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students of Marx…

콧노래로 Judas Priest의 ‘Dreamer Deceiver’를 부르고 있으려니, 옆에서 선배가 뭐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글쎄… 특별히 좋은 일은 없다. 솔직히 ‘Dreamer Deceiver’가 즐거운 노래는 아니지 않나! 말이 나왔으니, 노래를 들으며 글을 읽으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좋은 일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최근에 올해 ‘worst ten’에 꼽힐 만한 나쁜 일이 하나 있긴 했다. 바로 강신준 교수의 글을 읽은 것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블로그에 강신준 교수의 {자본} 번역본 출판에 즈음해서 포스팅을 몇 개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작년 말에 그것들을 정리하고 다듬어 새로 글을 하나 써서 {마르크스주의 연구}라는 학술저널에 발표를 했다(링크). 당연히(?) 강교수는 위 저널 다음호에 내 글에 대한 ‘답변’을 냈다. 그것이 나온 게 3월이고, 그런 글의 존재에 대해 들은 것은 그 전이었다. 나는 그 글을 (얼마간은 ‘일부러’) 읽지 않다가 어제 기어이 읽고 말았다.

애초부터 나는 그의 답변이 있어도 ‘재답변’을 쓰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글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길 다 했고 또 내가 거기서 제기한 문제들은 별다르게 논쟁의 여지조차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첫째, 만약 강교수가 이런 문제제기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내가 굳이 ‘재답변’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둘째, 그가 내 글에 대해 ‘반론’ 성격의 답변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분명 꼴사나운 자기변명이거나 나의 문제제기에 대한 부당한 폄훼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경우에도 나는 ‘재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선배인 그를 조금 ‘덜 가련하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반응이 나와도, 또는 반응이 나오지 않더라도, 나는 그냥 잠자코 있으려 했단 얘기다.

그런데 막상 그의 글을 읽어보니,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통상적인 ‘견해의 차이’라기보다는 내가 제기한 문제들을 둘러싼 배경에 대한 ‘무지’ 그리고 그에 바탕을 둔 내 문제에 대한 ‘오해’로 덕지덕지 얼룩진 그 글에 반응을 하자니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한편으론 들고, 다른 한편으론 종전과 마찬가지로 반응을 하지 않고 있자니 이미 그의 글을 읽은 이상 잠자코 있는 것조차 일종의 반응일 수밖에 없어, 결국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반응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진퇴양난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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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글이 정작 내 ‘성질’을 긁은 것은 그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거기에서 빤히 보이는 그의 ‘태도’다. 간단히 말하면, ‘교내 학술비’ 지원을 받아서 썼다고 그 스스로 밝혔을 뿐 아니라 ‘고급’ 마르크스주의 전문 학술지를 자처하는 저널에 출판된 그의 매우 ‘학술적인’ 논문에서 그는 나를 자신과 동등한 논쟁의 상대로 대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이 한 수 가르쳐줘야 할 손아랫사람 쯤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분나쁨’을 넘어서 ‘서글픔’을 나로 하여금 갖게 만든다. 생각을 거듭해 본 결과, 그 서글픔의 근원은 아마도 우리 학계의 척박함이 아닐까 한다. 얼마나 척박하면, 선배 학자가 후배 학자의 문제제기를 그런 식으로 깔아뭉갠단 말인가. (물론 이건 그가 그랬다는 것이고, 미안하게도 나는 전혀 깔아뭉개졌다고 느끼진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가 나를 동등한 상대로 인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나를 한번도 후배 또는 후학으로 대한 적이 없는데도 나를 자기 편의대로 그렇게 취급했다는 게 서글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고… 뭐, 이런 얘기를 이 자리에서 길게 할 까닭은 없다. 필요하다면 공식적으로 강신준 교수에게 대응을 하면 되는 것이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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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이 자리에 걸맞은 방식으로 못 풀어낼 것도 없다. 적어도, 위에서 ‘척박함’이라고 내가 불렀던 상황이 앞으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이를테면, 최근 슈리님의 논쟁적인 글로부터 비롯되었던 일련의 사태(?)와 관련지어 풀어낼 수도 있겠다. 많은 이들이 슈리님의 글 ‘좌파는 성매매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글에 불만을 표해냈고(이 글은 지금은 슈리님의 블로그에선 공개되지 않고 있어서 링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불만의 내용은 그것을 갖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실로 다양했다. 어떤 이는 그가 ‘성매매’를 바라보는 방식에 경악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그가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신의 논의에 활용하는 방식이 싫었을 수도 있으며, 어떤 이는 그의 ‘윤리학’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다. 나 자신도 일정한 한계 안에서 입장을 내놓았다(링크).

