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내재적 법칙의 외부적 강제법칙으로의 관철

육체적, 정신적 퇴화, 조기사망, 과도노동의 고통 등에 관한 불평에 대해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쾌락(이윤)을 증가시켜 주는데 어째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라고. 사태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은 개별 자본가의 선의나 악의 때문은 아니다. 자유경쟁 하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이 개별 자본가에 대해 외부적인 강제법칙으로 작용한다. – 자본론 1권 10장, 361.

우선 번역과 관련해서는 “외부적인 강제법칙으로 작용한다” 보다는 ‘외부적인 강제법칙으로 관철된다(geltend machen)”라는 좀더 강한 표현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르크스는 개인의 선의나 악의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에게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구조의 규정을 받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로서의 선의나 악의를 사회적 구조를 바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미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인 한에서다 … 기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 1판 서문, 6, 강조 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문제가 개인의 선의나 악의의 문제로 나타나는 까닭은, 개인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규정이 개인을 마치 사회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인간인 것처럼 나타나게 한다는 역설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규정은 마치 사회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관념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관념이지만 그 관념에서 ‘사회’와 ‘특수’가 은폐됨에 따라 이 관념은 하나의 영원한 사실이자 당위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의 특수성은 그 특수성을 일반성으로 나타나게 한다는 점에 있다. “사회 같은 것은 없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ty)”고 말한 마가렛 대처는 얼마나 솔직하고 대담한가! 사회를 더불어 함께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의 집합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사회적 법칙은 그 모습 그대로 관철되지 않는다. 만물이 만물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행성의 안정적인 공전운동이라는 역설적인 현상으로 관철되는 것처럼, 자본의 “잉여노동에 대한 무제한적인 맹목적 충동”(354)이라는 자본주의 생산의 내재적 법칙은 노동일의 연장을 통한 자본가들 사이의 맹렬한 경쟁으로 나타난다.  자본가들은 ‘나는 자본이 인격화한 것이니까 잉여노동에 대한 맹목적 충동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노동일을 무제한적으로 늘려야 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월급 백만원을 주고 10시간을 부려먹는 자본가는 8시간만 부려먹는 자본가에 비해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따라서 가격인하를 통해 경쟁 자본가를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다.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노동시간의 연장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선택인 것이다. 자본가는 ‘나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노동일을 연장시켜야지’라는 생각으로 행동하고, 바로 이러한 개인의 선의 (또는 악의)를 통해 자본주의 생산의 내적 법칙이 관철되는 것이다.

현대차의 야간노동 폐지에 대해 XX일보는 이렇게 쓴다.

기존 생산 설비의 유휴시간이 늘어나면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심야 근무를 폐지하는 한국 공장과 달리 기아차 미국 조지아 공장은 지난해 6월 주·야간조가 10시간씩 일하던 2조 2교대제에서 3개 조가 8시간씩 일하는 3조 3교대제로 바꿨다. 이에 따라 하루 20시간 돌아가던 공장은 24시간 풀 가동 체제가 됐다 – 강조 추가

이것을 자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나는 노동을 짜내어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갈증이 나. 노동시간을 줄인다니 이것이 웬말이냐. 나는 아직 목 마르다구! 뭐라구?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퇴화, 조기사망, 과도노동 같은 고통은 어떻게 하느냐구? 그런 것들이 나의 쾌락을 증가시켜 주는데 어째서 내가 걱정해야 하지? 나는 한줌의 노동이라도 더 짜내어 맛보고 싶은 뱀파이어 자본일 뿐인걸.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걱정하며 고뇌하는 자본가와 그를 보좌하는 전문가들, 자본 뱀파이어의 현신인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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