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 경제학, ‘제국적’ 학문?

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에 글을 하나 썼다. 제목은 위와 같다. “시대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기획에서 한꼭지를 차지하는 글이다.

할당된 분량에 맞게 글을 쓰는 것도 기술인데… 아직 그런 데까진 멀었나보다. 줄이느라 혼났다. 덕분에 좀 설명이 조금 불충분한 곳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사람 이름 같은 것은 가급적 원어표현을 함께 써두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중간중간에 소제목도 넣었지만 결국 뺄 수밖에 없었다. 고육지책. 절대로 이것은 {대학원신문}의 잘못이 아니다. 다 내가 모자란 때문이다.

출판본은 맨앞에 링크를 해두기도 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이곳에 초고와 출판본을 참조해 글을 좀 더 가다듬어 올려둔다. 사실은 제목도 “경제학의 ‘원리’엔 ‘경제학’이 없다”였는데, 위와 같이 바뀌었다. 뭐 크게 상관은 없다. 어차피 저것도 나 스스로 고려했던 것이기도 하고.

경제학의 ‘원리’엔 ‘경제학’이 없다

하버드 경제학자 맨큐(N.G. Mankiw)의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잘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로, 1997년 이래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정을 거치며 경제학 교육의 표준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저자가 제목에 ‘원리’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리카도(D. Ricardo), 밀(J.S. Mill), 마샬(A. Marshall)을 관통하는, 물리학의 뉴턴(I. Newton)에 필적하는‘권위’의 상징—그의 {프린키피아}를 떠올리라—이었지만 20세기 들어서는 그 어떠한 주요한 교과서 저자도 쓰기를 주저했던 일종의 ‘금기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맨큐의 ‘오만함’을 꼬집을 필요는 없다. 그가 위 책에서 내놓은 ‘경제학의 열 가지 기본 원리’는 이제 크리스트교의‘십계명’과 같은 권위로 자리를 잡아, 경제학의 신봉자든 비판자든 누구라도 참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위 책의 한글판 제목 {맨큐의 경제학}은 이런 의의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

경제학의 ‘원리’

그런데 오늘날 경제학도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맨큐의‘원리’는 그의 선배들이 내놓았던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리카도나 밀에게 가장 중요한 원리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물질적 부, 즉 가치(value)의 본질/크기 및 생산/분배에 관한 것이었으며, 이를 적절히 다루기 위해 경제학은 필연적으로 역사와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들이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두루 참조해야 했다.

반면 그런 원리들은 맨큐의 십계명엔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대체로 ‘모든 선택엔 대가가 따른다’, ‘교환은 교환당사자들을 이롭게 한다’ 따위의 인간의 사고와 행동 일반에 관한 매우 추상적인 성격의 명제들로 채워져 있다. 과연 이런 것들을 ‘경제학의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우리가 경제를 이해하는 데, 하다못해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데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니, 까놓고 말해, 대체 경제학은 무엇인가?

현재 이런 질문들은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라는 표제 아래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현실의 제국주의와 같이 경제학이 여타 사회과학의 고유영역들을 침범하고 나아가 자신의 식민지로 삼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경제학은 그 영역을 넓혀나갈 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제국’ 건설을 꾀한다.

경제학: ‘제국적’ 학문?

경제학이 처음부터 제국주의적이진 않았다. 원래 그것은 사회의 특정한 성격의 문제들에 집중했다. 그것의 궁극적인 관심은 근대사회의 물적 동향을 밝히고, 나아가 ‘정치가나 입법자’에게 통치와 관련된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A. Smith, {국부론} 참조). 훌륭한 경제학사가이기도 했던 마르크스(K. Marx)가 근대적인 과학적 경제학의 선구자로 꼽았던 페티(W. Petty) 이래 로크(J. Locke), 흄(D. Hume), 스미스, 리카도, 밀 등은 모두 이런 의미에서의 ‘경제학’(political economy)을 하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어떤 이들은, ‘어? 로크가 경제학자야?’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를 ‘경제학자’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가는 생각해볼 문제겠지만, 그가 꽤 심각한 경제학적 저작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만약 이들 중 몇몇이 경제학자보다는 역사가나 철학자 또는 포괄적 의미의 사상가라는 자격으로 우리에게 더 알려져 있다면, 이는 경제학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잘 나타내주는 사례일 따름이다.

