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경제’: 특징과 대응방향

지금 세계경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위기에 처했다. 19세기 경제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이 경제 위기에 대한 이론이 없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이번에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도 일찍이 예상하지 못한 형태다.

보통 자본주의 경제에서 위기는 산업과 금융의 과열에서 비롯되곤 했다. 특히 금융의 과열은 경제 전체가 속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진행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일단 터지게 되면 경제의 충격적인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곤 한다. 상당한 규모의 기업이 도산하고 경제 곳곳과 긴밀히 연결된 금융기관이 쓰러지면, 그 파괴적 영향이 비정규 노동자 같은 힘없는 개개인은 물론이요 그 자체로는 꽤 건전한 중소/중견기업에까지 미치게 된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대기업, 특히 금융기관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곤 한다. ‘대마불사’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경제 위기는 위와는 정반대의 경로를 취한다. <킹덤>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역병이 그러했듯,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면서 종국엔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숨통을 조여가는 식이다. 골목상권이 먼저 망했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여행/숙박업이 타격을 입었다. 가장 불안정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잘려 나갔으며, 전국 각지에서 ‘점’으로 존재하면서 강연이나 기고로 살아가는 허울 좋은 ‘프리랜서’들의 소득이 ‘영(0)’으로 수렴해 갔다. 이렇게 애초부터 위기의 피해자는 곳곳에 흩어진 불특정 다수였다. ‘개인’의 위기였고, ‘개인’이 책임질 일이었다. 피해가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기저기 분산되어 발생하니 커보이지도 않았고, 따라서 정부의 초기 대응도 소극적인 편이었다. 어느 단계에 이르러 위기가 주식시장 등으로 확산되고 해외에서 과감한 조치들이 취해지자, 우리 정부의 태도도 바뀌었다.

코로나19에 따른 피해 보전을 위한 ‘전국민 일시 지원금 지급안’이 (이른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이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급물살을 탄 것은 대체로 3월 중순부터다. 그리고 3월이 끝나가는 지금, 그것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비로소 실행 결정을 앞둔 듯이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한 기층의 피해가 대략 1월 중순부터 본격화됐다고 보면, 이미 70일 이상 피해가 누적된 상태에서 저 ‘코로나 지원금’에 대한 논의가 일단락되는 셈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늦은만큼 서둘러야 한다. 월요일(30일)에 있을 대통령 주재 긴급경제회의에서 현명한 결정이 나기를 기대한다.

‘전시 경제’로서의 ‘코로나 경제’

아무리 코로나19의 피해가 광범위하다고 해도, 전 국민에게 일시 지원금을 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적어도 모두에게 주지 말고 피해의 정도에 비례해 선별해서 주는 게 낫지 않나? 지금까지 이에 대해 나는 수차례 글을 썼다. 방송에 나와서 말하기도 했고 유튜브 영상도 찍었다. 요는 이거다. 급하니까 하루라도 더 빨리 모두에게 주는 게 낫다는 거다. 밍기적거리다간 모두 망한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단 주고 나중에 조세제도를 통해 회수하자, 일단 주고 제대로 된 선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자고도 했다.

그간 코로나19의 피해에 대응한 보편적 긴급 지원금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보편-선별 논쟁,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둘러싼 논쟁 등… 다른 때 같았으면 모두 유익하다고도 했을 이런 논쟁들이 한담(閑談)으로 보이는 것은, 지금 상황이 촉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긴급 지원금이 한 번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 차례 더 지급되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51조원(전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 지급시 드는 예산총액)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지금 위기가 심각하단 말인가? 우리 재정을 거덜내자는 것인가? 아래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하나씩 대답해보겠다.

