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대응이 가장 현명한 대응이다: 진주시 집단감염 대응 ‘매뉴얼’

1.
내가 살고 있는 진주시는 3주 전만 해도 ‘세계적인 코로나19 청정지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인구 35만명의 도시에서 지난달 23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는 23명. 이 가운데 18명은 완치되어 5명만이 입원하고 있던 상태였다. 방역도 방역이지만, 이는 무엇보다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달성되기 어려운 기록이다.

그러나 지난 3주 사이에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확진자가 111명 늘어서만은 아니다(12월 14일 기준). 이 빠른 확산세의 진원지가 이장과 통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달 ‘연수’를 명목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뒤 지역 내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주 111명의 신규 확진자 가운데 70퍼센트(77명)가 이.통장 연수 관련 확진자이며, 이러한 확산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시민들의 일상에 제한이 가해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그러한 어려움을 가중시킨 장본인이 누구보다 지역민의 건강과 안전, 지역 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걱정해야 할 이.통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이.통장단의 제주도 여행이 공식적인 연수였기에 진주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래서였을까? 조규일 시장은 즉각 사과를 한 데 이어 나름대로 ‘과감한’ 대책까지 내놓았다. 지역 내 소상공인들에게 143억원 규모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원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이 대책이 나오자 시민들의 분노의 불길은 잦아들기 보다는 더 활활 타오르는 모양새다.

2.
이번 사태의 직접적 책임이 이.통장들에게 있는 만큼, 진주시가 지역의 경제위축과 시민의 소득감소에 책임을 지겠다고 나오는 것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진주시가 내놓은 대책엔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규모가 너무 작아서다. 진주시는 일정 규모 이하의 모든 소상공인에게 50만원을 지원하되, 집합금지 및 집합제한 업종에 해당하는 소상공인에겐 각각 50만원과 2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1회성 지원으로는 지난 3주간 소상공인들이 입은 피해조차도 보전이 안 된다.

둘째, 진주시가 준비하고 있는 생활안정지원금은 부족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많은 시민들이 그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예컨대 진주시의 대책에선 소상공인에게 고용된 저임금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방과후교사, 대리운전 노동자 같은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은 진주시민이 아니란 말일까?

끝으로, 진주시의 ‘태도’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이통장단의 부적절한 역외 연수였으므로, 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의 납득 가능한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에 대한 실질적인 약속이 무엇보다 먼저 나왔어야 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음에도 진주시는 이를 사실상 무시하면서 생활안정지원금 지급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던 것이다. 지원금을 순수하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진주시는 현장과 온라인을 통해 지원금 신청을 받고 있지만, 그 방식이 지극히 사무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는 노력을 기울일 수 없나? 하긴, 그런 노력을 했다면 애초부터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을 지원대상에서 빼지도 않았을 것이다.

3.
진주의 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시청 홈페이지에 찾아가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현 사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런 토론의 과정에서 두드러진 몇 가지 주제에 대해 간략히 논해보고자 한다.

1) 선별이냐 보편이냐?

이런 양자택일 식의 문제, 별로다. 그래도 ‘굳이’ 고른다면,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지금은 선별이 필요한 때라고 답하겠다.

지금 우리가 진주시에 대해 요구하는 지원금의 1차적 목적은 피해보상이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피해를 말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보자. 지난주만 해도 진주 주민들이 사천으로 넘어가 술자리를 갖는 장면이 종종 목격됐다. 이.통장단 발 지역감염 발발에 따라 진주시가 인근 지자체보다 2주 정도 먼저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상향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영업제한 등의 피해를 다른 지자체보다 먼저, 그래서 더 많이 본 노동자와 소상공인에 대하여, 그 추가적 피해만큼을 보상해주는 것이야말로 이번 진주시의 지원금의 1차 목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선별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시민 모두에 대한 보편적 현금지원책이 유효한 것은 그들이 지급받은 현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생계를 이어나가는 동시에 그러한 소비가 지역 소상공인에게 수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효과 중 후자는, ‘거리두기’가 현재의 2단계 또는 그 이상으로 당분간 유지될 경우 온전히 실현되기 어렵다. 현재 일각의 제안대로 모든 진주시민에게 20만원이 지역사랑상품권 형태로 지급된다고 해 보자. 사람들은 이것을 어딘가에서 쓸 것이지만, 어떻게 해도 집합금지 대상업종에서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강도 높은 ‘거리두기’가 시행중일 경우엔 정부정책에 따라 매출이 줄어든 업종 종사자 가운데 필요한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일각에서 요구되는 보편적 현금지급책은 이러한 지원이 전제된 위에서 고려될 수도 있다.

