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자본가의 전제적 지휘

자본가의 지휘는 그 내용에서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휘하는 생산과정 자체가 한편으로는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의 지휘는 그 형식에서는 독재적(despotisch; despotic)이다 – 자본론 1권 13장, 449; MEW 23, 351

1.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지휘 기능은 협업 혹은 사회적 노동과정에서 유래하지만 (협업 -> 지휘),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사회적 노동과정에 반작용해서 이로부터 가능한 모든 것을 쥐어짜내는 기능(지휘 -> 협업)을 수행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지휘 기능의 내용은 이중적이다. 반면 지휘 기능의 내용이 현실화되는 방식은 전제적이다. 이것은 물론 노동과정의 적대적 성격에서 발생하는 지휘 기능 (지휘 -> 협업) 때문이다.

반대로 협업에서 유래하는 지휘 기능, 집단적인 노동과정의 성질로부터 발생하는 지휘 기능은 반드시 전제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2. 비봉판에서 ‘독재적’이라고 번역된 despotisch는 ‘전제적’ 혹은 이와 비슷한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박정희는 유신 이후 독재정치를 했고, 김일성은 정적 숙청 이후 전제정치를 했다. 독재자는 민주정을 참칭하지만 전제군주는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3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로 대표되는 조직으로는 군과 검찰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군의 경우에는 군정권과 군령권이 분리되어 있고, 검찰의 경우에는 일반사무는 검찰총장이 지휘하지만, 인사권은 법무부장관에게 있다. 이러한 제도가 존속하는 한 군과 검찰에서 독재가 가능할 수는 있어도 전제는 불가능하다.

4. 재벌총수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언제 어디서나 관철시킬 수 있는 전제권력을 갖고 있다. 감옥에 들어가도 그의 권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심지어 옥중결재에도 모두가 복종해야 한다. 죄는 미워도 죄인은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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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117) 자본가의 전제적 지휘

  1. 해당 인용부분과 그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맑스의 서술은,

    마치, 자본주의에서의 지휘 노동이 그 이전의 다른 계급 사회보다 더 전제적인 듯
    이해할지도 모르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를 요합니다.

    1. 우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맑스는 두 가지 기능을 구분합니다.

    공동 노동의 본성에서 나오는 기능 vs. 자본주의적이고 적대적인 기능
    die Funktion der Leitung, soweit sie aus der Natur des gemeinschaftlichen Arbeitsprozesses entspringt,mit derselben Funktion, soweit sie durch den kapitalistischen und daher antagonistischen Charakter dieses Prozesses bedingt wird.(MEW 23: 352)

    2. 하지만,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 사회에서도 공동 노동은 적대적입니다.

    (원시 공산사회는 예외라고 볼 수 있겠지만
    고대 이집트나 고대 중국에서의 거대 치수 사업은 이미 계급 사회로 진입한 상태의 일입니다.)

    3. 자본주의의 지휘 노동은 어떤 점에서 분명히
    그 이전의 생산양식의 지휘 노동보다 덜 전제적입니다.

    흔히 말하는 “경제외적 강제”(정치적, 신분적, 인격적 예속에 바탕을 둔)가
    “경제적 강제”보다 더 전제적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지요.

    4. 문제는,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가,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로,
    자본주의 지휘(노동)의 (적대적) 전제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라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5. 또, 다시 문제는,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임노동자가
    자본과의 적대적 관계 안에서 자본에 종속되어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바의 자본주의에서의 적대성(or 전제성)을
    그 이전의 적대성(or 전제성)과 비교해서 어떻게 이해하는가 입니다.

    6. 물론, 자본주의가 더 무서운 거지요.

    형식적이고 정치적인 자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생산관계 안에서 종속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해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더 나아가서, 단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본의 축적,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1. ‘해당 인용부분과 그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맑스의 서술은,

      마치, 자본주의에서의 지휘 노동이 그 이전의 다른 계급 사회보다 더 전제적인 듯
      이해할지도 모르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 저는 그런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 좀더 상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2. 희상님이 인용한 대목 바로 다음의 문장을 보면,

    “Mit der Entwicklung der Kooperation auf größrem Maßstab entwickelt dieser Despotismus seine eigentümlichen Formen.”

    자본주의적 협업에서의 전제(적 지휘)가 그 고유한 형태를 더 발전시킨다는 얘긴데,
    쉽게 동의할 수만은 없는 대목입니다.

    적어도, 공장에는 노예선에서와는 달리 채찍은 없으니까 더 전제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파업하는 노동자를 십자가의 책형에 처하는 일도 없구요.

    또, 그 다음에 이어서, 맑스는 형태상 더 고유하게 전제적이라는 근거로써,
    협업의 발전에 따라서 산업 (하)사관들에게 이양되는 지휘/관리 기능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예컨대, 고대 중국의 관료 조직의 규모와 범위, 기능 등을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부의 관리 체계가
    고대 중국의 관료 조직보다 더 고유하다거나 더 전제적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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