그리하여 경제학은 사회의 특정한 문제에 집중하면서도, 자신의 대상인 근대 자본주의 경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 그것의 역사와 지리적 불균등 발전에 관한 이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참조했고 온갖 사회적 결정인자들을 고려했다. 그러나 경제학이 당시 막 태동하던 여러 사회과학들의 성과를 존중심을 가지고 참조하기는 했어도 다른 사회과학들의 고유영역을 침해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사태를 반전시켜 경제학이 제국주의적으로 탈바꿈하는 데는 일정한 계기가 필요했는데, 그러한 변화의 추이를 최근 파인과 밀로나키스는 그들의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괴짜경제학으로}(B. Fine and D. Milonakis, From Economics Imperialism to Freakonomics, 2009)에서 ‘축소에서 팽창으로’(from reductionism to expansionism)라는 모토로 적절히 요약한 바 있다.

‘축소에서 팽창으로’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경제학이 다룰 문제도 늘어났지만, 다른 한편에선 경제학을 연역적 방법론과 현실의 추상을 통한 모형화에 입각한 하나의 ‘과학’으로 정립시키려는 시도도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는 경제학이 기존의 역사적/사회적 관심을 점차 내려놓는 방향으로 발달한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웠으며, 이런 움직임은 1870년대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제 사회적 생산과 분배에 상이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인간집단들을 칭했던 ‘계급’은 ‘최적화하는 개인’(the optimising individual)으로 대체되고, 여러 역사적/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복잡하게 규정된다고 여겨졌던 ‘경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상반되는 힘으로 구성되는 시장’으로 축소된다.

물론 이런 재편과정은 많은 반대와 유보조항들을 낳기도 했지만, 마침내 1930년대에 이르면 하이에크(F.A. Hayek)의 런던정경대(LSE) 동료 로빈스(L. Robbins)는 “경제학이란 인간행동을 목적과 다양한 용처가 있는 희소한 수단 사이의 관계로서 연구하는 학문이다”라는 선언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정의 아래, 이제 경제학의 고전적인 주제들은 ‘경제사’, ‘경제철학’, ‘방법론’, ‘산업경제학’ 등의 이름을 갖는 여러 응용분야로 밀려난다.

그러나 일단 경제학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그리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정의된 이상, 그 응용분야가 경제학의 전통적 영역에 한정될 필요는 없었다. 즉 역설적이게도 경제학을 최소한도로 축소시키는 노력으로부터 ‘팽창주의’의 싹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팽창에 가장 열정적이었던 인물이 베커(G. Becker)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선택’이 있는 곳엔 늘 ‘경제학’이 있으며, 일상의 그 어떤 사소한 행위들도 ‘경제학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이 경제학의 본령이라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폐허를 걷어내고

결국 맨큐의 십계명은 이와 같은 경제학의 변천사의 산물이다. 그것이 일러주는 대로 만약 경제학이 ‘선택’과 ‘교환’에 관한 학문이라면, 과연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이슈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인간들이 창출하는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선택’과 ‘교환’의 문제로 환원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사회적 삶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경제학이 사회과학에 하나의 제국을 건설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사회과학을, 우리가 사회과학에 대해 기대하는 모든 실질적 내용을 파괴함으로써만 가능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하게도 경제학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며, 맨큐의 원리들은 그 파괴상의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범지구적 경제위기를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경제학이 무능한 근원적인 이유다. [사족: 맨큐의 원리, 좀 더 일반적으로는 오늘날의 경제학을 비판할 때, 그것이 가정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 ‘합리성rationality‘ 등을 주된 과녁으로 삼곤 한다. 즉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은 그것이 비판하는 경제학만큼이나 자폐적이고 회의적으로 흐르거나(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또는 그 반대의 극단 즉 지나친 낙관주의 내지는 주의주의로 흐르기 쉽다(인간은 생각보다 이타적이니 인간을 너무 얕보지 말자?). 진화/행동/신경/정보 등등이 붙은 다양한 ‘경제학들’이 그러하다. 하여간 이 얘긴 나중에 따로 한번 ‘제대로’ 해야 한다..]

요새 위와 같은 경제학의 무능 때문에, 나아가 그런 무능에도 불구하고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경제학의 뻔뻔함 때문에, 많은 이들이 특히 학계에서조차도 反경제학적인 분위기가 크게 번지고 있는 것 같다. 경제학의 그간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생각하면 이러한 ‘주변부’에서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제국주의적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중심부의 노동자/민중과의 옹골찬 연대’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게 곧장 드러난다.

다시 말해, 현재 여러 사회과학 영역들에서 경제학의 파괴적인 영향들을 걷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학이 제 구실을 하도록 비판하고 독려하는 일도 긴요하단 얘기다. 즉 경제학은 그것이 응당 품어야 할 ‘진정한’ 원리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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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houghts on “[201110] 경제학, ‘제국적’ 학문?

