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 자유롭다는 것의 의미 by 로완 윌리암스

지난 몇 주 동안, 출퇴근 길에 본회퍼에 대한 로완 윌리암즈의 강론을 반복해서 들었다. 무엇에 그렇게 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백 번은 넘게 들었을 것 같다. 다른 무엇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뭐라도 글을 남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 강론과 모티브가 된 시를 번역해 보았다. 본회퍼는 이 시를 쓰기 하루 전에 히틀러 암살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했다.

본회퍼: 자유롭다는 것의 의미 (원문, 강론녹음)

1939년 젊은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뉴욕에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인 이민자를 위한 목사로 그곳에 남아야 할지, 그리고 미국에서의 강의 초빙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히틀러를 공공연하게 비판했고, 나치 정권의 교회에 대한 통제를 인정할 수 없었던 독일의 목회자들을 위해 비밀 교육기관을 운영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독일 정권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진을 빼놓는 내적 고뇌 끝에 그는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겨우 한달 여가 지난 1939년 7월 그는 뉴욕을 떠났습니다. 그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6년 후 본회퍼는 반역 혐의로 나치 수용소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낸 옥중서신, 현대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보물 중 하나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본회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라고 부를 그러한 기회를 뒤로 하고,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고, 이중첩자 생활을 했습니다. 매일매일 체포와 고문, 죽음의 가능성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유는 그의 글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1944년 7월에 쓴 유명한 시에서, 본회퍼는 진정한 자유에 수반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절제, 행동, 고난 그리고 죽음입니다. 보통 우리가 자유와 연관짓는 단어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이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누군가가 영원히 자유롭다는 것의 의미, 그 핵심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본회퍼에게 자유는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을 행하는 자유입니다. 사회는 당신이 해야하는 것에 대한 온갖 종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훨씬 어려운 문제는, 당신이 열망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당신을 여러 방향으로 내몬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열정과 생각에 대해 성찰하고 이들을 신중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행동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당신은 덜 자유로워 집니다. 그러나 이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당신이 자신의 자유를 신에게 건네며, “나는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했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넘겨 드립니다.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자유를 신에게 넘길 때 자유가 “영광 속에서 완전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금껏 쭉 감쳐져 있던 신의 영원한 자유,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근원인 그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그 순간, 바로 죽음의 순간에 궁극에 도달합니다.

냉엄하고, 타협의 여지가 없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본회퍼의 여정의 종착점은 기쁨의 비전입니다. 마침내 당신이 실상(實相)과, 바로 신의 실상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의 비전입니다. 그밖의 모든 것들 – 스스로에게 되뇌는 이야기, 즐겨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노력 – 은, 그밖의 모든 것들로는, 이 실상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라고 예수는 말합니다; 이 말이 감옥의 본회퍼를 지탱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얘기하는 것과 정말 똑같습니다 –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들은 영원의 빛에 비추었을 때 중요한 것, 바로 신의 실상, 신의 현실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고뇌와 야망에 가두어놓는 크고 작은 환상들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최고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고, 신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전을 강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비전은 다만, 있는 모습 그대로의 신을 보여주는데 필요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신의 자유 – 이것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자유롭게 하고 실상과 진리 안의 기쁨, 곧 신의 삶을 선사하는 자유입니다 – 와 조화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안락함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본회퍼는 목회자 양성을 위해 운영한 대학의 학생들을 위해 짧은 지침서를 썼습니다. 여기서 그는 매일 성서에 대한 묵상을 위해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신은 이것을 위한 시간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라고 그는 씁니다; ‘신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기까지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매일 우리는 명상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에 우리 자신을 열어놓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명상이 끝났을 때, 명상을 시작하기 전의 우리의 모습으로부터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어떤 종교적인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의 표면을 마치 잔잔한 연못과 같이 고요하게 해서, 우리의 마음이 신을 있는 그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회퍼의 삶과 죽음이 명확히 보여주는 것처럼, 이것은 세상에 대한 어떠한 거부가 아닙니다. 도리어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에 대해서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신이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 그는 우리를 통해서 행동합니다. 꼭 우리를 통해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는 온갖 복잡한 문제들을 고요히 바라보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진리를 감추고, 그래서 정의와 사랑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어떻게 좌절시키는지를 고요히 바라보는 것 – 이것은 사치가 아닙니다. 이것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 자유는 어떤 시점에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 진정한 것이 되고자 하는 자유, 진실하고자 하는 자유, 신약성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진리 안에’ 있고자 하는 자유입니다. 종국에 대체 어떤 다른 종류의 자유가 필요합니까? 이 자유는 어쩌면 살아가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앗아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여정의 역사가 명확히 보여주는 것처럼, 이 스토리의 끝은 성취입니다. 홈커밍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결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곳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자유입니다.

