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집단적 노동, 사회적 노동, 결합노동, 공동노동, 공동체적 노동

기병 1개 중대의 공격력이나 보병 1개 연대의 방어력이 개별 군인이 제각기 전개할 수 있는 공격력이나 방어력의 합계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 노동자들의 기계적인 힘의 총계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불가분의 작업에 참가할 때 [예컨대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거나 윈치를 돌리거나, 장애물을 제거할 때] 발휘하는 사회적 역량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 자본론 1권 13장, 441; MEW 23, 345

노동이 협업 체계 내에서 수행되는 경우 독립적으로 수행될 때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일 뿐더러 (양적 차이),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질적 차이).

협업 체계 내에서 수행되는 노동을 지칭하는 여러가지 종류의 노동’들’이 있다. 마르크스가 왜 이렇게 다양한 용어를 사용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주제를 가지고 신MEGA를 열심히 탐구하면 훌륭한 논문이 나오지 않을까.

1. 집단적 노동(collective labour; Gesamtarbeit)

비록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에 동시적으로 협동하더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총노동[heesang: 집단적 노동]의 일부로 그 노동과정의 상이한 국면을 이룰 수있는데, 이때 노동대상은 협업의 결과 이 국면들을 더 빨리 통과하게 된다. – 442; MEW 23, 346; 강조추가.

Gesamtarbeit는 주로 사회적 총노동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지만, 협업에 투입된 총노동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집단적 노동이라고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특히 비봉판 437페이지(MEW 23, 342)에서 Gesamtarbeitstag을 집단적 노동일로 번역했음을 고려한다면…

2. 사회적 노동(social labour; gesellschaftliche Arbeit)

이러한 생산수단이, [고립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나 소경영주가 가지고 있는] 분산되고 상대적으로 더 비싼 생산수단과는 달리, 사회적 노동(gesellschaftliche)의 필요조건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일하지 않고 다만 공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일하는 경우에도 가능하다. – MEW 23, 344

자본가의 지휘는 그 내용에서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휘하는 생산과정 자체가 한편으로는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과정(gesellschaftlicher Arbeitsprozeß)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 449; MEW 23, 351; 강조추가

사회적 노동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도 “개별적 노동”과 대비되어, 즉 협업에 바탕을 둔 노동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을 사회적 필요노동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전자는 기업 내에서의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이며, 후자는 기업 바깥에서 (교환을 매개로 하여) 존재하는 사회적 노동이다.

3. 결합노동 (combined labour; kombinierte Arbeit)

결합노동의 성과는 고립된 개별 노동에 의해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거나 또는 훨씬 많은 시간이 들거나 또는 매우 작은 규모로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 441; MEW 23, 345

결합된 노동일(kombinierter Arbeitstag)은 그것과 동일한 크기의 개별 노동일의 합계에 비해 더 많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며, … – 445; MEW 23, 348

사회적 노동과 함께 사용하여,

결합된 노동일의 특수한 생산력은 어떤 경우라도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 또는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다. – 446; MEW 23, 348

4. 공동노동 (common labour; gemeinsame Arbeit)

위에서 우리는 많은 노동자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공동노동의 이러한 가장 단순한 형태가 협업에서[심지어 협업의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443; MEW 23, 346

역시 사회적 노동과 함께 사용하여,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 또는 공동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조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생산유기체의 독립적인 기관들의 운동과는 구별되는 생산유기체 전체의 운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일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 447; MEW 350

5. 공동체적 노동? (communal labour; Gemeinschaftliche Arbeit)

그리고 3권에서는 공동체적 노동 – 비봉판에는 공동노동으로 번역되어 있다 – 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보편적 노동(universal labour; Allgemeine Arbeit)은 온갖 과학적 노동, 온갖 발견과 발명이다. 이 노동은 부분적으로는 현재의 살아있는 사람들의 협업에 의해 달성될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과거의 죽은 사람들의 노동을 이용하는 것에 의해 달성된다. 그러나 공동노동[heesang: 공동체적 노동]은 오직 개인들의 직접적 협업만을 내포한다. – 자본론 3권, 120; MEW 25, 114

나는 “보편적 노동”에도 약간은 불만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일반적 지성(general intellect)”이라는 표현을 쓰고, 과학기술을 생산하는 노동을 “일반적 사회적 노동(general social labour; allgemein gesellschaftliche Arbeit)”이라고 지칭했음을 감안하면 ‘일반 노동’이 더 적절한 번역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이에 대해 더 상세히 다룰수는 없다).

참,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는 gemeinschaftlicher gesellschaftlicher Charakter라는 무시무시한 표현도 있다. 공동체적 사회적 성격이라고 해야하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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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thoughts on “(111) 집단적 노동, 사회적 노동, 결합노동, 공동노동, 공동체적 노동

  1. sehr gut!

    이거 평소에 필요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귀차니즘 & 능력 부족 땜에 걍 지나치고 있던 건데

    heesang님 덕분에 깔끔하고 산뜻하게 정리가 되었군요.

    신MEGA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미 번역된 “요강”과 “자본”에 나오는 정도만
    개념 정리를 잘 해줘도 논문 하나는 되고도 남을 듯해요.

    약간 덧붙이면,

    1.Gesamtarbeit는

    어색하고 뭔가 부족한 느낌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총노동”이라고 해두는 게 나을 듯해요.

    독일어 gesamt는
    collective의 뜻도 있고 total의 뜻도 있지만…

    독일어 자체로는 이 두 가지 뜻이 기표상에서는 구분되어 나타나지는 않으니까요.

    더 뒤에 가면 gesamt란 말이 붙는 일련의 어휘들,
    총자본(가), 총생산, 총생산물, 총생산과정, 총(연간)노동, 총소비, 총가치 등의 개념이 나오는데

    비록, 여기에서(MEW 23, 344 부근과 이후)의 의미는 분명히 collective라고 하더라도
    기표상으로는 동일한 gesamt가 붙어 있는 거지요.

    “집단(적)”이라는 말을 쓰면 더 명확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는 하지만,
    집단노동(총노동)이 총자본, 총생산,. 총소비 등의 어휘와 동일한 의미 성분(gesamt)을
    갖고 있다는 게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총자본과의 대조를 염두에 두면요…

    2.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말로 총노동이란 게 굳이 어색하다면

    집단적 노동보다는 집단노동이 나은 듯하구요.
    Gesamtarbeit는 독일어로 한 단어이므로요…

    3. 반면에, 결합노동(combined labour; kombinierte Arbeit)은

    3-1 “결합된 노동”으로 해두는 게 마찬가지 이유에서 더 낫겠죠.
    게다가 바로 이 근처에서 “결합된 노동일”이란 말도 쓰고 있으니까요.

    3-2 특히, ‘kombiniert’는 제가 다른 곳에서도 언급했듯이

    ‘assoziiert’와 구별되는 의미를 가지니까요,
    (영어로는 둘 다 “combined”로 처리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즉, “결합된(kombiniert)'”을 “연합한(assoziiert)”과 구별하기 위해서요.

    4. allgemeine Arbeit는 영어본에서는 universal labour로 되어 있긴 한데…

    독일어에서든 영어에서든 한국어에서든 간에
    allgemein(영: general, 한: 일반적)과 universal(영: universal, 한: 보편적)은 서로 함축이 다르니까

    allgemeine Arbeit은 일반적 노동이라고 해두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5. 포스팅에서 인용된 부분을 책에서 꼼꼼히 찾아가며
    그 앞뒤를 천천히 음미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듯…

    근데..위 인용문 중에서

    “2. 사회적 노동”의 인용문의 앞부분은 “MEW 23, 344″이고
    “3. 결합노동”의 “MEW 23, 344″는 “345”네요…잉잉잉

    확인하느라 몇 분 정도 “낭비”…잉잉잉

    지금 해당 부분에 맑스는/우리는 “공동노동” “협업”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Ökonomie[절약]에 대해서 논하는 중인뎅…잉잉잉

    6. 아, 글쿠, 꼭 “지휘[관리(노동)]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따로 포스팅 해주세요.

    1.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페이지 오류는 모두 수정했습니다. ‘낭비’ --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gesamt- 번역의 문제는 제 생각에는 적어도 자본 1권 전체를 놓고 논하는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일원화하는 것이 맞을지 문맥에 맞추어 다른 번역어를 사용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좀 판단이 어려운 것 같아요. 영어 번역에서도 때로는 total을, 때로는 aggregate를, 그리고 아주 가끔 collective를 쓰는 것 같아요.

