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자본가의 항변과 쾌활한 웃음

상황은 이렇다.

  • 10 파운드 면사의 가격= 15원
  • 10 파운드 면사의 생산에 필요한 생산수단 (면화, 방추) = 12원
  • 10파운드 면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 = 3원
  • 자본가에게 남는 돈 = 0원. 이윤 없음!!!

그래서 자본가는 다음과 같이 항변을 시작한다.

(항변 1): 돈 벌려고 시작한 사업이다!

속류경제학에 정통하고 있는 자본가는 아마 말할 것이다. “나는 나의 화폐를 더 많은 화폐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투하했던 것이다”라고. 지옥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가지 선량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듯이, 그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돈벌이를 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 자본론 1권 7장, 253

다소 번역에 문제가 있다. 올바른 번역은 다음과 같다 – 지옥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선량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자본가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돈벌이를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1)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2) 돈벌이를 하려면 꼭 생산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다라고 반박하고 있는 셈이다. 비봉판의 번역은 (1)과 (2)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항변 2): 돈도 못 벌 바에라면 생산은 포기하고 구매만 하겠다!

그는 위협적으로 말한다. 두 번 다시는 이와 같이 속지 않겠다고. 앞으로는 자신이 직접 상품을 제조하지 않고 시장에서 기성품을 사겠다고 그러나 만약 그의 동료 자본가들이 모두 그렇게 한다면 그는 어느 시장에서 상품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화폐를 먹을 수는 없다. – 253-4

아무도 생산하지 않고 구매만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 -> 불가능하다.

(항변 3): 나의 절제를 보상해다오!

그는 호소한다. “나의 절제를 고려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15원을 아무렇게나 써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나는 그것을 생산적으로 소비해 그것을 면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옳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대가로 이제는 나쁜 양심 대신 좋은 면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폐퇴장자가 한 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에게 결코 좋은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금욕이 초래하는 나쁜 영향을 화폐퇴장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바이다. 더구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황제도 그 권력을 상실하는 법이다. 그의 금욕의 장점이 무엇이든, 생산과정에서 나온 생산물의 가치는 이 과정에 투입된 상품가치의 총액과 같을 뿐이기 때문에 그의 금욕을 특별히 보상해 줄 만한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덕행의 보수는 덕행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 254

첫번째 반박은 15원을 아무렇게나 낭비하지 않은 대가로 자본가는 이제 면화와 방추 대신 면사를 갖게 되었다는 것. 두번째 반박은 생산하지 않고 꼬불쳐 놓아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것 (화폐퇴장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항변2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화폐를 먹을 수는 없으니까). 세번째 반박은 어차피 상품의 가치는 이 과정에 투입된 상품가치의 총액과 같으니 절제를 보상하고 싶어도 (설령 황제에게 주고 싶어도) 줄 것이 없다는 것.

(항변 4): 아, 나는 팔기 위해 생산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자본가는 더욱 집요하게 주장한다. “면사는 나에게는 쓸모가 없다. 나는 그것을 판매하기 위해 생산했던 것이다”라고. 그렇다면 그는 그것을 팔면 될 것이다. 또는 더욱 간단하게,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만을 생산하면 될 것이다 – 254

팔려고 만들었으면 파시오. 아니면 안 팔고 당신이 쓸 물건을 만들던가. 팔려고 만들었으니까 이윤까지 챙겨야 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요.

(항변 5): 나는 노동자를 위해 봉사했다!

“과연 노동자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자기의 손발만으로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가? 내가 노동자에게 재료를 대주었기 때문에 노동자는 그것을 가지고 그것에다가 자기의 노동을 대상화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또한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빈털털이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생산수단, 나의 면화와 나의 방추로 사회를 위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봉사를 하지 않았던가 …” 그러나 노동자도 또한 그를 위해 면화와 방추를 면사로 전환시킴으로써 답례를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봉사가 아니다. 봉사라는 것은 상품에 의한 봉사건 노동에 의한 봉사건 어떤 사용가치의 유용한 효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환가치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3원의 가치를 지불했다. 노동자는 그에게 면화에 첨가된 3원의 가치로 정확한 등가를, 즉 가치에 대해 가치를 반환했다 – 254-5

물적 부의 생산은 노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당연한 상식. 그래서 노동도 (물적 부의) 생산에서 (방추나 면화 만큼이나)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는가? 노동자에게 생활수단을 주었다는 얘기는 맞다. 그래서 노동자도 그 생활수단의 가치만큼의 새로 생산된 가치를 반환하지 않았는가?

(항변 6) 나 자신도 (감독)노동을 했다!

우리의 친구는 이제 갑자기 [그가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처럼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말한다. “나 자신도 노동하지 않았는가? 방적공을 감시하는 노동을, 총감독이라는 노동을 하지 않았는가? 나의 이러한 노동도 역시 가치를 형성하지 않는가?”라고. 그가 고용하고 있는 감독과 관리인은 어이없다는 태도로 어깨를 으쓱한다.

감시, 감독 등의 노동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가치를 생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감독노동의 가치생산여부는 중요한 쟁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가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노동이 자본가가 고용한 감독과 관리인에 의해 수행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자본가는 쾌할하게 웃으면서 본래의 표정을 되살린다. 그가 지금까지 장황하게 말한 것은 모두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었다. 그 자신도 그런 말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따위 핑계와 속임수는 고용된 경제학 교수들에게 맡겨두고 있다. 그 자신은 실무적인 사람이므로 사업 이외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반드시 깊이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업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잘 알고 있다. – 256

TV토론에 기업주가 나와 토론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신문에 재벌총수나 대기업 대주주가 친기업정책을 옹호하는 칼럼을 쓴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런 말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 따위 핑계와 속임수”는 그런 일을 하라고 돈을 받는 경제학 (혹은 당시에는 정치경제학) 교수들에게 맡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자본가의 항변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법인세율이 높아 사업을 하기 어렵다; 국내임금수준이 높아 곧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다; 기업이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등등. 생각해보니 이런 말, 기업주들이 직접 나서서 하는 경우 별로 없다. 대부분은 XXX 박사, 교수, 연구원 등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자본가의 격은 다르다. 세계 최고의 자본가 워렌 버핏은 (이익에 대한) 세율이 높아 투자를 주저하는 자본가를 본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의 실무적인 자본가는 “사업 이외의 일에 대해 …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TV토론에 나와 이런저런 말들을 하며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놓는 사이, 홀로 사태의 본질을 떠올리며 쾌할하고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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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84) 자본가의 항변과 쾌활한 웃음

  1. heesang님, ‘자본론 함께 읽기’ 글들에 제가 ‘read_cap’이라는 태그를 일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태그가 붙은 글들은 맨위에 메뉴바에서… ‘블로그>자본론 함께 읽기’로 접근 가능합니다. 그러니 앞으론 이 글들에 이 태그를 붙여주셈 :)

  2. 말씀하신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분을 일판에서 찾아보니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는 생산하지 않고 돈벌이를 하려고 할 수도 있다” 정도로 옮길 수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좋은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듯이 그도 생산을 하지 않고 돈을 벌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길판).

    여름 내내 이어지던 지옥의 마감 레이스가 끝났으니, 이제 틈틈이 희상샘 글로 복습하려고요. 어쩐지 감회가 새롭습니다…ㅠ.ㅠ

    1. 길판이나 일어판 모두 “지옥”부분이랑 “돈벌이” 부분을 연계시키고 있네요. 저는 이 두 문장이 서로 별로 연관이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겠습니다. 일어판의 지지를 받지 못하니 뭔가 후달리는 느낌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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