  1.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제학이 정말 파괴적이긴 한가 봅니다. 잘못된 이념의 잘못된 경제학으로, 잘못된 선택을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소위 정책 결정자와 주류 경제학 이론가의 모습을 보자니, EM님께서 말씀하신 현대 경제학의 파괴력과 아둔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로 제 주변으로 한정되기는 합니다만) 생물학자도 생명현상을 이해하는데, ‘합리성’과 ‘선택’이라는 경제학적 태도를 은연 중에 많이 보이곤 합니다. 생명현상을 위시한 자연법칙이 인간처럼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무슨 이득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죠. 인간의 사고가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맨큐의 십계명적 사고방식에 물든 건지 모르겠습니만, 과학도 점점 주류 경제학의 시다바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지, 이미 과학은 경제학의 노예였던가요? ^^;;

    1. 흥미로운 코멘트세요. 요새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에서도 “진화”와 같은 자연과학/생물학의 개념들이 많이 쓰이는데, 가만 보면 경제학 쪽에서 그런 것들을 단순히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믿을 수 없게도 그 반대 방향으로의 움직임도 심심치않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신 게 단순한 기우는 아닌 것 같아요. 정신 바짝 차려야죠!

  2. ‘사족’ 부분을 읽다 보니 지난 주 프레시안 books에서 본 홍기빈 씨의 서평(정태인 신간)이 떠오릅니다. 많이 띄워주더군요. ㅎ

    “진화/행동/신경/정보 등등이 붙은 다양한 ‘경제학들'”에 관해서도 한번 재미난 글 써주시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선생님 글은 깔끔하고 정리가 잘되어서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 (그렇다고 제가 다 이해한다는 건 물론 절대 아닙니다!)

    1. 정태인씨는 언젠가 사석에서 뵈니, 마르크스주의(경제학)에는 엄청난 불신을 가진 반면 진화/행동… 등등에 엄청난 흥미를 갖고 있더군요. 당연히 저는 ‘뭐 이런..’ 이러고 말았습니다만.. 하여간 딱한 노릇입니다. ㅎㅎ

      근데 어떻게든 제가 기분 좋아지시게 만들었다니 기쁩니다. 언급하신 그런 글도 잘 써서 더 기분좋게 만들어드려야 할텐데.. 요즘같아선 완전 불가능입니다ㅠㅠ

      1. 1997년 경제위기를 둘러싼 정태인씨와 정성진 교수의 논쟁(류동민 교수도 끼어들었던)이 떠오르네요. 그때도 정성진씨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엄청난 불신을 나타냈었죠.

        1. ㅋㅋ 재밌는 오타입니다 ㅎㅎ
          네, 그 논쟁(?) 유명했죠. 그 자신이 그런 불신을 갖는 거야 누가 뭐라할 수 없겠지만, 그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무책임하게 그런 입장을 그렇게도 강력하게 견지하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3. 오… 잼나는 글인거 같아요. 맨큐의 경제학… 그런거였군요! 역시 안 읽길 잘 했어! (응?)

    그나저나 분절화, 파편화, 세분화 되는 학문이라는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거 같기도 하고…

    사회학 공부를 해보고 싶지만, 역시 경제학도 재밌을 거 같고… 이거저거 다 해보고 싶지만, 역시 돈과 시간 (무엇보다 능력이;) 문제고…

    하지만 현실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고… (응?)

    1. “역시 안 읽길 잘 했어!” ㅎㅎㅎ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슴다. 문제는 어쨌든 그에 필적할 만한 마르크스경제학 쪽의 주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저 같은 사람들이 분발해야겠죠? (혹시 그런 게 나중에라도 나오면 읽어주세요^^)

      1. 혹시나 EM님이 경제학 원론 같은 걸 쓰신다면, 저는 반드시(!) 사드리겠습니다 :) 그러니 제가 나중에 생물학 원론을 집필하게 되면… (굽신굽신)

        1. 아, 당연하죠!! 여러 다양한 분야에 많지는 않아도 몇몇 믿을만한 “기둥”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마음 든든한 일입니다 :)
          (근데.. 앞에서 제가 생물학 또는 자연과학하고 경제학이 무관하다고 말한 것으로 읽힐 것도 같아서.. 사실은 둘이 무관한 게 아니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거겠죠… 그런 측면에서 surplusb님 같은 분과 좀 더 유의미한 교류를 쌓아야 할텐데… 요샌 저 하나 스스로 건사하기도 벅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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