      저는 지휘노동을 일종의 지식노동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꼭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2. heesang님, 제가 잘 모르는 것을 설명하려니까 부담스럽네요. 그래도 아는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철학에서 보편이란 추상의 높은 범주입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습니다.

    “다만 그리스적 정신이 가 다다르는 곳이 첫번째의 직접적으로 인정된 정신의 자기, 즉 개별적인 인격이었는데 반하여 외화를 거쳐서 자체 내로 복귀하는 두번째의 자기는 보편적인 자기, 즉 개념을 포착한 의식이라고 하겠다.”

    아래는 맑스가 보편적 노동이 Gemeinschaftliche Arbeit와 어떻게 다른지 서술한 부분입니다.

    Allgemeine Arbeit ist alle wissenschaftliche Arbeit, alle Entdeckung, alle Erfindung. Sie ist bedingt teils durch Kooperation mit Lebenden, teils durch Benutzung der Arbeiten Früherer. Gemeinschaftliche Arbeit unterstellt die unmittelbare Kooperation der Individuen.

    GA는 개인, 즉 개별자들의 직접적인 협업인데 반해, 보편적 노동은 부분적으로는 과거의 죽은 사람들의 노동을 이용하는 것에 의해 달성됩니다.

    그 앞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Diese Ersparungen in Anwendung des fixen Kapitals sind wie gesagt das Resultat davon, daß die Arbeitsbedingungen auf großer Stufenleiter angewandt werden, kurz, daß sie dienen als Bedingungen unmittelbar gesellschaftlicher, vergesellschafteter Arbeit oder der unmittelbaren Kooperation innerhalb des Produktionsprozesses.

    이 문장에서 직접적으로 사회적으로 결합된 노동은 gemeinsame Arbeit이고 직접적인 협업은 GA인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결합시킨 노동은 지휘자가 있어야한다고 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수행되는 대규모적 생산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노동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합니다. 반면 GA는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그러나 Gemeinschaft가 공동체를 의미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공동체의 해체를 전제하기 때문에 전자본주의적 생산구성체에서 발견되는 협업,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도 여전히 발견될 수 있는 협업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부족하지만 정리해봤습니다. 전 보편적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발전된 단계를 의미하죠.

    1. 1. gemeinsame Arbeit(공동노동)를 대규모적 생산에서의 노동이라고 보신 것 같은데, 이 용어가 기계제 대공업에 관한 장(15장)이 아니라 협업 일반을 다루는 장(13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gemeinsame Arbeit와 gemeinschaftliche Arbiet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과 ‘직접적인 협업”이 oder로 연결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동의어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daydream님의 의견을 감안할 때 gemeinsame Arbeit와 gemeinschaftliche Arbeit로 동의어로 봐야 할 것 같구요.

      3. 과학기술을 생산하는 노동을 보편적 노동이라고 부를 것이냐 일반적 노동으로 부를 것이냐에 대한 것이 문제이지요. 마르크스가 예술적 노동, (엄밀한 의미에서) 창조적인 노동을 더 높은 수준의 노동으로 생각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편’에 대한 daydream님의 해석을 바탕으로 ‘공통’의 성격을 갖는 일반노동보다 보편노동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일반노동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좀 다른 맥락입니다. 마르크스가 요강에서 general intellect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번역어가 아니라 실제로 마르크스가 영어표현 general intellect를 사용했습니다. general intellect는 고정자본에 체화되어 있는 과학기술을 지칭하구요. 마르크스가 이렇게 과학기술을 생산한 노동의 결과물에 general을 붙였다면, 그 노동 자체에도 general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욱이 편찬하는 역사적-비판적 맑스주의 사전(Historisch-kritisches Wörterbuch des Marxismus)에 ‘Allgemeine Arbeit’ 항목이 있는데, 저는 스캔만 해놓고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제게 메일 주시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메일은 오른쪽 사이드바에 있습니다.

      1. general intellect 나오는 부분 확인해 보았어요.
        예전에 읽으면서 영어로 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쳤던 대목인데요..,

        번역본 책에는 그 부분 앞뒤 10페이지 정도에 줄이 많이 쳐져 있네요.
        근데, 김호균 선생은 걍 “일반적 지성”이라고만 해놓았군요…쩝
        (국역본 2권, 382쪽)

        독어본을 보니 맑스가 영어 어휘를 썼다는 걸 한눈에 알겠군요.
        제 PDF 파일에 의하면(MEW 42:602),

        본문은 “general intellect”이고
        각주에 “allgemeinen Verstandes”라고 되어 있네요.

        그 바로 위에서는 “Wissen, knowledge”이라고도 했구요.

        하욱이 “망명자 독일어”라고 설명한 것의 사례를 바로 보여주는군요.

      1. 이 어려운 얘기를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할지 저로서는 난감하네요. 일단 제가 어떤 느낌에서 시작하고 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맑스가 보편적 노동을 말할 때 고정자본과 연관지어서 말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점에서 김호균 교수가 옮긴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은 뒤에 목차가 나와 있어서 찾아보기 편한 것 같아요. heesang님은 글에서 언급하신 용어들이 맑스의 저작 어디에서 언급되고 있는지 잘 아실테니까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heesang님 댓글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서 요강을 찾아봤어요. 1권 334p

        “자립화된 부는 직접적인 강제 노동, 노예제에 의해서나 또는 매개된 강제 노동, 즉 임노동에 의해서만 존재하므로, 노예들에게 자본으로서의 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는 직접적인 강제노동에게 자본으로 마주 서지 않고 지배관계로 마주 선다. 따라서 직접적인 강제 노동에 기초해서는 지배 관계만이 재생산되는데, 이 관계에서 부는 부 자체가 아니라 향유로서만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일반적 근면성을 결코 창조할 수도 없다. (노예제와 임노동의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는 뒤에서 재론할 것이다.)”

        이 문장에서 노예제는 직접적인 강제 노동이고, 임노동은 매개된 강제 노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적인과 매개된, 임노동을 강조했어요. 직접적인 강제노동에게는 부는 자본, 즉 자립화된 부로 마주 서지 않고(대립하지 않고) 지배 관계로 마주 섭니다. 직접적인 강제노동에게 부는 외화된 자기이지만 아직 개념을 포착하지 못한, 자기 자신으로 복귀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죠. 저는 보편적 노동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성립하기 이전에는 추상적으로만 존재했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들어와서야 자본, 특정하게는 고정자본이라는 구체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 gemeinsame Arbeit에 대한 제 생각은 섣부른 것이었고, 나중에 더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공동체적인 노동은 직접적 소비를 위한 것이고, 향유로서만 가치를 지니죠.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생산이고, 자본주의적 사회는 상품의 거대한 집적으로 나타나요. 맑스는 전자본주의적 사회에서는 생산양식이 투명했기 때문에, 경제외적 강제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반면 보편적 노동이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설명할 때 맑스는 유기체를 말하죠. 그리고 general intellect가 나타나요. 노동자들이 유기체의 손, 발이라면 자본가들은 두뇌가 아닐까요.

        2. 그래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전체 사회가 총동원되는 것이고 그것이 총노동이죠.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회적 분업체계. 그렇다면 general intellect는 무엇일까요.

        3. daydream님. 제가 주로 참고하는 부분은 {요강}에서 고정자본과 기계에 대해 다루는 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MEW 42의 590페이지부터 609페이지까지 입니다.

          용어들에 관해서 언급하신 내용들에 대해서는 제가 이 용어들의 용례를 따져보지 않은 상황이라 코멘트를 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가령 general labour인가 universal labour인가의 문제도 저로서는 단지 추측할 뿐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거든요.

        4. heesang님, 제가 원래는 퇴근하면 맛있는 걸 먹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요즘 heesang님 덕분에 열공이네요. ^0^

          제가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에 대해서 잘 몰라서 앞부분을 읽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그래서 정작 님이 언급하신 고정자본과 사회의 생산력 발전은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했는데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저의 아주 간단한 느낌을 말씀드릴께요. general intellect는 영어지만 불어에서 유래된 말이고, 불어로 general은 일반적, 총체적이라는 뜻이 있으니까 일반적 지성이나 총지성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번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general intellect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겠죠.

