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복잡한 노동에 얽힌 복잡한 사정

자본가가 취득하는 노동이 사회적 평균 수준의 단순한 노동인가 아니면 더 복잡한 노동인가는 가치증식과정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 평균노동보다 고도의, 복잡한 노동은 [단순한 미숙련 노동력보다 많은 양성비가 소요되며 그것의 생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이 드는] 노동력의 지출이다. 이러한 노동력은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고급 노동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동일한 시간 안에 상대적으로 더 큰 가치로 대상화된다. 그러나 방적노동과 보석세공노동 사이의 숙련 차이가 어떻든, [보석세공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보상할 뿐인] 노동부분은 그가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추가적 노동부분과 질적으로는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다 … 우리는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는 단순한 사회적 평균노동을 수행한다는 가정에 의해 불필요한 조작을 생략하고 분석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 자본론 1권 7장, 261-2

1. 복잡한 노동 혹은 고급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세 번째 언급이다. 그는 1장 1절의 초반부에서 복잡한 노동의 단순 노동으로의 환원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하에서는 각종 노동력을 단순노동력으로 간주할 것인데, 이것은 오직 환산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이다”라고 언급했고, 6장에서는 교육과 훈련 비용이 노동력 가치에 더해진다고 주장하면서, “이 비용은 노동력이 어느 정도로 복잡한 훈련과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강조 추가).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사회적 평균 노동에 비해 (단위 시간 당)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복잡한 노동은 언제나 복잡한 노동력의 지출이며, 복잡한 노동력은 복잡한 훈련과 교육의 산물이다.

2. 그런데 사정은 이것보다는 복잡하다. 마르크스는 1장에서 한번, 7장에서 한번 이렇게 두번씩이나 노동(력)을 항상 단순 노동(력)으로 취급하겠다고 언급했는데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1장이나 7장에서 제기하는 복잡한 노동(력)의 문제는 전체 논의의 맥락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고, 마르크스는 복잡한 노동(력)의 단순 노동(력)으로의 환원에 대해서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가령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그는 “[복잡노동의 단순노동으로의] 환원을 규율하는 법칙들은 여기에서 논하지 않겠다. 그러나 환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쓴다.

3. 복잡한 노동(력)이 실재한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환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 까닭에 대해서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왜냐하면 교환가치로서 복잡노동의 생산물은 단순평균노동의 생산물에 대해 일정한 비율로 등가물이고 그러므로 이 단순노동의 일정량과 등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매일매일의 상품들 사이의 (양적) 교환관계가 복잡노동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복잡노동이 단순노동으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노동의 산물이 거기에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노동시간의 세 배나 네 배의 교환가치를 갖는다면, 이 노동은 한 시간의 노동이 네 시간의 단순노동으로 환원되는 복잡노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는 두 가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노동가치론의 위배의 문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의 본령은 상품의 가치와 가격이 우선적으로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인데, 서로 다른 노동들 사이에 그 가치생산능력에 있어 일종의 위계가 존재한다면, 노동 뿐만 아니라 이 위계를 규정하는 요소들 역시 가치결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가령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의 노동의 복잡도가 일반적인 수준보다 높다면, 노동뿐만 아니라 교육 역시 가치를 생산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둘째, 순환논법의 문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가치생산능력의 위계를 결정하는 것은 노동의 복잡도인데, 노동의 복잡도 사이의 차이는 결국 상품들 사이의 교환비율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복잡한 노동이기 때문에 가치를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은 결국, 가치를 더 많이 생산하는 노동을 그냥 복잡한 노동이라고 부르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4. 첫번째 비판, 그러니까 노동 이외에 다른 요소가 가치를 규정하게 된다는 비판은 베일리가 리카도의 가치론에 대해 제기한 비판과 유사하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학설사’에서 베일리의 리카도 비판을 다룬다. 베일리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노동(일)이 동일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가치를 생산한다면, 둘 중 하나를 단일한 가치의 척도로서의 노동(일)을 확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노동가치론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리카도를 비판한다. 모든 노동은 그 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가치를 생산해야 하고 오직 그 경우에만 노동가치론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리카도가 이 둘 사이의 양적 관계가 (비록 리카도가 그 관계의 내용을 해명하지는 않았지만) 주어져 있다면, 다시 말해 두 개의 서로 다른 질적 노동시간이 하나의 단일한 노동시간을 환원되는 비율이 주어져 있다면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측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재미있게도 베일리 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해석, 그러니까 동일한 시간 동안의 노동은 그 질적 차이와 무관하게 양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생산한다는 해석은 지금도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물론 오직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 안의 에너지가 노동 중에 소모되어 그것이 생산물 안에 결정화 되었다는 식의 에너지 보존법칙과 같은 이론은 아니다. 노동가치론은 오직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이론이며, 동시에 기술, 숙련도, 교육수준, 토지의 비옥도 등이 노동만이 생산하는 가치의 양을 규정한다는 이론이다.

5. 두번째 비판, 즉 순환논법에 대한 비판은 결국 마르크스가 복잡한 노동(력)을 정의한 후에 그 결과(더 많은 가치생산)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서 출발해서 그 근원을 ‘복잡함’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류의 설명은 생각하는 것보다 꽤 일반적이다. 어떠한 타자가 훌륭한 타자인가 (원인)? 타율이 높은 타자다 (결과). 어떠한 투수가 훌륭한 투수인가 (원인)? 방어율과 피안타율이 낮은 투수다 (결과). 어떤 노동이 생산성이 높은  노동인가 (원인)?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생산물을 생산하는 노동이다 (결과).

