와 연구 및 교류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More information on IIPPE?

IIPPE에 대한 모든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밖에 IIPPE와 관련된 한글로 된 소개로는 다음 글들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1. 김공회, 〈마르크스 연구의 새로운 장, 그리고 비판적 사회과학의 재구성: 2007년 《역사유물론》 연례 학술대회 보고〉,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제3호, 2008년, 228‐52쪽. [링크]
  2. Ben Fine, 〈지구화와 발전 개념의 비판적 검토: 정치경제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경제평론》 제26호, 2006년, 391‐427쪽.
  3. [추가: 2012년1월] 기타 이 블로그에서 ‘iippe’ 태그가 붙은 글들.

(1)에서는 IIPPE의 설립배경과 취지 등이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어 있고, (2)는 IIPPE를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의 출현을 필연적으로 만든 지적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타 IIPPE에 관한 모든 문의는 이메일(iippe골뱅이soas.ac.uk)을 통해 하실 수 있으며, 저를 통해 한국말로도 소통이 가능합니다(ghgimm골뱅이gmail.com).

관심 있으신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주세요.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특히 한국적인 맥락을 고려했을 때 IIPPE는 경제학 이외의 사회과학 전공자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Print Friendly, PDF & Email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