          맨 앞에 보면 유어의 글이 인용되어 있죠. “수많은 기계적이고 이지적인 기관(zahlreichen mechanischen und mit Verstand begabten Organen)” 이성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죠.

          맑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자동 장치가 다수의 기계적이고 이지적인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노동자들 자신은 그것의 의식적 관절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dieser Automat, bestehend aus zahlreichen mechanischen und intellektuellen Organen, so daß die
          Arbeiter selbst nur als bewußte Glieder desselben bestimmt sind.

          이 자동장치는 수많은 기계적이고 지적인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노동자들은 이 자동장치가 의식하는 팔다리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기계류의 죽어 있는 관절들로 하여금 그것들의 구성에 의해서 자동 장치로서 합목적적으로 작용하도록 강제하는 과학은, 노동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서 노동자에게 낯선 권력으로서, 기계 자신의 권력으로서 작용한다.”

          “기계는 어떤 관계에서도 개별적인 노동자의 노동 수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기관으로서의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숙련과 활동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따라서 그 사용이 노동자의 기교에 좌우되는 도구와는 다르다.”

          Nicht wie beim Instrument, das der Arbeiter als Organ mit seinem eignen Geschick und Tätigkeit beseelt und dessen Handhabung daher von seiner Virtuosität abhängt.

          기계는 기관(여기서는 주체라는 뜻인 것 같아요)으로서의 노동자가 자신의 고유한 숙련과 활동으로 혼을 불어넣고, 따라서 그것의 조작이 그의 기예에 달려있는 도구와는 다르다.

          Virtuosität는 데카르트의 용어입니다. 데카르트가 인간을 자동장치에 비유한 적이 있을겁니다. 공각기동대가 영어로는 Ghost in the shell인데, 이 말도 데카르트에게서 나왔다고 들었어요.

          밤이 늦어서 저도 자야하고 아쉽지만 마무리를 지어야겠는데,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general intellect는 기계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5. ‘general intellect’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 고정자본(기계)에 체화되어 있는 과학 및 기술. 기계 자체가 아니라요. 아래 영어 번역문 참조하십시오. 대문자로 표시한 단어는 마르크스가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The development of fixed capital shows the degree to which society’s general science, KNOWLEDGE, has become an immediate production force, and hence the degree to which the conditions of the social life process itself have been brought under the control of the GENERAL INTELLECT and remoulded according to it. It shows the degree to which the social productive forces are produced not merely in the form of knowledge but as immediate organs of social praxis, of the actual life process.

        6.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어제 너무 졸려서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했어요. 기계에 체화되어 있는 과학(Wissnschaft 불어로는 씨앙세)가 general intellect인데 전 이것이 혼, 유령, 인간 두뇌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7. heesang님, 제가 어제 그룬트리세를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다가 님이 언급하신 그 부분의 도입부에서 전에 읽었던 데카르트의 책이 기억이 났어요. 오늘 그 부분을 찾아봤어요. 기억은 항상 정확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일단 유어의 인용에서 이성을 가지고 있는 기관은 이성이 아니라 지성(오성, Verstand)에요. 제가 이런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속상해요.

          자동장치가 언급된 것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에요. 데카르트는 인간을 육체적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기계학을 연구했던 사람이에요.

          “왜냐하며 이성은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un instrument universel)인 반면에, 이 기계가 개별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개별적인 배치가 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 이성이 우리에게 행동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삶의 모든 상황에서 행동하기에 충분한 다양한 배치가 한 기계 속에 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그 어떤 자동기계(automates)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질서지워져 있고, 스스로 탁월한 운동을 하는 기계로 간주하는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인간 신체의 부분을 내부에서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동물 정기” 때문이죠.

          “정기”는 아니메, 정령을 뜻하고, 독일어로는 Seele(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은 (현대인이 아니라) 근대인의 사고방식이죠. 하지만 원시인들은 정령이 사물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맑스가 비판한 물신숭배는 전과학적인, 원시적인 사고방식이죠.

      2. 하욱의 책으로 한국어 번역본에는

        “상품미학비판”(이론과 실천, 1991)이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미학적/문화적 성격에 대해 비판적인 이해를
        시도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약간 난이도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뛰어나고 훌륭한 책입니다.

        1.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대중)소비(문화적) 감(수)성 문제
        2. 욕구/욕망과 사용가치의 문제
        3. 사용가치와 기호(가치)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

        해서, 제 기억에서는 하우크인데
        하욱이라고 하니 마치 딴 사람 내지는 한국 사람처럼 들리네요.

        중국어에서 독일 사람 이름 음역할 때
        Wolfgang을 沃尔夫冈(한국어: 옥이부강, 병음 표기로는 wòērfugāng)이라고 하니까
        (괴테나 모차르트 이름 등에서 그러하듯이)

        난 앞으로 Wolfgang Fritz Haug를 옥하욱이라고 부를테야…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이름 스코필드(Scofield)를
        흔히들 석호필이라고 하듯이…

        아님, 걍, 외자 이름처럼 들리는, 하욱?
        먼가 연예인 이름 같넹…

        1. 하욱이 쓴 글은 제가 거의 읽어보지 못했는데, 웹사이트에서 보니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활동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1. 포럼에 회원가입이 안되서 여기에 글을 남겨요. (왜일까나..)

      EM님이 말씀하신 5명의 로빈슨 크루소 얘기를 생각하면서 제13장 협업을 읽었습니다.

      5명의 로빈슨이 고립되어 존재한다면, 백년 후 아무도 없겠죠.

      이 5명의 로빈슨이 한 곳에 모여있지만, 5명의 성별 구성이 단일하다면 자식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것처럼 정치적 동물은 아닐지 몰라도 여하튼 사회적 동물이라는 데 기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정의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민이라는 것이다. … 이 정의는 고전적 고대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폴리스에서 여자는 시민이 아니죠.

      “다른 노동자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노동자는 그의 개별성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그의 종족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gesamt는 “완전한”이라는 뜻이 있어요.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성별이 다른 두 명의 인간이 있어야하는 것처럼, 가치를 증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노동, 그것이 총노동 아닐까요.

      1.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늘 daydream님 말씀을 이해해보려고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알아주세요. 그나저나.. 가입이 안 되신다뇨.. 잘 되신 것 같은데요..

        1. 포럼에 회원가입을 했는데 제 메일로 비번이 오지 않았어요. -_-;;;

          저는 EM님이 말씀하신대로 gesamt가 단순한 숫자의 합이 아니라는 점을 13장을 읽고 이해했어요. 좀 상관없는 말이긴 하지만 Gesamtwerke를 전집으로 번역하는데 이 전집이 하나의 내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총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EM님이 말씀하신 5명의 로빈슨 크루소와 맑스가 말한 사회적 동물을 연관지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릴께요. EM님은 “사회적’이라는 말을 교역과 연관지어서 설명하신 것 같아요. 이때 사회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인간들이 모여있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유인원이었을 때는 군혼제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한 것은 가족을 이루면서부터이고,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사회의 기초단위라고 보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입니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은 각 개별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따라서 노동과정이 대규모로 수행되어 대량의 생산물을 공급하게 되는 그때부터 비로소 실제로 시작한다.”

          그 뒤 맑스는 노동자의 수는 그 자체로서는(an und für sich, 즉자적으로도 대자적으로도) 양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지, 질적인 차이는 아니라고 합니다.

          Es folgt dies aus der Natur des Werts.

          “질적인 차이는 가치의 본성으로부터 나온다.”

          노동자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시간의 총계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In der Wertproduktion zählen viele immer nur als viele einzelne.

          “가치의 생산에서는 다수는 언제나 다수의 개별자들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Indes findet doch innerhalb gewisser Grenzen eine Modifikation statt.

          “그러나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면 (질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이것은 우울감이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면 우울증으로 형태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In Wert vergegenständlichte Arbeit ist Arbeit von gesellschaftlicher Durchschnittsqualität, also die Äußerung einer durchschnittlichcn Arbeitskraft.

          가치로 대상화된 노동은 사회적 평균노동이며, 또한 평균적 노동력이 외화된 것이다.

          Eine Durchschnittsgröße existiert aber immer nur als
          Durchschnitt vieler verschiedner Größenindividuen derselben Art.

          저는 이 문장이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Größenindividuen은 맑스의 독특한 표현입니다.

