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The Economist

1836년에 시니어가 발견한 ‘최후의 한 시간’이라는 구호를 1848년 4월 15일의 런던 {이코노미스트}에서 고급경제관료의 한 사람인 제임스 윌슨이 ’10시간 노동법안’을 반대하기 위해 또 한 번 외쳤다. –  자본론 1권 9장, 302

원문에 London Economist라고 되어 있는 이 주간지는 바로 “The Economist“다. 주간 발행부수는 150만부이고, 본사는 영국에 있지만 절반 이상의 구독자는 미국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디오 버전도 영국식 영어 버전과 미국식 영어 버전을 고를 수 있다. 그냥 무시하고 한 버전만 제공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좋은 의미에서 대단히 꼼꼼하고 나름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잡지임을 알 수 있다. 위키피디아 엔트리를 보니 대주주가 파이낸셜 타임즈다. 미처 몰랐네.

나도 구독자다. 깊은 생각을 가지고 구독을 시작한 건 아니다. 아이패드 앱을 우연히 다운받아서 트라이얼 버전을 사용하다보니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지금도 매주 하드카피가 배달되기는 하지만, 주로 아이패드로 본다. 출퇴근 길에 영어공부 겸해서 오디오 버전을 듣기도 하고. 분명히 앱을 만들 때 이게 돈은 많이드는데, 구독자 늘리는데 도움이 될까하고 옥신각신 했을텐데 내 경우를 보면 정말 훌륭한 투자를 한 셈이다.

선입견과는 달리 비슷한 이름의 주간지인 매경이코노미나 중앙이코노미스트와는 격이 다르다. 논조 역시 그다지 보수적이지 않다. 미국 부채한도 상향에 관한 논쟁이나 신용등급 하락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의 편을 들었고, 최근에는 유럽재정위기 해결을 위해서 독일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채 채권자들을 가끔 신랄하게 비난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영국의 긴축을 지지한다는 점에서는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 잡지의 비정파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3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사를 참 인상적으로 보았다. 이 기사는 기본적으로 정보기술 등의 발전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에 촛점을 맞추었지만, (산업혁명보다는 거대하고 알맹이 없는 용어인) 지식경제나 정보경제 같은 별 의미 없는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론이건, 논설이건, 기사건, 모두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게다가 위의 그림을 보자. 기사의 주요 내용은 모두 이 그림에 담겨 있다. 예전에 EM님이 레닌과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기사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표지사진이 정말 압권이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얘기하고 싶은 것을 간결하고 임팩트있게 표현하는 능력은 쉽게 습득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영작이랑 표지 제목 뽑기를 배우고 싶다 ㅎㅎ

{이코노미스트} 광고글은 아니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1843년에 창간된 (스스로를 신문이라고 부르는) 이 주간지는 여전히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혁명적) 변화가 일상 그 자체인 자본주의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이코노미스트}도 그 중 하나인 것이다. 나름의 양식있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대표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둘째, 마르크스가 이 주간지를 열심히 읽었다. 1권만 보더라도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꽤 여러번 인용한다. 주로 비판에 활용하지만.

마르크스가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는 주류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것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책을 썼을 것이다. 자본론의 부제가 “신고전파 경제학 비판”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마도 자본론 3권의 ‘이자낳는 자본’에 대한 부분은 오늘날의 경제 위기에 대한 여러 가지 실례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모기지의 증권화, 발권력의 중요성과 같은 이야기들이 반드시 등장했을 것이고, 주류경제학이 이러한 현상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맹렬히 비판했을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균형’ 개념에 대해서도 엄청난 비판이 가해졌을 것이다. 자본론 3권의 ‘지대’에 대한 부분은 주로 주택시장에 대한 분석, 주택시장의 투기성에 대한 비판에 할애되었을 것이고,  자본론 1권에는 아마포, 저고리, 면사 대신에 라면, 자동차, 핸드폰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그는 주로 자정 무렵부터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을 터이다. 여러가지 자료를 검색해 읽고, 중요한 부분을 자기의 폐쇄형 개인 블로그로 옮긴 후에 주석을 달았겠지. 그리고 단 한 명의 친구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보관해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코노미스트}나 FT Alphaville – 매일매일의 금융시장의 동향이나 뉴스에 대한 분석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된다 – 의 기사가 꽤 많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이 두 가지 정도는 관심을 두고 읽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처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각자에게 ‘마르크스의 {이코노미스트}’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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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91) The Economist

  1.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것보다 용어 사용할 때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씀이 제가 최근 고전한 책 때문에 눈에 딱 걸리네요. 나름 권위 있는 학자가 자본주의는 추상이다…에서 시작하는 온갖 주장들을 쏟아 내는 책이었는데 머리가 나빠서 아무 것도 이해가 안 됐거든요. 이코노미스트까지는 못 되더라도 매경이나 중앙 뉴스 기사라도 보는 게 차라리 낫겠네요.

  2. 감사합니다. 매경/중앙 등은 별로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니 대안이 될만한 읽을거리가 많지 않네요. 나중에 제대로 된 잡지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르크스 편에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할 일은 넘쳐 나는 것 같습니다.

  3.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 이사야 벌린의 에 마침 ‘이코노미스트’가 잠깐 등장한 참이어서 이 포스팅을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책을 조금 인용해 보면…

    “[자본론]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독창적인 장들을 구성하고 있는 상세한 사회적, 역사적 연구들은 주로 ‘이코노미스트’지의 경제란이나 경제사에 관한 저술들, 그리고 정부 보고서 -- 마르크스는 정부 보고서를 진지하게 학문에 이용한 최초의 연구자였다 -- 등 런던을 떠나지 않고도, 더 정확히 말하면 대영 박물관의 열람실을 떠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자료들에서 증거를 끌어댈 수 있는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이러한 연구를 한 것은 그가 한창 실천적인 조직활동을 하면서 가끔씩 선동에도 나서곤 하던 때였다. 그런데도 거기에는 마치 저자가 자신이 논의하고 있는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라도 한 듯이 극히 초연한 분위기가 있다. 이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망명 기간 중에 불과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임에도 행동은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순전히 이론적인 탐구에만 몰두하는 초연한 학자가 되었다는 완전히 잘못된 인상을 받곤 한다.” (267~68)

    …마르크스가 당시에 어떻게 활동했는지 잘 모르지만, 이런 글을 읽으면 참 놀라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희상샘 말씀처럼, 그가 요즘 연구를 한다고 하면 웹서핑은 물론이고 각종 정부 간행물도 섭렵했을 듯합니다.

    1. 감사합니다.

      특히 1권 10장 노동일이나 15장 기계제 대공업에서는 영국 정부와 의회 보고서를 정말 자주 인용하죠. 마르크스도 대단하지만, 1800년대에 정부나 의회에 그러한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던 영국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간행물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나라 정부 부처의 보고서나 간행물 중에는 열심히 찾아 읽을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국책연구기관도 마찬가지이구요. 검색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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