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이 이질적인 개별 노동력들을 통해 존재한다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그 물건에 들어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하고, 노동시간은 시간, 일, 주 등을 기준으로측정한다. – 1장, 48

가치로서의 상품은 동질적인 인간노동의 산물이므로,  가치의 실체는 노동이다. 하지만 가치와 노동은 동일하지 않다. 가치로서, 상품은 (동질적이고 추상적인) 인간노동이 결정화한 것이다. 이 결정은 크기를 갖는다. 그 크기는 투입된 인간노동의 크기(양)이며, 노동의 양은 노동의 지속시간으로 측정한다.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회의 총노동력은, 비록 무수한 개인 단위의 노동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된다.  – 48

사람들은 각각 다 다르다. 특이성을 갖는다. 그들의 노동들 역시 모두 다르다. 감자까는 노동은 마늘까는 노동과 (그것을 소재의 측면에서 본다면)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질적 인간노동은 존재한다. 이것은 모든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과 전면적으로 교환된다는 사실로 표현된다. 상품들이 가격을 갖고 화폐와 교환되는 것은 동질적 인간노동의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품은 이질적이며 동시에 동질적이다. 전면적 상품교환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의 이질성은 노동의 동질성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노동의 동질성은 오직 노동의 이질성을 통해서만 존재하므로 노동의 이질성 없이 노동의 동질성이 존재할 수 없다.

이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동질적인 노동의 산물로서, 모든 상품은 여타의 모든 상품에 대하여 이질적이며, 동시에 여타의 모든 상품과 동질적이다 – 모든 이에게 모든 것 (Omnibus omnia). 이 엄청난 모순으로부터 화폐가 변증법적으로 도출된다. 모순이 화폐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에서 이 모순이 지양된다 (특이한 것들을 동질화하는 것은 사람의 머릿 속의 추상력이 아니라 현실의 운동이다. 따라서 구체노동과 추상노동 사이의 이 모순은 현실의 운동이 이론가의 머리 속에 반영된 것이다).

특이하고, 이질적이며,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떠한 개인의 노동은 동시에 사회의 총노동력이 수행하는 노동이기도 하다. 마치 독립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개인은 사실은 사회적 총노동력의 한 지체로서 기능한다. 여기서 모든 질적 차이는 사라지며, 양적 차이만이 남는다.

특이성과 차이를 강조하는 것을 통해 동질성을 극복할 수 없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생산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해 사용가치의 측면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형용모순이다. 가치만큼, 자본주의만큼, 사용가치와 이질성과 특이성을 필요로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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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5)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이 이질적인 개별 노동력들을 통해 존재한다

  1. 안녕하세요! 얼마전에 포스팅 발견해서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환가치라는 현상 없이는 가치라는 이론적 대상이 죽는다고 하신 것도 그렇고 이번에 이질적 노동이 전제된 후에야 동질적 노동이 성립된다고 하신 것도그렇고 제가 생각하던 현상과 본질의 관계와는 좀 다르네요.

    그래서 질문 드리는 건데. 현상-본질이라는 관계가 꼭 인과, 선후, 우열, 중요성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 건가요? 그렇다면 본질이란건 어떻게 규정되는거고 마르크스가 본질을 중요한 탐구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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