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1840년대 영국에서의 오월동주

1846-47년은 영국경제사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시대를 이룬다. 곡물법이 폐지되었고, 면화와 기타 원료에 대한 관세가 폐지되었으며, 자유무역이 입법의 지침으로 선포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천년왕국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한편, 이 동일한 해에 챠티스트운동과 10시간 노동일을 위한 운동이 그 절정에 달했다. 이 운동들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던 토리당을 그 동맹자로 삼게 되었다. 브라이트와 콥덴을 선도로 하는 배신적 자유무역주의의 발광적인 반항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오랫동안 투쟁해 온 10시간 노동법안이 드디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 자본론 1권 10장, 379-380.

곡물법 폐지를 주도한 당시 영국 총리 필(Robert Peel)은 귀족과 토지소유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던 토리당(지금의 영국 보수당)의 당수였다. 콥덴과 브라이트 등의 자유무역 옹호론자들의 논리에 심정적으로 동의했던 그는 1845년에 시작된 아일랜드 대기근(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을 명목으로 의회에서 곡물법 폐지를 밀어붙였다. 비록 당내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데는 실패했지만, 휘그당과 급진주의자들(콥덴과 브라이트 등이 이 그룹에 속한다)의 도움으로 곡물법 폐지안은 의회를 통과한다. 하지만 당의 분열로 인해 필은 실각하고, 이후 친필계 의원들이(Peelites) 휘그당과 급진주의자들에 합류하여 1849년 자유당(지금의 영국 자유민주당의 전신)을 설립하게 된다 (음. 아무래도 필 총리에게서 노무현의 필이 난다).

이때 차티스트 운동에 주력하고 있던 영국 노동자 계급은 반곡물법 동맹으로 대표되는 자유무역론자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마르크스는 {자유 무역 문제에 관한 연설} (영어, 한국어)에서 자유무역이 사회 혁명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혁명적 의미에서만 자유 무역에 찬성한다고 언급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유 무역론자(자본가 계급)의 연합은 다음과 같은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노동자들이 토지 소유자들에 대항하여 자유 무역론자들과 연합했던 것은 봉건제의 마지막 잔재들을 일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는 오직 하나의 적만을 상대할 수 있기 위해서였습니다.

곡물법도, 관세도, 입시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요컨대 노동자가 그의 비참한 상태의 원인이라고 하여 아직은 탓할 수 있는 모든 우연적 사정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잠시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노동자의 진정한 적을 가리고 있던 그만큼 많은 베일들을 찢어 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 마르크스, 자유 무역 문제에 관한 연설

적으로서 서로 맞서기 위해 일단 연합한다는 것, 중일전쟁 중의 국공합작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연합은 예상치 않은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곡물법 폐지로 기득권을 잃은 토지소유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이 극렬히 저지하려고 한 (그래서 마르크스는 “배신적 자유무역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10시간 노동법안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적의 적은 우리편! 이제 노동자 계급은 토지소유자 계급의 편에 선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더해 인도주의적 성향을 보인 토리 개혁파(토리 래디컬)가 10시간 노동 운동을 주도했고, 필 내각의 사퇴 이후 혼란 속에서 10시간 노동법안이 1847년 의회에서 승인되었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기존의 정당들은 해체되었지만 새로운 정당의 건설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던 혼돈의 1847년에 10시간 노동법이 마침내 통과되었던 것은 노동자들에게 있어 그래서 하나의 행운이었다 [heesang – 토지소유자들과의 연합이 노동운동의 보수화를 초래했었기 때문에 행운이라고 한 것이다]. 일련의 극도로 혼란스러운 투표를 통해 이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제조업자들과 광적 보호주의자들인 토지소유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정치집단도 일사불란하고 일관된 투표행태를 보이지 않았다. 10시간 노동법의 통과는 귀족들, 일단의 친필계 의원들, 휘그당 의원들의 하나의 트릭이었다. 그것은 제조업자[자본가]들이 곡물법의 폐지를 통해 얻어낸 엄청난 승리에 대한 보복이었다. – 엥겔스, 10시간 노동법

원칙과 선명성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배층 분파들과의 다이내믹한 연합행위를 통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관철해 나가는 것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 자체로 연합의 산물인 통합진보당이 지난 총선에서 자력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민주당과 공동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한 후 우선 선거법을 개정해서 의회에서의 노동자 정치의 대표성을 확대하기를 바랬다. 총선결과와 이후의 경과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원칙, 선명성, 대중성, 새로운 연합의 가능성 중 단 하나도 지켜내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정치적, 행정적, 기술적) 무능력이 원망스럽고 한심할 뿐이다.

1840년대 영국의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인 자본가 계급과 토지소유자 계급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2012년 대한민국의 노동자 계급은 무엇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이루고 싶은가? 우리의 주적은 누구이며 그 적의 적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의 적과 우리의 적의 적들의 싸움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가? ‘기본소득’이 원칙과 관련된 어젠다라면 (나는 기본소득의 이론적 배경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인지자본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경제민주화’는 연합과 이이제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후자를 놓고 적과 적의 적들이 큰 싸움을 벌일지 모르겠다. 희대의 반자본주의의 전략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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