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지우드

1759년에 영국의 대표적인 도자기 회사 웨지우드(Wedgwood)를 설립한 조지아 웨지우드는 산업혁명 기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종종 거론된다.

공예가였던 그는 제품 디자인, 제조, 공장 관리에 모두 능했는데 마케팅에도 대단한 수완이 있었던 것 같다. Chris Freeman과 Luc Soete의 “The Economics of Industrial Innovation (산업혁신의 경제학)” 제 3판은 웨지우드가 도입한 마케팅 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47페이지).

  • 1760년대: Queensware라는 브랜드 도입 – 여왕과 로열패밀리의 동의를 얻음
  • 1770년대: 디스플레이 룸 (display room) 개념 도입
  • 1771년: 마음에 안 드시면 환불해 드립니다 (Satisfaction or money back)
  • 176-90년대: 역사적 이벤트에 맞추어 디자인한 제품 출시 – 평화조약, 노예해방 캠페인 등

아무래도 달라진 것보다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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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Responses to 웨지우드

  1. EM says:

    흥미롭군요. 근데 그런 고객만족 마케팅은 우리나라에서도 성행했던 듯.. 영화 {음란서생}에서도 ‘만족 못하면 환불’이라는 얘기가 (아마도 음화를 팔던 오대수의 대사였던 듯;;) 나왔던 것 같아서요. ㅎㅎ

    하지만 웨지우드 하면 무엇보다 다윈이 떠오릅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웨지우드 설립자가 다윈의 외할아버지였으니까요. 재밌는 것은 다윈의 부인도 웨지우드 출신이라는 거.. 오늘의 기준으로 본다면 ‘막장’이지만..;;;

    근데, ‘다윈 + 웨지우드’로 검색해보니, 최재천 교수가 예의 그 {XX일보}에 이런 글을 쓰고 있더군요. “사상은 다분히 좌파 성향이었지만 그는 요즘 말로 하면 ‘강남좌파’의 전형인 셈이다”라…. 참으로 {XX일보}에 싣기에 매우 알맞은 표현입니다.. 이분, ‘언론’을 좀 아시는 듯 ㅎㅎㅎ

  2. H says:

    최재천 교수의 글에 있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재미있네요.

    ” 뉴턴경제학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다윈경제학의 시대가 열린 이때 …”

    뉴턴경제학은 신고전파경제학을, 다윈경제학은 진화경제학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야할지…

    • metas says:

      좀 관계없는 말 일수도 있겠는데,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란 사람이 “진화경제학”이란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미국에서 유명한 회의주의 비평가이자 진화론자로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죠. 물론 한국에서도 유명합니다.

      이 사람이 쓴 “진화경제학”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시간이 없어서요… 시간이…;;;) 서평에 나온 내용이나 이 사람이 평소에 쓴 글 등을 통해 파악하면 저 책이 주장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경제학은 합리적인 이기적 인간이 존재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가정 아래 지나치게 수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예측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합리적인 이기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합리적이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이기적 단위만이 존재한다. … 경제학에서 애지중지하는 정형화된 수리모델이란 동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인간사회를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인간 상호작용의 한 형태인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 이때 필요한 것은 자연과학적 방법론(특히 진화론적 연구방법론)이다. 자연 그리고 생명체도 수십 억년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고, 이러한 변화의 패턴은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실 그 이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진화론으로 설명 가능한 사건이다. 따라서 경제학에 진화론의 여러 성공적인 모델을 도입한다면 단순히 수학적 방법론만으로 사회를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훨씬 더 유용할 것이다.”

      저도 셔머의 말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더불에 예전에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인 만델브로트)발음이 이게 맞습니까??)도 경제 모델을 세우는 데 있어서 불확실성을 고려해야한다고 얘기했던 적도 있구요. 다만, 저 책을 읽어본 사람의 이야기로는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자유방임주의 경제가 낫다”란 병크(?)를 보이기도 했다는데… 그게 사실인지에 대해서 현재로는 확인불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인간이 (혹은 인간사회)가 온전히 자연법칙 아래 놓여있다면 셔머의 말이 타당하긴 합니다만, 사회문화적으로는 저 주장을 과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제 개인적 생각이긴 하지만, 인간이 문화를 창조하고 난 뒤론 일정부문 진화의 궤를 벗어낫다고 보거든요 (물론 그 궤를 벗어나 다른 방향의 갈림길을 선택했다는 데 있어선 이것도 진화의 법칙을 따른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리고 저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자연과학자나 진화론자 치고 자연주의적 오류를 안 범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 부분도 많이 우려스럽긴 합니다;;