요즘 서구 매체에서 ‘전시 경제(war-time economy)’라는 표현이 부쩍 눈에 띄고 있다. 전시 경제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응해 경제를 재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전시 경제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전쟁이 났다고 해 보자. 일단 사람들은 바깥에 나가길 꺼릴 것이다. 괜히 나갔다가 적의 폭격에 죽을 수도 있다. 무릇 인간은 빵만으로 살진 않는다. 따라서 평상시 경제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에 조응해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헌데 욕구에는 ‘급’이 있다. 가장 원초적인 의식주에 관련된 욕구에서부터 ‘뭘 그런 것까지’라는 핀잔을 듣기 제격인 부차적인(!) 욕구도 있다. 평상시엔 둘의 구별이 중요하지 않지만, 전쟁이 나면 기본적 욕구에 해당하는 생산과 부차적 욕구에 해당하는 생산이 꽤 명확히 갈린다. 전쟁 중에도 전자는 계속되지만 후자는 멈춘다. 그와 별도로, 전쟁이 나면 평상시 필요가 거의 없던 전차나 폭탄의 수요가 급등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전쟁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기본적 욕구’를 넘어서는 생산활동이 급격히, 그리고 크게 위축됐다. 어떤 부문은 사실상 멈춰버리기도 했다. 반면에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는 부문(필수품 생산 부문)도 있고, 이른바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부문(마스크나 세정제 생산 부문. 이들을 ‘코로나-재(財)’라고 하자)도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놀고 있는 생산설비를 필수품과 코로나재 생산으로 강제로(!) 돌릴 필요까지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20세기 초의 양차대전이나 잇따른 한국전쟁 시기에 제정된 ‘전시 경제’ 법안들을 가동시킨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이렇게 전시에는, 경제에 존재하는 생산용 자원의 일부가 가동을 중지하기도 하고, 나아가 가동 중지된 설비를 전시의 필요에 맞게 재조직할 필요까지도 제기된다. 어떻든 가동 중지된 자원은 훗날 필요시에 즉각 생산에 투입될 수 있도록 잘 보전되어야 할 것이다. 현존하는 생산용 설비와 각종 자원을 전시의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훗날을 위해 보전하는 것—이것은 전시 경제의 기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물론 이 명제는 코로나 경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필수품과 코로나재가 순조롭게 생산된다고 해도, 그것이 그것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히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방법은 강제징발과 배급이다. 필수품 및 코로나재의 생산기업으로부터 상품을 강제로 징발해 국민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주는 것이다. 사실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시 경제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명령경제(command economy)’ 또는 ‘계획경제(planned economy)’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명령경제나 계획경제가 아니다. 물론 지금 코로나 국면에서는 필요하다면 ‘명령’ 또는 ‘계획’ 성격을 더할 수는 있겠고, 이에 대해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정치권이 합의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이런 성격의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코로나 경제’의 핵심 문제: 모두가 필수재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코로나 경제’의 특징을 잘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경제를 상정하자. 이 경제는 생산과 고용의 규모가 같은 A와 B 두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자. 또한 정상적인 상황에서, 각 부문에서 1인당 생산액이 200만원이라고 하자. 다시 말해, 한 개인은 평균적으로 200만원의 소득을 거두며, 이를 A부문에 100만원, B부문에 100만원 씩 지출한다. 이제 코로나19의 창궐로, 생산부문의 일부(A부문: 필수품 및 코로나재 생산)는 평소와 다름없이 기능하는 반면 나머지 일부(B부문: 나머지 생산)는 완전히 멈추었다고 (극단적으로) 가정하자. 물론 현실에서는 양 극단 사이에 수많은 생산단위들이 위치할 것이다. 지금 문제는 A부문 생산물이 국민 모두에게 공급되어야 하지만 B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그것을 구매할 화폐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평상시라면 돈 못 버는 기업은 퇴출됨이 마땅하고 돈 없는 개인은 재화를 구매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한’ 상황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B부문도 A부문과 마찬가지로 경제와 사회의 당당한 일부였다. B부문이 별안간 쓸모없는 부문으로 전락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상황이 바뀌면 A와 B의 자리는 얼마든 바뀔 수 있다. 따라서 A에서 생산된 것을 전량 국가가 징발해 A부문과 B부문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배급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어떤 이는 그래도 A부문 사람들만 일하고 B부문 사람들은 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맞다. 그래서 만약 현재의 코로나 경제가 장기화될 경우 B부문 종사자들은 A부문으로 옮겨가 생산의 수고를 분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는 B부문의 일부는 A부문으로 전환되기도 할 것이다(예: 소주 공장에서 손세정제 생산).

