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가격, 공정한 소비: 커피값 논란(?)에 대해

요즘에 커피값 때문에 말들이 많은가보다. 뉴스를 잘 보지 않아 몰랐는데, 텔레비전에서도 보도되었나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값을 올렸나? 잘 모르겠다. 이런 문제와 관련, 다음 기사가 무척 재밌다. 요즘 내가 얼마뒤에 발표를 해야 해서 글을 하나 쓰고 있는데, 그거랑도 관련이 되어, 짬이 별로 없지만 간단하게 한번 써본다.

기사: [왜냐면] ‘반값’ 커피 아닌 ‘제값’ 커피가 필요하다 / 박효원 아름다운가게 공정무역사업처 간사 (링크)

전반적인 문제제기—커피가 당신 손에 쥐어지기까지 고생하는 사람들 많다,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에는 대체로 상식 선에서 동의하나 결론은 물론 추론방식이 좀 이상하다. 아니, 웃기다.

1. 글쓴이가 말하는 ‘반값 커피’를 주장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값 커피’를 주장한다는 게 좀 이상하다.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커피값을 올려야 한다는 말인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처음엔 커피값 올리는 게 부당하다고 말하는 듯 하더니, 뒤에 가서는 올려야 한다니 이상하다.

2. 문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기업의 이윤(추구행위)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즉 기업의 이윤에 대해 묻지를 않으니, 결론은 ‘제값 커피’, 즉 ‘커피 가격을 올리자’, 좀 더 노골적으로는 ‘힘없는 제3세계 농부들이랑 커피숍 알바들을 위해 우리가 돈 더 내자’가 될 수밖에. 그렇다면 글쓴이는 ‘알바생 처우개선’이라는 조건만 붙는다면 스타벅스 커피값 인상에 동의한다는 얘긴가?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이 일갈하실 분도 계시겠다. “아름다운 가게? 마, 니네 알바생한테나 돈 제대로 줘!” 라고.)

그러니까, 이를테면, ‘기업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현재 구조상, 농부들이랑 알바생들한테도 돈 더 주고, 동시에 소비자가격도 낮출 수 있다. 당장 시행하라’라고 왜 말 못하나? 후달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업의 이윤(추구행위)에 대한 긍정은 다음과 같은 글쓴이의 문제제기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 . . 대기업이 부당하게 너무 많은 이득을 가져간다는 사회적인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반값으로 커피를 마시면 그것이 해결책일까?

3. 이게 대체 무슨 심뽀일까? 말이 되게 이해를 해보면 이런 논리구조가 깔려있는 거다. (1) 기업의 이윤추구행위는 자본주의에서 정당한 거다. 그러니 큰 잘못만 없다면 그들의 행위를 인정하자. (2) 하지만 스타벅스 등은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커피농부들이랑 알바생들한테 ‘제값’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3) 따라서 이들에게 ‘제값’을 지불해야 한다. 모든 것이 ‘제값’만 지불받는다면 아무 문제 없는거다.

‘제값’이라! 대체 커피전문점 알바생의 제값은 얼마일까? (이봐요, 글쓴이. 당신의 ‘제값’은 얼마요? — 그렇다고 ‘shindan’한테 물어보진 마시고…) 자본의 ‘제값’은 이윤이고, 알바생의 ‘제값’은 임금이다. 그러니 위 저자는 자못 진지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가가 정당한 이윤을 챙기듯이, 알바생도 그렇게 취급받아야 한다.” 정당한 이윤과 정당한 임금! 마르크스라면, {깡디드}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비꼬았을 것이다: “가능한 최고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최선의 상태에 있다!”

4. 글쓴이는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대해서도 말한다. 다음과 같이.

커피 위기가 지나간 지금도 주요 생산지인 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저개발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무역이 양국을 모두 부유하게 만든다는 ‘비교우위론’은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세계 27억명 인구에게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여기엔 비교우위론에 대한 짙은 오해가 깔려있다. 비교우위론은 무역은 거래당사국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준다는 이론이 아니다. 즉 ‘부유하게’가 아니라 ‘전보다 더’ 또는 ‘거래하지 않을 때보다 더 부유하게’다. 따라서 위와 같은 글쓴이의 비판을 만약 자유무역 옹호론자들이 본다면, “그래서 커피무역을 하지 말자는 얘기냐”라고 받아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가 비교우위론을 부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사실상 다음과 같이 넌지시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커피농부들이 ‘제값’만 지불받는다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상호번영’이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제값’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기업은 오직 자기들의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되어있으므로—그것은 나쁠 것이 없다—우리 소비자들이 나서서 값을 더 쳐주자!”

