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경쟁의 과학적 분석” 對 완전경쟁의 유토피아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이 개별 자본들의 외적 운동에 표현되어 경쟁이 강제하는 법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를 추진시키는 동기로서 그의 의식에 도달하는 방식을 여기에서 고찰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이 점만은 분명하다. 즉, 경쟁의 과학적 분석은 자본의 내적 본성이 파악된 뒤에라야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 자본론 1권 12장, 428

마르크스는 경쟁을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인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현상형태로 파악한다. 경쟁이 노동일에서 필요노동의 비중을 최소화하려는 자본의 본질적 성격이 현실화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과학적 분석은 언제나 본질에서 출발하여 그 현상형태를 재구성해내는 것에 있다.

경쟁으로부터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나 이윤율의 저하와 같은 총계수준의 경향을 도출해내는 이론들은 사회적인 것을 개별적인 것의 총합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의 방법과는 명백히 다르다. 마르크스는 아마도 이러한 이론들을 경쟁물신주의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상품의 현실적 가치는 각각의 개별적인 경우에 실제로 소요되는 노동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따라서 만약 새로운 방법을 채용하는 자본가가 자기의 상품을 12원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판매한다면, 그는 그 상품을 개별 가치보다 3원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되며, 따라서 3원의 특별잉여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 429

이 문단은 대단히 간단하고 직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초등학생도 금새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경쟁을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기업경영에 경제학이 전혀 유용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경쟁은 경쟁우위와 연관되어 있다. 평균적인 수준보다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만들어내면, 경쟁업체에 비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추가적인 이윤(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특별잉여가치)으로 생산규모를 더 늘릴 수 있고,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며, 아니면 가격을 낮추어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혁신은 경쟁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다.

뒤처진 기업들은 선두주자를 따라잡거나 망하는 수밖에 없다.

개선된 생산방식을 채용하는 자본가는 [heesang: 혁신기업가는] 동일한 생산부문의 다른 자본가에 비해 1노동일 중 더 큰 부분을 잉여노동으로 취득한다 … 그러나 다른 한편, 새로운 생산방식이 일반화되고 그리하여 상품의 개별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차이가 제거되자마자, 이 특별잉여가치는 소멸한다.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결정의 법칙은 새로운 생산방법을 채용하는 자본가로 하여금 자기의 상품을 그 사회적 가치 이하로 판매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리고 또 바로 이 법칙이 경쟁의 강제법칙으로 작용해 그의 경쟁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heesang: 모방을 통해 따라잡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경쟁을 혁신과 따라잡기의 멈추지 않는 싸이클로 보았다. 그에게 경쟁은 앞서거니 뒤서거니의 무한반복이다. 이 과정에서 독과점이 나타날 수도 있고, 기존의 독과점이 해체될 수도 있으며, 경쟁이 격화될 수도 완화될 수도 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은 패자가 되기도 하며, 오늘의 패자가 기적적으로 회생할 수도 있다. 마르크스의 사전에 고정이나 정체라는 단어는 없다. 이러한 무한반복 사이클과 맞물려 상품의 가치와 노동력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상대적 잉여가치가 생산된다.

누구나 수긍할만한 얘기다. 모든 훌륭한 기업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상황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이다. 경쟁업체에 비교하여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외부환경의 변화에 비추어 기회요인과 위기요인을 식별해낸다 (SWOT 분석). 위대한 (great) 아이스하키 선수가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움직일 곳으로 가는” 것처럼 위대한 자본가는 미래의 강점과 미래의 약점에 주목한다.

뭐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이 당연한 현실인식이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모토가 변화와 혁신이라면, 경제학의 모토는 불변과 정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경쟁이 혁신과 따라잡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의 무한반복이라면, 경제학에서는 독점은 영원한 독점, 과점은 영원한 과점, 완전경쟁은 영원한 완전경쟁이다. 경제학의 시간은 정지해있다.

