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독립성의 두 가지 의미

요즘 중앙은행 독립성 가지고 말이 많다. 여기서 하나 재밌는 것은, 전통적으로는 ‘진보’에 속하는 이들이 이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반면 요즘엔 오히려 진보진영의 인사들도 중앙은행 독립성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즉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중앙은행은 ‘독립성’ 따위에 구애받지 말고 정부와 합심해 뭐라도 좀 해야 한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중앙은행의 독립성/중립성에 깃든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를 편의상 ‘내용적 독립성’과 ‘형식적/절차적 독립성’이라고 각각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특히 우리나라에서—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것은 지난 군사독재 시절 그것이 권력의 사금고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중앙은행 고유의 통화신용정책이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구사된 결과, 어떤 이들은 이득을 보았겠지만 사회의 다른 모든 세력에겐 손해가 갔다.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형식적/절차적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그것을 통해 실행되는 정책들이 내용적 독립성/중립성도 견지하지 못한 것이다.

한편 중앙은행의 독립/중립성이 세상만사와는 별개로 ‘마이웨이’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2007-08년의 위기와 그에 잇따른 장기침체에서 선진각국의 중앙은행이 해온 일을 떠올리면, 최근 10년간 중앙은행의 ‘세속화’는 그야말로 스펙타클했다. 흔히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절간’이라고 부른다. 하는 일이 별로 티도 안 나고, 구성원들도 조용조용하게 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선진각국의 중앙은행들을 보면, 도탄에 빠진 나라를 보다 못해 스스로 떨쳐 일어나 의병장이 된 우리 역사속의 고승들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곧장 독립성 포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독립성이란 중앙은행의 일의 내용보다는 그 일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방식과 절차에 일차적으로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 어떤 특정한 경제주체에게 비대칭적인 이득이 가는 방식의 행위를 했다는 것, 즉 ‘내용적 독립/중립성’을 견지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중앙은행이 이러한 겉보기에 중립적이지 않은 행위를 하지 않으면 경제가 더 나빠져 모든 경제주체들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그와 같은 중앙은행의 행위를 기계적인 ‘독립성’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발권력 동원이라는 행위를 어떤 경위에서 결정했는가다. 이를테면, 권력의 요구에 못이겨 결정한 것인가? 자본가들의 로비와 압력에 녹아들어간 것인가? 아니면, 한국은행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그 의결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의 책임감 있는 위원들의 수준 높은 토론을 거쳐 결정된 것인가? 다시 말해, ‘형식적/절차적 독립/중립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냐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국책은행 구제안에 한국은행이 참여하기로 한 결정은 그렇다면 어느 쪽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의 고찰은 비단 중앙은행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국가 일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군사독재정권의 권위주의적 개입에 대하여 국가의 불간섭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기도 하였지만, 작은 정부와 불개입주의를 신조로 삼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때에는 국민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정부를 희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개입주의’라는 겉모습만 보고서 군사독재 시절의 권위주의적 정부와 오늘날 진보진영이 옹호하는 민주공화적 정부를 등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두 개입주의적 국가를 구별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의사결정의 메커니즘, 그 민주성이라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내용적인 차원에서의 질적 차별성을 낳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요구되는 중앙은행의 중요한 덕목이 적극성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정책이 그 중립성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은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한 것이어야만 하지, 특정 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중앙은행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은행 의사결정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요컨대, 오늘날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들이 ‘내용적 독립/중립성’을 포기한 듯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절차적 독립성’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중립성의 문제는 오히려 후자의 관점에서 재구성되고 반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심각하게 제기하여야 한다: 이제까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행한 (양적 완화(QE)를 포함한) 비전통적 통화신용정책들은 정말로 중립적이었는가? 그것들은 100% 공공선을 위한 것이었는가? 혹시 그것은 거대자본의 이해관계에만 특수하게 복무한 것은 아니던가? 등등. 선진국 진보진영 일각에서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와 같은 대안들이 나오고, 여기에 (운동가뿐 아니라) 진지한 경제학자들까지도 동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참고) 몇 년 된 기사이지만, 이상의 내용과 관련, 다음 글을 참고할 수 있다:  http://www.independent.co.uk/news/business/analysis-and-features/what-price-the-new-democracy-goldman-sachs-conquers-europe-62640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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