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노동생산성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다

이것은 [heesang – 노동생산성을 2배로 만드는 것은] … 노동수단이나 노동방법 또는 이 두 가지가 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노동의 생산조건[즉, 그의 생산방식], 따라서 또한 노동과정 그 자체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노동생산성의 상승이라는 말은 노동과정에 변화가 일어나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단축되며, 그리하여 주어진 양의 노동이 더 많은 양의 사용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자본론 1권, 12장, 426, 강조 추가

일정한 기술 수준 하에서 노동생산성의 증가에는 양적 제한이 따르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순수히 그 양적 측면에서만 고찰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생산성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의 평균적 숙련도, 과학과 그 기술적 응용의 발전 정도,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 그리고 자연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 49-50

4편에서 마르크스는 특히 2-4번째의 요인 – 과학기술,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에 관심을 쏟는다. 이것들이 노동과정에 변화를 아니 혁명을 일으키는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노동과정의 질적 변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의 양적 변화를 야기한다 (혹은 노동생산성의 양적 제한을 제거한다).

지금까지 노동일의 연장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을 고찰함에 있어 우리는 생산방식이 주어져 있고 불변인 것으로 전제했다. 그러나 필요노동이 잉여노동으로 전환됨으로써 잉여가치가 생산되야 하는 경우에는, 자본이 역사적으로 전해 온 형태의 노동과정을 그대로 계승해 그 노동과정의 계속시간을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노동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으려면 먼저 노동과정의 기술적, 사회적 조건, 따라서 생산방식 그 자체가 변혁되어야 한다 – 426, 강조 추가

1.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노동과정이 동시에 가치증식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치증식과정으로서의 노동과정의 존재가 노동과정 그 자신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 가치의 멈추지 않는 자기증식은 노동과정의 멈추지 않는 자기변혁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중성은 초역사적 내용이 역사적 형태를 취한다는 존재적 이중성에 그치지 않는다. 도리어 지배적인 것은 역사적 형태가 초역사적 내용에 가하는 역습으로서의 이중성이며, 이 역습이 야기하는 변증법적 운동이다.

2. 노동과정의 기술적, 사회적 조건은 무엇을 뜻하는가? 앞에서 노동생산성의 결정 요인으로 “과학과 그 기술적 응용의 발전 정도”와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을 언급했는데, 기술적 조건은 전자에, 사회적 조건은 후자에 대응한다. 특히 14장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마르크스는 분업 하에서의 노동을 (협력적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사회적 노동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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