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청학위 강좌] 제1강의 요약과 보충

지난번 강의를 간단히 요약해보려 합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강의록도 지나치게 길었고 강의도 좀 두서 없이 진행된 것 같아, 관련 내용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좀 혼란스러웠을 것도 같아서요. (하지만 거듭 말씀드리지만, 강의안에서도 소개해드린 글들, 특히 맨아래 다시 열거해놓은 제가 쓴 글들은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수강생께서는 동료들에게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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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가

1. 경제위기: 2007년 이후부터 세계경제가 위기 상태에 빠져있다. 이번 위기는 특히 세계경제의 중심부에서, 그리고 현대경제의 꽃인 금융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는 점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라고 할만하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과 입장에서 현재의 위기를 진단하고 또 그에 따른 처방을 내놓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위기의 다양한 징후들이 고발되고, 사람들은 길거리로 나와 경제위기를 부르고 자신들의 삶을 파탄낸 주범들을 규탄하고 있다.

2. 경제학의 위기: 경제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경제학의 위기이기도 하다. 왜 경제학은 경제위기를 사전에 예측하고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는가? 경제위기가 불거진 이래 이 질문은 전문적인 경제학자들뿐 아니라 경제학에 완전히 문외한인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요컨대 경제위기는 먼저 경제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한, 그리고 나아가 경제가 사고되고 이론화되는 방식에 대한 반성의 필요성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3. 경제와 경제학: 이렇듯 경제와 경제학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특히 이것은 근대사회 특유의 조건을 반영한다. 즉 근대사회란 그야말로 인간들 사이의 경제적 관계, 즉 물질적 이해관계를 근간으로 형성되어 있는 역사적 구성체이고, 바로 그러한 물질적 이해관계를 주된 탐구대상으로 삼는 경제학이야말로 근대사회의 ‘자기이해’ 또는 근대사회의 ‘해부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4. (정치)경제학의 역사성: 오늘날 경제학을 일컫는 단어엔 두 가지, 즉 ‘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이 있다. 그러나 흔히 ‘경제학economics=주류경제학’,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비주류경제학’이라는 등식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political economy는 economics의 옛 이름으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더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원래 ‘political economy’는 ‘economy’라는 말에서 왔으며, 이는 다시 ‘가정의 관리’라는 의미를 갖는 고대 그리스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때 ‘가정’의 관리란 ‘국가polis’ 또는 ‘전체 공동체’의 관리로 곧장 확장-적용될 수 있었으나, 17세기 정도에 이르면 규모나 복잡성 면에서 국가 또는 전체 공동체를 가정과 직접 대응시키는 게 불가능해져 전자의 관리를 일컫기 위해 이제는 단순한 ‘economy’ 대신 ‘political economy’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와 같은 political economy는 처음엔 단순히 국왕의 금고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유지-증대시킬 수 있겠느냐는 문제에 집중했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점차 그것이 다뤄야 할 문제의 범위와 깊이는 더해 갔다. 이리하여 political economy는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들(‘계급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산, 교환, 유통, 분배, 소비 등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다양한 추상수준에서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이런 의미의 political economy를 집대성한 게 바로 아담 스미스(Adam Smith)다.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political economy란 근대시민사회의 해부학이다’라고 했을 때, 그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5.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마르크스는 당대의 정치경제학이 갖는 위와 같은 역사적 의의를 그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밝혔듯 그런 한계는 다름 아닌 경제위기의 시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정치경제(학) 비판'(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이라고 명명한 지적 기획을 출범시키는데, 여기서 ‘비판’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즉 그것은 흔히 여겨지는 대로 어떤 대상을 단순히 ‘파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혹시 이를 그렇게 이해하더라도 강조점은 파괴나 부정이라는 ‘결과’ 자체보다는 그런 목적에 이르는 ‘과정’에 두어진다. 요컨대 마르크스가 속해 있던 서양의 지적 전통 속에서 비판이란, 무엇보다도, 대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총체적 종합이라는 사고과정을 통해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곧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첫째로 근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에 관한 근본적이고 면밀한 이해를 꾀하고, 둘째로 이러한 이해를 달성하지 못한 당대의 경제학 논의들에 대한 통렬한 일격을 날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이때 마르크스가 발견해낸 ‘근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이란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는 사회계급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에 기초해 있으므로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나아가 파괴하는 성격을 갖는다. 즉 근대사회는 그 파괴의 싹을 그 내부에 가지고 있다.