일단 지금은 그런 장기적인 문제는 접어두자. 반복해서 말했듯이 A부문에서 생산된 물자를 국가가 징발해서 모든 국민에게 배급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이게 불가능하면 어떨까? 사람들에게 필수품 구매에 필요한 돈을 주면 된다. 지금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되고 있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시 지원금을 그런 성격의 돈으로 볼 수도 있다. 위 가정에서 필수품 및 코로나재 구매에 필요한 금액 100만원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 5100만명에 대한 재난 지원금은 모두 51조원에 이른다. 만약 지금 가정되고 있듯이 B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그 부양가족을 즉각적으로 선별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들에게만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총액은 25.5조원이다. 기존의 절반이다. 즉각적인 선별이 가능하다면, 이렇게 해도 좋다.

만약 이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생산 면에서 봤을 때, 위의 가정에 따르면 GDP는 절반으로 줄어든다(A부문=정상생산, B부문=생산중단). 그런데 소비 면에서 보면, A부문에서 생산된 상품은 B부문 종사자들이 구매를 할 수 없으므로 절반만 팔릴 것이다. A부문 종사자들이 충분한 소득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자신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상시라면 이렇게 팔리지 않는 상품은 해외로 수출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는 교역도 사실상 멈추었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필수품이 남아돌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생산과 소비 면에서의 불일치 때문에, A부문 생산물의 재고가 쌓이고 GDP는 절반 이하로 크게 떨어질 것이다. 코로나 지원금은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는 의의도 있다.

‘코로나 지원금’의 화폐적 성격에 관하여

여기서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떠오른다. 첫째,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 아닌가? 국가 재정 거덜나는 것 아니냐? 참고로, 51조원이면 우리나라 1년 국내총생산(GDP)의 2.5%가 넘는다. 둘째, 만약 위와 같은 식이라면, 사태가 계속되는 한 저 지원금은 주기적으로 지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51조원은 그 자체로도 큰 금액이지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 경제에서는 B부문 종사자들과 그 가족들, 나아가 거기 속하지 않는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가 A부문에서 생산되는 필수품과 코로나재를 구매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지원금이 공급되어야 한다. 국민 1인당 필수품/코로나재 구매에 100만원이 필요하고 코로나 경제가 10개월 간 지속된다면, 총 100만원*5100만명*10회=510조원의 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 입이 딱 벌어지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 돈이 반드시 국가의 채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논리적으로만 말하면, 코로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즉 전 국민에게 필수품과 코로나재를 적절히 공급하기 위해 코로나 지원금을 아무리 공급하더라도 거기에엔 재정이 전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징발-배급을 잠시 떠올려보자. 여기에 재정이 드는가? 안 든다. A부문 생산물을 모두 국가가 무상 징발하고 이를 모든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니 말이다. 다음으로, 국가가 징발만 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A부문 기업들을 모두 국유화하는 것도 여기 속한다. 이때 상품의 실제 공급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씩을 나눠준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그 돈으로 국가로부터 필수품/코로나재를 구매할 것이다.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재화의 종류와 양이 다를 수 있으므로, 직접적인 배분보다 이렇게 각자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얻고 국가는 자신이 국민에게 나눠준 51조원(=100만원*5100만명)을 돌려받게 된다. 재정지출액? 제로다.

배급뿐 아니라 징발도 안 하면 어떨까? 이제 사람들은 국가가 나눠준 100만원으로 A부문으로부터 상품을 구매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A부문의 자본가의 손에는 51조원이 쥐어져 있을 것이다. 이제 국가가 그 돈을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재정소요액은? 제로다. 이 짓을 여러번 하면? 역시 재정소요액은 제로다.

자, 이 도깨비장난 같은 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비밀은 저 코로나 지원금, 그러니까 필수재의 배분을 위해 국가가 국민에게 지급하는 돈의 성격에 있다. 이것은 통상적인 의미의 ‘화폐’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일정량의 필수재를 국민 모두에게 배분시키는 데 필요한 ‘유통수단(means of circulation)’일 뿐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배급표와 같은 증서여도 상관이 없다. A부문에서 생산된 필수품+코로나재 구매에만 오로지 쓰일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을 거기에 쓰지 않을 사람도 있지 않을까?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수품이니까. 정의상 사람들은 필수품을 1인당 100만원씩 구매해야 한다. 돈이 없던 사람은 100만원을 받아 필수품을 구매할 것이고, 돈이 충분히 많은 사람도 어쨌든 100만원을 필수품 구매를 위해 지출할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100만원씩 총 51조원을 나눠주면, 그들은 어쨌든 필수품을 100만원어치씩 구매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A부문 자본가의 손에는 51조원이 들려 있을 것이다. 이제 국가는 그 51조원을 회수하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거둬들일 것인가

