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를 만드는 사람 (tool builder)

스티브 잡스와 오세훈, 중요한 직책을 하루 이틀 간격으로 사임한 이 두 사람은 서로 참 다른 것 같다. 스티브 잡스의 편지는 간결하지만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고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이 편지는 애플의 단촐한 상품라인, 그리고 깔끔하고 깨끗한 디자인을 닮았다 (simple is more!). 오세훈은 이임사(서울시청 홈페이지에는 없다 –;)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시민들에게 감사했다는 것인지, 선거가 무효가 되어 억울하다는 것인지, 포퓰리즘 때문에 나라가 걱정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 1년간 … 고통스러운 싸움’을 싸워왔다고 호소하는 그가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종국에는 구질구질하고 찌질하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의 이임사는 음…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를 닮았다.

약간 엇나갔다. 스티브 잡스와 오세훈을 비교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니까.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화려한 언변으로 말의 성을 쌓는 사람보다는 그냥 뚝딱뚝딱 무엇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좋다. 이론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든 실천이든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의 성을 쌓는 사람들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개념들을 만들어내지도 못할 뿐더러 오히려 현실에 악영향만을 끼친다 – 가령 ‘지식경제’부에서 ‘한국형 스마트폰 OS’을 띄우기 시작했다.

요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그것이 무엇이든 ‘생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의 성을 쌓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않아야 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말만 하는 사람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1994년 롤링스톤 인터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아래는 발췌 번역. 밑줄은 추가.

요새는 신문에 항상 인터넷이나 정보고속도로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되가는 것 같으세요?

인터넷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지난 10년 동안 계속 되어 왔구요. 그리고 결국 인터넷 물결이 이제 일반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도달했죠. 그리고 저는 인터넷을 좋아합니다. 골방이 거실보다 훨씬 재미있는 장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정보고속도로라는 것은 결국 인터넷을 일반 가정집에 까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무슨 셋탑박스 속의 디지털 컨버전스가 아니구요. 디지털 컨버전스는 영화 빌리러 가는 시간을 줄여주고, 비디오 대여점 사업을 소멸시키는게 전부입니다. 별로 흥미롭지 않죠. 저는 홈쇼핑에도 별 관심 없습니다. 그런데 제 골방에 인터넷이 연결된다는 것은 참 기대됩니다.

통신회사, 케이블 TV 회사, 할리우드가 여기에 모두 뛰어들고 있는데요.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니까 5년 정도 후에요?

통신회사랑 케이블 TV 회사에 있는 분들하고 대화를 나눠 봤는데요. 음. 제 말을 믿으세요.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여기서 뭘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릅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떠드는 사람들이 제일 몰라요. … 이름을 대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일반적으로, 이게[디지털 컨버전스]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 누구도 컴퓨터 공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셋탑박스 속에 작은 컴퓨터가 들어가야 한다는 걸 몰라요. 그리고 이 컴퓨터를 작동시키려면 아주 잘 만든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는 것두요.

인터넷에 대해서 좀더 얘기해보죠. 매달 인터넷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합니다. 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웹이 미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그런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도 많고 별 허잡스러운 (this kind of garbage) 논의도 많죠.

저는 당신 생각이 궁금한데요.

저는 세상에 대해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 (tool builder)이에요. 저는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 가치있다는 확신이 드는 정말 좋은 도구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생길까 … 무슨 일이 생길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어요, 다만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오겠죠.. 그리고 그게 아마도 가능한 최상일 겁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뒤로 물러서고 나면 이 도구들은 스스로의 삶을 갖게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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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thoughts on “도구를 만드는 사람 (tool builder)

  1. 저는 오히려 마지막 문단의 밑줄 쳐지지 않은 부분에 더 눈길이 가는걸요? ‘가치 있다고 확신이 드는 정말 좋은 도구’라고 할 때 이미 그 필요와 쓰임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 역시 모종의 판단을 전제할 수 밖에 없지는 않은지. 말의 성을 쌓는 것 보다 무언가 생산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100% 공감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 내느냐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1. 지적하신 밑줄 다음에 있는 말에 대해.. 개인적으로 저는, 그 얘기가 적어도 Jobs에겐 맞다고, 그래서 그로선 매우 솔직한 고백이라고 봅니다..