          제 생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맑스는 평균이라는 것을 상이한 개별자들의 평균이 아니라 동일한 본성을 가진, 상이한 수많은 단위(집합)의 평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글을 나눠서 써 보겠습니다.

        2. In Wert vergegenständlichte Arbeit ist Arbeit von gesellschaftlicher Durchschnittsqualität, also die Äußerung einer durchschnittlichcn Arbeitskraft.

          이 문장은 제가 잘못 번역한데다, 중요한 것 같아서 다시 번역했습니다.

          “가치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은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질을 가진 노동이며, 또한 평균적 노동력이 외화된 것이다.”

          제가 궁금한 것은 “사회적으로 평균적인”의 의미입니다. 맑스는 사회적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에서 사용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In jedem Industriezweig weicht der individuelle Arbeiter, Peter oder Paul, mehr oder minder vom Durchschnittsarbeiter ab.

          “업종별로 개별적 노동자는, 그가 누구이든, 다소간에 평균적 노동자와는 구별된다.”

          평균적 노동자는 추상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Wie dem auch sei, es ist klar, daß der Gesamtarbeitstag einer größten Anzahl gleichzeitig beschäftigter Arbeiter, dividiert durch die Anzahl der Arbeiter, an und für sich ein Tag gesellschaftlicher Durchschnittsarbeit ist.

          “버크가 뭐라고 지껄이든간에, 동시에 고용된 노동자의 일정한 많은 수의 총노동일을 노동자의 일정한 수로 나누면, 즉자적으로도 대자적으로도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노동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Das Gesetz der Verwertung überhaupt realisiert
          sich also für den einzelnen Produzenten erst vollständig, sobald er als Kapitalist produziert, viele Arbeiter gleichzeitig anwendet, also von vornherein gesellschaftliche Durchschnittsarbeit in Bewegung setzt.

          “가치화(자기증식하는 가치로서의 가치화)의 법칙은 개별적 생산자가 자본가로 생산하며,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사용하여, 처음부터 사회적 평균노동을 가동시키지자마자 비로소 완전히 실현된다.”

          이제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맑스는 자본가로서의 생산자에 고용된 다수의 노동자들을 하나의 단위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단위는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가치를 증식할 수 있는 생산체(유기체)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 생산체는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EM님의 견해(맑스의 논리에서 총노동의 개념파악이 우선적)에 동의하지만, 이 견해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heesang님이 말씀하신 집단노동, 공동노동, 공동체적 노동도 결국 같은 뜻이라는겁니다. 그러나 총노동이 사회적 평균노동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고유한 특성이지만, 후자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된 집단노동, 공동노동, 공동체적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총체성이라는 것은 사실 풍부하고 구체적인 것이니까요.

        3. 마지막으로, 제가 뜬금없이 가족을 얘기한 것에 대해서 약간의 변명을 할께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어떤 조건에 도달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고 해서 가족이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족은 같이 살 공간이 있어야하고, 공동의 생산수단과 생활수단, 즉 재산을 공유하는 하나의 단위죠. 그러나 가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시적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에서 가족이 분화되었다고 추측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EM님 글을 읽고 13장을 읽었는데, 맑스가 말한 단일의 생산체(productive body)가 가족의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비유는 오류로 가는 지름길이죠. ^0^

        4. 변명을 또 해도 될까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지 하면서 EM님이 원래 쓰신 글을 읽다가 ‘교역’이란 단어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교역(Verkehr)이란 단어는 친족사회들에서 나타나는 여자교환에서 그 교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적인 교류를 포함해서 사회적 교류를 의미합니다. 아마 그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더 많이 노력하지 않았나요?

        5. 사회적 평균노동은 동일한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들 중 평균적 생산성을 갖는 노동입니다. 동일한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들의 생산성 가중 평균치라고 할 수 있죠. “동일한 본성을 가진, 상이한 수많은 단위(집합)의 평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3. sunanugi님, 여길 보세요. 포럼에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여기에 써요. 소외된 버섯돌이. ㅠㅠ

    글을 어디에 써야할까 고민하다가 여기에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님이 말씀하신 Kraftpotenz에 대한 제 생각이에요. 저는 Kraftpotenz가 생산력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맑스가 Kraftpotenz라는 표현을 사용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제 생각일 뿐이지만, 자칫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자상한 배려가 아닌가 해요.

    “다수의 힘이 하나의 총력으로 융합되는데서 생기는 새로운 역량을 무시하더라도, 대부분의 생산적 노동에서는 단순한 사회적 접촉만으로도 벌써 각 개별 노동자들의 작업능률을 증대시키는 경쟁심이나 혈기라는 자극이 생긴다. 그 결과 함께 일하는 12명은 144시간이라는 집단적 1노동일에, 각각 12시간씩 제각기 일하는 12명의 고립된 노동자들보다, 또는 12일 동안 계속 일하는 1명의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해 낸다. 이것은 인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것처럼 정치적 동물은 아닐지 몰라도 여하튼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기인한다.”

    Abgesehn von der neuen Kraftpotenz, die aus der Verschmelzung vieler Kräfte in eine Gesamtkraft entspringt,

    “총력으로서의 다수의 힘의 융합에서 나오는 새로운 생산력”

    이것은 사실 둘이 하나가 되는 성관계를 생각하시면 되요. 거기에서 나오는 힘은 생산력이죠. Kraftpotenz에는 그런 뜻이 있어요. 자기 자신을 산출하는 힘이죠. 그러나 그것은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죠. 그런데 맑스는 그것을 사회적 힘에 비유한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는 Das Ganze ist mehr als die Summe seiner Teile(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고 했어요. 그 이유는 상호작용, 요즘 말로 하면 시너지 효과때문이죠.

    어쨌든, 제 생각은 그래요. Kraftpotenz를 어떻게 해석하든 맑스가 의미하는 것은 집단적 힘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생산력이라고 생각해요.

    1. “버섯돌님”

      1. 소외되었다고 느끼신 건 제가 보기엔 조금 “오바”하신 듯…

      하지만, 어쨌거나, 혹, 그런 느낌 가지게 된 게 만약 저 때문이라면,
      이 자릴 빌어 정중하게 “꾸벅” 사과드립니다.

      2. 님이 다음과 같이 이해하신 것은, 어찌 보면, 크게 빗나간 건 아닌 듯합니다:
      “Kraftpotenz를 어떻게 해석하든 맑스가 의미하는 것은 집단적 힘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생산력이라고 생각해요.”

      3. 하지만, 섬세하게 읽으면, 양자는 분명하고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MEW 23:348-349에서 맑스가 직접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 긴 듯하지만 인용해보지요…

      Verglichen mit einer gleich großen Summe vereinzelter individueller Arbeitstage, produziert der kombinierte Arbeitstag größre Massen von Gebrauchswert und vermindert daher die zur Produktion eines bestimmten Nutzeffekts nötig Arbeitszeit. Ob er im gegebnen Fall diese gesteigerte Produktivkraft erhält, weil er die mechanische Kraftpotenz der Arbeit erhöht oder ihre räumliche Wirkungssphäre ausdehnt oder das räumliche Produktionsfeld im Verhältnis zur Stufenleiter der Produktion verengt oder im kritischen Moment viel Arbeit in wenig Zeit flüssig macht oder den Wetteifer der einzelnen erregt und ihre Lebensgeister spannt oder den gleichartigen Verrichtungen vieler den Stempel der Kontinuität und Vielseitigkeit aufdrückt, oder verschiedne Operationen gleichzeitig verrichtet oder die Produktionsmittel durch ihren gemeinschaftlichen Gebrauch öko- nomisiert oder der individuellen Arbeit den Charakter gesellschaftlicher Durchschnittsarbeit verleiht, unter allen Umständen ist die spezifische Produktivkraft des kombinierten Arbeitstags gesellschaftliche Produktivkraft der Arbeit oder Produktivkraft gesellschaftlicher Arbeit. Sie entspringt aus der Kooperation selbst. Im planmäßigen Zusammenwirken mit andern streift der Arbeiter seine individuellen Schranken ab und entwickelt sein Gattungsvermögen.