      덧글이 상당히 길어졌는데요. (차 안에서 쓰는 거라 머리가 너무 흔들거려 생각도 자꾸 흔들린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뉴튼적 사고와 다윈적 사고라는 것도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튼을 고전물리학의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뉴튼 물리학도 본질적으로는 신이 만들어 놓은 정형화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한 “과학적 시스템”이거든요. 그런데 다윈의 진화론에서 그게 어느 정도 부정된 거죠. (다윈 이전에도 진화이론은 존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찬밥신세인 라마르크 같은 사람이 있죠. 아직까지도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인정받지 못해서 아쉽긴 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로 뉴튼과 데카르트 등이 정립한 우주에서 신은 만들어만 놓고 간섭하진 않는다였지만, 다윈체계에서 신이 없어도 생명(특히 종)은 알아서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이었죠. 두 번째가 고전물리체계에서 우주는 변하기는 하지만, 변화는 오직 신이 전해놓은 방정식에 따른 변화거든요. 이래선 실질적으로 변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나 다윈은 그러한 물리법칙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생명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죠.

      최재천 교수가 진짜 이런 걸 의도하고 뉴튼 경제학과 다윈 경제학을 언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두가지를 이런 식으로 봐도 틀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꽤 긴 잡설(?)을 늘어놓고 가서 죄송합니다. ^^;

      P.S.: 진화론 공부를 하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나, 굴드, 스티븐 핑커, 도킨스, 부크홀츠 … 등의 진화생물학자 사회생물학자들 책을 읽는 게 낫습니다. 저 사람은 제 딴엔 윌슨의 ‘통섭’을 나름대로 변용한다면서 뻘소리를 하는지라… 게다가 우파적 발언(이라 쓰고 꼰대적 발언이라 읽는)도 심심치 않게 하시는 분이죠.

      • okcom says:

        장문이라 걱정하셨나본데 저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진화에 대해 공부해 본 적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맘 편히 생각과 질문들을 적어 보겠습니다..ㅎㅎ 가장 먼저, 자연과학에 대해서라면 기껏해야 학문의 유형 정도만 생각해볼 수 있는 제 수준에서는 (뉴튼이든 뭐든)물리학과 진화론이 대등한 과학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당장 떠올리기로는 물리학과 열역학 등이 원칙을 구축하고 그에 기초한 학문이라면, 진화론은 좀 다르지 않나 해서요. ‘자연법칙만으로는 생물의 다양성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말에서 느끼기에도, 아직 생물진화라는 현상 자체의 (내생적) 계기랄까.. 원칙적인 부분이 미정으로 돌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진화를 논할 때 개입시킬 수 있는 입장이 너무 많을 것으로 보여요. 말씀하신대로 문화적 변수 때문에 인류가 ‘진화의 궤’를 벗어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면 진화라는 개념 자체도 정립돼 있지 않다는 인상이구요. 그래서 다윈과 라마르크 개인들이 보여준 학자로서의 태도는 (특히 당대 배경을 고려하면) 좋게 느껴지는 면이 분명 있지만, 이론으로서 자연과학 내 위상은 다른 것들과 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정리해주신 셔머의 입장도 ‘합리적 인간’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한다는 주장이 결국 또 ‘개체’를 통해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겠다는 거네요. 심지어는 비합리적 인간이라니..(읭 차라리 개인들간 합리성 수준의 차이에 대해 논해보기라도 하든지.. 아예 학문적 논의의 가능성을 타파해버리는 주장 같아요.) 더 큰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네요.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제가 아니더라도 EM님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결론은, 학문적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신을 넣느니 빼느니 하는 것은 우리 같은 (오리엔탈적-_-;;) 풍토에서 별로 와닿지 않는 논점이란 생각, 그리고 과연 진화경제학이 대중적으로는 몰라도 경제 및 경제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심을 조금이라도 받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 metas says:

          두서 없는 긴~ 댓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6시간의 장시간 이동을 했더니 아직도 속이 울렁거네요. (-_-;; 죄송).