나로서는 애초 글을 쓸 때 상당히 복잡한 심경이었는데, 그러니까 거기엔 일종의 ‘의무감'(?)—물론 내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유일하거나 대표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슈리님도 내 글에 대한 덧글에서 언급한대로, 나같은 사람 중 누구라도 반응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작용했지만 사실은 걱정이 가장 앞섰다. 까닭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슈리님을, 어쩌면 그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정도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경우에서와 같이 서로 안면도 없는 거의 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비난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불필요하게 커다란 ‘데미지’를 입힌다. (그렇다고 나는, 그런 비난들이 사려깊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비난에 슈리님이 충분히 건강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거다. 아래를 더 보라.)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는, 아무리 그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잘못에 대한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무너질 때, 당사자가 의지할 것은 오로지 ‘자신의 진심’뿐이다. 여기서 ‘진심’이란 말 그대로 어떤 마음가짐일 수도 있고 상황적인 맥락일 수도 있다. “니 말은 알겠는데, 사실 나에겐 이런 ‘진심’이 있고, 니가 그런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한 너의 비판은 틀려먹은 거다”라는 거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치닫는 한, 이제 더 이상 원래 글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것이 된다. 둘 다 틀렸고, 둘 다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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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처음에 내가 진보넷의 한 불로그로부터 슈리님의 글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접했을 때 가질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심경이란 바로 위와 같은 사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와서는 좀 더 분명해졌듯이, 나의 걱정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내 ‘능력’을 의심하면서도) 내가 가진 한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슈리님이 어느 정도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비판적 코멘트를 하고 싶었고, 그것을 통해 가급적이면 논쟁을 논쟁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더구나 나는—일종의 선배(아주 literal한 의미에서)로서—그들의 마르크스, 나아가 정치경제학적인 관심을 좀 더 북돋아주고 싶었고, 또 그런 관심이 비극적인 방식으로 사그러지도록 두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아주 단기적으로 보면 내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슈리님은 이곳까지 오셔서 의미있는 덧글을 달아주셨으니까(링크). 그리고 고맙게도 몇몇 블로거들이 나와는 저마다 다른 측면에서 좋은 코멘트들을 해줬던 것 같다(아, 물론 내가 상황을 이렇게 이끌었단 얘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와 동시에 기존의 날 선 비난들도 더욱 크게 증식되었고, 결국 사태는 슈리님이 ‘문제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서 내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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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위의 ‘사태’가 어느 정도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 같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그런지 관련 논의들이 적어도 내 시야엔 거의 들어오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 일은 나에게 이렇게 그저 스쳐지나갈 ‘해프닝’이라기보단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특히 앞서 말했던 ‘척박함’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 대목에서 (준-)익명성에 기댄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이지메 같은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유명 포탈사이트 등에서 연예인 등을 대상으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떠올리면, 이번 것은 ‘이지메’ 축에도 못 낀다. 그리고 이번 논쟁/논란의 와중에 나왔던 수많은 코멘트들이 그런 포탈사이트에 올라오는 수백, 수천 개의 덧글과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진짜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애초 슈리님은 그렇게도 헛점 많은 글을 어찌 그리도 의기양양하게 공개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의기양양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도 슈리님은 저리도 약하게 무너져내렸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을 깊이 음미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슈리님을 포함하는 이른바 ‘잉여’들, 즉 자신들을 둘러싼 ‘세태’를 거스르며 ‘잉문학’ 또는 ‘사회과악’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탐하는 이들을 둘러싼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할 때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첫 번째 질문은 쉽다. 슈리님을 포함한 ‘그들’은 자신들을 가르쳐줄 ‘선배’ 또는 ‘선생’이 곁에 없다는 거다. 좀 주제넘게 말하면 이렇다. 만약 슈리님이 그 문제의 글을 공개하기 전에 나한테라도 보여줬더라면 나는 대번에 ‘이봐, 너, 그거 절대 공개하지 마. 우리 좀 더 이야기해보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글이 적어도 현재와 같은 형태로 공개되도록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슈리님을 모르고, 슈리님은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나같은’ 사람을 하나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그저 동년배보다는 좀 더 똑똑해 보이는—그 스스로도 그렇겠지만—자기 동료들이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뿐이었을 거다(이런 과정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변이다.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친밀한 선배의 지도가 없다는 것이 그들을 약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슈리님 등에겐 자신들을 지도해줄 선배가 ‘곁에’ 없다 뿐이지, 적어도 그들은 이제껏 한국사회의 그 어떤 세대보다도 이를테면 가장 많은 책을 가지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마르크스만 해도, 그들은 이전 다른 어떤 세대와도 다르게 {Das Kapital}의 꽤 괜찮은 한글 번역본을 두 종이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들은 그 수많은 책들을 선생으로 삼아 자신을 벼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며, 만약 그런 ‘훈련’을 충분히 거쳤다면 이번 슈리님의 경우처럼 저리도 쉽게 무너져내리진 않았을 것이란 소리다.

