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기본 전제: 이윤율의 경우

김성구 교수께서 <참세상>에 글을 쓰셨다. 매우 당연한 얘긴데…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아, 상식을 피터지게 설명해줘야 하는 세상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링크: 자본 물신성에 사로잡힌 이윤율 실증분석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부분. 김성구 교수가 불쌍할 정도. 하지만 선생님이라도 이리 해주셔야 후학들이 앞으로 나아가죠… ^^

“마르크스의 이윤(율) 개념에서는 이윤율 공식에서 나타나는 양적 관계뿐 아니라, 그 공식을 통해 착취의 본질적 관계가 왜곡된다는 질적인 문제지적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윤(율)이라는 게 총유통과정에서의 잉여가치(율)의 전화된 형태인데도, 이윤(율)이라는 개념에서 이윤(율)은 가변자본 즉 착취로부터 생산된 것이 아니라 총자본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자본물신성이 지배한다.”

최근 류동민 교수가 피케티의 자본수익률 개념이 마르크스의 이윤율 개념이랑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위 사항을 무시한 처사임.

마찬가지 논리로… 이윤율을 자본가가 생각하는 이윤율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말도 안 됨. 왜? 마르크스가 경제학 비판을 한 까닭은.. 기존의 경제학이 바로 그러한 “자본가의 의식”에 투영된 형태로 경제현상을 분석했기 때문. 문제는 저들의 의식 배후에서, 그러나 그 의식과 정반대로 작동하는 물적 흐름을 보는 것이죠.

끝으로…

“이들에 대한 내 비판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연구에서 그나마 이런 실증분석도 없는 게 문제라 할 게 아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혼동을 주는 분석은 오히려 없는 게 더 나은 것이다. 그래서 폴리와 뒤메닐, 브레너 등의 문헌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연구자들이 이제 이들을 따라 자본주의의 역사와 동학을 왜곡하는 작업은 청산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 여기까지 기본으로 깔고…

이제부터 김성구 교수와 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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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논쟁의 기본 전제: 이윤율의 경우

  1. 윤소영이나 정성진이 굳이 마르크스와 다른 방식으로 이윤율을 계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지 무지나 착각의 소산인지.. 아니면 나름의 현실적 필요가 있어서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김성구 선생님 등 다른 분들이 마르크스의 방식에 입각해서 계산한 이윤율의 궤적이 있는지.. 그것으로도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이 드러나는지도 궁금합니다.

    앞선 두 분의 글과 책에도 의지를 해왔는데 이런 경우 참 당혹스럽습니다. ;; 초보자가 길잡이로 삼을 만한 개론서와 이후의 전문서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1. 안녕하세요 ^^ “초보자”가 아니신 것 같은데요? 윤소영, 정성진 선생들의 작업에 의지하실 정도라면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말 초보자시라면, 그런 분들 저작까지 보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김성구 선생도 그렇고요.

      암튼.. 마르크스와 다른 방식으로 이윤율을 계산하는 까닭은 마르크스의 방식대로 하면 이윤율을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계산해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다만 그러한 계산을 실행하는 이들은.. 현존하는 자료를 나름대로 가공해서 마르크스의 의미에 최대한 가깝게 가져가려고 노력은 저마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마르크스를 오해해서 마르크스와 다른 방식의 이윤율 개념을 내세웠다고 말하는 건 가혹할 수도 있지요.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꾸역꾸역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은 그들 나름의 “현실적 필요”를 반영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현실적 필요”이냐가 중요하겠네요.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이윤율을 자본주의 경제의 전반적인 활력의 지표로 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윤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이 체제가 활력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것이고, 반대로 그것이 오른다면 새로운 활력을 부여받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마르크스에게 이윤율이란 오로지 그런 의미였던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선 김성구 선생께서 잘 지적해 놓으셨네요. 위에 저의 코멘트도 있고요. 즉 이윤율이란.. 단순한 하나의 “평균값”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숫자가 아니예요.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복잡한 인간관계… 그것을 봐야 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즉 마르크스가 일련의 지난한 논의과정을 거쳐 자본론 제3권 중반에 가서 이윤율 개념을 딱 내놓았을 때, 거기엔 그 이전의 모든 과정들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윤율을 그냥 “숫자”로 받아들여서는 그것을 “계산한다”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그 어떤 “추세”를 발견해도 그렇고요.

      참고할 수 있는 저작은 < 자본론> 제3권 제3편을 추천합니다.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여기를 읽어보세요. 혹 더 필요하시다면, Ben Fine의 저작을 추천합니다. 국내엔 크게 두 종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 현대 정치경제학 입문>(한울)과 < 마르크스의 자본론>(책갈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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