게다가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완전경쟁은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이어서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경쟁형태다 (아래를 보라).

  1. 시장에는 (무한한)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므로, 개별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정이 가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가격은 주어진다.
  2. 이 주어진 가격에서 생산자는 생산능력이 허락하는 만큼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무한대의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새로운 생산자의 시장진입과 기존 생산자의 퇴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4. 모든 경제주체는 동일한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엉뚱하다. 이 중에 하나라도 만족되는 시장이 있으면 리터럴리 열 손가락에 장 지진다. 이런 이론적 가정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현기증이 나기까지 한다. 이 네 가지 조건이 결국 의미하는 바는 모든 소비자들은 동일해서 한 명의 소비자로 대표될 수 있고, 모든 생산자들 역시 동일해서 한 명의 생산자로 대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분석함에 있어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의 커트라인이 동일하고, 모든 고3 학생들 성적이 동일하다고 가정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가정을 토대로 이론을 계발하고 그 결과를 놓고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라. 이보다 기가 막히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경제정책의 영역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2011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우리나라의 11개 경제관련 국책연구기관이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분석해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로 인해 “단기적으로 관세감출에 따른 교역 증대와 자원배분 효율화에 따라 실질 GDP가 0.02% 증가”하며 “장기적으로는 자본축적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5.66%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분석에는 연산가능일반균형(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CGE)모형인 미국 퍼듀대학의 GTAP모형을 사용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CGE 모형은 생산, 소비, 투자, 정부지출 등 경제주체의 상호의존적 개별 부문과 수출입 등 대외부문을 통합한 모형으로 강한 가정과 자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FTA의 경제적 효과추정을 위해 범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모형”이다 (강조 추가). 나는 CGE 모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래 신범철 교수의 비판을 보자.

표준 GTAP모형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GTAP 모형의 하나로, 흔히 FTA의 거시경제효과를 추계하는데 벤치마크로 활용되고 있다. 이 표준 모형은 기본적으로 상품과 생산요소 시장에서 완전경쟁, 리스크 없는 완전 자본시장, 생산의 규모수익 불변, 생산지 구분에 의한 상품의 구별 등을 가정하고 신고전학파의 일반균형이론을 구현하고 있다.

상품시장은 완전 경쟁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상품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여 균형에 도달하고 상품의 가격은 생산자의 한계비용과 일치하게 되어 모형 내에서 가격-비용 마진(price-cost margin)은 1이 된다. 모든 경제주체자는 가격순응자이고 장기적으로 이윤은 0이 된다. 개별 국가의 소비주체는 단 하나의 대표적인 가계(a single representative)로 나타내고, 가계의 총지출은 국가의 총소득(=가계소비+정부지출+국가저축)의 일정한 비율로 결정된다. 각국의 대표적인 가계는 주어진 지출 내에서 효용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상품을 선택·소비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의 대표적인 가계의 가정은 경제주체자간의 상호관계를 배제하는 것이고 개별 국가내의 개별 소비자의 소득분포는 원천적으로 고려될 수 없다. – 신범철, “CGE에 의한 한.미 FTA의 거시경제효과 분석: 비판적 검토와 협정문에 따른 추계”, 강조 추가

그러니까 이렇다. 이 세상에 어떤 낙원과 같은 국가가 있어 완전경쟁이 그 국가의 모든 경제부문을 지배한다. 이 낙원의 원리는 절대적 평등이다. 이곳의 모든 시민들은 동일한 정보와 동일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취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명의 시민이 시민 전체를 대표한다. 모든 시민들은 완전히 고용되며, 실업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삭제되지 오래다. 기업들이 만든 상품은 모두 판매되고, 모든 기업주는 동일한 이윤(실은 이자)을 획득한다. 사업에는 전혀 리크스가 없어 사업 시작과 동시에 이윤의 규모가 확정되며, 파산과 청산절차는 사문화된 법률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지상낙원이 미국과 FTA를 맺으면, GDP는 (자본축적과 생산성효과를 고려할 때) 5.66% 만큼 증가한다. 참으로 꿈같은 얘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모형의 기저이론이 명백히 비현실적이더라도 추정치와 현실의 수치는 많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의 통계치를 토대로 모형을 정밀하게 마사지 해왔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를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신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속적으로 발달해온 국가경제통계, 통계치 사이의 연관관계에 대한 분석, 산업연관표 같은 것들 때문이다.