6. 경제학의 현대적 발달과 마르크스의 비판의 유효성: 근대적인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은 대략 17세기에 중상주의라는 형태로 출범한 뒤, 아담 스미스에 의해 집대성되고(1776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에 의해 최상의 발전을 이룬다(1817년). 그러나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후 정치경제학은 ‘속류화'(vulgarisation)의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그가 그것의 ‘비판’에 나선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학은 이후 계속해서 타락해 나가며,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제학’은 그 (잠정적인) 최종 결과물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그 자체로 경제학의 위기이기도 한) 새로운 경제위기를 맞아 경제학을 비판하고 재구성하려고 할 때, 마르크스의 논의는 여전히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7. 오늘날의 ‘경제학 비판’ (1) 경제학을 경제학답게: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경제학을 비판한다면, 그 대체적인 모습은 어떻게 될까? 첫째, 현대의 (주류) 경제학과 달리 진정한 의미의 경제학은 ‘근대사회에 특유하게 발생하는’ 문제, 그것도 ‘경제적’ 문제에 천착해야만 한다. 1870년대의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의 결과로 본격적으로 형성된 오늘날의 경제학은 이기심과 합리성이라는 개별경제주체의 행동동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리하여 모든 경제문제는 곧 그러한 주체의 합리적 선택과 행동으로 환원되는데, ‘개별주체의 합리적 선택’이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사안을 두고도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근대사회에 특유한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많은 경제학 비판자들이 그러하듯, 이기심이나 합리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기심/합리성은 경제학이 전통적으로 이해해왔던 근대사회의 근간이기 때문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경제학을 근대 이전의 단계로 되돌리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기심/합리성을 어떻게 자리매김시킬 것이냐이며, 그것이 적절히 되었을 때 경제학은 ‘근대사회에 특유한 경제문제’를 제기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8. 오늘날의 ‘경제학 비판’ (2) 마르크스를 발전시키기: 문제가 위와 같다면 우리가 마르크스에 주목하는 것은 더없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수행할 때 정치경제학이 근대사회라는 역사 특수적인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관계들을 규정하는 근원적인 물적 힘에 대한 것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를 단순히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처하는 데 충분치 못하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불행히도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완성시켜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명시적으로 남겨놓은 이론은 대체로 상당히 추상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동학의 핵심과 관련해 제시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멈춰서는 우리가 실제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 우리는 그가 염두에 두었지만 끝내 적극 고려하지는 못했던 영역으로 그의 논의를 발전시키고 구체화시켜야만 한다. 물론 이와 같은 구체화는, 마르크스 이후 벌어진 현대 자본주의의 다양한 변모와 관련해서도 행해져야만 한다.

[이 블로그에서 읽어볼 글들]

1. 자본주의 질서를 둘러싼 정당성 전쟁(http://socialandmaterial.net/?p=592)

2. 경제학이 나아갈 길(http://socialandmaterial.net/?p=599)

3. “사회” 관점의 지성사적 의의(http://socialandmaterial.net/?p=12)

4. 경제학의 ‘원리’엔 ‘경제학’이 없다(http://socialandmaterial.net/?p=1287)

5. 나꼼수와 마르크스: 우리의 ‘가치이론’은 당신의 ‘말빨’보다 강하다
(http://socialandmaterial.net/?p=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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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thoughts on “[진보신당 청학위 강좌] 제1강의 요약과 보충

  1. 아니 이런 배려를 ㅋ 덕분에 어느정도는 정리하고 2강을 들을 수 있겠네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2. 아니 이런 훌륭한 강의가!

    강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정치)경제학 비판’의 문제의식을 다루는 강의가 많지 않아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이러한 주제로 정치경제학 입문 강좌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자본론을 또 하나의 경제학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이 생각을 바꾸는데 꽤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1. 반응이고 자시고… 자평을 하자면 “좀 별로였다”입니다 ㅠㅠ
      담부턴 좀 더 잘해야 할텐데… 멀리서 기 좀 불어넣어 주세요 ^^

  3. EM님

    열심이시넹. 강의 요약본까지 다 올리고…

    제 생각엔 이 요약본이나 이 요약본을 다시 또 축약한 것을 담 시간에 직접 들려주는 것도 좋을 듯…

    우리가 학생일 때도 그랬지만, 학생들은 늘 지난 번 수업 내용을 까먹는 게 보통이거든요.

    그걸 감안해서 친절한 선생님이 되세요.

    아님, 이 요약본을 팟캐스트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학생들 중에 자원하는 이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처리될 듯…

    팟캐스트 제목은…으음…머가 조을까?