이 강론의 모티브는 본회퍼가 1944년 7월 11일에 쓴 “자유에의 도상의 정류소”라는 시다.

자유에의 도상의 정류소

절제

자유를 찾아 떠나려거든,
욕망과 육신이 그대를 이리저리 끌고다니지 않도록
먼저 감각과 영혼을 절제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당신의 정신과 몸을 깨끗하게 하고,
그 앞에 주어진 목표를 찾아 거기에 복종하고 또 순종하십시오.
절제 없이 자유의 비밀을 맛본 사람은 없습니다.

행동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지 말고, 과감히 오직 정의만을 행하십시오.
가능성 속에서 동요하지 말고, 실상(實相)을 대담하게 붙드십시오.
관념의 세계로 도피하지 마십시오. 자유는 오직 행동 안에만 있습니다.
불안해하며 주저하지 말고, 행동과 사건의 폭풍 속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자유는 당신의 혼을 환호하며 맞이할 것입니다.

고난

놀라운 변화! 당신의 힘차고 생동하는 손이 이제 묶여 있습니다.
당신은 무력함과 고독 속에서 당신의 행동의 마지막을 봅니다.
그래도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그리고 자신있게
정의를 더 강한 손에 내맡깁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해 합니다.
단 한순간이지만 당신은 지극한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영광 속에 완전해질 수 있도록, 자유를 신에게 넘겨 줍니다.

죽음

자 이제 오라. 영원한 자유에의 도상의 최고의 향연이여.
죽음이여, 우리들의 덧없는 육신, 현혹된 혼의
질곡의 쇠사슬과 벽을 부수어
이곳에는 감추어 있던 것을 마침내 보게 해다오.
자유여, 우리는 절제와 행동과 고난 속에서 오랫동안 그대를 찾아다녔다.
죽음에 이르러 이제 우리는 신의 모습 속에서 그대의 얼굴을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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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본회퍼: 자유롭다는 것의 의미 by 로완 윌리암스

  1. 약선생 4월 16일
    우왕~~ 극한에 이르러 터진 글인듯하여 가슴이 참으로 뜨거워집니다!

    G.D. 4월 16일
    선 좋아요, 마감 후 정독을… 이런 글은 목욕재계하고 엄숙하게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첫 문장을 보는 순간…

  2. 매우 강력하고, 매우 인간적이네요.

    뭔가 개인과 사회를 대립시키고 문제를 사회 구조보다는 개인 안에서 찾고 해결하려는 방식을 대단히 싫어하는데, 이 글을 읽으니까 제가 개인 안에서 쇼부를 보려는(?) 그쪽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구나 싶어요. 그.. 뭔가.. 암튼 나도 인간이니까… 본회퍼씨가 하는 말을 알 것도 같고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고 무섭기도 싫기도 하고. 복잡하다 =ㅅ=;;

    1. 본회퍼씨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시니 기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본회퍼가 사회 대 개인에서 개인 쪽에 치우쳐 있는 것 같진 않은데요? 미친인간이 버스를 몰 때 버스에 치어 죽은 사람 장례 치러주는 것이 아니라 이 미친인간을 끌어내는 것이 기독교인의 본분이라는 비유를 든 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힐링보다는 변혁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 뭔가 댓글을 쓰다가 만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과연 그렇네요. 본회퍼씨<씨가 어떻다기보단.. 본회퍼씨를 통해서 제가 뭐 그런 것들을 잘 모른다는 걸 깨우쳤다는 거였구.. 이 강건함을 만들기 위해 내적으로 혈투를 벌인 만도 하겠구나 뭐 그런 거?

    1. 로완님이 얼마전 퇴임하시고 아카이브로 들어가셔서 그렇습니다. 웹페이지들은 redirect를 잘 걸어놓고 파일들은 까먹었나보군요 ㅋ

      링크 수정했습니다. 목소리 정말 엄청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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