      결합된 노동일은, 같은 크기의 하나하나 개별 노동일 총계와 비교된다면, 더 큰 크기의 사용가치를 생산하고, 또 그래서, 규정된 유용효과 생산에서의 필요 노동시간을 감소시킨다. 주어진 경우에, 결합된 노동일이 이렇게 증대된 생산력을 갖게 된다면, 그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다음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결합된 노동일의 특별한 생산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 혹은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다. 그것이, 노동의 역학적 잠력(Kraftpotenz)을 높이기 때문이든지, 또는 노동의 공간 작용 범위를 확대시키기 때문이든지, 또는 생산 단계와 관련해서 공간 생산 현장을 축소시키기 때문이든지, 또는 결정적 순간에 많은 노동을 짧은 시간 안에 유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든지, 또는 개별 사람들의 경쟁심을 자극시키고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든지, 또는 많은 사람들의 동종 작업에 연속성 및 다면성의 각인을 찍기 때문이든지, 또는 서로 다른 작업을 동시에 수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든지, 또는 공동 사용에 의해 생산수단들을 절약시킬 수 있기 때문이든지, 또는 개별 노동에 사회적 평균노동의 성격을 부여하기 때문이든지 간에 다 마찬가지다. 그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에서 생긴다. 다른 노동자들과의 계획적 협력에 의해서, 노동자는 그의 개인적 제한에서 벗어나며 그리고 그의 유적 능력을 발전시킨다.

      4. 찬찬히 읽어보면,
      Kraftpotenz은 생산력이 증대되는 한 케이스에 국한되어서 사용되고 있고,
      생산력이란, 이러저러한 여러 모든 경우에서, 결합된 노동일에 의해 증대된 것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4.1. Kraftpotenz라는 단어 앞에다가, 맑스는
      사회적인(MEW 23:345), 새로운(MEW 23:345), 역학적[기계적](MEW 23:338)등의 규정을 붙여서 서로 다른 의미에서 쓰고 있으며,

      4.2. MEW 23:398과 MEW 23:405에서 맑스는 Kraftpotenz를 기계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Kraftpotenz는 단지 force의 의미인 거죠.

      4.3 또, 무엇보다도, ‘산 노동’의 Kraftpotenz는 생산관계 안에서 ‘죽은 노동’으로서의 자본과 결합되지 않으면, 생산력으로 전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갓된 ‘잠(재)력’인 것입니다. 예컨대, 해고노동자나 실업자도 Kraftpotenz를 가질 수는 있습니다.

      5. Gattungsvermögen(유적 능력)에서
      Gattung은 포이에르바하로부터 맑스가 이어받은 개념인데,
      여기에다가 Vermögen을 붙여 쓰고 있습니다.

      5.1 Vermögen은
      예컨대, “노동능력 혹은 노동력(Arbeitsvermögen oder die Arbeitskraft)”[MEW 23:181] 등의 문구에 나오는 단어인데,
      -- Vermögen은 어원상 Macht(힘)과 관련이 있는데,
      -- Macht는 형태상 영어 단어 might에 상응하며
      -- Kraft는 형태상 영어 단어 craft에 상응합니다.

      5.2 Gattungsvermögen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명제,
      “인간은 폴리스의 동물이다”라는 말에 대한 야유로도 들립니다.
      (“정치적 동물”이란 번역어는 그리스어로 정확하게는 “폴리스의 동물”)
      -- 반면에, 맑스는 인간의 유적 본질을 사회적 노동에서 찾고 있는 거죠.

      5.3 잠재적인(potentiell)이란 단어가 Vermögen(능력)과 함께 사용된 사례로는,

      그러나 이 사실이, 그것[노동력 = Arbeitskraft]이 그 자체로[즉자적으로] 잠재적이고, 능력으로서, 가치창조적 활동이라는 것을, 또 그런 것으로서 그 과정으로부터야 비로소 발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에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 창출 능력으로서, 노동력은 구매된다.

      aber dies schließt nicht aus, daß sie an sich, potentiell, als Vermögen, die wertschaffende Tätigkeit ist und als solche aus dem Prozeß nicht erst entsteht, sondern ihm vielmehr vorausgesetzt ist. Als Fähigkeit, Wert zu schaffen, wird sie gekauft.(MEW 25: 394-395)

      6. Kraftpotenz를 잠력(潛力)이라고 번역하자는 제 제안의 이유에 대해서는

      6.1 포럼에 제가 이미 포스팅했습니다.

      6.2 물론, 더 따지고 들어간다면,
      -- 이 대목에서 맑스가 만들어 쓰고 있는 Kraftpotenz를
      굳이 Potenzkraft과 비교한다면, 그 의미성분들의 순서가 다르기는 합니다.
      -- Kraft도 힘이고 Potenz도 힘이니, Kraftpotenz/Potenzkraft는 “힘힘”인 셈이지만
      -- Potenz의 잠재력/가능성의 의미를 굳이 살리고 순서를 따진다면,
      Kraftpotenz은 역잠이고 Potenzkraft가 잠력이 되겠지요.
      -- 물론, 오늘날 독일어 사전에 이 단어들은 둘 다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6.2 잠재력이 아니라 잠력이라고 하자는 거은
      물리학에서의 potential energy(독 potentielle Energie; potenzielle Energie)와 연관시키면서도 동시에 구별하기 위해서 입니다.
      --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potential energy라는 개념은
      일본에서 위치에너지라고 번역된 듯하고,
      그래서 한국어에서도 이렇게 번역되어 쓰이는 듯합니다(중국어에서는 세능[势能]).
      -- 하지만, “위치”란 것은 이 개념의 물리학적 설명 과정에서 나온 것일 뿐이고,
      말 그대로 번역하면 “잠재 에너지”(운동에너지로 바뀔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가 되겠지요.
      -- 아마, 맑스는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에 관한, 19세기 후반의 물리학 이론을 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이건 자신은 없어요…).
      -- 하지만, 역학적[기계적] 잠력(die mechanische Kraftpotenz)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에 가까운/상응하는 개념은 갖고 있었던 듯 하네요.

      6.3 그러니/그렇다고 해서, Kraftpotenz를 잠재력이라고 곧바로 하기는 좀 그러니까, 잠력이라고 하자는 얘깁니다.

      7. 그리고, “버섯돌님”께 부탁 하나!

      -- 인용하실 때 제발 출처(책과 쪽수 등)을 꼭 밝혀주시고
      (그래야만 재빨리 앞뒤 문맥과 논의 흐름을 확인, 체크해 볼 수 있지요.)

      -- 포스팅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번역문(내지는 내용 축약문)을 함께 제시해 주세요.
      (독일어를 못하는 사람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요,
      그리고 우리의 지적 협업에 모두가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요.)

      -- 잘못하면, “독일어 ‘쪼께’ 한다는 것들”이 서로 잘난척 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소외감”을 다른 사람들이(야말로) 느낄 수도 있다는 거죠.
      (이 자리에서 밝히는데, 저는, 본디 독일어가 싫고 무서워요.)

      8. 노동력, 생산력 등의 개념 형성사/발전사의 전모에 관해서는
      “1844년 경철수고” 및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각종 초고들을 망라해서
      “자본”까지를 충분히 검토한 후에야 제대로 말할 수 있겠지요.
      (혼자서는 힘들지만, 우리의 지적 협업에 의하면 가능합니다.)

      9. 그리고, 이건 사족인데,
      “성관계”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아주 잠깐뿐이고,
      늘, 그게 끝나면 다시 둘로 나뉩니다.
      (암튼, 제 경우는 그렇더라구요.)

      1. 와! 어렵네요.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생겨요. ^0^

        저는 맑스를 처음 읽은건 훨씬 오래전이지만, 자본과 그룬트리세를 읽기 시작한 건 아주 최근이에요. 그래서 이 저작들의 유기적 전체라고 할까, 내적 구조라고 할까, 어쨌든 그걸 잘 몰라요. 다만 책을 읽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문장에서만 제가 개입할 수 있을 뿐이에요.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했는데, 그것이 틀릴 수 있고, 틀리는게 당연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또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자본 1권 제13장 445p. (저는 비봉판밖에 없어요. 번역본 출처도 제발 밝혀주세요. 힘들다구요. ㅠㅠ)

        Verglichen mit einer gleich großen Summe vereinzelter individueller Arbeitstage, produziert der kombinierte Arbeitstag größte Massen von Gebrauchswert und vermindert daher die zur Produktion eines bestimmten Nutzeffekts nötige Arbeitszeit.

