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역사와 지성의 역사: 역사 탐구의 한 가지 의의와 마르크스의 ‘비판’ 개념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는 여럿이 있겠지만, 내 경우에 특히 와닿는 이유는, 인간의 지각 내지는 지력이라는 게 믿을 게 못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해보자. 흔히 이 문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출현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사실 돌이켜보면 비정규직 문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국경제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오늘날 ‘비정규직의 역사’를 쓴다면, 그 시작점은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아주 안 쓰인 것은 아니다). 내용적으로 ‘비정규직’을 가리키는 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오늘날과 같이 ‘비정규직’(정규직에 대비되는 비정규직, 또는 파견/시간제/기간제 등을 포괄하는 비정규직)이라는 보통명사 내지는 대명사로 공공연히 칭하면서 사회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보면, 1997년에 대하여, 이 해는 (A)비정규직이 생긴 해는 아닐지라도, (B)비정규직이라는 것의 존재와 그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자각된 해라는 식의 의미부여는 여전히 가능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역사에 대한 탐구가 없다면, (A) 같은 직관적인 의식에서 (B)와 같은 고양되고 반성된 의식으로 나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역사적 탐구를 통해) 비정규직은 1997년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보면서 (B)와 같은 의미부여에 동의한다면, 비정규직을 다루지 않았던 1997년 이전의 노동 관련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나아가 교정도 할 수 있으리라(실제로 1997년 이전에 노동 관련 논의들 중에 비정규직을 핵심적으로 문제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 역사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으로 지성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이끌어내며, 궁극적으로는 ‘지성사’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실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비판’이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즉 그의 비판에서 역사적 탐구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궁극적으로 ‘(비판적) 이론사’로 이어지는 것은 (그리하여 이를테면 ‘잉여가치학설사’가 <자본론>의 제4권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비판은 이론 비판이 아니고 현실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뭘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P.S. 그런데 ‘(비판적) 이론사’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의 논자들이 틀렸음을 보이는 게 아니고(그런데 많은 언필칭 ‘비판’들은 여기서 그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비정규직의 의의를 온전히 음미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논의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때론 눈부시게 발전하기도 하고 때론 허망하게 무시되기도 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의 고갱이는 무엇인가 등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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