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ugman, depression, 4대강 그리고, 세금을 거둬!

[글을 이동시켰더니 꼴이 말이 아니게 되어, 제목을 고쳐 다시 올린다.]

Recessions are common; depressions are rare. As far as I can tell, there were only two eras in economic history that were widely described as “depressions” at the time: the years of deflation and instability that followed the Panic of 1873 and the years of mass unemployment that followed the financial crisis of 1929-31. (Paul Krugman, “The Third Depression“, The New York Times, June 27, 2010.)

[번역] Recession은 흔하지만 Depression은 드믈다. 내가 아는 한, 경제사에서 그 당대에 “depression”이라고 널리 묘사되었던 시기는 딱 둘이 있다. 1873년의 Panic에 뒤이은 디플레이션/불안정의 시기와 1929-31년의 financial crisis에 뒤이은 대량실업의 시기가 그것이다.

크루그만이 현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범지구적 경기침체에 대한 대응방침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대응방침’이란 한마디로 요약하면 ‘긴축(재정)’ 즉 ‘세금을 늘리고 정부지출을 줄인다’는 것이며, 크루그만은 이런 대응은 현재 어느정도 잦아든 위기에 다시 불을 붙일 뿐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극적이고 과감한 정부의 역할, 즉 ‘재정지출’이라는 거다.

뭐… 크루그만이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한, 큰 틀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가 자신의 그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 내놓는 근거, 특히 현재의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내놓은 위 인용구절과 같은 근거에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다.

크루그만의 주장과는 달리, “그 당대에 ‘depression’이라고 … 묘사되었던 시기”는 그가 들고 있는 두 가지 예보다 더 많다(여기 등장하는 “널리”라는 부사는, 지식인들이 자신의 진술에 대한 ‘자신감 결여’를 숨기기 위해 종종 쓰는 표현으로,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는 recession과 depression을 구별하고 있는데, 실제로 recession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대불황’(the Great Depression)이라고 부르는 시기 이후에 와서야–대체로 ‘대불황’과 같은 ‘엄청난’ 불황과 구별되는 ‘자잘한’ 불황을 일컫기 위해–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의 ‘대불황’ 이전에 ‘불황’ 즉 ‘depression’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문헌을 보면panic이나 crash, crisis와 같은 표현들이 주로 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다시, 크루그만의 주장과는 달리) 1819년 미국에서 벌어진 ‘Panic’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먼로(James Monroe)는 특이하게도 ‘depression’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례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최고 위정자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모순의 필연적인 표현인 panic/crash/crisis라는 현상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표현을 쓰는 것 자체도 꺼렸다는 것이다. 실은 바로 이것이 panic/crash/crisis 대신 depression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표현–미국의 경제통계국(NBER)도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 “널리” 쓰이게 된 중요한 배경이다. (아, 그렇다고 depression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고… 크루그만이 뭘 좀 모르고 말하고 있단 얘기다.) 다음 설명을 보라.

In the beginning stages of the Great Depression, Hoover remained in a state of denial over worsening economic conditions. Shortly following Black Tuesday, Hoover remarked that the “conditions are fundamentally sound.” Even as late as December 1930, Hoover maintained that “the fundamental strength of the economy is unimpaired.” It was not until 1931, when it became impossible to deny the economic train wreck transpiring, that Hoover began to refer to the economic situation of his own time as a “great depression.” (출처: When Did the Great Depression Receive Its Name? (And Who Named It?))

‘말’ 얘기는 이쯤에서 그치고… 다시 크루그만의 칼럼으로 돌아와보자. 칼럼을 다 읽기 어렵거나 귀찮은 분은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시면 되겠다.

- 크루그먼 “제3의 불황은 이미 시작됐다” (<프레시안>, 2010년 6월 29일)
- 폴 크루그만 “긴축정책 때문에 ’3차 불황’에 빠지고 있다” (<참세상>, 2010년 6월 29일)
(<참세상> 기사가 좀 더 충실하게 칼럼의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한 군데 오역이 있고, <프레시안> 기사는 좀 더 간결하고 정확하지만 몇 가지–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대목–빠진 내용이 있다.)

현재의 세계적 추세(긴축재정)와 이에 반대해 크루그만이 내놓는 처방(팽창재정)의 차이는 곧 문제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전자가 “재정건전성 회복”을 제1의 문제로 꼽고 있다면 전자는 “경제 전체의 활력 회복”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어쩌면 크루그만의 처방 쪽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위와 같은 사업들은 (그 적절성에 대한 문제는 별도로 하고) 대체로 민간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크루그만도 위 칼럼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이런 대규모 사업의 직접적인 목표는 바로 “실업 해소”에 있다. 바로 실업자들을 대규모로 고용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고용->소비->산출증대->투자…와 같은 선순환virtuous cycle의 회복). 이런 시각에서 보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세종시 수정안의 경우엔 국회표결에서 기각되었으므로 한동안 더 질질 끌리겠지만–대규모 사업들은, 그런 사업들이 당연히 목표로 해야 할 사항들과 별로 관계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라.