그러니 적어도 그들은 이런 책들, 비록 말은 없지만 예의 그 ‘선배’들이 줄 수 있었을 모든 지식과 사려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말없는 스승’을 차분하게 연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아니, 그들 중 ‘뛰어난’ 몇몇은—좀 더 쉬운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약간의 책을 섭렵한 뒤 스스로 ‘선생’이 되는 길이다. 다시 말해 ‘선생’이 없다는 객관적인 한계를, 그들은 선생을 부정함으로써, 나아가 스스로 선생이 됨으로써 극복하고 있다는 거다. 이는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최근들어 특히 ‘젊은 논객’이 급증하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젊은 논객’이 많아지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쁠 건 없고 그들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같이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는 그런 현상이 ‘건전한’ 바람(breeze)이기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잉문학’이나 ‘사회과악’에서만 한정지어 본다면, (이건 좀 조심스런 얘긴데) 그들이 내놓는 논의들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 얘길 길게 하고 싶진 않은데,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난 심지어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밝혀둔다. 나는 그가 20대 초중반에 써갈겨놓은 노트들이—거기에서 드러나는 마르크스가 놀랍도록 명민한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크게 의미는 없다고 보는 편이다. 이건, 당시의 좀 더 성숙한 논자들—하다 못해 맨날 마르크스가 욕하는 Bruno Bauer 같은—이랑 마르크스를 비교해 보면 꽤 분명해진다. (내가 비록 여기서 마르크스 얘길 했지만, 5살도 안 되는 애가 성인이 하는 거랑 별 차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19세기의 20대와 엄마 치맛자락에서 갖 나온 오늘날 한국의 20대를 비교하는 것은 좀 웃기기도 하다.)

이렇게 얘기를 풀어갈 수 있겠다. ‘젊은 논객’ 또는 그에 준하는 오늘날의 똑똑한 20대들은, 그들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리고 그들이 인식하든 말든 그들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지적 성과들을 놓고 보면, 결국 남이 한 얘길 원래보다 훨씬 저열한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것이거나 한 십년쯤 시간이 흐른 뒤에 스스로 후회하고 부정할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어쩌면 ‘과분하게’ 허용된 발언권—책, 신문, 잡지, 블로그 등—을 이용해 행하는 발언들은, 결국에 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장난이거나 기껏해야 그들 자신이 성장해 나가는 과도적 계기들—그리하여 끝내는 부정/지양될—을 이룰 뿐임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이건 ‘매우’ 일반적인 얘기다.

어쨌든 ‘선생’을 부정한다고 해서 실제로 (비록 ‘곁에’는 없지만) 존재하는 선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선생을 부정하고 선생에게 검증받지 못한 ‘막글’을 내놓았을 때, 선생은 어디에 숨어있다가든 끝내 나타나고 만다. 이번 경우엔 다양한 덧글들과 블로그 포스트들과 같은, 말하자면 ‘집단 지성’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래서 내가 결론적으로 하고픈 얘기는—그러나 이건 슈리님을 특정해서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현재 자신들을 둘러싼 조건 때문에 좀 힘들더라도 적절한 선생/선배를 찾아 그로부터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내가 슈리님의 글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단순히 그가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을 제대로 이해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얘길 한 적이 거의 없다’, ‘이런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가 이 문제를 오해하고 있다’ 등등과 같은 표현을 너무도 쉽게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입밖에 낼 수 있는가! 그런 진술들이 만약 뭔가를 증명해 준다면, 그것은 오직 글쓴이의 무지와 옹졸함일 뿐이다.

*                 *                 *

이제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면 기나긴 방학이다. 혼자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선생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게 책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으며,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적어도 ‘학문’의 영역에서는) 누가 뭐래도 오늘날 한국과 같은 조건에서 20대는 배우는 기간이지, 남을 가르치거나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엔 이른 시기다. 수명도 연장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ㅎㅎ

마침 슈리님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흥미를 보이셨고 또 나 자신이 거기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간단히 덧붙이자면(그러니까 이건, 슈리님을 포함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얘기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정치경제학에 대해 얘길 하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 또는 {자본}만 읽고서는 부족하다. 나름의 한계가 있지만, 이를테면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나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정도는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윤소영 교수의 책은 그다지 좋은 입문서는 아니라 생각한다. 하여간 이런 것도 모르고 {자본론} 제1권 제1장만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모두 이해하겠다고 설치는 것은 누가 봐도 민망한 꼴이다.

