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지침에서 드러나는 자본과 국가의 공모

다음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기관지 <질라라비>의 2016년 3월호 ‘특집’에 기고한 글이다. 솔직히 이 잡지가 매월 나온다는 것을 몰랐다. 많은 분들께서 정기구독도 해주시고, 철폐연대의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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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대지침에서 드러나는 자본과 국가의 공모
글쓴이: 김공회

‘양대지침’이란 해고요건과 취업규칙 변경요건을 완화시키는 내용을 담은 고용노동부의 두 가지 행정지침을 가리킨다. 정부는 이를 각각 ‘공정인사 지침’, ‘취업규칙 지침’이라고 이름 붙였다. 원래 이 요건들은 법률(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 이번 행정지침이 위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게 그래서다. 현재 박근혜 정부가 공공・노동・금융・교육 등에 대한 4대 개혁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두는 동시에 이 중에서 노동개혁을 가장 앞세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동개혁’ 기치를 걸고 애초 정부는 근로기준법 등 5개 법률에 대한 개정을 추진했으나 국회에서 막혀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양대지침을 먼저 내놓은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자신들의 ‘개혁’ 완수를 위해 앞으로도 법률 개정에 더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경제상황: 이제 기업과 정부가 답할 차례

이번 양대지침은 무엇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된 ‘노동자 쥐어짜기’의 연장선에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개방화・자유화에 따라 한층 격화된 경쟁에 내던져진 자본은 수익성 압박을 만회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정교하게 노동자 계급을 밀어붙여 왔다. 지난 20년 동안 자본은 임금체계 개편과 해고요건 완화, 그리고 생산관계 내에서 노동자를 억압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조금씩 진행시켜 법적・제도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둬냈고, 이번 양대지침은 이러한 흐름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이미 바짝 마른 걸레 신세가 된 노동자에게서 더 뽑아낼 것이 있을까? 1997년 외환・금융공황 이후 지속된 경제위기 국면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희생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소득불평등과 그보다 더한 자산불평등에 대해서는 우파 성향 학자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는 실정이고,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2008~2012년)에는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실질임금이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으며, 그 결과 매년 국내소비가 기대에 크게 못미쳐 경제성장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수출마저 어려운 상황이니, 경제성장은 가계빚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노동자들을 헐벗기는 동안 기업들은 돈을 긁어모았다. 국민소득의 노동자-기업 간 분배를 보면, 1996년에서 2012년 사이에 13~15%포인트 가량이 기업 쪽으로 옮겨갔고, 몇몇 재벌대기업들의 수익은 사상 최대치를 매년 경신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엄청난 액수의 사내유보금을 축적했다. 사내유보금은 이를 규제하는 법규정이 사라진 2001년 이후 가파르게 증가해 작년 1분기말 기준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710조원에 이르고 있다. 사내유보금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경우 그것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하청 계열기업에 대한 수탈을 강화한 결과물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업이 노동자와 대중을 수탈해 살이 찌기는 했지만 그것이 국민경제 전체의 성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경제는 경제의 성장엔진이 멎었다고 할만큼 어려운 상황이니 말이다. 특히 그간 우리가 의존해왔던 세계시장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중은 헐벗어 내수가 죽었고, 그리하여 기업들도 몇몇 대기업을 빼면 모두 비실비실한 상태이다. 기업은 돈을 벌어도 투자하지 않으며, 그나마 잘 나간다는 대기업들도 총수의 사생활 문제로 시끄러운 에스케이(SK), 20대 새내기 직원에 희망퇴직을 강요한 두산, 각종 비리에 연루돼 휘청이는 포스코 등의 최근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정부는 어떠한가? 극도로 저하된 대중의 활력과 기업의 생산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2013년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그러한 역할을 방기한 채 모든 경제이슈들을 정치쟁점화 하는 데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복지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대중의 활력을 높이고 노동력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야할 책임(복지국가), 총수 일가 중심인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를 혁파해 생산력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책임(경제민주화)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특히 경제침체의 비용이 국가로 집중되고 있는데도 증세 등 재정기반 확충에는 노력을 소홀히 한 덕분에, 정부의 부채만 치솟고 있다.