문제는 저 51조원을 어떻게 회수할 것이냐다. 원칙적으로는 세금으로 걷으면 된다.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분배-소비의 과정을 거치면서 순환한다. 이는 전적으로 민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정부가 합법적이고 정상적으로 끼어들 수 있는 하나의 ‘길목’이 있다. 조세제도가 그것이다. 정부는 경제주체들이 거두는 소득이나 행하는 소비에 세금을 매겨 전체적인 경제활동을 조정한다. 그러니까 정부는 A부문에 속하는 기업에 대해 51조원의 세금을 매겨 이를 거둬들일 수 있다.

혹시 이러한 환수가 부당한 것은 아닌가? 혹시 A부문 기업의 이윤을 강탈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사유재산권 행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없다. 저 51조원은 순수하게 유통수단으로써 투입되었을 뿐이며, 그 이유는 지금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 때문에 경제의 일부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황이 장기화되어 B부문의 모든 근로인력 및 일부의 생산자원이 A부문으로 편입되었다고 해보라.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수입으로 필수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필수품을 유통시키기 위해 51조원을 투입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점은, 애초 저 51조원이 어떤 형태로 지급되느냐에 따라 아예 회수할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거다. 앞서 쓴대로 51조원에 해당하는 유통수단을 반드시 화폐의 형태로 나눠줄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그것은 증서로 나눠줘도 되고, 전자적 기호 같은 것으로 나눠줄 수도 있다. 이 증서나 기호가 교환이 이뤄진 다음에, 그러니까 그 주어진 역할을 행한 다음에 무효화될 수 있다면 별도의 회수과정은 불필요하다.

‘회수’를 넘어 분배의 조정으로: 조세제도의 의의

실제 현실은 지금까지 묘사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무엇보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붕괴의 양상은 매우 불균등하고 불규칙적이다. 피해의 정도를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나눌 수 없다. A부문-B부문의 구분은 분석을 위한 극단적 가정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 사이에 무수한 기업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자영업자들이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다. 화폐자산가나 부동산자산가 같이 생산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수입을 거두는 주체도 있고,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주기적으로 일정액을 이전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세 가지로 유형화해 살펴보자. 첫째,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정도가 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 더 따져보자. 이런 이유로, 지원금은 피해의 정도에 비례해 지급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내 경우에는 최근의 ‘재난기본소득’ 논의에서는 지급의 시급성과 즉각적 선별의 불가능성 때문에 보편지급을 옹호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위에서 논한 대로, 보편적으로 얼마씩을 지급하더라도 그것이 필수품과 코로나재 구매에 쓰이는 한, 지급된 총액이 A부문 자본가의 손에 모였을 때 국고로 회수된다면 재정에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다. 회수가 번거롭다면, 상품권이나 전자기호로 지원금을 나눠준 다음 사용후에 소멸시키는 방법도 있다.

둘째, 지원금의 보편지급 대신 선별지급을 옹호하는 핵심 논거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 선별을 통해 분배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절반만 옳다. 왜냐하면 A부문의 강제징발 같은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분배의 형평성 저하는 지원금의 보편지급방식에 유래하는 게 아니라 B부문 종사자들의 소득이 0원이 된 상황에서 A부문 종사자들만 소득을 거두고 있다는 데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만약 A부문에 대한 강제징발에 이어 배급이 행해진다면 양부문 종사자 모두 소득이 0원이 되면서도 필요한 재화를 손에 넣을 것이므로, 분배와 관련된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산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A부문에서 종전과 같이 200만원의 일인당 소득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100만원씩 보편지급이 이루어진다면, 모든 사람들이 필수품을 얻을 수야 있겠지만 A부문 종사자들은 200만원의 소득을 추가적으로 갖게 된다. 지원금이 B부문 종사자들에게만 지급될 경우, A부문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소득으로 필수품을 구매해야 할 것이므로 최종적으로는 필수품과 함께 1인당 100만원의 소득을 갖게 된다. 분배가 더 공평해지기는 했지만, 강제징발 정도까지는 아니다.

