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오로지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형태의 노동

우리가 상정하는 노동은 오로지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형태의 노동이다. 거미는 직포공들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며, 꿀벌의 집은 인간 건축가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가장 서투른 건축가를 가장 훌륭한 꿀벌과 구별하는 점은, 사람은 집을 짓기 전에 미리 자기의 머리 속에 그것을 짓는다는 것이다. 노동과정의 끝에 가서는 그 시초에 이미 노동자의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던 [즉,관념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적을 자연물에 실현시킨다. – 7장, 236

내 연구주제는 자본주의에서의 기술발전과 지식의 생산에 대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생산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고,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지식의 생산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주제로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정보재 가치논쟁 때문이었다. 이 논쟁은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생산하는 노동을 어떻게 이론화해야 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이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나는 소스코드, 더 넓게는 (한번 생산되면 영원무궁토록 재사용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은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생산하지는 않지만, 이 지식을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상품생산노동을 강화된 노동으로 작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가치생산에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의 출발점은 지식의 생산과 상품의 생산이 분리되어 있고 그 성격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learning by doing이라는 개념이 포착하는 것처럼 상품의 생산이 동시에 지식의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나는 이 둘 사이의 구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지식에 관한 연구를 상세히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 구절을 종종 애용하곤 한다. 마르크스는 “노동과정의 끝에 가서는 그 시초에 이미 노동자의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던 [즉, 관념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결과“가 나온다고 언급했다. 바로 노동자의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던 것, 이것이 지식이다. 그리고 지식은 노동과정의 시초에 이미 존재한다.

물론 여기서 지식노동과 상품생산노동 사이의 구분은 사회형태와 무관한 것이다. 사회형태와 무관한 어떤 것, 마르크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나는 자본주의에서 지식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것이 자본주의의 내적법칙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다른 맥락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지식노동과 상품생산노동의 구분은 마르크스에 따르면 “오로지 인간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쓰기 20여년 전 그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친 바가 있다.

동물은 자신의 생활 활동과 직접적으로 하나이다. 동물은 자신의 생활 활동과 구별되지 않는다. 동물은 자신의 생활 활동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 활동 자체를 자신의 의지와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은 의식적 생활 활동을 가진다. 인간이 직접적으로 그것에 융합되는 규정성이란 없다. 의식적 생활 활동은 인간을 동물적 생활 활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구별짓는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하나의 유적 존재인 것이다. 혹은 인간이 바로 유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의식적 존재이며, 다시 말해서 그 자신의 생활이 그에게 있어 대상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활동은 자유로운 활동인 것이다. 소외된 노동은 이 관계를 전도시켜서 급기야 인간은 자신의 생활 활동, 자신의 본질을 단순히 자신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이는 바로 인간이 의식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78

그가 만 26세에 쓴, 이 책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물론 매우 훌륭한 책이고, 마르크스의 생각이 이 책으로부터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구절을 그의 완성된 생각으로 볼 수는 없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적 생활 활동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자본론의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식적 생활활동이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분지으며, 그를 유적 존재로 만든다. 지식을 생산하는 인간, 그 지식을 토대로 자연을 가공하는 인간, 그가 바로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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