요컨대 지금 우리 경제의 생존을 위해서는 ‘노동자가 더 양보해달라’라는 요구보다는 ‘노동자가 그렇게 양보해 왔는데 왜 이 모양인가’라는 질문이 더 긴요하다. 기업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은 강력한 노조나 높은 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기업과 정부가 답할 차례다.

양대지침의 노림수: 경제위기 책임의 전가

사정이 이렇다 해도, 생산과정에서 주도권을 더 확실히 쥐고 노동자를 더 철저하게 통제하며 임금을 최대한 낮추는 것은 자본의 본성이다. 특히 양대지침은 노동자 계급 중에서 그간 상대적으로 ‘덜 공격받았던’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다.

자본과 노동 간의 관계를 채용-고용-해고 등 세 단계로 나누어 보자.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말 노동자 대투쟁 이후 줄곧 자본은 각 단계에서 더 많은 자율권을 행사하고 노동자를 통제・억압하고자 진력을 다해왔다. 특히 채용 단계에서의 성과가 가장 두드러진다. 이미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은 물론 각종 변칙적인 채용관행이 우리 경제에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노동자를 채용한 뒤에는 각종 법률과 노사간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의해 자본이 노동자를 다루기가 상대적으로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채용 단계에서 정규직의 문턱을 높이는 것은 자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결과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비정규직의 비율이 한때 56.6%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고, 지금도 이 비율은 45%에 이르고 있다. 즉 [그림]에서 C~D 유형의 노동자가 전체 취업자의 절반인 것이다. 만약 여기에 사실상의 임노동자나 마찬가지인 일부 자영업자까지 포함시키면 위 수치는 크게 오를 것이다(지난해 기준 총 취업자 2천6백만명 가운데 고용원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가 500만명에 이른다).

그림2

이에 비해 이번 양대지침은 채용 이후의 단계, 즉 고용과 해고 단계에서 자본의 입지를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노동자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이라 해도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등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사실상 근로기준법의 보호권 바깥에 있다. 따라서 양대지침은 [그림]의 A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만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로부터 기업이 거두는 이득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고령노동자 고용과 해고에 따른 비용을 크게 줄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는 징계해고와 정리해고만이 인정되기 때문에, 기업들이 노동자를 회사에서 내보내기 위해서는 거액의 ‘위로금’을 쥐어주고 ‘자진퇴직’의 형태를 취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일반해고’가 도입되면 누구든지 ‘저성과자’로 분류되면 해고될 수 있다. 이는 적법한 해고이므로 기업은 노동자에게 ‘위로금’을 줄 필요도 없다. 은수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현재 명예・희망퇴직자가 한해 90만명이고 이들에게 나가는 ‘위로금’이 수십조원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또한 한국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하에서 고령자를 계속해서 고용하려면 젊은층에 비해 임금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으므로,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로 기업이 쉽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노무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이해관계 말고도 양대지침은 노동자 계급의 최상층을 공격하는 ‘무기’라는 점에서 커다란 정치적 의의도 있다. 특히 이번 양대지침이 정부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관철되지 않을 때조차도 정부는 일정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 계급의 비협조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양대지침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자본은 뒤로 슬쩍 빠져있는 반면,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노동자들과 직접 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애초 전경련의 ‘건의사항’ 중 하나였을 뿐인 이 문제를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정치쟁점으로 증폭시키고 임금체계 개편 등에 협조의사를 밝힌 바 있는 양대노총을 애써 자극하고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끌고간 데서 어떤 ‘정치적 의도’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저성과자와 임금피크제, 그리고 국가

그런데 대한민국 국가가 이번 양대지침을 통해 벗어던지고자 하는 책임은 비단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지금 한국경제는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고, 여기엔 국가가 종전보다 더 적극적인 경제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야 할 책임을 이번 양대지침 발표를 통해 회피하고 있음을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 책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노동력 관리다. 이제껏 노동력은 대체로 개별 기업과 가계 단위에서 관리되어 왔다. 그러나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직원을 한번 채용하면 끝까지 데리고 가는 식의 기존 모형은 오늘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 양질의 인력육성 책임을 개별 가계에 맡기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비용도 크다. 그야말로 ‘요람’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그래서 안정적으로 사람을 키워내지 않으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처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노동자를 그 적성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하고, 부적절하게 배치되었을 때는 신속한 재배치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일하는 동안 노동자는 양육・노후・건강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최상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유능하고 적극적인 국가를 요구한다.

