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인가 (경제)범죄인가: (‘해결책’을 찾기에 앞서) 괴물의 이름을 제대로 붙이기

수개월 전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이 점차 드러나고, ‘재벌도 공범이다’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면서 ‘정경유착’이 화두로 부상 중이다. 이에 따라 정경유착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논의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거의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논의도 별다른 성과 없이 잦아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한다. 왜 정경유착 논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헛되게 반복되는가?1 혹시 지금까지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이 어떤 잘못된 관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정경유착’이라는 문제설정

말 그대로 풀면 정경유착(政經癒着)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간의 결합을 일컫는데, 우리나라 같은 후발국 고유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정경유착은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등의 이유로 척결 대상이 되며, 만약 그것이 ‘척결’되면 좀 더 선진적이고 완전한 자본주의가 실현되리라고 여겨진다. 적어도 전근대적인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후발국에서는 발전된 자본주의의 수립은 곧 ‘근대화’의 정점으로서 그 자체로 ‘진보성’을 담지하고 있기에, 정경유착 근절을 통한 더 나은 자본주의 건설이라는 테제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도 일종의 ‘(최대)공약수’로서 널리 공유되는 입장이다.

정경유착이 주로 후발국에서 문제시된다는 점 때문에, 후발국 고유의 특성들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곤 한다. 이를테면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1997년 외환금융위기 당시, 이 지역 특유의 유교적 전통에 기인한 ‘연줄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때문에 자본주의 발달이 왜곡되었고 결과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진단에 따르면, 과거의 잔재와 결별한 선진적인 제도의 도입만이 ‘제2의 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처방에 따라, 김대중․노무현 정권기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그 처방의 핵심 주체는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등이었다(‘워싱턴 컨센서스’).

정경유착은 후발국 고유의 문제?

정경유착을 후발국의 문제, 좀 더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 미발달의 결과로 한정짓는 것은 정경유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는 첫 번째 걸림돌이다. 사실 정경유착은 그렇게 엄밀한 개념도 아니다. 이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도 불명확하다.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이를 부패(corruption)라는 일반적인 용어로 대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정경유착이란 부패의 한 유형, 특히 후발국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꼭 그렇게만 한정지을 수도 없는 유형임이 단박에 드러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패는 차라리 ‘정상적인’ 것이며,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나라까지도 부패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부패는 각 경제주체들 간에 물질적 이해관계의 대립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부패의 형태나 유형은 나라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다르다. 한국과 같은 후발국에서 부패가 특히 ‘정경유착’의 형태로 벌어지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자원의 배분, 나아가 경제발전 자체를 국가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한국은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룬 자본주의국으로서, 경제는 이미 국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 못할 정도로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성숙했다. 여기서 독점대자본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단련’된 덕분에, 비록 내부 지배구조에 후진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현대화되고 근대적 합리성을 가장 잘 구현하는 집단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독점대기업이 정경유착에 연루된다면, 그것은 대체로 부패하고 구태의연한 정치권력의 탓, 후진적인 정치문화의 탓으로 돌려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럴 경우 독점대기업이 그 자체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자행하는 다른 부패행위들을 시야에서 놓치거나 이런 행위들이 예의 그 ‘정경유착’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길 위험이 발생한다.

그간 정경유착이 제기된 맥락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정경유착이 경제와 사회, 나아가 정치제도 전반의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 문제로 부각된 까닭은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정경유착’이라는 용어가 확립되고 일반적으로 쓰인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구축한 전자도서관이나 과거 일간지 데이터베이스를 살펴보면, 정경유착이 별다른 통제 없이 횡행했던 1980년대 이전에는 놀랍게도 그런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2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구축된 뉴스라이브러리(1920~99년치 <동아일보> 등 4개 일간지 원문수록)에 따르면, ‘정경유착’은 1980년 9월 4일자 <매일경제신문>에 처음 등장한다. 이는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운 전두환 등 신군부에 의해,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정당성을 갖지 못한 공직사회를 장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을 통제할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육성된 화두였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검색화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검색화면

하지만 정경유착이 대유행을 탄 것은 뭐니 뭐니 해도 1997년 외환금융위기 국면에서였다. 당시 위기의 원인을 둘러싸고 이른바 ‘내인론’과 ‘외인론’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 등 서구세계의 주된 입장은 한마디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신흥국들의 역사적․문화적 DNA에 각인된 후진성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내인론). 이러한 후진성의 결과가 정경유착이었고, 정경유착은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일으켜 이들이 사전적․사후적으로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동안 한국 등 저발전국들의 ‘부패한’ 정치권력을 대상으로 ‘차관장사’, ‘원조장사’를 해온 것이 다름 아닌 선진 자본주의 정부들이었음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지적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줄잡아 1980년대 이래 정경유착, 좀 더 일반적으로는 부패에 대한 문제제기가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정당화하는 구실로서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실증적으로 뒷받침되기도 어려운 다양한 논리들이 동원되었다. 부패는 ‘큰 정부’에서 비롯된다거나 경제성장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3 이러한 주장에 따라 많은 나라에서 기존의 복지시스템이 축소되었고, 특히 우리나라 같은 후발국에선 일련의 ‘자유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이뤄졌지만, 결과는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극심한 불평등과 (상당 정도로 그 결과로서의) 성장동력의 고갈이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일당이 개입된 ‘정경유착’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시각의 확장: 정경유착, 뭐라고 불러줄까?