          우선 물리학과 진화론이라는 게 대등한 과학이냐 물으신다면, 진화론이 현대생물학에서 견고한 도그마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진화론이 지배하는) 생물학은 물리학과 대등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 이건 제 전공이 생물학이라 이런 말 하는 것은 아닙니…;;) 물론 현대 생물학에서 생명의 기원이나 종의 다양성 혹은 적응과 관련된 여러 현상에 대해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때, 분자수준 혹은 거시적에서 물리학이나 화학 등의 여러 이론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일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물리화학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진화론의 근저에 깔려 있는 기본도 결국 (유전자에 의해 지배받는) 개체가 주어진 환경조건에서 적응을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통용되는 보편적 법칙 아래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종(species)가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뉴튼체계는 새로움이나 변화를 추구한다기보다는 (물론 당시 체계에서는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니 그것 자체도 꽤 혁신적이긴 합니다;;) 이미 신에 의해 창조된 우주를 엄밀성에 비추어 해석한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태생 자체가 신의 개입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니 그 자체로 본다면 뉴튼체계의 뒤를 이은 또 하나의 과학적/사회적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죠. 더불어 지질학적/고생물학적/분자생물학적 등의 증거가 진화론의 이론으로써의 타당성을 많이 입증해주고 있구요.

          물론 진화론도 과학체계를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불완전한 가설입니다. 마치 고전물리의 체계를 대변하는 뉴튼체계가 20세기 들어서 불확정성과 아인슈타인/보어 등의 체계로 대변되는 현대물리로 전환했듯이, 진화론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생명체 및 종의 기원과 다양성 그리고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이론이니까요. 언제라도 진화론에 모순되거나 진화론으로는 더 이상 설명 불가능한 예외가 발생한다면 진화론은 그 자체에서 폐기되거나 혹은 이전에 “진화종합(evolutionary synthesis)”이라는 것이 다윈과 월러스가 처음 제시한 “새로운 진화론”의 허점을 메꾸기 위해 후대의 생물학자들(특히 신다윈주의자들)이 체계화한 것처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시점이 될 수도 있겠죠.

          특히 진화와 문화에 대한 시각차와 이견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워낙 다양한지라 뭔가 논의를 끌어내긴 (제 능력의 미진함으로) 힘들 것 같고;;; 다만 제 관점은 “문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진화론으로 자연 상태에서 종의 생성’을 설명하려는 현재 이론으로써는 아직 진화론이 많이 모자라지 않느냐란 게 저의 생각입니다만, 이런 쪽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 사회생물학자나 (혹은 남들-이라 쓰고 다른 과학자들-이 잘 인정을 안 해주는) 진화심리학자 혹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문화 등을 설명하려는 문화연구 내지 인류학 분과가 존재하기도 하니 나중에 어떤 형태의 이론이 나올지는 비판적으로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셔머에 대해 글을 쓸 때, 빠뜨린 점이 있는데 생물학의 한 분과 중에서 “동물행동학”이란 분야가 있습니다. 한 개체의 진화/행동을 설명할 때 유전자(혹은 형질)가 집단 내에서 어떤 식으로 선택되고 배제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종(species) 혹은 집단이 어떤 식으로 (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를 이끌어나가는지 설명을 하려고 하죠. 아마 그런 점에서 본다면 순전히 “방법론적으로 봤을 때” 진화적 분석기법도 경제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유용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실제 집단 내에서 어떤 패턴을 연구할 때 유의미한 프레임을 제공하는 생물학적/동물학적/진화학적 방법론이 많은데요, 셔머가 진화생물학이란 것을 주장했다면 아마 이런 얘기를 주로 하지 않았을까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방법론적으로 유용하다고 해서 그런 생물학적 논의를 바로 사회학이나 경제학 등에 바로 끌어들여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사회가 세렝게티 같은 동물의 세계는 아니니까요. ^^;;

          (그런데, 앞에서도 밝혔지만 제가 셔머의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아서 제가 말한 것이 셔머의 입장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_-;;; 이 얘기는 괜히 했나봐요;;;)

      • H says:

        감사합니다.

