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노믹스’의 밑그림 (3) ‘국민 행복’의 현실적 의의

5. 물론 박근혜 당선자 등이 단순히 자신들의 ‘이론적 입장’ 또는 ‘지적 한계’ 안에 갇혔기 때문에 자기들도 어쩔 수 없이 ‘국민 행복’을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음으로만 친다면야, 그러한 한계보다는 현실의 강제가 더 중요한 요소다. 어쨌든 ‘국민 행복’이 처음엔 그러한 한계의 산물이었는지 몰라도 일정한 임계점을 지나면 그것은 계산된 ‘의도’에 의해 조장되고 조정된다. 즉 그것은 이른바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의 위기극복 시도들, 즉 케인스주의나 신자유주의도 겪었던 과정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민 행복’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면, 그러한 조장과 조정의 증거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는 국내의 대표적인 보수 일간지를 통해 유포되어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자본주의 4.0’이라는 담론을 한번 떠올려봐도 좋겠다. 요새는 (특히 미디어계 안에서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이미 ‘자본주의 4.0’에 대해 잊어버린 분들도 많으시리라. 이분들을 위해 잠시 ‘자본주의 4.0’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자.

‘자본주의 4.0’이란 말 그대로 ‘4세대 자본주의’를 말한다. 19세기에 걸쳐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하고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와 이미지로 기억되는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제1세대라면, 케인스주의적 정책 패러다임에 입각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로써 번영을 주도하던 ‘수정 자본주의’가 제2세대다. 그렇다면 제3세대 자본주의, 즉 ‘자본주의 3.0’은 그 이후에 출현했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기존의 케인스주의적 모형이 봉착한 한계를 ‘금융화’와 ‘작은정부’론으로 극복하고자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 그것은 한때 바로 그러한 자신의 ‘성공’을 낳았던 특징들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결국 ‘자본주의 4.0’이란 바로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된—박근혜의 ‘국민 행복’과 마찬가지로—것이다. 신자유주의에 그 어떤 장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몇 가지 심각한 결과들, 예를 들어 소득과 부의 양극화, 일자리의 비정규직화/불안정화, 엄청난 규모의 금융시스템적 취약성, 모든 경제주체들(가계, 기업, 정부)에 있어 부채의 급증 등을 낳았다는 데는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이견의 여지가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자본주의 4.0’은 마치 어머니의 손길 같이 따뜻한 자본주의여야 할 것이다. 제안된 시기나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나 ‘박애자본주의’, ‘사회책임경영’ 등도 비슷한 취지를 담고 있다.

‘어머니의 손길과 같은 따뜻한 자본주의’—바로 박근혜 당선자와 ‘자본주의 4.0’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물론 그는 한 번도 (적어도 알려진 한에서는) ‘어머니’였던 적은 없었으며 그런 이미지는 순전히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그가 가상적으로 복제함으로써만 그에게 덧씌워질 수 있었다. 하여튼 보수주의자 박근혜 및 그 측근들이 소득 재분배와 복지를 입에 올리고 심지어 상행위의 자유를 일정 정도 제한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인정하고 그것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언뜻 봐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6. 요컨대 ‘어머니의 손길과 같은 따뜻함’을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구체화시켜 궁극적으로 ‘국민 행복’을 이뤄내겠다는 것이 후보시절 박근혜 캠프가 내세웠던 바였다.

그러나 한번 잘 생각해보자. 과연 복지(여기서는 전면적인 복지, 즉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가 ‘국민 행복’이라는 틀로 포괄이 가능한 것인가? 앞에서 언급했던 이론적 틀에 입각해 말하면, ‘국민 행복’이란 철저한 ‘개체주의’에 입각해 있는 반면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는 누가 뭐래도 하나의 국민경제의 재생산구조의 문제다. 즉 그것은 ‘사회’에 대한 문제이고 ‘구조’에 대한 문제이다. 곧 보수적인 지배계급들이 볼 수 없는 차원, 또는 애써 건들지 않으려는 차원의 문제란 얘기다. 이렇게 보면, ‘경제민주화론자’로 알려진 김종인이 왜 박근혜 캠프 안에서 다른 시장주의자들과 그토록 반목했는지, 왜 김종인이 ‘박근혜 캠프 안에서 경제민주화를 이해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라고 틈만 나면 성토했는지가 감이 잡힐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문제의 시발점은, 경제의 구조 전반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론자가 ‘국민행복추진위원회’라는 기이한 모임의 대표 자리를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국민 행복’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복지나 경제민주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먼저, 박근혜가 ‘국민 행복’을 내세우는 한 그는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 후보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공통적으로 강조되었던 두 가지가 바로 대기업 내부의 지배구조 문제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 문제였다. 물론 선거에서 주축을 이뤘던 박근혜-문제인 구도에서 벗어나는 후보들, 특히 김소연, 김순자 등은 진정한 경제민주화란 재벌개혁으로 축소될 수 없음을 역설했지만, 적어도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 수준에서만 파악하더라도 거기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살아있다고 봐줄만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요즘, 즉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뒤에, 정권인수위원회 차원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거의 발언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재벌개혁은 몇몇 만만한 기업총수를 겁주는 선에서 봉합되고 있는 듯하고(지금까지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은 한화 김승연과 SK 최태원. 그마저도 김승연은 이제 풀려난 거나 마찬가지다),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구조 문제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원활화의 차원으로 축소되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있으나마나한 전경련을 해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중소기업협회를 방문해 고개를 조아리는 당선자의 제스처. 이 모든 것이 겨냥하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국민 행복’, 즉 이 맥락에서는 ‘중소기업주의 행복’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이 과정이 대기업에게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만약 문재인이 당선되어서 현재 박근혜가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 재벌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아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문재인이 전경련 해체해야 한다고 했었더라면, ‘이것은 재벌에 대한 선전포고다’라는 선언이 벌써 나왔을 것이다. 물론 전경련 해체가 재벌에게 주는 피해는 거의 없다. 어차피 거기 회장, 아무도 안 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전경련 같은 친목단체에 국가가 나서서 해체해라 마라 하는 것 자체가 웃긴다고 생각한다.)

