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넘어: ‘사내유보금’ 논의의 일보 전진을 위한 노트

1.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것에 대한 ‘오해’도 다방면으로 커지고 있다. 사내유보금에 문제제기하면서 거기에 세금을 물리자거나 환수하자는 주장들에 대해 많은 비판들이 가해지고 있는데, 나는 이러한 비판들이 너무 편협하고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점은, 사내유보금 문제제기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우파’들만 하는 게 아니라 진보진영에 속하는 적지 않은 세력들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쨌든 유감스럽고 슬픈 일이다. 조금 더 상대방을 이해하고, 유익한 방향으로 이 사회를 이끄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문제제기의 골자는 (가) “기업들이 고용이나 배당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면서 막대한 양의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다”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분석에 따른 실천적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데, (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겨 기업이 임금이나 배당으로 더 많이 분배하도록 하거나 더 많이 투자하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이 그 중 하나이고, (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은 기업들이 그간 노동자들과 하청업체에 ‘제값’을 주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사내유보금을 환수해 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쓰자”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골자는 “사내유보금의 개념도 모르는 소리”라는 거다. 마침 최근에 {조선일보}의 김기천 논설주간의 칼럼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은 바 있는데, 그의 총평은 ‘조롱’에 가깝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시비는 대부분 재무제표에 대한 몰(沒)이해의 결과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거나 “사내유보금을 환수하면 민생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사내유보금을 이유로 야당이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습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위 (가)~(다)에 사내유보금에 대한 일정한 ‘오해’가 담겨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한다’라는 오랜 금언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또한 김 논설주간은 그 ‘오해’가 아주 대단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별것도 아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범하는 다른 종류의 오해(?)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 (가)~(다)에 어떤 오해가 있는지를 보자.

2. 먼저 사내유보금이란 간단히 말하면 매년 기업이 거두는 순이윤(총매출액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 배당금 등을 뺀 순수한 이윤)의 축적분 총량이다. 어떤 기업이 1천원의 초기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해 매년 20%의 이윤을 거둔다고 해보자.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50년 뒤 이 기업의 자본은 무려 9백10만원이 넘게 된다.

사내유보금

물론 이 돈은 보통 생산설비의 형태로 투자되어 있거나 각종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쌓이고 있다”라는 것은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면 (가)는 틀린 말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핵심은 사내유보금이 막대하다는 게 아니고, “기업이 고용, 배당, 투자에 소홀하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용, 배당, 투자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자체로 사내유보금 축적의 결과는 아닐지라도) 사내유보금과 무관한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사내유보금은 축적된 이윤 총량으로서 저량(stock) 개념이지만, 매년 쌓이는 축적분에 주목하면 유량(flow)이기도 하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게 가능하다면, “기업들이 지금까지 쌓은 막대한 이윤(=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을 투자하고는 있긴 하지만, 최근들어 이윤은 많이 거두는데도 고용이나 배당, 투자에는 인색하다”라고 하는 진술도 100% 가능하다. 이상으로부터 (가)를 가다듬으면 다음과 같다:

(가) 기업들이 고용이나 배당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면서 막대한 양의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다.
(가’) 최근들어 이윤축적으로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기업들은 고용, 배당, 투자에는 소홀하다.

3. 기업들이 이윤을 거두면서 고용/배당/투자에 소홀한 것은—어떤 이들은 그게 뭐 잘못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충분히 사회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서, 만약 기업을, 특히 현대의 대법인기업을 단순히 특정인의 소유물이기보다는 사회적 기관으로 본다면, 고용/배당/투자에 쓰지 않을 돈을 기업 안에 묵혀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같은 불황기에는 더더욱 말이다. 기업들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어 투자를 꺼리지만, 사회적으로 투자가 필요없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나)의 주장처럼 세금을 물려 내부유보의 비용을 높임으로써 기업들이 고용/배당/투자에 더 힘쓰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기업이 노동자를 더 고용하거나 기존 노동자에게 임금을 더 주면—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윤이 줄어들 것이고 그에 따라 사내유보금(총량)도 보다 천천히 증가할 것이며, 증가한 소득으로 개인들이 소비를 늘린다면 경기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일정액이 넘는 이윤은 그냥 세금으로 국가에 넘길 수도 있겠다. 국가는 이를 재원으로 개별 기업이 감행하지 않는 사회적 투자를 함으로써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낮춰 결국 기업경쟁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나)는 다음과 같이 교정하면 되겠다.

(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겨 기업이 임금이나 배당으로 더 많이 분배하도록 하거나 더 많이 투자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 매년의 이윤 중 사내유보금으로 쌓이는 부분에 세금을 매겨 기업들이 임금/배당/투자를 늘리거나, 국가의 세수를 늘려 공공투자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내유보금 총액이 아니라 매년의 증가분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고, 실제로 지금 시행중인 ‘기업소득환류세제’도 그렇게 설계돼 있다. 물론 세금을 물리는 데는 찬성해도 그 방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법인세 인상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로서 추후에 전문가들끼리 결정해도 될 사안이다.

4. 한편 어떤 이들은 현행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전체 사내유보금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데 불만을 갖기도 한다. 이런 이들은 사내유보금 총액 중 일부를 아예 ‘환수’하자고까지 주장한다. 바로 (다)의 주장이다. 그러면 여기엔 어떤 오해와 ‘몰이해’가 깃들어 있는가?