사실 ‘저성과자’는 노동자 계급 입장에서도 문제다. 자본과 지배계급들은 노동자의 ‘저성과’를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그를 ‘저성과자’라고 낙인찍지만, 좌파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사회와 경제체제의 문제이며, 자본주의 하에서 필연적인 ‘소외’의 문제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자가 주어진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아 더 많은 소외를 겪고, 그래서 생산성이 떨어진다면, 노조는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문제삼고 국가와 사회에 대해 그 해결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통해 도입하려고 한다는 ‘임금피크제’도 그렇다. 노동자 입장에서 연공서열제를 각별히 선호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노동력과 삶의 재생산이 한 개인과 가계에 맡겨져 있는 시스템에 적합한 임금체계일 뿐이다.

결국 이번 양대지침은 그 자체로만 보면 노동력 관리의 책임을 개별적인 가계・기업에서 국가로 돌리는 과정상의 한 절차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의 논의 속에서는 기업의 책임부담 완화만이 이야기될 뿐, 그에 따른 부담을 국가가 얼마나 잘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좀처럼 화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종전에는 기업이 거액의 ‘위로금’을 주면서 자진 퇴직시켰던 노동자가 이번 양대지침 하에서 ‘일반해고’로 되었을 때, 기업은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겠지만 이 노동자는 이제 실업급여 수급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국가의 부담이 급격히 커질 것이다. 기업밖 숙련・인력배치 프로그램도 더 강화되어야 하고 여기에도 큰 비용이 든다. 임금피크제도 마찬가지다. 그간 고령노동자의 고임금이 얼마간 떠맡았던 복지 기능을 국가가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이 문제의 원인은 인구 노령화다. 노동자의 임금은 생애 총액으로 보았을 때, 20~60세에 벌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만약 종전의 임금수준 산출의 기준이 평균수명 70세였고 이제 이 수명이 80세로 늘어났다면, 당연히 삶의 재생산 비용 총액이 커질 것이다. 과연 그 증가분을 누가 댈 것인가? 사실은 최근 이슈가 된 바 있는 국민연금 논란의 본질도 바로 이것이다. 보험요율을 올리거나 수급액을 낮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양대지침을 둘러싸고서는 노동자, 기업, 정부 중에서 무엇보다 기업과 정부 간의 이해관계 대립이 가장 두드러져야 마땅하다. 실제로 ‘IMF 체제’로 돌입한 직후인 1998년 3월 전경련은 ‘여성고용으로 인한 추가부담’이라는 표제 아래 산전후휴가, 생리휴가, 직장보육시설, 수유시간 등에 따른 노동시간 손실 등을 꼽으며, 이를 정부가 부담하지 않으면 고용과정에서 여성을 남성과 평등하게 취급할 수 없다고 당시 막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이러한 이해관계 대립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 것은, 현재의 보수정권과 자본가 계급 간에 일정한 ‘사전조율’이 세심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비단 이번 사안뿐 아니라 일반적인 차원에서 복지제도의 적극적 도입을 꺼리고 있고, 이에 필요한 증세에도 매우 소극적인 입장이다. 물론 증세가 이뤄진다면 그 형태가 어떻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자본에게 귀착될 것이니, 자본은 정부에 적극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이번 양대지침 사태를 통해 부르주아 정부와 자본 간의 끈끈한 유착을 우리는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양자 모두에 대해 결연히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의 구조적 변화의 방향을 참조하면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조금은 더 커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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