2) 재원은 어디서?

현재 진주시의 방침대로 지원금 지급대상을 선별적으로 한다고 해도, 그 규모는 현재의 143억원보단 훨씬 커야 한다. 그렇다면 진주시는 이런 재정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재정안정화기금’을 이용하자는 의견이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재정안정화기금이란 재정상황이 어려울 때 쓰기 위해 세금이 당초 예상보다 많이 걷힌 해에 적립해둔 기금으로, 최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진주시는 현재 2500억원 규모의 재정안정화기금을 운용 중이라고 한다. 관련 조례(‘진주시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에 따르면, 재정안정화기금은 “대규모 재난 및 재해의 발생, 지역경제 상황의 현저한 악화 등으로 기금 사용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쓸 수 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아닌가? 조례는 또한 “그밖에 시정 추진에 필요하다고 시장이 인정한 경우”에도 기금을 쓸 수 있게 하고 있으니, 기금 사용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재난, 특히 진주시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현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안정화기금을 쓰지 않는다면, 이는 조규일 시장이 현 상황을 충분히 엄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돈을 그렇게 막(?) 써도 되는지 물으실 분도 계시겠다. 이런 분들께는 진주시의 재정 상황을 살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진주시가 운용중인 기금은 지난해 결산 기준 4400억원이 넘는다. 이는 경남에서 1위인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있는 75개의 시(특.광역시는 제외) 가운데 무려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경기도 수원시도 기금이 1600억원 수준이니, 진주시는 지나치게 큰 기금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진주시는 무엇을 위해 이런 대규모 기금을 운영하는가? 그리고 대체 어떻게 이런 액수의 기금이 적립될 수 있었을까? 결국 그것은 시민들이 미리 내 놓은 세금 아닌가? 진주시의 재정, 한마디로 너무 긴축적이다. 진주의 시민사회는 이번 기회에 진주시의 재정 전반을 면밀히 검토해보아야 한다.

3) 현금지원만이 능사?

지금 현금(지역사랑상품권 포함)지원이 ‘만능열쇠’인 것처럼 다뤄지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 그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임대료 문제가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기존 계약을 핑계로 임대료를 그대로 받고 있다. 그러나 애초 임대료라는 게 해당 구역의 유동인구 등을 고려해 산정되는 것 아닌가? 지금 ‘거리두기’ 강화로 가게가 문을 닫고 길거리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면 임대료도 낮아지는 게 당연하다. 임대료 조정을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고통의 분담을 도모하는 것, 지방정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4.
사태가 엄중하다. 진주시가 발표한 생활안정지원금, 규모도 턱없이 부족하고 접근방식도 잘못됐다. 당장 규모를 늘려야 한다. 재원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지원대상과 관련해서도 큰 틀의 원칙만 세워두고 시가 피해를 본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낸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현금지원 이외에 다양한 지원방안, 그리고 고통분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달리 진주 정도의 지자체는 지역과 거기 사는 사람에 대한 정보도 많을 터이다. 적법한 범위 안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는 지혜도 발휘하길 바란다.

진주시가 현 상황에 지나치게 큰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공교롭게도 진주에서 집단감염 발발 직후에 전국적으로 코로나19 3차대유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만간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책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만약 진주시가 이번 ‘이.통장단 발 집단감염’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그것은 어차피 나중에 치를 비용을 미리 지불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진주시가 이러한 ‘선제적’ 대응을 통해 전체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일 것이다. 바로 그래서다. 지금은 과감한 대응이 가장 현명한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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