코로나나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본적으로 이것은 사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과 철학의 문제다. 코로나19가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서, A부문은 종전과 같이 굴러가지만 B부문은 멈추었다. A부문 종사자들은 돈을 벌지만 B부문 종사자들의 소득은 0원으로 떨어졌다. 이를 개개인의 운이나 능력의 문제로, 그러니까 시장법칙의 정상적인 작동의 결과로 볼 것인가? 그렇다면 국가는 분배에 아무런 조정도 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를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할 공동의 문제라고 본다면, A부문 종사자들이 B부문 종사자들에 비해 그 어떤 이득도 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형평성보다 훨씬 강한 의미를 내포한다. 전쟁상황을 떠올리면 쉽다. 그리하여 예컨대 코로나 경제 하에서 A부문 종사자들의 소득의 절반을 거둬들여 B부문 종사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어떠한 분배상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그 어떤 국가부채도 발생하지 않는다.

위 두 번째를 연장하면 세 번째 문제에 이르게 된다. 경제에는 생산에 직접 기여하는 A와 B부문 종사자만 있는 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화폐자산가와 부동산자산가 같이 생산 및 소비를 위해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자나 임대료 같은 수입을 챙기는 집단이 있다. 코로나 경제에서 이들의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자율이 떨어지고 부동산 임대료의 산출 근거가 되는 인적 교류의 양이 확 줄어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 자산가들이 이자율이나 임대료를 스스로 낮추질 않는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렇게 줄어든 이자나 임대료조차도 B부문 종사자들은 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B부문 종사자가 현재 어떠한 수입도 거두지 못하더라도 그간 쌓아둔 부가 있는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임대료를 지불할 수도 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쨌든 이러한 자산가도 국민이므로 국가는 이들이 최소한의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게 마땅하다. 여기서 원칙은 이런 것이다. 첫째, 만약 자산가들 가운데 새로운 가격조건 아래서 필수생활비 구매에 필요한 1인당 100만원을 획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국가의 구호를 받는 게 정당하나, 둘째, 기존 조건대로 높은 임대료 등을 얻고자 하는 자산가의 요구까지 국가가 보장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필요하다면 국가는 임대료 낮추기를 거부하는 자산가들에게 현재 조건에 맞게 임대료를 낮추게끔 강제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맞는 경제적 공정성에 대한 기준 확립이 필요하다

자, 코로나 경제에서 발생하는 특유한 경제 문제를 정리해보자. 첫째, 생산활동의 조정이다. 코로나 경제에 맞게 기존의 생산자원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필수소비재의 균등한 분배다. 이를 위해 주기적인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동등하게, 또는 피해를 본 국민에게 차등적으로 지급할 필요가 있다(물론 강제징발-배급의 방법도 있다). 셋째, 여기서 지급된 지원금을 효과적으로 수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코로나 경제에 돌입함에 따라 급작스럽게 교란된 분배를 일정한 선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제에 대응함에 있어, 조세체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부동산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사적 계약을 존중하고 선의의 피해를 보는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 임대계약에 따른 임대료 납부를 국가가 지원해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동시에 임대료에 대한 세제를 정비해 낮은 임대소득자는 보호하는 한편 높은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강화할 수 있다. 기본 원칙은 그 누구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정상적인’ 이득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제2차대전 당시 전쟁 당사국을 중심으로 최고소득세율이 100% 가까이 치솟은 것은, 이러한 원칙에 사회 구성원들이 대체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비해 지금 우리는 훨씬 발달한 조세체계, 그리고 그것을 훨씬 더 정교하게 작동시킬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을 확보하고 있다.

결국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위 원칙을 어느 정도 선에서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다. 코로나 경제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소득이 줄지 않는 이들에게서 주기적으로, 적어도 이 국면이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라도 상당액을 거둬들일 수만 있다면, 극단적으로는 재정투입이 전혀 없이도 코로나 사태를 이겨낼 수 있다. 위에서는 아주 단순한 모형에 입각했기에 A부문의 소득 절반을 조세로 거둬들여 B부문 종사자들에게 선별 지급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또한 복잡한 세력관계 때문에 일정한 불평등과 불공정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어느 정도 제한하고, 또 어느 정도 용인할 것인가? 아직은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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