- 낙동강 달성보 일부 공사중단 (<한겨레> 2010년 6월 27일)
- 4대강 상용직 고작 130개 (<한겨레> 2010년 6월 29일)

위 기사들이 지적하고 있는 현재 사태의 면면들을 보면, 4대강 사업이란 (환경에 대한 영향 같은 것은 관두고라도) 그것이 애초부터 겨냥하고 또 자랑해 왔던 “경제적 효과”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세계적 추세’ vs ‘크루그만 처방’>의 문제로 돌아가면… 비록 우리나라가 4대강 사업과 같은 것들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크루그만이 제안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론과 거리가 있음은 이미 지적한 바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는 데는, 우리나라 정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편으로는 크루그만이 말하는 것과 같은 정부의 과감한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긴축’, ‘작은 정부’, ‘건전한 정부’를 추구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침체해 있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뭔가 일을 벌이긴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정부 돈으로 할 수는 없고… 정부는 그런 사업에 돈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상황이고… 뭐 이런 거다.

미국이나 영국, 또는 현재의 그리스와 같이, 이번참에 크게 한방 얻어맞은 나라들은, 어쩌면, ‘긴축’과 ‘팽창’ 사이에서 (큰 틀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실제로 이를테면 영국의 경우엔,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듯이, ‘긴축’ 쪽으로 완전히 기조를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쓴맛을 덜봐서 그런지, ‘세계적 추세’대로 긴축재정을 펼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크루그만 처방’대로 정부의 과감한 역할론도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방향을 뛰어 도망가고 있는 ‘두 마리 토끼’(경기부활+재정건전성 강화)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속셈인데… 위 기사들에서 보듯이, 이미 그런 전략–아니, 그런 ‘방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정부가 택하고 있는 ‘방식’의 ‘구태의연함’이 문제일 거다–은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재정 건전성 문제는,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지는 않지만, 이는 경제 전체의 다양한 측면에서의 취약성과 더불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크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긴축’을 택하든 ‘팽창’을 택하든, 또는 ‘세계적 추세’를 따르든 ‘크루그만 처방’에 모험을 걸든, 어떤 경우에도 공통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바로 ‘증세’다. 우리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그에 따라) 경기는 침체해 있고, (그나마 믿고 있던) 부동산도 안 되고, 중앙 및 지방의 정부재정은 날이 갈수록 취약해지는데… 이 거지 같은 정부는, 세금을 더 걷을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어렵게 볼 것 없다.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이란 말이다… 이 씨방새들아…

- 전세계 ‘부자 증세’ 기조 속 한국만 ‘부자 감세’ 고집하면… (<경향신문>, 2010년 6월 29일)
- 외국선 부자 증세, 한국은 감세 (<경향신문>, 2010년 6월 29일)

♨♨♨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여라”… 좋은 말이다. 이 좋은 말이 노래에 들어가 있으면 더 좋다. 그런 노래가 있다. Ten Years After의 “I’d Love to Change the World”다. 영화 <중앙역>에 삽입되어 한동안 때늦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글을 쓰고 보니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 붙여둔다. “Tax the rich / Feed the poor / Till there are no rich, no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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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sponses to Krugman, depression, 4대강 그리고, 세금을 거둬!

  1. re says:

    제목보고…우울증 얘기인줄 알았다는..ㅠ.ㅠ 크루그만이 왠 우울증? ㅋㅋ

    • EM옘 says:

      크루그만이 우울증 걸릴 일이 뭐 있겠습니까. 별로 한 것도 없이 노벨상까지 받았는데요.. (-_-) 그나저나 저 위에 “다음 view”는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 (괜히 함 눌러봤다가 이게 뭐람..;;)

  2. NeoPool says: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이란 말이다… 이 씨방새들아… <- 이 대목에서 대략 뿜었습니다. 그랬던 것이군요, 일부러 panic/crash/crisis 같은 표현들을 배제해 왔던 것이군요!

    • EM옘 says:

      ㅎㅎ 하지만… 그런 의도적인 배제가 대체로 (panic/crash/crisis 등이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영국이 아닌) 미국 쪽에서 행해졌다는 것도 주목해둘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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