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한다

상품세계의 이 완성형태 – 화폐형태 – 가 사적 노동의 사회적 성격, 따라서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물건들 사이의 관계로 나타냄으로써 은폐하고 있다. 만약 내가 저고리나 장화는 [아마포가 추상적 인간노동의 일반적 화신이기 때문에] 아마포와 관계를 맺는다고 말하면, 이 표현은 황당무계하게 들린다. 저고리와 장화의 생산자들이 자기 상품들을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아마포[또는 마찬가지지만 금이나 은]와 관계를 맺게 한다면,사회의 총노동과 그들의 사적 노동 사이의 관계는 그 생산자들에게는 전혀 황당무계한 개념일 것이다.  – 1장, 97

자본론 1권 1장에 제시된 마르크스의 분석을 따라가면, 가격의 이면에는 가치가 존재하고, 이 가치의 가장 발달된 표현형태가 화폐임을 알게 된다. 가치로서의 상품은 (하나의 사회적 관계의 산물인) 동질적 인간노동의 결정체인데, (상품)화폐에서 이 추상적 인간노동은 진정한 안식처를 찾는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상품교환에서 이러한 사실은 전혀 인지되지 않는다. 위에서 마르크스가 언급한 대로,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시장으로 가지고 나가, ‘나의 노동은 사회적 총노동의 일부입니다. 나는 내가 가진 상품과 당신이 가진 상품(이나 화폐)을 교환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배후에 존재하는 사회적 분업체계를 통해서 서로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고 싶습니다’라고 제안한다면 아마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전에 살펴본 것처럼, 사람들은 상품교환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지만 이 진정한 의미와는 무관하게 상품교환을 한다.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에 나가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구매를 위한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 속에 생산자들로서의 인간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들어설 여지는 많지 않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전면화된 상품교환은 인간생존을 위한 영원불멸의 자연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상품교환의 정점에 화폐가 존재하는 이상, 화폐는 노동의 사회적 성격,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은폐한다. 특히 중앙은행들이 윤전기를 돌릴 필요도 없이 계좌입금 방식으로 화폐를 생산해내는 오늘날에 이러한 은폐공작은 더욱 은밀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의 번역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아래와 같이 다시 번역해 보았다 (괄호의 내용은 내가 추가한 것).

“그렇지만, 저고리와 장화의 생산자들이 자기 상품들을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아마포 [또는 마찬가지지만 금이나 은]과 (교환을 통해) 관계를 맺게 한다면, 사회적 총노동과 그들의 사적 노동 사이의 관계는 그 생산자들에게는 바로 이러한 황당무계한 형태를 통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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