복잡한 노동(력)과 단순한 노동(력)의 문제의 경우 복잡함의 척도는 노동 그 내부가 아니라 그 결과에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은 우선 (질적으로 단일한) 가치를 생산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력)이 복잡한 노동(력)이며, 복잡한 노동(력)은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력)이다. 의사의 노동이 용접공의 노동보다 더 복잡한 노동인 것은 의사의 노동이 용접공의 노동에 비해 본질적으로 복잡한 노동이어서가 아니라, 동일한 시간 동안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가? 마르크스가 얘기했듯이 그것은 “생산자들의 배후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에 의해 결정”(자본론 1권, 56)된다. 다만, 그는 이 사회적 과정, 환원비율을 “규율하는 법칙을 논하지는” (비판, 15-16) 않는다.

6. 노동(력)의 복잡도의 차이는 이것이 노동(력)의 가치 혹은 임금의 차이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잉여가치학설사의 같은 부분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다. “[리카도]는 이 [양적 환원]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며 규정되는지를 기술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임금의 정의에 속하며, 종국적으로는 노동력 가치의 차이, 다시 말해 노동력의 상이한 생산비용으로 환원될 수 있다” (강조 추가). 직종 간 임금의 격차는 상이한 직종에 필요한 상이한 노동(력)의 복잡도의 차이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것은 동어반복적이고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노동(력)의 복잡도의 차이가 단지 기술, 교육, 훈련의 차이뿐만 아니라 면허, 노동허가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의 결과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노동의 복잡도의 문제는 노동시장에 대한 마르크스적 연구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7.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 2권 (로스돌스키 지음, 정성진 옮김)에는 복잡한 노동(력)에 대한 훌륭한 글이 있다 – 31장 숙련노동의 문제. 하지만 일반적으로 복잡한 노동(력)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미진한 것 같다. 마르크스가 사용한 대부분의 개념이 그런 것처럼 복잡한 노동(력) 역시 그가 창안한 개념이 아니다. 스미스와 리카도, 그리고 본문의 주에 소개된 캐즈노브 등은 모두 ‘환원’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에서 복잡한 노동(력)이 어떻게 이론화 되었으며, 마르크스의 이론은 이와는 어떻게 다르고 이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연구한다면 매우 훌륭한 석사/박사 논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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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86) 복잡한 노동에 얽힌 복잡한 사정

  1.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호함이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겠군요.
    1.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지, 동일한 노동시간이 동일한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 아니다.
    2. 현실에서 나타나는 임금의 차이, 즉 노동력 가치의 차이는 노동력을 생산하는 비용에 따른다. 다시 말하면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교육, 제도 등은 가치를 결정하는 변수이기는 해도, 가치의 원천은 아니다.
    이 정도로 이해되는데 맞는지 모르겠군요.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위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던 정운영의 글에서 동일한 노동시간은 동일한 가치를 가지며, 현실에서 나타나는 임금의 차이를 가치의 가격으로의 전환을 통해 해명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나는데, 다시 한번 살펴보면 더 질문 드릴 것이 생길 듯합니다.^^

    1. 안녕하세요 candy님. 저도 정운영 선생의 글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요약하신 내용도 맞구요. 언제든지 질문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2. 복잡노동과 단순노동은 평소 늘 궁금해하던 부분이라서, 정운영의 에서 관련 부분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복잡노동/단순노동 또는 숙련노동/비숙련노동 이야기가 있더군요.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는데, 그 책에서는 희상샘과 논지가 다르더라고요. 희상샘은 위에서 “복잡한 노동(력)은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력)”이라고 하셨는데, 그 책에서는 복잡노동이든 단순노동이든 “동일한 노동시간은 동일한 가치를 생산한다”고 못을 박고 있거든요.

    “단순노동과 복잡노동, 혹은 비숙련노동과 숙련노동의 구분이 가치이론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가치결정에 관한 것이지 가치생산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복잡노동은 단순노동에 비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고 잘못 설명하기가 예사이다. (…)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와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가 동일한 노동시간에 동일한 가치를 생산한다 (…) 가치를 노동시간으로 측정하는 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동시간이 동일해도 숙련노동은 비숙련노동에 비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는 ‘오해’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사정에 기인한다”고 하면서 첫째로 “노동생산물의 판매조건에 관련된 문제”, 둘째로 “노동력의 판매와 관련된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164~68쪽)

    음… 아무려나 초심자가 보기에는 좀 무리인 책을…;; 잠깐 외도한 셈 치고 저는 다시 자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 마르크스가 복잡노동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고 했으니까, 저는 담백하게 정운영 선생이 틀렸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가치결정과 가치생산이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모르겠구요.

      정운영 선생님 책은 (루빈적 전통의) 가치형태론의 근거한 마르크스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참고로 저는 가치형태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ㅎㅎ

  3. 아이고, 댓글에서 꺽쇠 기호 쓰면 안 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정운영의 ‘노동가치이론연구’입니다. 뭐 당연히 짐작하시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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