위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이후 ‘정경유착’이 화두로 떠오른 데는 내적․외적으로 매우 특수한 맥락들이 있었고, 그러한 맥락들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타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이에 덧붙여, 그동안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역사적․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 정치권력일수록 ‘정경유착’을 문제 삼는 데 열정적이었음을 다시금 강조해야겠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정치나 행정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자극해 맹목적인 포퓰리즘으로 활활 타오르곤 했다. 공직기강 확립과 (공직사회의) ‘적폐해소’를 그간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강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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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는 최순실(JTBC 화면 캡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경유착’이라는 화두가 제기하는 현실의 문제들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문제들을 제기하기 위한 보다 적확한 ‘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우리 사회는 정경유착이라는 특수한 형태보다는 부패 일반을 문제삼지 않으면 안될만큼 성숙했다. ‘정경유착’만 해소한다고 끝도 아니고, 비대해진 경제권력이 정치권력하고만 유착하는 것도 아니다. 재벌을 비롯한 경제권력이 언론과 ‘유착’하는 것은 이미 일상사가 되었고, 이들은 자신이 필요하기만 하면 심지어 시민사회의 단체들과도 ‘유착’한다. 얼마 전 해외투기자본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앞장서온 시민단체의 한 인사가 이 단체가 문제삼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던 것이 밝혀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이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만연되지 않을까?

‘정경유착’ 문제제기에서는 정치권력이 우위에 서고 경제권력이 뒤따른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재벌도 공범이다’라는 구호가 이를 잘 요약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 이미 10여년 전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일갈했지만, 이 탄식은 그의 죽음과 함께 잊힌 듯하다. 어쩌면 권위주의적 성격의 세력들이 잇따라 집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야를 세계로 돌려보면, 지금 문제는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윽박질러 ‘거래’를 하는 것보다는, 경제권력이 자신의 이해관계 실현의 과정에서 정치권력을 이용한다는 편이 더 타당하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백악관과 행정부 요직에 이미 4명의 골드만삭스 ‘동창생’을 내정한 상태며,4 유럽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골드만삭스의 유럽 점령도? (출처: The Independent, 2011년 11월 18일자)
금융위기 이후 골드만삭스의 유럽 점령도? (출처: The Independent, 2011년 11월 18일자)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경제권력이 ‘종범’이 되는 정경유착보다는 그것이 ‘주범’으로 나서 저지르는 각종 경제범죄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지난 2007~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기가 막힌 (유사-)경제범죄들이 주목받고 폭로되지 않았는가. 엔론 같은 대기업들의 회계부정,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나라간 세제 차이를 악용한) 조세포탈,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과 금융기관들의 조작사건(LIBOR금리 조작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경제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선진국들에서 벌어진 이러한 경제범죄들이 ‘정경유착’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범죄들이 ‘해이한 공직기강’ 때문에 발생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우스운 판단인가?

맺음말: 재벌은 ‘주범’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재벌은 주범이다. 지난해 12월 국조특위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였던 ‘꺼벙이’ 같은 표정으로 재벌이 당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시각을 굳건히 했을 때,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왜곡, 만연한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강요된 자영업의 성행과 가계부채 폭증, 나아가 정부의 재정정책상의 소극성과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까지, 현재 우리 경제의 난맥이 풀린다.

‘정경유착’이라는 문제제기는 ‘정’의 문제도 ‘경’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그것이 가리키는 현상의 ‘거대함’을 적절히 환기할 수 없다. 공직사회의 문제는 그것대로 푸는 게 옳다. 거대한 권력이 된 독점자본의 잘못된 행태들을 ‘범죄’로서 명확하게 지정하고, 문제가 될 경우엔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그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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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떤 면에선, 예전의 문제제기가 더 선명하고 근본적여 보이기도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對財閥政策, 더 나아가 分配와 生産, 所有와 雇傭을 둘러싼 經濟體制의 문제를 문제의식으로 삼고 政府가 검토해야 할 때가 왔다.” 이것은 1960년대 중반 대표적인 정경유착 사례인 한국비료 사태 이후 <동아일보>(1966년 11월 18일자) 1면에 게재된 기획기사의 일부다.

  2. 물론 각주 1)의 인용구가 보여주듯, 오늘날 우리가 ‘정경유착’이라고 일컫는 사태에 대한 자각은 이전에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정경유착’이라는 용어의 용례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사실 ‘유착’이라는 용어도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 기사에서도, ‘유착’과 함께 ‘정치권력의 [경제과정에의] 개입’, ‘밀착’, ‘기착’(寄着) 등이 쓰이고 있다.

  3. 예컨대 후자의 경우, 그것이 경제학이 즐겨 상정하는 매우 제한된 조건 아래서는 타당하다고 해도 역사적으로는 쉽게 지지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들에 있어 성장률이 가장 빨랐던 시기는 가장 부패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중국의 경제당국은 국제기구 등에 의해 ‘부패’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당시 중국의 경제성장이 경제과정이 투명했더라면 더 빨랐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것이 부패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4.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지명자, 게리 콘 백악관 국민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지명자,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내정자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12일 골드만삭스 재단 이사장인 디나 파월을 백악관 경제담당 선임 고문으로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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