책도 좋지만,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내 경우엔 얼마전부터 몇몇 친구들과 ‘젊은 연구자 모임’을 하고 있는데, 월례발표회도 열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내게 연락하면 일단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많은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성 ‘학회’는 또 어떤가? 이를테면, 요새는 마르크스 공부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때) 난다긴다 하는(했던) 정치경제학 논객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 ‘한국사회경제학회’다. 이번 여름학회가 진주에서 열리는데, 거기에 참석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물론 논의되는 주제들에 기본적인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엔 ‘연구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맨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그러니까 나는, 앞에서 말한 현실의 ‘척박함’을, 그리고 나의 ‘서글픔’을 어떤 식으로든 재생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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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thoughts on “For the students of Marx…

    1. 지나친 겸손이세요. 누구보다도 피리님께서 잘 이해하시겠지만, 저는 “모르면 입 다물고 있어라”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남을 존중하고 그로부터 배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1. 잘 읽었습니다.
    세상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요. 제가 게을러서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는 점이 부끄럽습니다.

    1. 아… 무슨 말씀인가 했는데… 이제야 이해했네요. 네… {자본의 두 얼굴}을 제가 다 읽지는 않아서…

      본문에서 제가 특별히 두 권을 언급한 건… 그 두 권이 ‘가장 좋은’ 것이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보시다시피.. 두 책은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고, 굳이 {Das Kapital}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보단,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발달시킨다는 차원에서 봤을 때, 국내에 나온 책들 중에선 ‘기본’에 속한다고 저는 판단한 거죠.

      이렇게 보면 {자본의 두 얼굴}은 조금 다른 계열에 속한다고 여겨집니다.

  2. 위에 덧글 달아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술한잔 하고서 집에 들어와 보니, 어떤 사람들은 제가, 저 자신이 위의 그 ‘선생’을 자처하고 있다고 수근대는군요. 허…. 기가 막힙니다. ㅎㅎㅎ 다시 말씀이지만, 저는 그럴만한 주제가 못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저는 남한테 선생노릇하는 것보단 강교수한테 제가 그랬듯 ‘아랫사람’으로 머물면서 ‘윗사람’ 까는 게 더 재밌습니다 ㅎㅎㅎ

    네, 어쨌든, 기가 막히지만, 저는, 제가 무슨 얘길 하고자 하는지를, 위 글에서 제가 구체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절실한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냥 i don’t care! 입니다. :)

    제가 이 글을 “For the students of Marx”라고 했는데, 저는 적어도, 그리고 아직까진, 마르크스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똑같이 “학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1. 오… 좋습니다. 이참에 (요 아래 apunk님도 계시고 하니까) 다함께 한번 모여보는 것도 좋겠어요 :)

  3. 저 역시 ‘학생’ 주제에 글파먹고 사는 처지인데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곧 석사 논문 마치면 ‘지속 가능한’ 세미나를 만들어보려는데 언제 자본 읽기 모임을 주선하게 되면 옵서버 부탁 드릴게요~ ^^

    1. Jimi는 저에게도 무척 의미있는 분입니다. 모두 부족하지만 함께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실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초대 고마워요 :)

  4. 의미심장한 글이네요.

    저는 사회과학과는 전공이 판이하게 다른, 과학의 꽃(?) 생물학 전공 중인데 제가 있는 곳이 다양함을 접할 수 있는 서울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세간에서는 인문학(특히 좌파라고 낙인 찍인 학문은 더욱 더) 의 불모지라 불리우는 곳이라서 여러모로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많던 찰나, EM님 글을 읽으니 제 마음이 더 찡해지는군요 ㅠㅜ.

    1. 앞에서는 {자본론} 발췌하면서 공부하신다고 하셨던것 같은데.. 생물학을 전공하시는군요. 와.. 대단하세요! 계신 곳이 지방이나 외국이신가봐요.. 저는 서울에 있는데, 언제 이쪽에 오시면 연락이라도;;

      아참, 본문에서 제가 ‘모임’ 이야기를 했는데, 저희 모임에 있는 친구 하나가 얼마전에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 대해 세미나를 하나 진행한 적이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그와 같은 자리에서 함께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

  5. 잘 지내시죠.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께 배우며 나름 공부하던 작년이 그립네요.
    전 요즘 통 공부를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언제 또 함께 LP 들으면 좋겠습니다.

