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노믹스’의 밑그림 (1) 왜 ‘국민 행복’인가?

0. 기가 막히게도, 박근혜가 제18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많은 이들이 허탈했을 테지만, 괜히 유치하게 ‘멘붕-힐링 놀이’따위에 시간을 더이상 허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들은 이미 ‘박근혜 시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꽤 치밀하게 준비된 비전들을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자, ‘박근혜 시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나는 뭐 경제학을 하는 입장이니까, 다른 것은 모르겠고, 그냥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생각을 조금 풀어보겠다.

박근혜 시대 경제정책을 특징짓는 키워드 하나만 꼽아보라면 나는 ‘국민 행복’을 택하겠다. 나는 이 표현 속에 ‘근혜노믹스’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감히 단언한다.

 

1. 내가 감지하고 있는 한 시초(beginning)는 아마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였던 것 같다. ‘도대체 이 뚱딴지 같은 이름은 뭔가?’ 박근혜 당선자가 김종인이라는 사람을 데려와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라는 야릇한 직함을 맡겼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이다. ‘이런 ㅆㅂ, 사람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어디서 행복타령이냐?’ 이런 생각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행복’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어떤 학자는 “박근혜의 행복 추진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고(링크), 선거가 끝난 뒤 (특히 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하자) 많은 매체에서는 박근혜의 행복은 곧 국민의 불행이라는 성토가 난무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행복타령’이 먹혀들었고, 박근혜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말하는 ‘국민 행복’의 실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 박근혜가 말하는 국민행복이란 무엇인가? 무릇 경제학에서는, 국민소득과 같은 ‘경제적 지표’로는 삶의 전반적인 질을 나타낼 수 없다는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행복’에 주의를 돌린다. 인간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인데, 돈을 좀 벌어보니 꼭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더라는… 뭐 그런 스토리다.

그러니까 물질적 풍요는 일정 정도 누리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육신의 배고픔과는 다른 그 어떤 빈곤에 시달리고 있을 때, 즉 버젓한 직업과 단란한 가정이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을 때, 자살자가 넘쳐나고 온갖 반사회적 범죄가 여전히 횡행할 때…! 비로소 ‘행복’이라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앞에서 내가 어리둥절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지금은 ‘행복’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을 확보해야 할 때이니까. 아니, 집값 떨어져서 몰락한 가장에게 빚을 탕감해주면서 ‘행복 자금’이라고 하는 건 좀 웃기지 않은가.

더구나 박근혜 아닌가? 그는 ‘성장주의자’ 박정희의 딸이다. 그리고 그의 주변은 ‘여전히 우리는 분배보다는 성장에 목마르다’라는 고백을 서슴지않는 자들로 넘쳐난다(링크). 이런 자들이 왜 ‘행복’을 입에 담는가? 오히려 그들은, ‘행복이니 복지니 분배니 하는 것들, 그저 복에 겨워서 내뱉는 소리다. 그리스 안 보이나? 우리는 더 성장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해야하지 않느냐는 거다.

하지만 굳이 이해를 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아마도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수사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간단히 말해, 박근혜와 그 측근들은, 사람들이 흔히 ‘복지’라고 말하는 것을 그냥 ‘국민 행복’이라고 표현하는 것뿐이라는 거다. ‘복지’라는 표현이 흔히 ‘좌파적’ 색채로 덧칠되어 있으니, 그들이 이런 표현에 일정 정도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실제로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복지’가 있어야 할 곳에 ‘국민 행복’만이 난무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경제정책의 기조로서 ‘국민 행복’이 ‘복지’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대체하는 것은 단순히 보수파—특히 한국의—가 갖는 ‘복지 알러지’ 때문만은 아니다. ‘복지’ 대신 ‘국민 행복’을 썼을 때 얻을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후자가 전자에 비해 그 실체가 애매모호하고 측정도 어렵다는 점에서 행여 나중에 ‘실패’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가 훨씬 쉽다는 게 아닐까 한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캠프는 (애초 의도와 상관없이) 매우 훌륭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든 것이고, 나아가 박근혜 아닌 문재인이라 해도 가능만 하다면야 ‘국민 행복’을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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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근혜노믹스’의 밑그림 (1) 왜 ‘국민 행복’인가?

  1. 국민행복추진위원회 -- 영어로 번역하면 National Committee for Civil Happiness Facilitation 쯤 되려나요. 너무 콩클리쉰가 ㅎ ‘추진’을 꼭 강조해서 번역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약자인 ‘행추위’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_-).

    찾아보니 Civil Happiness: Economics and Human flourishing in historical perspective라는 책도 있네요. 행추위가 진지한 기획이었을 줄이야.

    1. 넹 재밌네용 ㅎㅎ 아닌 게 아니라 덕분에 앞으로 ‘행복경제학’이 뜰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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