5. 하지만 문제는 비교우위가 존재하느냐 여부가 아니다. 이 문제는 좀 복잡한데… 그냥 지금은 간단하게만 언급한다. 많은 이들에게 놀라운 얘길지 모르겠는데, 마르크스는 오히려 비교우위, 좀 더 일반적으로는 ‘무역의 이득'(gains from trade)을 인정하는 입장이다(사실 뭐, ‘입장’이랄 것까지도 없다). 다만 그는, 그것은 오직 사용가치적 측면에서의 이득일뿐이고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교환은 그저 등가물끼리의 교환일 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여기서 문제는, 자본주의적 국제무역, 좀 더 일반적으로는 자본의 범지구적 운동이 지구상의 특정 지역들을 ‘커피재배지’로 영구적으로 고착화시킨다는 데 있다. 그는 이미 젊은 시절에 {자유무역에 관한 연설}(1848년)에서, 서인도 지역을 전세계를 위한 커피와 설탕농장으로 만들어놓은 자본주의의 만행을 고발한 바 있다.

여러분들은 커피와 설탕이 서인도제도의 자연스런 운명이라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두 세기 전만 해도, 당시까지만 해도 상업에 대해선 신경쓸 필요도 없었던 자연은, 사탕수수도 커피나무도 그곳에 심지 않았습니다.

이제 커피의 원산지가 아프리카/중동이라는 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은 그랬던 커피가 왜 지금은 브라질과 같은 중남미에서 집중재배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커피(값)의 문제엔,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사와 구조 그 자체가 깃들어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으면, 문제는 결코 제기된 게 아니다.

6. 간단히 요약하자. “커피값 논란의 원인은 자본주의라고, 구조라고, 착취라고, 왜 말 못해!” 이와 관련해 문득 다음 글이 생각나 걸어둔다.

“소비”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트 피자” 논란에 부쳐 (2010년 10월 1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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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공정한 가격, 공정한 소비: 커피값 논란(?)에 대해

  1. 제가 몇 년 전인가 장문의 이메일로 공정무역에 대해 물었다가 씹혔던 던=ㅅ= 이 글로 답변을 받는 셈이 되었네염… 당시의 고민도 지금의 고민도 별로 차이가 없는뎅… 그래서 막상 물건을 떼다 파는 나같은 입장에서 맴이 복잡다단하구 말예여… ㅜㅜ 몇 년간 고민한 주젠데 발전이 없네영 그냥 암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이 수준… =_=

    1. 실제로 일개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제한되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태를 딱 거기까지만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죠. 개인으로서야 착취에 대해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착취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 그야말로 정신머리가 틀려먹은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한편 이러한 인식의 협소함은, “일개 소비자로서”가 아닌 좀 더 큰 단위에서의 실천을 고민할 때 극명히 드러납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큰 단체를 대표해서 중앙일간지에 실린 글에서 이런 정도의 인식밖에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해야겠죠. 그리고 이 글에서 나타난 인식수준은, 그런 단체가 대표하는 사회집단의 표준적인 인식수준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겠고요…

  2.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에 한 번 수업 들었던 김민재 학생입니다.

    작년에 제가 다니는 학교 수업에서 한살림 활동가가 오셔서 생협 강연하신 게 기억납니다. 아무래도 학생들 앞이라 참 부드럽게 설명해주셨는데, 요는 생협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동체라는 걸 알게 되고 둘 다 윈윈하니까 소비할 때 생각 좀 하고 소비하라는 거였던 것 같아요. 저는 기업이 결국 다 해먹어서 문제 아니냐 뭐 이런 질문을 드렸던 것 같은데, 그 날 조별토의는 좋은 게 좋은 거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식으로 끝났었죠. 자신을 소비자로 제한하고 자신의 최선이 ‘착한 소비’에서 그친다면 적어도 그 한계를 알고 윤리적 소비 뭐 이런 영업용 이름은 좀 자제하면 좋겠어요. 그런데 한계를 깨닫도록 공부하면 좋을텐데 게으르게 공부하지 않는 제가 이런 댓글을 쓸 자격이 없네요.