    2. 넵. 물론 그렇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느냐가 관건이지요. 예측이나 판단 없이 어떤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구요. 자본주의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때때로 새로운 사회적 필요 역시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건 단순히 인사이트 정도로는 안되고, 사람들의 생각까지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http://www.allaboutstevejobs.com/sources/interviews/2003_Rolling_Stone.pdf). iTunes Store에서 디지털 음악을 판매하는 것이 지금의 시각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 디지털 음악의 비중이 대략 전체시장의 20% 정도를 차지합니다), 당시에는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잖아요. 잡스는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메이저 레이블 회사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말의 성’을 쌓는 사람들은 변화를 결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변화가 일어난 다음에 이걸 자기들의 방식대로 해석할 뿐이지요.

  2. 안녕하세요 EM님^^ 인터뷰 내용 중 “그리고 나서 이제 뒤로 물러서고 나면 이 도구들은 스스로의 삶을 갖게되는 것이죠.” 이 부분이 참으로 인상 깊네요.ㅎㅎ

    1. 역시 밑줄 다음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
      잘 지내시죠? (근데 위 본문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인인 어떤 교수는, 저와 H님을 종종 구분을 못하곤 하는데.. 별로 닮지도 않았는데 말이죠ㅋ 내막은 다르겠지만 이제 아킬레우스님까지..ㅎㅎ )

    2. 그 그리스 교수가 얼마전에 만났을 때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우하하하. 나는 네가 EM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우하하하’

      EM님은 오히려 강동원과 비슷한데 말이죠. 2004년에 처음 만났는데, 약속장소로 강동원이 걸어오더라구요.

      1. 그렇담.. 2004년의 그 만남은 이를테면 강동원과 정우성의 만남에 버금갔던.. 그런 것이었던 것이었군요! ㅎㅎㅎ

      2. 아, 그리고.. 2005년인가부터 사람들이 가끔 저한테 강동원, 강동원 하는데.. 사실 저는 그가 누군지 잘 모릅니다. 뭐 긍정도 부정도 못 하겠네요 ㅋㅋㅋㅋ

    3. 앗 그렇군요. H님 안녕하세요. 글 잘 읽있었습니다ㅎㅎ 이전에도 H님이 써주신 글들을 여기에서 많이 보았는데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아 그리고 덧붙여 EM님께 말씀드리자면 EM님이 추천해주신 책인 Andrew Gable의 책도 방학 때 조금조금씩 읽다보니 드디어 다 읽게 되었습니다. 정리가 참 잘 된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씩 그때 말씀해주신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구요. 사회학 수업에 이번에 왠일로 자본론 수업이 있어서 다시 그때 했던 것을 되새기면서 자본론도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오.. 그 책을 다 읽으셨군요! 그래도 영어로 된 책인데.. 대단하십니다. 내친김에 번역을 한번 해보시는 건..? ㅎㅎ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서 번역을 한다면 좀 뜬금없을 테지만… 그 책에 필적할 만한 책이 국내에 나온 것 중에 있나요? 기든스의 교과서는 내용이 좀 잡다하기도 하고, 갬블 책은 그보단 더 고전적인 접근인 것 같은데.. 하지만 저는 그게 그래서 더 좋더군요.)

        저는 이번에 서울 북부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심심하실 때 연락함 주세요. 밥이라도.. :) 새학기,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3. 제가 이제껏 본 Em님에 대한 쵝오어브쵝오 찬사인것 같네요. 헉, 강동원이라니 ㅠㅠ 나의 전우치는 어쩌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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