    “페고렙”은 어떨까요?
    = P(olitical) E(conomy) 고렙

    고렙(高 lev)은 게임에서 레벨이 높은 유저를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어색하긴 하지만 자주 쓰면 익숙해질 수도 있으니…
    “나꼼수”도 처음엔 절라 이상했지요.

    페고렙에 “너”를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너페고렙” — 근데, 허걱, “너 패고 랩”으로 들리넹.

    그치만, “궁민 차며” 정부 때
    국민을 축구공 삼아 마구 차대던 애덜이
    반명박 트렌드에 힘입어 득세하는 세상이니까,

    “너 패고 랩”으로 들려도 큰 문제는 없을 듯.

    그러고보니까, 노무현 시절에 노동운동 탄압, 이라크 참전, 아파트원가 공개 불가, 한미FTA 추진 등에 대해 침묵하거나 동조했던 민주당 구캐의원 넘들 정말 패주고 싶당.

    그리고나서 인터내셔날가를 랩 버전으로…후헷!

    아님, 아예, 팟캐스트 제목을 수업 시간이나 이 블로그에서 공모해 보는 것도 한 방법.

    암튼…홧팅

    1. 나꼼수도 안 들으시면서.. “너페고랩”은 들으실 건가요? 혹 그것도 안 듣고 나중에 뒷다마? ㅎㅎ 아닌게 아니라.. Marx 가면 쓰고 동영상으로 제작해보는 것은 (나름 진지하게) 생각중입니다. 옆에서 Engels는 조용히 앉아있다가 칠판지우고 말입죠.. 학생으로 레닌이랑 스탈린도 앉혀놓으면 되겠군요. 흠… 트로츠키도 데려다 놓고 왕따 역할을 시키면…

  4. EM님

    아, 또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충고를 하자면…

    “아니 이런 훌륭한 강의가!”와 같은 것은
    자기 스스로 1번 댓글로 달 줄 아는 대인배다운 여유와 유머가 있어야 됨니당.

    이런 댓글을 동업자끼리 주고받으면 요즘은 장사 안되거든요.

    ㅎㅎㅎ

    1. 어엇.. 그런 충고를 해주는 선배가 제겐 필요해요.. ㅠㅠ 고맙슴다. ㅎㅎ
      아닌 게 아니라.. 얼마전에도 비슷한 충고를 받았는데.. 흠..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긴 한가봐요 ^^a

    1. ㅎㅎ 잘 보십쇼. 담번에 오시나요? :)

      본문은 물론 NeoPool님 덧글과 전혀 상관없는… 간만에 짤방 하나.

      누구 안 닮았나?

      문희준… (-_-)b
      글고 보니 성도 같네.. 둘이 친족관계? ㅎㅎ

  5. 선배님(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런 강의가 있다는 걸 모르고 놓쳤네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비롯해서 그 제반내용에 대해 공부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우리 학교엔 현재 강 선생님(정치경제학)밖에 안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수업을 놓치고…
    윤소영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떤가요?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을 일독했는데, 잘 안들어 오는 부분도 있고, 특히 제가 전공하려는 국사의 내용은 흥미로운 부분도…
    좀 더 여쭈어보면, 제가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은 샘들이, 칼 폴라니와 월러스틴, 아리기 등 일정한 흐름 안에 위치하신 분들인데, 선배님이 보시기에 저 분들의 지적 작업이 어떠한 효과나 장단을 가지고 있는지 개인적인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당^^
    질문만 하고 가네요, 초학자의 호기심에 부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1. 놓치다뇨.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 했을 뿐인데요.. ㅎㅎ
      어차피 이런 공부를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제공하길 기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죠. 스스로 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 특히 그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공부하고자 한다면, 윤소영 선생 책은 읽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니… 저는 개인적으론 해설서 읽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해설서라는 게… 사실, 순수한 해설서가 거의 드물거든요. 대개 저자가 직접 개입했거나 관심을 가졌던 특정 논쟁에 강하게 맥락지어져 있는 경우가 많지요. 더구나 그분은 “일반화” 말씀을 하시는데… 아마도 우동현씨께는 “일반화”보다는 “기초”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기초는… 윤소영 선생보다는, 마르크스 자신이 더 잘 제공해줄 것입니다. 부담 갖지 말고 {자본론}을 그냥 읽으십시오. (참고로 말한다면, 이달 말부터 제가 자유인문캠프에서 “읽기 입문” 강의를 하니까, 거기 참여해보시든지요 ^^ 하지만 노파심에 덧붙이면.. 강신준 선생의 강독/강의는 절대 가지 마시고요 ㅎㅎㅎ 돈 때문이 아니라 내용 때문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은 샘들이, 칼 폴라니와 월러스틴, 아리기 등 일정한 흐름 안에 위치하신 분들”이라고 하셨군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반대겠죠. 동현씨가 폴/월/아 등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동현씨가 어쩌다 마주친 선생들이 폴/월/아 등에 관심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이들(폴/월/아)은 마르크스와는 직접적 관련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나름 훌륭한 학자들이므로, 적지 않은 면에서 마르크스와 통하는 것도 사실이죠(“Great minds think alike”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가려내는 것은 좀 더 훈련이 쌓인 다음의 일이고… (특히 월/아에 대해선, 김성구 선생께서 언젠가 쓰신 논문이 있습니다. 진보평론에 나온 건데.. 제목이 “월러스틴의 지적 유행을 경계한다”던가.. 아마도 윤소영 교수와의 개인적인 적대(?)가 어느정도는 작용한 거겠지만… 이 글 읽어볼만 합니다. 찾아보세요.)

