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운로드”의 정치경제학? (1)

1. 내 경우엔 영화보다는 음악을 미친듯이 다운로드해왔다. 처음엔 주된 소스가 pc통신 동호회였고, 나중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동안 화제였던 Napster 등을 이용하기도 했다. pc통신으로 말하자면, 나는 나우누리로 입문해서 나중엔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다 했다. 하지만 그 중 돈 내고 한 건 나우누리랑 유니텔뿐이고, 다른 둘은 이들이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더이상 유료회원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틈을 타서 (무료로) 조금 했을 뿐이다. 물론 순전히 음악파일 받으려고! (-_-)

요새 이와 같은 다운로드가 “불법”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 많다. 특히 최근엔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불법화” 움직임이 매우 강하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반작용도 만만찮다. 아마도 그 “반작용”의 논리를 가장 재밌게 잘 담고 있는 것이 다음 기사가 아닐까 싶다. 이번 추석엔 ‘불법 다운로드’ 받으세요 (<참세상>, 2010. 9. 17).

하지만 과거 내가 거의 매일밤을 다운로드에 열올리고 있을 땐, 나는 내가 하는 짓이 불법인가 아닌가라는 생각조차 안 했다. 그러니까 완전히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거다.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죄책감도 없었으며, 그저 파일 올려주는 사람에게 고마웠을 뿐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드러나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영역, 일종의 “무주공산”이 점점 더 국가와 자본의 매커니즘 아래로 편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 위에서 링크한 기사는, 단순하게 말하면, 한편으로는 이런 경향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이런 편입과정에서 국가/자본의 기존 질서와 새로운 영역을 지배하는 데 결부되는 질서 내지는 규칙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기도 함을 보여준다. 사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특히 국가는 그 새로운 영역과 관련된 법제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법제를 그와 모순되지 않게 정비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일정한 한도 안에서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2.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어떤 면에선 위의 사항보다 더 본질적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본”이라는 변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와 같은 국가의 재구성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요구를 받아안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좀 더 복잡한 문제가 결부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바로 이 “자본의 요구”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 둘째, 변화하는 상황에 맞서 자본은 국가에 요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상황에 적응하기도 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말해 자본의 요구가 단순하지 않은 까닭은, 당연하게도 자본–사회적 총자본–이라는 것이 그 내부에 다양한 분파들을 담고 있으며, 그들은 특정 이슈들에 대해 서로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산장수와 밀짚모자장수 사이의 대립을 떠올리면 쉽다. 이럴 경우 정부의 특정 정책은 어느 한 자본에는 (더) 유리하고 다른 자본에는 (더) 불리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두고서, 무조건 “국가는 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좀 단순한 거다.

둘째로 자본은 그 스스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도 한다. 재밌는 예는, 과거 pc통신 중에서 특히 유니텔의 경우 그 운영주체가 삼성이었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나라에서 “자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저 삼성이라는 대재벌이, 한때는–그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현재 그들이 정부와 입을 맞춰 “불법 다운로드”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을 단순히 방조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장했다는 얘기다. 아마도 그땐, 음악이나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행위를 “불법”이라고 낙인찍는 것보다는 그런 행위를 조장함으로써 취할 수 있는 이득이 더 컸던 것일 수도 있고, 또는 다운로드를 감히–또는 자기들도 캥겨서–불법으로 낙인찍을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간에, 이는 자본이 상황에 스스로 적응하고 활로를 개척해 나간다는 좋은 예다. (굳이 여기서 하나 상기해볼만한 사실은, 삼성은 그저 대재벌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자신 음반사업과 영상사업도 했다는 것이다.)

3. 기본적으로 국가가 자본을 대변하는 것은, 자본이 노동에, 또는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 “대중”에 대립되는 한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자본 일반”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자본 내부의 경쟁과 구조조정 등과 관련된 세세한 동학이 국가 그 자체 또는 국가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둘이 서로 관계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결국 무슨 얘기냐면, “자본 내부의 경쟁과 구조조정 등과 관련된 세세한 동학”과 “국가” 사이의 관계는 “자본 일반”과 “국가” 사이의 관계처럼 (대체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바로 그런 까닭에 전자의 관계는 (대체로) 숨겨져 있으며 “과학”에 의해 파헤쳐지고 규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앞에서 자본 내부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다고 했는데, 이 문제는 그것보다도 더 복잡한 성격의 것이다. 즉 여기서는, “국가의 특정 정책은 ‘어떤’ 자본에 이롭고 또 ‘어떤’ 자본에 해롭다는 것이냐”라는 질문보다는, “대체 ‘어떤 의미에서’ 국가의 행위가 자본–자본 일반–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냐”라는 질문이 진정으로 중요하다. 다시 강조하자면, “현재 다운로드 불법화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자본 내부의 동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답변되어야 할 질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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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불법 다운로드”의 정치경제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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