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란 무엇인가’를 번역하고 나서

책을 하나 번역했다. 스티븐 스미스(Stephen Smith)의 [세금이란 무엇인가: 민주 시민이 알아야 할 세금의 기초]라는 책이다. 책에 ‘옮긴이 후기’를 쓰기는 했는데,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라 하나 더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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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요리사를 위한 안내서?
스티븐 스미스의 [세금이란 무엇인가: 민주 시민이
알아야 할 세금의 기초](리시올)를 번역하고 나서

‘불평등 퇴치를 위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80%까지 올려야 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말이다. 이런 파격적인 주장이 담긴 그의 책 [21세기 자본]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게 2014년.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2014년에서 2019년 사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최고소득세율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좋을 것이다. 결과는?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이 나라들의 최고소득세율 평균값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불평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경우 외려 낮아지기도 했다. 피케티의 호소는 실패한 것일까?

변화가 아주 없진 않았다. 적어도 피케티의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난 건 명백하다. 여기서 ‘그의 생각’이란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 불평등 심화가 자본주의의 존립까지 위협할 지경이니 그것을 어느 정도는 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다. 이 생각은 더 이상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할 만큼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21세기 자본]의 출간 직후엔 불평등이 경제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맞서는 이들도 꽤 있었다. 국내에선 불평등을 옹호하고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저작 [위대한 탈출]을 왜곡 번역한 뒤 ‘피케티 대 디턴’이라는 프레임을 날조해 특정 언론매체를 통해 반복 재생산한 집단도 있었다(참조1; 참조2). 지금은? 공적 담론장에서 그런 목소리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둘째, 피케티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는 인구의 대다수인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것을 최선의 불평등 퇴치책으로 여겼던 과거와 다른 태도다. 이런 움짐임을 피케티가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의 저작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정부가 쥐고 있다는 생각을 널리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국가의 재정활동을 통해 불평등을 교정한다는 생각은 아주 매력적이다.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권력과 정보를 적절히 활용하면 경제의 분배 상태를 어렵지 않게 미세조정(fine tuning)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생각만큼 단순하진 않다. 정부의 재정활동은 세입과 세출로 나뉜다. 일정 기간 동안 국민으로부터 일정액을 걷어서 쓰는 것이다. 누구에게 걷어서 누구에게 쓸 것인가? 재분배란 결국 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정부의 재정활동을 돈을 걷는 쪽과 쓰는 쪽으로 구분해 보자. 그러면 온갖 어려움들은 전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쓰는 건 쉽다. 정치적 부담도 덜 하다. 반대로 돈을 더 걷자고 주장하는 정치인은 인기 하락을 각오해야 한다. 피케티의 제안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돈을 더 걷는 것은 인기 없는 일이기만 한 게 아니다. 그것은 어렵기까지 하다. 흔히 ‘부자증세’를 이야기하지만, 대체 부자가 누구인가? 그들로부터 무슨 수로 세금을 더 걷을 것인가? ‘부자’만 세금을 더 내면 되는 것인가? 이렇게 구체적인 방안들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많은 이들이 세금에 대한 지식의 부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인가? 우리 사회엔 세금을 둘러싼 잘못된 편견들도 많다.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까, 피케티의 제안이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먼저 우리는 세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정부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지금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세 번째 추경안까지 나오고 있지만, 사회안전망 부족 같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드러난 우리의 문제들을 중장기적으로 해소해 나가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결국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 대목에서 프랑스의 루이14세 시절 재상이었던 콜베르의 유명한 금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조세의 기술이란 거위가 가장 적게 소리를 지르게 하면서 깃털을 가장 많이 뽑는 일과 같다.’ 박근혜 정부의 첫 경제수석이었던 조원동 씨는 다소 부주의하게 이 표현을 썼다가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렇게 거위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요리사 아닐까? 물론 우리는 절대왕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이 요리사인 것이다. 민주시민으로서 우리는 세금도 어느 정도는 요리할 줄 알아야 한다. [세금이란 무엇인가: 민주 시민이 알아야 할 세금의 기초]가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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