        저는 진화경제학과 관련해서는 넬슨과 윈터의 “An evolutionary theory of economic change”하고, 호지슨의 “economics and evolution” 정도만 읽어보았는데요. 물론 전자는 고전 급에 속하는 책일 뿐더러, 신고전파 경제학의 비판이라는 측면에서는 정말 훌륭한 연구성과라고 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진화경제학의 영향력만 놓고본다면 아직까지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거의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다고 보아야겠죠. 넬슨이 쓴 글을 보면, 가끔 자신의 이론이 애초에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보이는 것 같구요.

        재미있게도 ‘진화’를 강조하는 경제학 이론들은 언제나 마르크스, 슘페터, 마샬을 언급하죠. 마르크스는 사회적 분업이 ‘자생적으로’ 발전한다고 했는데, 아마 그런 점에서 ‘진화’라는 개념이 타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제가 넬슨과 윈터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여전히 출발히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것이었어요. 개인의 ‘속성’에 대한 좀더 나은 이해는 물론 중요하지만 사회를 ‘개인들의 선택’의 결과의 총합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지금은 진화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초보적이지만,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입각해서 비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okcom says:

          저야말로 모두 감사드립니다!ㅎㅎ 제가 진화론의 ‘위상’이라는 말을 쓰는 바람에 혹시나 전공자의 맘이 상했을까봐 걱정되는데, 그니까 제 말의 뜻은.. 유형적으로 유전학 대 물리학 또는 생물학 대 물리학이라면 모를까, 진화론 대 물리학은 아니지 않느냐 그런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여하튼 많은 도움말을 주신 metas님께 감사해요.)

          저는 서양사와 인류학 전공자인데, 진화경제학에서 마르크스를 자주 언급한다고 하시니 문득 떠오른 게 있어 적어보겠어요.
          진화론적, 발전론적 역사관은 근대 사회과학 전반에 유력하게 있어온 것이고 마르크스주의도 자주 그렇게 분류되죠. 그런데 인간적, 사회적 현상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는 방법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는 것을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여요.
          예를 들어 인류학 이론 중에도 진화론적 사고가 뚜렷하게 개진되었던 몇 가지가 있는데, H님이 언급해주셨던 대로 (초기 사회학에서 더 많이 등장한 내용이긴 한데) 사회분업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이론도 있구요, “인류(사회)가 에너지/동력을 활용하는 방식에 진화론적 양상이 있어서 점차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뭐 그런 입장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일종의 해석이죠. 여기에는 설명이나 분석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왠지 이런 주장이 제기되는 당대의 상황과 통념(!)에 그 설득력을 기대고 있단 느낌이에요.
          다른 층위로는 에릭 홉스봄의 역사서술 방식으로 소개하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다들 잘 아실 홉스봄의 시대 시리즈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으로 평가되는 이유에 대한 것이기도 한데,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이렇게 자본이 축적되고 집중되는 과정에 따라 서양근대사를 서술한 시리즈죠. 이런 홉스봄의 시각을 발전론적이라고 분류할 사람도 있겠으나, 글쎄 과연 그럴까요. 앞에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그 차이는 역사학의 특징에 의거한 부분이 클 것 같습니다만, 이 정도밖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ㅎㅎ)
          세번째로 인류학에서 비중 있는 분과로 거듭나는 중인 진화심리학 및 생물인류학에 대해 제가 잘 말씀드릴 수 있다면 좋겠으나, 사실 저는 공부한 적이 없긴 합니다. 대체로 시대적,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문화권을 비교하면서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왠지 이것은 제가 말씀드린 첫번째 접근법과 유사한 층위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인상이에요. 일단 심리/행동의 진화를 논할 때 유목 또는 원시군집생활.. 이런 게 필수 전제가 돼야 하는데, 이것들이 가정되는 과정에 좀 미심쩍은 부분이 많거든요. 특히 문화와 관련된 주장들이 그래요. 대중적으로 어필된 것으로 과거 원시사회의 평등성(무계급성, 성차별 없음 등)이나 인간의 사냥본능..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게 현재적 상황에 따라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그 반대일 때도 많죠),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 글쎄올시다 입니다. 빈틈이 너무 많아요.
          즉 생물 개체 및 종의 진화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것이라고 해도 (제가 어찌 그것을 부인하겠습니까!!), 큰 틀에서의 진화라는 아이디어를 사회/문화를 설명하는 데 적용시키는 방식들은 서로 크게 갈리고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최근의 진화라는 아이디어는 과거의 ‘신’을 지나, ‘합리성’을 논점으로 하는 분위기네요.