      아, 어쨌든 동현씨께서 관심있는 폴/월/아에 관심있는 선생들… 솔직히, 그들의 지적 작업…이라고 할만한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굳이 하나 언급하자면… 폴의 전문수입상인 홍모라는 분, 저는 아주 낮게 봅니다. (아, 하지만, 개인적으로 백승욱 선생은 괜찮다고 봅니다. 그의 마르크스 해석에는 불만이 좀 있지만요.) 이 경우에도, 폴/월/아를 직접 읽어보시는 게 100배는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아마도, 그들의 한국인 수입상들보다는 그들 자신이 훨씬 포용력 있고 여러모로 낫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1.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원서를 역시… 네 ㅋㅋ
        백승욱 선생님 책에 나와있긴한데, 딱히 어떤 선생님들을 통해 이차적으로 알게 된 것, 그렇게 시작한 것은 아니구요. 수업에서도 이름이 잠깐 언급되고 알음알음 그 사람들 책을 보니까 뭔가 이해도 안되고 궁금도 하고 해서.. 군대에 있을 때 월샘한테 메일도 보내고(엄청난 답변을 기대한 것도 아니구요) 코멘터리도 읽고… 아무래도 역사를 전공하려고 해서 ‘박람’을 하려다보니… 이래저래 ㅠㅠ 그 외에도 원작을 주로 마련하여 보려구 하구요… 해설서나 주석은 잘 안보려고 합니다! 역자나 주석자의 개입을 경계하려고는 하고… 충고 감사합니당ㅋㅋ 더 자세한 건 메일로 여쭈어 볼게용^^

        1. 그렇다고 제가 “원전 근본주의”를 주장하는 건 아니고요.. ^^;;

          그런데 제 판단엔 월/아 등의 저작에 역사적인 관심이 두드러지긴 해도, “역사학도” 입장에선 좀 시시할 것도 같은데… 이들이 매력적인 것은 이들의 논의를 마르크스의 관점과 일정하게 짬뽕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제가 뭘 잘 모르고 하는 말씀인가요? ^^;; 그러니까… 제 생각엔, 이런 논자들이 그렇다고 해서 화끈하게 마르크스랑 관련을 맺고 있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그런 관련을 짓는 것이 상당부분은 독자가 해야할 몫이라면, 차라리 월/아 같은 이들보다는 좀 더 화끈하게 역사학적인 저자들에 관심을 갖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거죠.

          아참, 메일 받았습니다. 답장 드릴게요 :)

  6. 못갑니다ㅎ 앞으로도 계속 정리 보충 올려주시는걸로 기대할게요! (라고 쓰니 좀 염치가 없군요ㅠ)

  7. 제가 요즘 아나키즘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책들을 읽고 있는데 공산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대립부분에서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맑스나 엥겔스는 노동자들의 자주관리라는 아나키스트들의 이상과는 딱히 대립하는 곳이 없을것같은데 말이죠. 맑스와 엥겔스들의 추종자들은 그렇지가 못했던것같습니다. 정작 맑스는 바쿠닌이나 프루동같은 아나키스틀의 견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요…

    1. 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 그런 문제들에 대해선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문헌을 본 것도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슴다;;;; (더 길게 뭐라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뭐… 꺼리가 없네요^^;;)

