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의 확산을 경계한다

전국에 지역화폐 ‘광풍’이 불고 있다. 2016년에 1168억원에 그쳤던 발행규모가 올해는 2.3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3년만에 덩치가 20배로 불어나는 셈이다. 이를 도입한 지방정부의 수도 급증하고 있다. 지역화폐, 그냥 이대로 가게 내버려둬도 좋을까?

일단 오해를 바로잡자. 요즘 언론에서 지역화폐라고 흔히 불리는 것은 사실상 지방정부가 액면가보다 싸게 발행한 상품권이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백화점 상품권과 같다. 후자는 전국의 해당 백화점 지점에서만 쓸 수 있는 반면 전자는 특정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교통카드와 같은 충전식도 있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지역화폐를 도입한 여러 지자체들이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어차피 할 소비를 이 상품권을 통하면 크게는 10%까지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역 바깥이나 온라인에서 할 소비까지도 기꺼이 지역으로 끌어올 정도로 매력적인 ‘미끼’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지역 내에서 소비가 활성화되면 지역 내 고용과 생산도 자극될 것이다. 결국 지역화폐라는 건 정부 재정으로 지역민들의 소비를 보조해주는 것에 다름 아닌데, 지역뿐 아니라 나라경제 전체가 침체되어 있는 지금 이 정도의 재정투입을 ‘퍼주기’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경제력이 온통 서울로 집중되고 지방소멸 ‘괴담’도 공공연한 지금, 지역으로서는 이 이상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수단도 드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화폐를 마냥 좋게만은 볼 수 없다. 바로 그 역진성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본질적으로 지역화폐는 정부 재정으로 지역주민의 소비를 보조해주는 정책이다. 문제는 그 보조가 소비액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영균이네와 재영이네의 월간 지역 내 소비액이 각각 30만원, 300만원이라고 해보자. 현재의 지역화폐 정책은 영균이네한테는 3만원, 재영이네한테는 30만원의 소비보조금을 주는 정책이다. 이것은 과연 정당한가? 누가 부자에게 이로운 이런 정책을 승인했는가?

역진성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다면 경우에 따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최선일까? 이 대목에서 이번 정부가 지난날 보수 정부의 ‘낙수효과’론에 반기를 들면서 ‘분수경제’, ‘소득주도성장’론을 기치로 삼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부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정책, 부자의 소비에 의존하는 정책, 그리하여 조세·재정의 누진성을 훼손하는 정책─그것은 이번 정부의 기조와 정반대 방향의 퇴행적인 정책이다. 다시 말해, 지역화폐 정책은 지역 내 소비의 진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바람직한’ 목적을 가졌지만 부자의 주머니를 채우고 부자의 소비에 의존한다는 점에서—적어도 그런 가능성을 강하게 내포한다는 점에서—현 정부로서는 그 확산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정책이다.

그럼 대안은 없을까? 실제로 역진성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시행중이기는 하다. 월간 최대수혜액을 설정한다거나 사용처를 제한한다거나 하는 게 그 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역진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사실 역진성과 관련해서는 보다 ‘깔끔한’ 방법도 있다. 올해 지역화폐 발행규모가 2.3조원(예정)이라고 한다. 어차피 이것이 지역민들의 소비 보조용으로 나눠줄 돈이라면, 부자에게 많은 액수가 돌아가는 ‘상품권’ 방식보다는 모두에게 같은 액수가 돌아가는 ‘기본소득’ 방식이 적어도 더 바람직할 수 있다(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본소득 옹호론자는 아니다). 나아가 이러한 기본소득 위에 현재의 상품권 방식을 보조적으로 얹을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발상을 전환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 중요한 것은, 이제 해가 바뀌면 현재의 상품권 형태의 지역화폐가 더 확산될 텐데, 그렇게 되기 이전에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이 정책이 소비확대뿐 아니라 경제적 공평성을 증진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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