  3. okcom says: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저는 최재천 교수가 언제쯤에야 통섭을 외치는 일을 그만두고 스스로 성과를 내놓으시려나 궁금했는데, 혹시 그 내용이 ‘다윈경제학’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자연과학자가 조선일보에 사설을 쓰는 것? 이 점도 재미지네요.

    • EM says:

      정확히 말하면, 조선일보에 글을 쓰면서 “주제넘게도 ‘강남좌파’를 욕하는 것”이겠죠 ㅎㅎ 심심하시면 강독이나 나오셈. ㅋㅋ (무슨.. ‘교회 나오세요’ 하는 것 같으네;;; 하긴 뭐, 크게 다를 건 없지..)

      • okcom says:

        예… 심심이라… 요즘 주변에서 저를 촘 불쌍히 여기는 분위긴데 공쌤은 제 상태의 본질을 잘 파악하셨군요ㅋㅋㅋ 요즘 제가 풀이 꺾인 것만은 확실하여 자아성찰과 자기비판을 해보고 다음 주부터의 일정을 고려해보겠습니다ㅎㅎ

        • EM says:

          ㅎㅎ 뭐, 본디 당사자가 가장 무덤덤한 법이니.. :)
          네, 근데 담주부턴 장소가 바뀔듯도 한데, 만약 바뀐다면 알려드릴게요. 힘냅시당! ㅎㅎ

  4. 알라~ says:

    어머 우리집에 있는 웨지우드 ㅎㅎ. 경제학 이야기보다 우리집 예쁜 그릇들에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만 드네욤~. 그나저나 웨지우드가 이런 기업이었다니 정말 흥미진진!!

    • EM says:

      웨지우드 예쁘죠?!! 전에는 몰랐는데, 런던에 있으면서 예쁜 식기의 세계에 아주조금 눈을 떴답니다. 온갖 못된 버릇만 잔뜩 들여서 왔어요 ㅠㅜ

    • H says:

      영국 여성들이 거의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예전에 누군가 영국 여성에게는 웨지우드를 선물한다면 된다고해서 그게 뭔가 했더니 그릇 브랜드더라구요 ㅎㅎ

  5. D4ILYBR34D says:

    지지난 학기 수강했던 ‘라이프 스타일 연구”에서 웨지우드사에 마케팅 기법 부분 읽고 감탄을 금치 못했었는데.. 다윈의 외할아버지에 다윈 와이프도 웨지우드 쪽이었다니 놀랍네요. 영국에 있을때 한인 아줌마들이 날 정해서 다 같이 중부 어딘가에 있는 웨지우드, 포트메리온 공장에 원정을 가곤 하셨던게 기억납니다. 사용하는데는 전혀 지장없지만 약간의 흠이 있는 판매불가 B품을 거의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대량구매 하러 가는 단체원정 공구같은거였던걸로 기억하는데요. 문득 어제, 현재 제가 머물고 있는 태국 동북부 Khun-Yuam, MaeHongson에 WW2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아름다운 자기들이 생각나네요. 이곳 Khun-Yuam을 포함한 태국 북부는 2차대전 당시 일본제국군의 버마, 인도 진출을 위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합니다.(중간과정 생략, 잘 모름) 인도 까지 먹어보려다가 개 발리고 궤멸당하면서 후퇴하면서 식량이 부족해지니까 일본제국군 고위층이 사용한 고급자기그릇들도 음식과 바꿔 먹었다고 설명되어 있더라구요.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하하하, 공회샘 안뇽~

    • EM says:

      그런 수업이 있군요. 부럽네요 ㅠㅠ
      네, 그런 식의 “공구” 많이들 가시죠. ㅎㅎㅎ 영국에 있으면 다들 할일이 없어서, 그런 활동들이 거의 유일한 낙인 것 같더군요. 그땐 그런게 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그립습니다 ㅋ 바름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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