    1. 와! 반가워요 :)
      잘 지내시죠?? 우리가 처음 만난지도 이제 일년이 다 되어가네요. 세월 참 빠릅니다. 공부를 못 하신다는 건.. 바쁘시다는 뜻? 네.. 음악 같이 들으면 좋겠어요! 요 위에 쥬다스 노래 걸어뒀는데.. 그걸 지난번처럼 홍대 그곳에서 맥주 한잔 걸치며 들으면 정말 죽여줄텐데요… 으아아…

  6. Pingback: Shelter
  7. 척박함과 서글픔. 가슴 찡하네요.

    저는 스물세살 때 자본론 1권 1장을 처음 읽었는데, 다 이해한 줄 알았습니다. 십년 새 생각이 많이, 지속적으로 바뀌었는데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바뀔까요?) 그때 내뱉었던 말을 생각하면 아찔할 때가 많아요. 글로 안 남겨서 다행이지.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서 이백살까지 살면서 공부하고 싶어요.

    1. 앞으로 바뀔 수도 있고 안 바뀔 수도 있지요. 다만 두려운 것은… (1) 바뀌어야 하는데 안 바꾸는 것, 그리고 (2) 바뀌었으면서 안 바뀐 줄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8.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EM님의 글을 읽은 것 같습니다. 글을 읽은 후, 저도 더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1. 어제도 그렇고.. 무연님이랑 느긋하게 (글로든 실제 얼굴로든) 대면하질 못하고 있네요.. 상반기엔 종종 볼일이 있을줄 알았는데.. 아쉽습니다.

      그건 그렇고.. 겸손할 때 겸손하더라도, 적절할 때 확실하게 터뜨려주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ㅎㅎ

  9. 지난 슈리님 논쟁을 지켜보면서 저도 많이 착찹하더군요. 더 안쓰러웠던 것은 제가 슈리님과 그리 다를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EM님이 지적한대로 ‘선생’ 혹은 ‘선배’를 찾아야 할텐데 이미 나이는 먹었고 직장생활에 찌들리다보니 맘먹고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저 쉬엄쉬엄 책 읽으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뿐인데, 그조차도 쓸데없이 욕심만 많아 이것저것 탐하다보면 깊이있는 고민은 커녕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뛰어 쫓아다니기 십상이더군요.

    위의 H님 말처럼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면 ‘게으름’ 피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집니다.

    (강신준 교수가 답변을 내놨나보군요.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뭔가 정기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라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네요. 이번엔 봐야죠.)

    1. 저도 나이 먹고 하다 보니까.. “직장생활에 찌들리다보니 맘먹고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은 친구들이 주변에 생기고, 그러다 보니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저또한 깜냥이 안 되고 그렇습니다;;;

      근데 저는 스무살로 돌아가면, 게으름이나 제대로 피워보고 싶다는…;;

    1. 움;;; 네, 안 긁히게 해놓긴 했는데.. ‘저작권 보호’라기보단 ‘소심함의 발로’랄까요;;; (-_-)

  10. 어.. 비밀글이 안 되므로 살짝 조심스럽긴 하지만(으음!) 20대 논객들 보면 전 사실 좀 불편하던데…

    슈리님 글 보면서도 좀 불편하고… (뭐 그렇다고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20대 논객? 혹은 활동가들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특히 그 중에서 좌파이거나, 좌파를 주장하는 분들?) 그냥 “내가 이만큼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알리고 싶어하는 느낌이 강하달까..

    암튼 것보다 읽다가 공감도 하고 막 하다가… 맑스 정치경제학 전공이시니 입문서 목록이라도 쫙 적어주시면 누군가는 검색하다가라도 도움받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요 아하하 @_@ (저도 도움 받을테고?!)

    1. 안녕하세요 :)

      정확히 말씀드리면 “추천”은 아닙니다. 좋은 나쁘든 “이 정도는 보고 나서 얘기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인데… 그렇다고 그 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봐야한다는 것도 아니었고요.

      헌데 위에서 링크해주신 책 중에 나중 것은 맞지만, 앞엣것은 제가 생각했던 책이 아닙니다.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것은 이것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305453?Acode=101

      링크해주신 뒤메닐/레비 책은, 제 기준에서 보면 봐도 되고 안 봐도 되는 책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그냥 슬쩍 훑어봤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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