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1)

1. 어림잡아 지난 2008년 이래, 그러니까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범지구적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실은 나 자신도 예전에 진보 불로그 시절에 그런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과연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비슷한 맥락에서, 이른바 “제3의 길”(the third way)은 끝났는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sation)은 끝났는가 등등의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그것들에 “제대로”, “의미있게” 답하기 위해서는, 이런 단순한 질문들이 대개 그렇듯, 그에 앞서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다른 질문들을 다루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위 질문들은,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일정한 답변을 전제한다. 그러나 내가 아래서 밝힐 것이듯이, 이 후자의 질문에 진지하게 접근하다 보면,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것 자체가 매우 의심스러운 것으로 판명날 것이고, 따라서 그것의 종말을 “논한다는 것” 자체–그러니까 그것이 “종말했느냐 여부”가 아니라–가 잘못된 문제설정일 수도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2.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각국 정부들이 추구하는 일종의 “정책 패러다임”인가, 또는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자본주의 발달을 표현하는 하나의 “시기”인가?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종말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대개 (이런 질문들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자의적으로 규정한 채 논의를 진행시키곤 한다.

최근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나 “정책 패러다임”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앞서 지적했듯, 이 둘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좋다. 기본적으로 나는,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그런 측면에서 시작해볼 수 있겠다. 신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 또는 “정책 패러다임”으로 본다고 할 때,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 뭐 크게 어렵진 않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란 곧 “시장 만능주의”라고 요약할 수 있겠고, “정책”이란 그런 이데올로기의 구체화로서, 기본적으로는 경제정책이지만, 필연적으로 제반 사회정책들을 두루 포괄할 것이다. 이를테면 국가의 경제개입 최소화, 자본시장 자유화, 국영기업 및 공기업 민영화, 금융산업 육성 등은 물론 복지 축소, 이민자에 대한 배척 등도 거기에 포함되겠다. 이들 중 몇몇은 우리도 1997년 이른바 “IMF 체제” 이후 매우 생생하게 경험해왔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더라도, 그 시작을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로 잡는다는 데서는 논자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이렇게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정책이라고 정의할 때, 우리는 커다란 어려움 없이, 그러니까 직관적인 수준에서도, 그것의 “시기구분”(periodisation)을 개략적으로 할 수도 있다.

(1) 신자유주의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 미국이나 영국 등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범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열을 올렸던 미국을 가지고 말한다면, 대체로 레이건에서 아버지 부시로 이어지는 기간을 “신자유주의 1기”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내지는 “쌔처리즘”(Thatcherism)이라 불리는 경제 및 사회 전반에 걸친 “신보수주의적 (반anti)개혁”의 기조가 주도권을 행사하던 시기다. 영국을 비롯한 이른바 “제1세계”에서, 그 이전 시기에 있었던 사회의 다양한 자원들의 사회화/국유화 행진은 완전히 뒤집혔고, 대신 거대한 민영화의 흐름이 뒤따랐다. 오랜 노력 끝에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확립한 교육이나 의료 등도 다시 다른 상품들과 다름없게 취급되기 시작했다. 경제나 사회 전반에 걸친 정부의 광범위한 역할도 축소되었다. 첨언하자면,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줄잡아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그런대로 잘 작동해오던 이른바 “케인스주의적 모델”(Keynesian model)이 1970년대 들어 심각한 위기를 맞아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이건 누구나 다 하는 얘기),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렇게 긴 기간동안 (케인스주의에 의해서건 다른 무엇에 의해서건) 별 탈 없이 경제가 운영되었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자신감”–즉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다시 “대공황”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의 표현이기도 하다(이건 잘 안 하는 얘기).

(2) 다시 미국을 대상으로 했을 때, 부시에서 클린턴으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신자유주의 2기”는 시작된다(영국의 경우엔 1997년 “New Labour”가 승리한 것을 전환계기로 삼을 수 있겠다). 어차피 신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 내지는 “정책 패러다임”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정권을 잡은 주체가 어디냐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어쨌든 이 기간에 신자유주의는 (미국/영국 내에서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었느냐와는 별도로) 전세계로 적극적으로 수출된다. 물론 그것이 이때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하여간 김영삼 정권이 (1993년부터) 적극적으로 홍보했던 “세계화”라는 것도 한편으론 이런 범지구적 운동의 산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범지구적 확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남미, 동아시아 등지에서 벌어졌던 1990년대 중반의 이른바 “금융통화위기”다. 위기의 원인이 이들 지역의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은 경제구조에 돌려졌고, 그 결과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만이 그와 같은 위기를 다시 겪지 않는 길이라는 “정책 처방”이 (특히 IMF나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내려졌기 때문이다.

(사족을 하나만 더 붙여보자.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초중반 진행되었던 (김영삼의) “세계화”나 (김우중의) “세계경영” 등을 반드시 “신자유주의”하고만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거기엔, 냉전의 종식 및 구공산권(러시아, 동유럽)의 개혁/개방이라는 조금은 다른 사정도 개입된다. 그런 면에서, 이를테면 “세계경영”은 “신자유주의”보다는 “골드러시”에 가까운 성격이 있다.)

(3)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쩌면 “신자유주의 3기”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른 무엇의 1기”일지도 모를 시기를 살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2008년 본격적인 위기발발 이후, 그간 선진국들이 옹호했던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및 “정책 패러다임”은 바로 그 선진국들에 의해 부정당하고 있다. 국가는 경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바로 그 원칙을, 선진 각국의 정부들은 자신들의 실패한 금융시스템을 살리기 위해 저버리고 있다. 그 개입의 정도는 정말로 아찔할 정도다. 다른 한편 그러는 과정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케인스(J.M. Keynes)가 불려들여지고 있고, 갑자기 칼레츠키(M. Kalecki)나 민스키(H. Minsky) 등이 우리나라에 번역되고 있으며, 폴라니(K. Polanyi)가 (심지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추앙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최근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운위되는 것도 바로 이런 모순적인 상황전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뭔가 “천지개벽”과 같은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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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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