        이 문장에서 주어는 der kombinierte Arbeitstag이죠. kombinieren은 수학에서 조합하다를 의미해요. 저는 이과계통에 무지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말씀드려요. 제가 가지고 있는 Wahrig에 따르면 “gedankl. Zusammenhänge finden zwischen, Beziehungen herstellen zwischen”이에요. 이것은 추론과정을 의미하죠. 사물의 연관(연쇄, 관계)를 찾는거죠. 반면, vereinzeln은 개별화시키다죠. 그래서 이 문장은 하나가 된 노동자들의 총노동일과 개별적인 개인의 노동일의 총량을 비교하고 있어요. 전자는 후자에 비해 더 많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며, 따라서 일정한 Nutzeffekt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감소시킨다. 저는 Nutzeffekt가 기계학에 관련된 용어이기 때문에 유효효율(effective efficiency)이 아닌가해요. 어떤 것을 산출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다음 문장은 너무 길어서 나누어봤어요.

        Ob er im gegebnen Fall diese gesteigerte Produktivkraft erhält,

        이 문장에서 gesteigerte는 potenzierte와 비슷한 뜻이에요. 전자가 향상된, 고조된이란 뜻인데 반해, 후자는 제곱한, 강화된, 배가된이란 뜻이죠. 그래서 전에 heesang님이 언급하신 고도화된이란 표현이 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상한게 처음에는 항상 heesang님과 생각이 다르다는데서 출발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그런게 몇가지 더 있어요. 저하고 보는게 다른거죠. 전 세부적인 걸 보는데(그 문장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쓰였나), heesang님은 직관이나 추론, 둘 중 어느 하나가 발달한 분인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heesang님이 굉장히 대단한 분이라는건 아녜요. 다른 분들도 다들 대단해요.

        “결합된 노동일이 어떤 경우에 이러한 높은 생산력을 갖고 있든간에”

        결합된 노동일에 내재되어 있는(erhalten) 높은 생산력이란 결국 총력에서 나오는 새로운 생산력, Kraftpotenz를 의미하죠. 그래서 잠재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지만, 잠재력이란 말에서는 potenziert의 뜻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곱된, 배가된, 강화된 힘. 이것은 수의 조합에서 나오는 힘이니까요.

        weil er die mechanische Kraftpotenz der Arbeit erhöht

        이 문장에서 맑스는 인간을 기계로 간주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무거운 돌을 들어올린다면 기계만이 할 수 있는 하는거죠.

        oder ihre räumliche Wirkungssphäre ausdehnt

        ihre는 앞의 die mechanische Kraftpotenz의 소유격이죠. 결합된 노동일이 기계적 힘의 작용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죠.

        oder das räumliche Produktionsfeld im Verhältnis zur Stufenleiter der Produktion verengt

        생산규모에 대한 생산의 공간적 범위의 비율을 축소시킨다는 뜻이죠.

        oder im kritischen Moment viel Arbeit in wenig Zeit flüssig macht

        결정적인 순간에 적은 시간 안에 많은 노동을 녹인다는 뜻인죠.

        oder den Wetteifer der einzelnen erregt und ihre Lebensgeister spannt

        개인들 사이의 경쟁을 북돋워서 그들의 생기를 긴장시킨다는 뜻이죠. Lebensgeist는 네이버 사전을 보면 동물 정기(animal spirit)를 의미하는데 액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것을 팽팽하게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잡설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생식과 관련이 있어요. 모계모거제 사회인 트리브리안드 제도를 연구한 사람이 말리노프스키인데, 그에 따르면 그들이 모계모거제 사회인 이유는 그들의 원시신앙에 있다고 해요. 정령이 떠돌아다니는데 그 정령이 여성의 몸에 들어오면 임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 그 사회에서도 아버지가 그 여성의 아이와 함께 생활하거나 그 여성을 사랑하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부성이 존재한다고 해요.

        oder den gleichartigen Vorrichtungen vieler den Stempel der Kontinuität und Vielseitigkeit aufdrückt,

        저는 이 문장이 상당히 어려워요. ~에 연속성과 다면성의 인장을 찍는다는 뜻이죠. ~에 시간과 공간적 범위를 확대한다는 뜻인데 앞의 ~이 저는 어려워요. Vorrichtung을 비봉판에서는 작업이라고 옮겼는데 그 뒤에 나오는 Operation도 작업이라고 옮겼어요. 앞에 있는 작업은 많은 사람들의 의해 수행되는 같은 종류의 작업이고, 뒤에 있는 작업은 동시에 수행하는 서로 다른 작업들이에요. 그래서 Vorrichtung을 Wahrig에서 찾아봤어요. “Zusammenstellung von einzelnen Teilen, die so angeordnet sind, daß sie zusammenwirkend einen bestimmten Zweck erfüllen”이에요. 이것은 어떤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부분들을 조합해서 질서를 부여한 것이죠. 네이버 사전에서는 장치, 설비라고 나와있어요. 저는 이것을 작업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맑스는 결합된 노동을 하나의 기계장치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물론 판단은 다른 분들께 맡깁니다.

        더 계속하고 싶은데 이제 출근할 준비를 해야해서 나머지는 퇴근 후에 해볼께요. 저는 책을 읽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싶어요. 지금으로서는 정해진게 없어요.

        1. 네…열공하는 모습 보니까 넘 좋네요.

          게다가 저처럼 “비정규 잉여”로 사는 게 아니라
          직장을 다니시면서 공부를 하시니…꾸벅!

          잠깐, 토를 달면, 제가 번역본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제 자신의 번역문(이라기보다는 걍 독해한 거)예요.

          번역본의 번역을 걍 이용하면 넘 좋은데…때론 거기에 의지하기가 위험하고 힘드니…쩝

        2. 감사합니다. ^0^

          이어서 계속하겠습니다.

          oder verschiedne Operationen gleichzeitig verrichtet

          “또는 상이한 작업들을 동시에 실행하거나”

          oder die Produktionsmittel durch ihren gemeinschaftlichen Gebrauch ökonomisiert

          “또는 공동체적인 사용을 통해 생산수단을 절약하거나”

          Ökonomie는 그리스어 Oikos(가족)에서 유래된 말이에요.

          http://en.wikipedia.org/wiki/Oikos

          An oikos was the basic unit of society in most Greek city-states.

          폴리스에서 사회의 기본 단위는 oikos였어요. unit은 군사용어이기도 한 점에서 맑스가 자본가를 장군에 비유한 것은 맑스다운, 남성적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oder der individuellen Arbeit den Charakter gesellschaftlicher Durchschnittsarbeit verleiht,

          “또는 개인들의 노동에 사회적 평균노동의 성격을 부여하거나”

          unter allen Umständen ist die spezifische Produktivkraft des kombinierten Arbeitstags gesellschaftliche Produktivkraft der Arbeit

          “어떠한 경우에도 결합된 노동일의 spezifische Produktivkraft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다.”

          spezifisch는 auf die Masse bezogen (Physik)이란 뜻이에요. 질량과 관계된 단어인 것 같아요.

          Sie entspringt aus der Kooperation selbst.

          “이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Im planmäßigen Zusammenwirken mit andern streift der Arbeiter seine individuellen Schranken ab und entwickelt sein Gattungsvermögen.

          “질서정연하게 다른 노동자들과 협력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개별성의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종족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Gattungsvermögen에 대해서는 파리 수고와 연관지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3. 짝짝…짜짜작(열공 격려 박수 소리)

          1. 그리스어 Oikos 어원과 관련된 사례 두 개

          1.1 “집안의 경제 관리”라는 의미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1.0054:book=1:chapter=1&highlight=economy

          1.2 “절약”이라는 의미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1.0056:section=1462b&highlight=economy

          2. 영어 어원은 이곳 이용하세요.
          http://www.etymonline.com/

          그럼…또

        4. daydream님, 메일 드렸어요. 확인해보세요. 패스워드도 리셋해드렸으니, 그대로 쓰시거나 짬나실때 바꾸세요…

        5. 수고에서 Gattungsvermögen이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Die entfremdete Arbeit macht also:
          3. das Gattungswesen des Menschen, sowohl die Natur als sein geistiges Gattungsvermögen, zu einem ihm fremden Wesen, zum Mittel seiner individuellen Existenz.

