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슬픈 가치론

멸종한 동물 종족을 결정하는 데 화석유골이 중요한 것처럼, 멸망한 경제적 사회구성체를 탐구하는 데 노동수단의 유물이 중요하다. 경제적 시대를 구별하는 것은 무엇이 생산되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생산되는가이다. 노동수단은 인간의 노동력 발달의 척도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속에서 노동하는] 사회적 관계의 지표이기도 하다. 노동수단 중 역학적인 종류의 노동수단 [그 전체를 생산의 골격, 근육계통이라고 부를 수 있다]은, 예컨대 [관, 통, 바구니, 항아리 등과 같이] 노동대상의 용기로 쓰일 뿐이고 따라서 생산의 혈관계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노동수단에 비해, 하나의 사회적 생산시대를 더 결정적으로 특징짓는다. 용기로서의 노동수단은 화학공업에서 비로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주 6)

(각주 6) 지금까지의 역사 기술은 [모든 사회생활의 토대이며 따라서 모든 현실적 역사의 토대인] 물질적 생산의 발달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선사 시대는 이른바 역사연구가 아니라 자연과학적 연구에 입각하여 도구나 무기의 재료에 따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되고 있다. – 자본론 1권 7장, 238-9

1. 역사적 시대의 구분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질적 생산의 방식이며, 물질적 생산의 방식에 그 시대에 고유한 사회적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는 역사적 유물론 (historical materialism)을 깔끔히 설명해 주는 구절이다.

2.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역사를 열어간다는 식의 기술 결정론 (technological determinism)은 곤란하다. 노동수단은 사회적 관계를 규정(determine)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지표(Anzeiger; indicators)”일 뿐이다. 노동수단, 즉 기술은 하나의 화석과 같아서 한 시대의 영화의 흔적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시대의 사회적 관계가 특수한 기술로 환원될 수는 없다.

3. 1962년부터 지식경제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한 이래 정보사회, 정보경제, 신경제 같은 엄청난 용어들이 세상에 나타났다. 대부분 정보통신 기술이 가져다준 새로운 변화를 강조하는 용어들이다. 이러한 조류에 대응하는 좌파적 이론으로는 네그리, 하트 등의 자율주의, 인지자본주의론을 들 수 있겠다. 이들은 물질적 생산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현대자본주의에서는 노동가치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는 제조업의 비중이 낮아져 경제 내에서 제조업이 주변화되고 있다는 현실분석에 동의하지도 않으며, 정보통신 기술의 가장 큰 경제적 기여는 주로 제조업에 가져다준 혁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노동가치론은 제조업에 국한된 이론이 아닐뿐더러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과 같은 매우 특수한 생산방식에만 적용되는 이론은 더더욱 아니다.

4. 노동가치론은 무엇보다 상품생산 – 그 안에서 인간도 상품이 된다 – 을 매개로 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착취)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매우 강력하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세상이 조금 달라졌다 하여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노동가치론은 왜 자본주의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마치 세상이 달라진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현실은 구체적이고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노동가치론에 대한 초보적인 수준의 이해와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들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노동가치론에 대한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바로 노동가치론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겉보기에 위협적으로 보이는 현상들과의 대면울 통해서만 노동가치론의 유효성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가치론은 현실이 거꾸로 서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이론이며, 동시에 현실이 필연적으로 거꾸로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현실을 바로 세우려는 이론이 아니다). 본모습이 필연적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진정한 미가 추함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타살이 자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슬픈 이론이다. 가치론은 전도된 현상의 영역과 그 본모습의 영역을 종횡무진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현상의 영역이 폭로된 본모습과 다르다고 해서 노동가치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면, 노동가치론은 쓸쓸하다. 왜냐하면 노동가치론은 현상이 그 본모습과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론 공부에 필요한 것은 일종의 믿음과 신뢰다.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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