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종교에서 사회적 관계로, 물질적 토대로, 또 자연발생적 산물로

현실세계의 종교적 반영은,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일상생활의 현실적 관계가 투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비로소 소멸될 수 있다. 사회적 생활과정[즉, 물질적 생산과정]이 자유롭게 연합한 인간들에 의한 생산으로 되고 그들의 의식적 계획적 통제 밑에 놓여지게 될 때, 비로소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진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는 물질적 토대 또는 일련의 물질적 생존조건을 가져야 하는데, 이 조건 자체도 또한 하나의 길고 고통에 찬 역사적 발전의 자연발생적 산물이다.  – 1장, 102

1. 마르크스는 종교가 사회적 관계를 반영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추상적 인간노동의 시대인 자본주의에 적합한 종교로 “추상적 인간에게 예배드리는 기독교”를 제시한다.

2. 그런데 어떠한 사회적 관계는 “물질적 토대” 또는 “일련의 물질적 생존조건”을 가져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에서 “손방아는 봉건영주의 사회를 낳고 증기방아는 자본가의 사회를 낳는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것을 특정한 사회관계가 특정한 기술에 의해 결정된다는 기술결정론으로 잘못 해석해서는 안된다. 흔히 말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있어 생산력은 생산기술을 뛰어넘어 인간생활의 모든 물적 토대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http://socialandmaterial.net/?p=1139를 참조).

3. 이 물질적 토대 역시 “길고 고통에 찬 역사적 발전의 자연발생적 산물”이다.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택한 상황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하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동시에 그는 자본론 1판의 서문에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본다고 언급한다. 전자의 입장에서 인간은 역사에 대해서 책임이 있지만, 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인간은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회와 역사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Print Friendly, PDF & Email
SNS로 공유하기!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