          “따라서 소외된 노동은 인간의 유적 존재를,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 유적 능력으로서의 자연도 또한, 인간에게 낯선 존재로, 인간의 개별적 현존의 수단으로 만든다.”

          Sie entfremdet dem Menschen seinen eignen Leib, wie die Natur außer ihm, wie sein geistiges Wesen, sein menschliches Wesen.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자신의 육체를, 마치 자신의 외부에 있는 자연처럼, 마치 자신의 정신적 존재처럼, 자신의 인간적 존재로부터 소외시킨다.”

          제가 갖고 있는 박종철 출판사에서 나온 선집의 번역이 잘못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상하네.. Gattungsvermögen은 인간의 능력이 미치는 자연인데..

          노동은 노동자에게 무엇보다 생활수단이죠. 그리고 이 문장에서 Existenz는 실존이 아니라 생존(현존)을 의미해요. 맑스는 그룬트리세에서 소비는 개인의 현존을 생산할 뿐이라고 말했는데, 자본가가 소비를 통해 자본가로서의 자신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소비란 결국 자신을 생산하는 것 뿐이죠.

          재현님이 제게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주셨는데, 사실 제가 2년 넘게 백수로 지냈어요. 근데 그땐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안했는데, 지금은 하는 이유가 있어요. 직장에서 저는 현존이죠. 지금은 실존적 이유때문에..

        6. Sie entfremdet dem Menschen seinen eignen Leib, wie die Natur außer ihm, wie sein geistiges Wesen, sein menschliches Wesen.
          (MEW 40:517)

          “버섯돌님” 번역문을, 편하게 읽도록 약간 손보면,

          “소외된 노동은 인간으로부터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인간적 존재로부터 소외시켜서, 마치 자신의 외부에 있는 자연처럼, 마치 자신의 정신적 존재, 자신의 인간적 본질처럼 만든다.”

          다소 거칠고 폭력적으로 해석하자면,

          / “자신의 외부에 있는 자연처럼” = ex) 자본 :
          자본은 본디 인간의 감성적[자연적]/유적 능력인 사회적 노동의 산물로서, 소외된 것에 불과…”죽은 노동”

          / “자신의 정신적 존재처럼” = ex) 신, or 물신적 대상으로서의 화폐적 관계들…본디 인간 관계/ 계급 관계인데…

          포이에르바하의 유명한 주장에 의하면,
          인간 유적 본질의 소외 형태가 신의 관념이라는 거죠…

          암튼, 굳이 이런 거칠고 극단적인 해석이 아니더라도,
          인용문 앞뒤의 전체 맥락에서 흐름을 따라서 읽어 보면,
          인용문은 이해에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이 경우, 전체 흐름을 타면서, 시/에세이로 읽어보세요.

          글쿠, 경제학-철학 수고는 번역본 pdf 파일이 제게 있으니
          멜 주소 갈챠줘요.

        7. Vorrichtung은 정말 훌륭하게 지적하셨네요! 말씀하신대로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는 결합된 노동자 집단(kombinierter Arbeiter oder Gesamtarbeiter)을 하나의 장치로 비유한 것 같습니다. 이 장치에 다면성과 연속성이 부여되는 것이구요.

          다면성과 연속성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비봉판 442-443에서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연속성: “만약 12명의 벽돌공이 벽돌을 사다리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열을 지어 선다면, 그들 각 개인은 동일한 일을 하지만, 그들 개개의 행위는 하나의 전체적인 작업의 연속된 부분들을 이룬다” MEW 23: 348

          다면성: 건물을 짓는 데 1명의 벽돌공이 12일간 [즉 144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12명의 벽돌공이 144시간의 집단적 1노동일(kombinierter Arbeitstag -- 결합된 1노동일이 맞겠죠)에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 이유는 협력해 작업하는 노동자 집단(kombinierter Arbeiter oder Gesamtarbeiter)은 앞과 뒤로 팔과 눈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까지는 전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8. pdf 파일은 나중에 부탁드릴께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맑스를 처음 읽은건 꽤 오래전이고, 지금은 자본을 읽고 싶어요. ㅠㅠ

          이 속도로 읽으면 아마도 몇년 더 걸려요. 그러나..

          저는 자본을 매우 세심하게 읽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저보다 큰 그림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죠.

          댓글을 작성하는 동안 heesang님과 텔레파시가 통했네요. heesang님은 인간이 아니고 돌고래인가봐요.

        9. 저는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총노동과 결합된 노동을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제가 자본을 계속 읽으면서 다시 이 부분으로 돌아온다면 전보다 더 잘 이해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제14장 459p.

          “더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우선 명백한 것은, 일생 동안 하나의 동일한 단순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신체를 그 작업을 위한 자동적이고 일면화된 도구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도구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기계학(mechanicis)에서 발견되는 기예들과 유사하다. 이 기예들은 다른 것의 도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도구를 고안할 수 있는 수단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기예들 중의 한 기예, 예컨대 대장 기술을 보이려고 하는 데 아무런 도구가 없다면, 그는 별수없이 단단한 돌이나 거친 쇳덩이를 모루로 사용하고, 망치 대신 돌 조각을 잡고, 나무 조각을 집게로 쓰고, 나머지 필요한 것을 장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모두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곧장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 칼이나 투구 및 다른 철제품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먼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망치, 모루, 집게 및 다른 도구를 만들 것이다.”

          수고의 한 부분입니다.

          “자연 전체가 직접적 생활 수단인 한에 있어서, 자연 전체가 인간의 생활 활동의 대상/재료 및 도구인 한에 있어서 자연 전체를 자신의 비유기적 신체로 만드는 바로 그러한 보편성 속에서 인간의 보편성은 나타난다. 자연은 인간의 비유기적 몸이다. 요컨대 자연이 인간 신체가 아닌 한에서 그렇다. 인간이 자연에 의해 생활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자연은,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과의 지속적인 [교호] 과정 속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몸이다. ..”

          그러나 자본주의적 노동은 자신의 신체를 도구로 전환한다고 했습니다. 길드의 수공업이 근대성을 의미한다면, 초기 매뉴팩쳐는 현대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4장을 읽고 싶은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10. daydream님이 ‘연속성과 다면성’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인용하신 부분인데요.

          oder den gleichartigen Vorrichtungen vieler den Stempel der Kontinuität und Vielseitigkeit aufdrückt,
          (MEW 23: 348)

          희상샘이 이에 대해서
          “Vorrichtung이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는 결합된 노동자 집단(kombinierter Arbeiter oder Gesamtarbeiter)을 하나의 장치로 비유한 것 같습니다. 이 장치에 다면성과 연속성이 부여되는 것이구요”
          이렇게 댓글을 다셨는데…

          독어를 몰라서 제가 MEW 사이트에서 이 부분을 검색하느라
          삽질을 좀 했습니다. ㅠㅠ
          http://www.mlwerke.de/me/me23/me23_341.htm
          여기서 Vorrichtungen을 넣어봐도 안 나오는 거예요. 당황…;;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 gleichartigen을 넣었더니
          그 문장이 나오는데
          Vorrichtungen이 아니고 Verrichtungen이네요. ㅜㅜ

          여하간 길판이건 비봉판이건 일판이건 이 말은 ‘작업’으로 옮겼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간 ‘장치에 비유한 것’은 아닌 듯하다는 말씀을 드려봅니다.
          (독어를 모르니까 논의를 따라가는 게 너무나 힘들고
          여러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기도 두세 배는 오래 걸리네요…ㅜㅜ)

        11. G.D.님 말씀이 맞네요 :) 일, 업무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ver-와 vor-의 차이가 꽤 크네요 ㅎ

        12. 오.. 그렇군요. 역시 혼자서 읽었으면 큰일날뻔 했어요. 원문에 문제가 있을 줄이야. 난 뭘 보고 있었던거지..

          빨리 14장 읽어야겠네요.

        13. 1. G,D.님, 제 독어 인용문부터 보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네요.
          MEW에서 걍 따붙인거라 인용문 쪽수도 있었는데…쩝

          인용된 원문이 구문 자체는 복잡한 건 아니지만,
          단문이 계속 길게 연속되어 넘 길어 어지러워 보일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기존의 번역문의 구문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그것을 감안해서 단문 하나하나씩 잘 잘라 독해하고
          문장 순서도 크게 바꾼 건데요..