    2.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아나키즘도 상당히 딱 한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푸르동과 바쿠닌을 아나키스트로 분류하지만, 당시에는 푸르동과 바쿠닌도 자신들을 공산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마르크스와 엥겔스처럼요. 역사적으로 보면 푸르동 및 바쿠닌과 마르크스 쪽의 대립은 일종의 노동자 계급 운동과 제 1•2 인터내셔널에서의 주도권 다툼의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권을 가진 폭력적 억압의 주체로서 국가를 부정한다는 측면에서는 푸르동, 바쿠닌 그리고 마르크스 간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국가의 대안이 무엇이며 그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서는 이견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푸르동은 국가의 대안으로서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를 제시했는데, 이때 푸르동이 생각한 ‘협동조합’의 주체는 생산자입니다. 이게 좀 묘한 것이 푸르동이 의미한 생산자는 자본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닙니다. 그는 생산의 주체로서 소생산자들과 소규모 자영농이 ‘협동조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독재의 대척점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제안했습니다. (사실 이것도 마르크스가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어떤 정치적 노선을 가지냐에 마르크스주의자든 마르크스의 반대자든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저마다 해석도 달랐습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계급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를 (정치적 혁명이든 혹은 봉기에 의한 혁명이든 그 순간이 오게 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국가의 여러 지배장치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맞게 리모델링(?)을 한 뒤 나중에 국가의 기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해서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 사회라는 이상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을 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그가 프랑스 혁명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한 과 등의 다른 텍스트를 통해서 미약하게는 유추해볼 수 있다고는 합니다. 저도 이들 텍스트를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아서 … -_-;;)

      경제적 측면에서 비교해본다면 프루동은 노동전수익권(勞動全收益權)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엇이냐 하면 “생산물 가치의 유일한 원천은 ‘노동’이고, 그 소득은 본래의 생산자에게 모두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유사해 보이는데, 문제는 어떻게 계급 간 불평등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나오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을 유발하는 것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의 착취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봤지만, 푸르동은 지대와 이윤이라는 불로소득이 분배과정에서 균등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노동한 만큼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나타난다고 봤습니다. (제 말이 맞나요? ㅠㅜ 아 이거 가물가물하네요.)

      그리고 혁명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관점에서도 많은 인식의 차이가 있었는데요, 특히 바쿠닌은 많은 부분에서 푸르동과 유사한 입장을 보였지만, 좀(아니 매우) 과격했죠. 오로지 폭력적 봉기만이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사실상 거의 신봉한 것에 가깝죠). 이 점에서도 마르크스와 생각이 많이 갈리는데요. 마르크스는 혁명은 일회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연속적이며 다차원적인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소수의 음모가들이나 투사들에 의한 무장봉기가 아니라,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을 통한 소 단위의 운동부터 시작해서 정치투쟁 그리고 대중교육 등이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온전히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나중에는 노동자 운동에서 의회제도와 보통선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대해서도, 마르크스(혹은 그의 추종자들)는 혁명으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한 수단으로 유효하다고 봤지만, 바쿠닌은 그렇지 않다라고 판단한 거죠.

      이것 외에도 꽤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대부부은 앞에서 언급한 그 차이점에 대해 주로 비판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정말 오래 전에 공부한 거라 기억도가물가물하고 지식도 짧은지라 …. 이제 한계네요. ㅠㅜ 혹시라도 틀린 부분이 있거나 보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누가 좀 도와주세요 ㅠㅠㅠ 저도 공부 좀 하게요 (-_-;;;)

    3. 앞에서 마르크스의 텍스트가 빠졌네요. “프랑스 내전”과 “고타강령 초안 비판” 등 입니다. 댓글에서 특정 기호를 쓰면 그 안에 있는 글이 사라지네요. -_-;;;;;

  8. 더 정확히 따지자면 맑스에게서 국가란 것이 당위성을 갖는 개념이었는가라고 질문을 드려야겠군요.

  9.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팍에서 강연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아마 참고자료와 강연문을 별도로 제공해준 것에 대해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행의 미숙함이 어느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여하튼 저 역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고요. 논문은 잘 읽었습니다. 벤파인 논문도 나중에 부탁드립니다:)

    참, 마지막 강연 강연문 부탁해요!

    1. 아… 이거..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 고마웠고,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더구나 마지막에 김수행 선생님께서 “화룡점정”을 해주셔서.. (아, “용”까지는 아니군요.. “화견점정”으로 고칩니다 ㅋ)

      하여튼 전혀 미안하실 거 없고요.. 별다른 이유 없이 강의록/벤파인논문 송부하는 게 늦었네요. 제가 미안해요. 방금 이멜 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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