    그리고 제가 원래 음식에 정신 못차려서 애인보다 음식을 더 좋아한다고 핀잔을 듣고는 하지만, 전에 카레만 열심히 먹은 건 쑥스러워서지 선생님 말씀보다 음식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ㅠ

    1. 아항.. ‘자비’님이 민재씨였군요! 최근에 디아블로에 대해 쓰신 글은, 무슨 얘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좌절했었는데… ㅎㅎ

      넹.. 개인적으론 생협 같은 거, 그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기만 한다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위 글은 그마저도 아니라.. ㅎㅎ 함께 고민해 봅니다. ^^

      근데 애인보다 음식이 좋다면, 예의상으로라도 저는 그 둘 아래 있어야죠?! 언제 또 만나서 맛난거 먹읍시다. 월요일에 저랑 같이 송도에 간다면, 호텔부페를 사드릴텐데요.. ㅎㅎ 아참, 그리고, 오늘 홉스봄 평전 출간기념 토크하는데.. 시간되심 오세요 ^^

        1. 왜 송도 오실라고요? 오시면 당연히 쏩니다. 호/텔/부/페
          참고로, 명목상은 샐러드부페라, 채식, 가능합니다 ㅎㅎ

  3. 제 논문에 도움을 주시려고 이런 글까지 써주시고 굽실굽실.. 저도 저 기사보고 너무 재밌어서 본문에 추가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박원순에 탄력받고 최근 공정무역운동진영에서 공적 발표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저 기사의 특이점은 알바생까지 논의에 포함시켰다는 건데 주장이 더 이상해졌죠. ‘기업-소비자’의 구도(이른바 반값커피 제안)에서 ‘원자재생산자-기업-소비자’의 구도(제값커피?!)로 나아가자는 건데 두 구도에 별로 차이점이 없으니까요. 소비자를 주구장창 주장하고 있으니 최종소비자가 얘기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하여간 재밌습니다.
    그리고 5번에 써주신 내용도 참 중요한데 운동 내에서는 전혀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커피농사가 거의 보호받아야 할 토착문화!처럼 처리되고 있는데, 이왕 시작한 농사로 재미 좀 보자는 주장에도 나름 일리가 있으나, 대안체제를 주장한다는 사회운동에서 역사적 토대를 저렇게나 무시하고 있다면 심각하지요. 사실 식민지작물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지만 단일수출작물에 대한 이의는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주요단체에서는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 이런저런 경제통치기구에서 벌써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내용의 반론을 내놓았더라구요. 예… 그렇습니다…… 각자 최선을 다하자는 거져.

    1. 무슨 말씀이셈.. 저야말로 사실은 okcom님한테 좋은 말씀을 좀 들을까 해서 용기를 내어 쓴건데요;;; 박우너순 덕분에 살판난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그 덕분에 눈물흘리는 사람도 많은거 같네요. 박원순의 한계이자 인물정치의 한계겠죠. 어쩌면, 바로 그런 까닭에, 챙길수있을 때 확실히 챙겨두는 게 장땡일 수도 있겠습니다. 덕분에 공정무역은 이제 기업의 마케팅에도 등장하는 상투문구가 된 거겠고요. 비판자들은 이를 두고 ‘공정무역의 한계’를 부르짖겠지만, 옹호자들은 그러한 공정무역의 일반화가 자신들의 운동성과라고 광고할테죠..
      끄응…

  4. 제값이라는 것이 결국 그 가치에 해당하는 가격일텐데, 제값을 받더라도 여전히 착취는 남는다는 문제가. 그나마 제값을 못받는 경우도 있으니 제값을 받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제값, 공정함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가치생산 자체가 문제인데, 어떤 노동/활동이 비생산적 노동이라는 주장을 하면, 그래서 가치도 생산 못하는 노동/활동으로 비하하는 것이 아니냐는 류의 (뭐 꼭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지만요) 주장들도 안타깝구요. 노동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극복되어야만 하는 현실인데 말이죠.

    1. 맞습니다. 그런데 그 ‘제값’이라는 것을 저분들이 강조하고 있다는 게 무척 재밌는 것이기도 해요. 사실은 저는, 그 ‘제값’이라는 문제가 논쟁을 위한 좋은 진입점(entry point)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을 중심으로 제대로 논쟁이 붙으면, 결국 이야기가 생산, 착취 등의 문제로 옮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도 ‘제값’이라는 말 속에 담긴 어정쩡함 안에 그대로 머물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깨고 나갈 것이냐 하는 선택을 강요받을테지요.

      비슷한 예가 독점인데… 요즘 독점기업의 횡포가 사회적으로 도마에 올라 있잖아요. 얼마전 우연히 라디오던가에서 들으니, 한겨레경제연구소 사람이 나와서 독점기업이 가져가는 이윤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군요. 물론 그분은 여기까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사실상 그 얘긴 자본주의와 착취를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잖아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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