 

7. 복지는 또 어떤가? 주지하다시피 박근혜 복지의 특징은 선별적이라는 데 있다. 왜 그들은 보편복지 대신 선별복지를 주장하는가?

흔히 선별복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비용문제를 거론한다. 즉 보편복지에는 돈이 많이 들고, 아직 우리나라는 그것을 시행할 여력이 없다는 거다. 반대로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지난번 ‘무상급식’ 논란에서도 나타났듯이) ‘낙인이론’이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내가보기엔 둘 다 틀렸다. 낙인은 보편복지를 해도 찍히고, 비용으로 치면 (규모의 경제 등을 무시하고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효과가 같으면 비용도 같다. 예컨대 경제수준에 따른 등록금 차등화와 부자증세를 통한 반값등록금제는 결국 같은 것이 아닌가.

(등록금 차등화의 경우, 오히려 순기능도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가계소득 및 자산/부채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그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여러가지 쓸모가 있을 것이다. 금융실명제를 크게 능가하는 것이 될수도 있다. 특히 그런 조사는, 지하경제양성화라는 박근혜 측의 기조와도 맞기 때문에 야당이나 시민사회 쪽에서는 강력하게 ‘철저 조사’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선별복지와 보편복지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이미 지금까지 논의의 진행을 통해 상당히 명확해졌듯이, 전자는 ‘개인’에 초점을 둔 시스템인 반면 후자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에 입각한 시스템이라는 데 있다. 후자는 이 사회엔 소득과 부의 양극화, 그리고 각종 사회적 병리현상들이 만연해 있으며 그런 문제들은 사회의 전체 메커니즘에 의해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제/사회시스템 전반에 걸친 리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입각해 있다. 반대로 ‘선별적 복지’는 위와 같은 병리현상들은 몇몇 개인들이 (부모로부터든, 공동체로부터든)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겪는 불행이라는 생각 위에 서 있다. 이들 몇몇 불행한 이들(레 미제라블!)과는 달리 다른 모든 이들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며, 법률이 정하는 범죄를 그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그들의 이웃이 겪는 불행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서 불행한 이들을 도와야 하며, 흔히 ‘복지’라고 하는 게 바로 그 수단이다. 요컨대 이 사회에 살고 있는 불행한 이들에게 선별적으로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행복’이 뭔지를 알게 해 주자. 이것이 바로 박근혜식 복지다.

그런데 이런 식의 복지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왜냐하면, 만약 복지가 그런 것이라면 이미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라고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국민을 돌봐주는 국가, 그리고 그 국가의 수반, 국민의 아버지! 박정희! 그의 딸, 박근혜! 권위주의!! 복지 얘기가 많아지니까 ‘복지 경험’이라는 용어도 생겼는데,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보편복지 하에서 복지경험은 사회적 연대의식에 기반해 있고 또 그것을 증진시킬 것이지만, 선별복지 하에서 복지 경험은 ‘국가에 대한 고마움’만을 낳을 것이다. 각하 만세! 박근혜의 복지, 박근혜의 ‘국민 행복’은 그래서 경제민주주의하고는, 나아가 민주주의 일반과는, 그래서 우리 중 몇몇이 건설하고자 하는 ‘복지국가’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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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근혜노믹스’의 밑그림 (3) ‘국민 행복’의 현실적 의의

  1. 이어서… ‘국민 행복’론이 내포하는 모순, 그리고 이상의 논의가 좌파들에게 주는 함의, 이렇게 두 가지만 더 쓰면 된다…

  2. 재미지게 읽음. 건강문제에 적용해보면 건강만큼 ‘개인’을 강조하는 것도 없거든요. 다음편 기대하겠음~~

    1. ㅎㅎㅎ 고맙슴다. 네, 맞는 말씀이에요. 건강.. 대충 그런 줄은 알지만, 그래도 각론에선 많이 어려워요. 도와주십쇼! 굽신굽신 ;;;

  3. 지엽적인 얘기지만 저는 보편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육, 의료에 있어서는. 비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선별복지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저는 낙인문제와는 별도로, 적어도 원하는 사람은 공짜로 배울 수 있고, 아픈 사람은 공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저변에 확산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1. 옳으신 말씀입니다! 전 뭐 솔직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꼭 그렇게 권장할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저 자신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요;;), 아픈데 병원엘 못 가서 죽는다는 것은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문명세계에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한, heesang님도 요 위에 re님한테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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