          2. 누군가의 첫번째 오타에서부터 문제가 생긴 거로군요.
          (아, 놔! 누구라고는 말 못해…^_^!)

          -- 물론, 온라인/ 인터넷 시대에 오타는 병가지상사지요.

          3. 제가 보기에, Verrichtung는 여기서 걍, 일, 작업, 업무 등의 의미로 쓰인 것 같아요..

          -- 영어 조넨샤인판에서도 독어 원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

          / 독 den gleichartigen Verrichtungen vieler den Stempel der Kontinuität und Vielseitigkeit aufdrückt

          / 영 impresses on the similar operations carried on by a number of men the stamp of continuity and many-sidedness

          / 그러니까 Verrichtung = operation

          4. 명사 Verrichtung는 동사 verrichten에서 파생된 겁니다.

          -- verrichten에 특별히 “정리, 정돈하다”는 뜻도 있지만,
          보통은 “행하다, 하다”는 뜻

          -- 더 광범위한 뜻을 갖는 동사 tun(영어 do)와 비교할 때
          verrichten은 “일, 업무, 과업 등을 (실행/수행)하다”는 뜻인데
          (그러니까, 영어로 perform, carry out 정도…)

          5 그러니까, 그 “누군가”님은
          사전을 검색할 때, Verrichtung과 Vorrichtung을 혼동하신 듯해요.

          -- 제 네이버 독어 사전에 의하면, Vorrichtung
          “준비, 정비;설비;[공학공업] 장치, 구조;공구, 기구”로 나옴…

          6. 이 오타에서 비롯된 잘못이 증폭되어서
          “장치에의 비유”라는 해석까지 낳은 셈인데…이런 해석은,

          -- 보기에 따라서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고
          -- 보기에 따라서는, 창조적 해석의 실마리가 될 수도…
          (아, 놔! 어느 쪽인가라고는 말못해…^_^!)

          7. G.D.님이 고생하신 것은, 어찌 보면,

          -- 검색을 익히는 과정에서 당연히 지불해야 할 비용을 치룬 셈인 거지요.
          --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으면 검색 신공을 익힐 수가 없어요…^_*

          앞의 두 댓글을 안보고 댓글 작성하다가
          밥 먹고 “응아” 하고…그러다가 이어 작성한건데…

          쓸데없이 뒷북 치고 있었군요…쩝

        14. 이제 자야할 시간이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잠시 들렀어요. 일단 제가 14장의 492p까지 읽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14장을 읽으면서 맑스의 담담한 말투가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어요.

          맑스는 매뉴팩쳐 안의 분업과 사회 안의 분업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매뉴팩쳐 안의 분업은 숙련도에 따라 노동등급제를 만듭니다. 이것은 일견 합리적입니다.

          반면 사회 안의 분업은 전자본주의적 사회에서도 발견되었고, 노동의 위계는 하나의 자연적 질서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heesang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글로 한 번 볼 수 있으면 합니다.

        15. daydream님, 진도가 빠르시네요. 벌써 14장을 끝내시고. 괜찮으시다면 저를 앞질러 나가시는 것보다는 1장에서부터 시작하심이 어떨까요. 제가 금새 또 따라잡히고 말겠지만.

          사회 안의 분업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6. 그렇구나. heesang님은 1장으로 돌아가셨군요. 저는 13장을 읽은 김에 계속 앞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heesang님을 믿고 1장으로 다시 돌아가죠.

  4. 오늘, 오스트리아에서 텔레파시로 다음과 같은 책이 왔어요.
    마치 로토에 당첨된 기분인데요…후헷

    Enrique Dussel,
    “Towards an Unknown Marx: A Commentary on the Manuscritps of 1861-1863”,
    (Routledge, London, 2001)

    ———————————--

    서둘러 “potenz”를 검색해보니,

    책의 249쪽에 다음과 같은, 절라 긴주가 있네요.

    Productivkraft could be translated as ‘productive power of force’, especially if one keeps in mind that Marx himself departs from Smith’s ‘productive power’ in English (p. 254). Thus, ‘Productivkraft der Arbeit (productive power of labour)’ is also ‘Kraftpotenz (force power)’ (p. 258). It must be noted at same time that there is a tendency to identify ‘living labour’, ‘labour capacity’ ‘labour power’ and ‘productive power’. This confusion has severe consequences. In fact, ‘productive power’, in the strict sense, means ‘productive power’ ‘that creates surplus value’, that is to say, living labour subsumed into and by capital. ‘Living labour’ prior to capitalism (e.g. in feudalism) or after capitalism (e.g. in real socialism) cannot be called in the strict sense ‘productive power’, but potential labour or subjective ‘potency’: labour actually of the worker. In real socialism, there is a ‘potency’ or ‘force’ which produces ‘social value’ (not another’s private surplus value due to the inversion of the law of appropriation). But when we say ‘social value’, we wish to (negatively) express that it is not yet immediately a ‘common value’; but it is not non-value; it is still value, although not private surplus value. With the term ‘productive potency’ we de-mythologize, in a certain way, a false conception of ‘Productivkraft’ in some expressions of later naive Marxism.

    이 긴 주는 본문 28쪽에서 인용한 맑스 1861-63 초고의 문장에 대한 주인데요,.

    through an increase in the productivity of labour, or through a higher development of the productive potency (Productivkräfte) of labour.
    (MECW 30: 235)

    인용문 전후의 본문 전체는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61/economic/ch30.htm

    (위 인터넷 페이지를 열어서 “Ctrl + F” 다음에
    “through an increase in the productivity of labour”로 검색…)

    그러니까,

    a) 두셀은 MECW 30: 235의 “the productive forces of labour”를
    “productive potency (Productivkräfte) of labour”로 바꿔서 인용했구요.
    ,
    b) 인용문 괄호 안의 “Productivkräfte(생산력)”는 MECW에는 없는, Dussel의 보충인데요.

    ————————————-

    암튼, 위 긴 주에서

    1. “Kraftpotenz = force power”라고 한 것도 재미있구요.
    그러니까, 우리 말로 “힘힘”인 거죠.

    > “Kraft도 힘이고 Potenz도 힘이니, Kraftpotenz/Potenzkraft는 “힘힘”인 셈이지만”

    2. 반면에, 제가 위에서 단 댓글 내용과는 아주 반대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네요.

    > “4.3 또, 무엇보다도, ‘산 노동’의 Kraftpotenz는 생산관계 안에서 ‘죽은 노동’으로서의 자본과 결합되지 않으면, 생산력으로 전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갓된 ‘잠(재)력’인 것입니다. 예컨대, 해고노 동자나 실업자도 Kraftpotenz를 가질 수는 있습니다.”

    제 얘기는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특별히 강조한 것임에 반해서,
    위 긴 주에서, 도리어 두셀은 “산 노동”을 강조하고 있네요.

    3. 글쿠 저는 감히 “later naive Marxism”와 같은 표현을 쓸 정도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요.
    (아마, 죽을 때까지도 힘들겠지요.)

    —————————————

    신메가판, MECW 영어본, 그리고 두셀의 책을 비교해서 좀 더 읽어보고

    나중에 필요한 것 뽑아서 올리지요.

    —————————————

    암튼, “heesang님” 텔레파시 넘 쎄고 좋다능…

    —————————————-

    살아있는 분으로서, 제가 존경하는 몇 안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엔리케 두셀(1934 -- )에 관해서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07041.html

    http://en.wikipedia.org/wiki/Enrique_Dussel

    1. Produktivkraft는 우리말로는 때로는 (특히 복수로 사용될 때 생산관계와 대립되는) 생산력으로 때로는 생산성으로 번역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원문의 한 단어가 두 가지 용어로 번역되는 점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1. 네, 그래서. 목욜 학교 가서 신메가 빌려서 독어 원문 확인해 보려구요…

        생산력 개념은 아담 스미스부터 꼼꼼히 찾아서
        훑어내려오면서 검토해야 할 듯해요.

        그러면, 공부가 1861-63 초고 내지는 “잉여가치학설사”로 번져가는 건데..

        휴…이번에 heesang님 따라서 “자본” 읽으며 든 생각은

        불어 자본론도 동시에 읽어야 되고,
        그룬트리세도 다시 읽어야 되고,
        필요한 경우 “자본” 1권 초판도 읽어야 되고…쩝

        암튼, 분명한 건, 제 경우 이게 우울증 치료에 좋다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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