나는 완전경쟁이라는 어이 없는 이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주류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깊이 안도하곤 한다. 나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론에는, 금속을 금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다고 믿는 연금술 같은 경제학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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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108) “경쟁의 과학적 분석” 對 완전경쟁의 유토피아

  1. 리트윗이 20이나 되어 깜짝 놀랐다. 내가 그렇게 글을 잘 썼나하고 뿌듯했는데, 클릭해보니 온통 비판 뿐 :)

    리트윗하며 더한 코멘트에까지 답하기는 좀 뭐하다. 혹시 제 응답이나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여기에 덧글을 쓰시거나 이메일 (오른쪽 사이드바에 있습니다) 주세요.

    다만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잡문가’님의 다음과 같은 코멘트에 대해서는 간단히 답하고 싶다:

    japmoonga 잡문가
    (108) 경쟁의 과학적 분석 對 완전경쟁의 유토피아 -- http://t.co/U9mtRoSc 난 이 글에 동의할 수 없다. 무엇보다 왼전경쟁은 이상이 아니라 교환의 순수한 추상이다. 추상노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스티드먼의 지적을 반대로 반복하다니..

    나는 ‘그러면 가치생산은 완전경쟁 하에서만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다. 내 대답은 ‘가치생산여부는 주류경제학의 경쟁형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완전경쟁시장이건, 독점시장이건, 과점시장이건 자본에 고용되어 상품생산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가치를 생산하고 있고,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완전경쟁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서 가치와 추상노동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이다.

    1. 정신현상학을 읽다가 전에 heesang님의 언급이 생각나서 이 글을 찾아봤어요. 그런데 글이 너무 어려워서(사실은 제가 경제에 대해 너무 몰라서) 쫄았어요. ㅠㅠ

      한심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질문해도 될까요. 스티드먼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추상노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반대로” 반복한다는게 무슨 뜻이죠?

      이어서 heesang님은 “완전경쟁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서 추상노동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 잡문가님의 비판은 heesang님이 추상노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스티드먼의 지적을 반복했다는 것 같아요. 아닌가요?

      왜 이런 소릴 하냐면, 아래 문장에서 순수한 추상은 죽음을 뜻합니다.

      “사자의 힘은 순수하게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원소화된 개체라는 데에 있다. 즉 일찍이 원소적인 상태를 탈각하여 스스로가 처해 있는 민족의 현실적인 일원임을 의식하고 있던 개인이 자기의 본질이며 근원이기도 한 순수하게 추상적인 원소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제부터 이러한 사자의 위력이 민족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살펴봐야만 하겠다.” 정신현상학.

      상품에 재현된 추상노동은 죽은 노동이고 비현실적이지만, 그것은 법(가치법칙)으로 현실을 규정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잡문가님의 비판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혹시 heesang님이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뭐가 문제라는건지..

