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자유! 평등! 소유! 벤담!

[그 안에서 노동력의 매매가 진행되는] 유통분야 또는 상품교환분야는 사실상 천부인권 참다운 낙원이다. 여기에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자유, 평등, 소유, 벤담이다. 자유! 왜냐하면 하나의 상품[예컨대 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는 자기들의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행동하기 때문이다.그들은 법적으로 대등한 자유로운 인물로서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이라는 것은 그들의 공동의지가 하나의 공통된 법적 표현을 얻은 최종의 결과다. 평등!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상품소유자로서만 서로 관계하며 등가물을 등가물과 교환하기 때문이다. 소유! 왜냐하면 각자는 자기의 것만을 마음대로 처분하기 때문이다. 벤담! 왜냐하면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결합시켜 서로 관계를 맺게 하는 유일한 힘은 각자의 이기주의, 이득, 사적 이익 뿐이다. 각자는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바로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사물의 예정조화에 따라 또는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에 따라] 그들 상호간의 이익, 공익, 전체의 이익이 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 자본론 1권 6장, 230

너무나 유명하고 명쾌한 구절이라 별도의 부가적인 설명이 불필요하게 느껴지지만 약간의 사족을 달아 본다.

1. 자유, 평등, 소유, 벤담 – 소위 말하는 리버럴리즘의 정수를 담고 있지 않은가! 마르크스는 자유,평등, 소유, 벤담이 부자유, 불평등, 무소유, 전면적 사회관계의 필연적으로 전도된 형태임을 폭로하고 있다.

2. 이와 동시에 마르크스는 천부인권의 개념 –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인권의 개념을 비판하고 있다. 천부인권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자유, 평등, 소유, 벤담은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 – 이것은 착취관계다 – 전도된 현상형태들이며, 따라서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시대를 초월한 인간상이라는 것은 없다고 보아도 좋다.

* 중요하지는 않지만 낙원의 원문은 에덴동산(Eden)이다.

3. “예정조화”는 아무래도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론을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지칭하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나에게 매우 뜻깊은 구절이다. 10여년 전 바로 이 부분을 읽고 마르크스를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때 7호선이 생기기전 좁아터진 2호선의 하루 두시간 출퇴근 길에서 자본론 1권을 읽었었다. 지식은 부족했지만 열정이 넘쳐 힘든 줄을 몰랐고, 먹고 살기 힘든 공부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다. 좋아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석사,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사이비 이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일과 학업을 병행해서 재정적인 어려움도 없었고 유학을 결심하고 사직서를 냈을 때 회사에서 유럽근무를 권했으니 나는 행운아다. 다만, 돌이켜보면 주경야독을 핑계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월을 낭비한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맹렬히 공부했던 마르크스를 떠올릴 때마다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자책하며 가슴을 친다.

세어보니 그동안 여덟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한 권의 책을 번역했다. 물론 내가 지금의 열배, 백배, 천배의 글을 쓰더라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이론가의 자조와 한탄을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역사유물론의 도도한 물결에 내 몸을 맡기겠다.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프랑스어판 서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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