앞서 예로 든 그림을 다시 보자. 1960년에 한 자본가가 단돈(?) 1천원을 들여 세운 기업의 규모가 50년 뒤에 무려 9천1백배가 되었다. 마르크스(Karl Marx)에 따르면 이러한 축적분은 모두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로서, 2010년에 기업이 보유한 9,100,438원 중에서 1천원을 뺀 나머지는 몽땅 노동자에게 돌려져야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런 주장을 적어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거니와, (다)와 같은 ‘사내유보금 환수론’도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는 굉장히 ‘개량적인’ 문제제기다.

엄밀히 말해 ‘환수론’은, 기업이 지난 50년간 축적한 총이윤(=사내유보금) 9,100,438원이 ‘정상적인’ 착취에 입각한 것이라면 그것은 기업의 것임을 순순히 인정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노동자에게 마땅히 주었어야 할 임금을 주지 않고 거둔 것이라면, 노동자를 위한 작업안전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아껴서 거둔 것이라면, 하청업체를 후려치고 소비자를 기만하면서 거둔 것이라면, 거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간 이런 ‘부당행위’를 통해 거둔 ‘부당이윤’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환수’가 지금 특히 문제로 되는 까닭은, 이상과 같은 그간 대기업들의 ‘부당행위’의 결과들이 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노동인구 절반에 육박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꿈을 잃었다. ‘초일류’ 대기업에서 직업병으로 수십명이 죽어나가고, 용광로에 빠져 죽고, 지하작업작에 매몰돼 죽고, 떨어져 죽고, 기계에 끼어 죽는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누군가 비용을 내야 한다. 누가 낼 것인가? 당신이 낼 것인가? 결국 ‘환수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환수’는 이미 현행법체계 아래서도 이뤄진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같은 것이 그런 성격이다. 그러니 핵심 쟁점은 ‘환수’ 자체가 적절하냐 여부라기보다는, 환수론자들이 제기하는 저임금 등이 환수의 ‘대상’이 되느냐 여부인 것이다. 자, 우유회사 몇몇이 담합해서 가격을 높여 부당이득을 취하면 아마 당신은 이를 환수의 대상이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공모해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고 사지로 내몰면서 취한 이득은 ‘부당이득’인가? 이를 ‘환수’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법전에 의지해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사회의 양식 수준에 따라, 세력관계의 양상에 따라 결정될 따름이다.

사내유보금은 이미 투자되어 있는데, 이를 어떻게 환수하겠느냐고 대거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 인용한 김기천 논설주간도 그 중 하나다. 나는 묻고 싶다. 그러면 내돈을 훔쳐간 사람이, 또는 빌려간 사람이 “그 돈은 이미 저 차를 사는 데 썼소. 저 차는 내 생활밑천이오”라면서 그의 앞마당에 주차된 포르쉐를 가리키면, 나는 돈을 돌려받길 포기해야 하는가? 공정위가 우유회사에 과징금을 물 때, 그런 사정을 참작하는 게 옳겠는가? 핵심은 ‘책임’이고 ‘비용지불’이다. 그러니 그간 ‘부당행위’로 덕을 본 주체들이 그 비용을 사내유보금으로 하든 다른 무엇으로 하든, 그 책임이행과 비용지불을 요구하는 측이 신경쓸 필요는 없다. 또한, 만약 ‘환수’라는 해법이 마음에 안 들면, 대안을 내놓으면 된다.

5. 이상을 정리하고 약간의 제언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의 상당부분은 ‘축적된 총량’과 ‘신규 축적분’만 제대로 구별해도 풀린다.
둘째, ‘환수론’의 핵심은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그간 기업들이 저지른 ‘부당행위’에 대한 책임이행과 비용지불을 기업이 해야한다는 데 있다.
셋째, 진짜 오해를 하는 것은, 그럼으로써 절박한 사회적 문제제기를 무시하려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넷째, 기업의 본질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데 사내유보금은 괜찮은 ‘entry point’였지만, 본격적인 문제제기에는 사내유보금보다는 ‘이윤’이라는 좀 더 직접적인 형태에 대해 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6. 그밖에 몇 가지…

(1) 이상의 내용을 다음 글로 발표하기도 했다: ‘재벌 ‘사내유보금’ 754조…기업들 사회적 책무 져야’(한겨레, 2016년 6월 3일자).

(2) 위 글의 제목은 다소 misleading하다. 사내유보금 총액이 얼마냐는 것은 나한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와 관련, 흔히 800조원을 넘나든다고 하는 사내유보금을 두고 ‘막대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 수치가 매우 과소추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총 국부가 1경이 넘어가는데, 기업이윤축적총량이 저것밖에 안 된다고? 훗. 아마 전경련 등은 속으로 좋아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사내유보금’ 문제제기의 의의와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문제삼는 진영은 그래서 여기 머물지 말고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3) 역사적으로 보면,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입장은 진보든 보수든 복잡미묘하게 변해왔다. 최근 나는 이에 대해 간략히 훑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한겨레, 2016년 6월 6일자)

(4) 이제까지의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흔히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노동/사회운동 진영이 ‘사내유보금’을 공략하는 것은 운동의 강성의 표현이 아니라 약화의 표현이다. 나름대로 대중적 소구력이 있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문제제기로 역량을 결집해, 좀 더 본질적인 영역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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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오해’를 넘어: ‘사내유보금’ 논의의 일보 전진을 위한 노트

  1. 말도안된다.. 왜냐.. 사내유보금으로 회사건물을 샀다고 하면.. 어찌하냐?
    직원들 월급은 고정으로 나가야하는데.. 이중적으로 세금을 과세하는 꼴이 되지 않느냐?

    법인세를 내고 남은돈이 잉여금인데…. 그 잉여금에 또 과세를 하는것은 돈을 더 벌지 말아라는 소리랑 같지 않나?

    다 써라는 소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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