      1. daydream님,

        1. 경제학 관련된 내용은 뭐 사실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니 그냥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2. 스티드먼은 임금격차가 구체노동의 추상노동으로의 환원과 동일한 효과를 갖기 때문에 추상노동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의사와 간호사의 노동을 서로 비교하기 위해서 제 3의 추상노동의 존재를 상정할 필요가 없다는거죠. 임금의 격차가 두 배라면, 동일한 시간에 의사가 간호사에 비해 두 배의 가치를 생산한다는 거죠. 어차피 한 단위로 다 환원되는데 복잡하게 추상노동이라는 범주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추상노동은 머릿 속의 ‘추상’의 결과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스티드만의 주장입니다. 여기서는 이질적인 것이 우선 존재하고, 이들이 교환을 통해 동질적인 것이 됩니다. 이질성이 동질성에 우선합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단 추상노동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입니다. 그리고 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동질적인 노동이 이질적인 노동들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시간적으로 동질적인 노동이 우선 존재하고 그 다음에 이질적인 노동들이 탄생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 동질적인 노동과 동의어입니다 -- 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총체 속에서 구조적으로 그리고 인과적으로 이질적인 노동들에 비해 더 근본적인 층위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3. 잡문가님은 제가 완전경쟁 개념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 것이 스티드먼 류의 비판이라고 해석하신 듯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구요. 완전경쟁을 교환의 순수한 추상이라고 하셨는데, 이것도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간혹 완전경쟁과 가치생산을 동일시하는 듯한 글을 봅니다. 완전경쟁이 없으면 가치생산도 불가능하다는 시각이지요. 그래서 완전경쟁이 무너지더라도 가치생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4. 헤겔의 추상개념을 통해서 ‘추상노동’을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추상노동이 매우 현실적인 노동이라고 봅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래서 마르크스가 추상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구요. 제가 1장부터 시작하시기를 권해드렸는데, 그건 제가 1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 저는 여전히 12장에 있습니다 -- 1장부터 3장까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 저는 요즘 1장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그런데 내용이 굉장히 새롭다는걸 느끼면서 제가 기초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저는 뉴턴에 관한 책을 두 권 갖고 있는데 뉴턴은 소년시절에 굉장히 난해한 책부터 시작했다고 해요.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되면 계속 앞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제 경우에는 1장을 읽는게 몇번째인데 아직도 새로운 걸 보면 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ㅠㅠ

        프린키피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맑스의 과학적 입장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이죠.

        “특정한 천체의 실제 운동과 겉보기 운동을 찾아내고 적절하게 구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는 불변의 공간을 우리의 감각으로는 결코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실제 운동과 다른 겉보기 운동으로부터 우리를 인도할 몇 가지 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진짜 운동을 원인과 결과인 힘으로부터 얻는다.”

        1. “프린키피아”의 첫번째 Scholium(주석)에 나오는 얘깁니다.

          http://www.archive.org/stream/newtonspmathema00newtrich#page/n87/mode/2up

          책 본문 82쪽 새로 시작하는 패러그래프의 앞 부분에 해당하지요.

          주의할 점은, 뉴튼의 이 주장이 본질과 현상, 내지는 본질과 외관에 관한 설명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앞에서 뉴튼은 절대운동과 상대운동에 대해서 다소간에 길게 얘기하고 있는데,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뉴튼의 절대운동 개념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프린키피아”의 1장 -- 3장은 “자본”의 첫 세 장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뉴튼 스스로도 “프린키피아”를 다 읽기 힘든 사람은 첫 세 장만 읽어도 충분다고 했구요.

          글쿠, 어느 책이든 다시 읽었을 때 새롭게 느낀다는 것은
          “버섯돌님”이 그만큼 지적으로 더 넓어졌고 깊어졌다는 얘깁니다.

          홧팅!

        2. 오오 그렇군요. (무슨 얘긴지 모르겠지만 ㅠㅠ)

          오늘 제가 아는 분과 집 근처에서 잠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항등원과 역원 얘기가 나왔는데 절대운동과 상대운동도 그런 것인가요???

          질문이 아니니 제발 대답하지 마세요. 못알아들어요. ㅠㅠ

          과학이 심오하게 느껴지는건 제가 그만큼 무지하기 때문이겠죠.

          열공!

  2. 제목의 “경쟁의 과학적 분석” -- 마르크스의 표현 -- 에 인용부호를 달았다. 마르크스가 말한 과학은 오늘날의 과학과는 의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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