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1조달러 짜리 백금동전과 마르크스 상품화폐론 – 번외편

1. 장관의 재량에 따라 (in the Secretary’s discretion)

2010년 중간선거 이후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벼랑 끝 협상 전술은 북한을 무색케할 정도다. 균형재정 근본주의자들, 감세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국가 부도도 감수할 태세다. 이들은 이미 핵실험도 여러번 했다. 부시 시절인 2008년 말에는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킨 전례가 있고, 지난해 말 재정절벽 협상에서는 초고소득자에 한정된 감세철회조차 수용하지 않아 권력 서열 3위 하원의장이 협상권을 상원 원내대표에게 넘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티파티 초선의원들 관리 제대로 안되면 2월이나 3월에 미국 정부 부도라는 핵폭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솔로몬 법정의 진짜 엄마 역할을 벗어날 수 없는 오바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공화당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유일한 대안은 재무부에 명령하여 고액동전을 주조하는 것이다. 2010년 5월 처음 제시된 (여기) 이 아이디어는 최근 미 언론과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 법률 조항은 이렇다.

(k) The Secretary may mint and issue platinum bullion coins and proof platinum coins in accordance with such specifications, designs, varieties, quantities, denominations, and inscriptions as the Secretary, in the Secretary’s discretion, may prescribe from time to time. {31 USC § 5112 – Denominations, specifications, and design of coins}

(k) 재무부 장관은 백금 혹은 백금 프루프 주화를 주조, 발행할 수 있다. 재무부 장관은 이 주화의 규격과 디자인, 종류, 양, 표시금액, 글귀를 재량에 따라 정할 수 있다. {주화의 표시금액, 글귀와 디자인에 관한 법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이 지폐와 주화 발행을 독점하지만, 미국의 경우 주화는 재무부에서 지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발행한다. 다만 현재 유통 중인 지폐가 1조 달러를 상회함에 반해 유통 중인 주화는 400억 달러 정도 수준임을 감안하면 (자세한 내용은 여기), 재무부의 화폐발행 권한은 거의 완전히 무시할 만하다. 하지만 저 무시무시한 (k)조항은 – 지금까지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 미국 재무부에 FRB에 버금가는 화폐발행권을 부여하고 있다. 단지 발동된 적이 없을 뿐이다.

같은 법률에는 이런 조항도 있다.

(h) The coins issued under this title shall be legal tender …

(h) 이 법률에 의거하여 발행된 주화는 … 법정 통화다.

재무부가 1조 달러 짜리 백금동전을 주조해서 FRB에 넘기면 (혹은 판매하면) FRB는 재무부 계좌잔고를 1조 달러만큼 늘려야 한다 (법정 통화이므로 FRB는 동전 매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재무부는 이 돈을 채권 이자와 원금의 지불, 그리고 정부지출에 활용할 수 있다. 의회에서 부채한도를 증액하지 않더라도 부도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2. 백금동전, 양적완화, 인플레이션

백금동전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일종의 농담으로 치부됐지만 갈수록 논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백금동전 발행은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물가와 시중금리를 상승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비판한다.

이런 우려는 이미 양적완화와 관련한 논쟁에서 별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백금동전의 발행과정은 양적완화의 메카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적완화의 경우 FRB가 새로 발행한 화폐로 민간이 보유한 정부채권과 모기지담보부채권을 구매한다면 (실제로는 화폐를 찍지 않고 판매자의 예치금 계좌잔고를 높여준다), 백금동전의 경우에는 새로 발행한 화폐로 재무부가 주조한 백금동전을 구매한다. 양적완화 후 (대부분 대형금융기관인) 채권 판매자들이 판매대금의 재투자 대신 중앙은행 예치를 선택했기 때문에 물가나 시중 금리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경제 내에 유통 중인 화폐의 총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본원통화(유통 중 화폐 + 중앙은행 예치금)는 8천억 달러에서 2조 8천억 달러로 늘었지만, 유통현금은 8천억 달러에서 1조 2천억 달러로 4천억 달러 상승하는데 그쳤다 (유통 현금은 경제성장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있고, 이 기간 유통화폐량은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는 했지만 트렌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반면 민간의 중앙은행 예치금(reserve balances with Federal Reserve Banks)은 0에서 1조 6천억 달러로 큰 폭으로 늘어났다.

frb

미국의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은 FRB가 발행한 화폐가 “미국의 채무 (obligations of the United States)”라고 규정한다. 중앙은행 예치금이 언제나 인출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행정부가 아닌 나라로서의 미국의 채무는 거의 2조달러만큼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2조 달러 중 거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은 마르크스의 표현을 따르면 퇴장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물가와 금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도 미미했다. 마찬가지로 미 재무부가 백금동전 발행을 통해 조달한 1조달러를 적극적으로 유통시키지 않는 이상, 백금동전 발행이 물가와 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3. 근본적인 문제 – 부채의 화폐화

백금동전 주조와 관련된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나라에서 (화폐발행을 포함하는)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은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행정부가 발행하는 정부채권을 사고 파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FRB는 이 글을 쓰는 현재 무려 1조 6,700억 달러 어치의 미국 정부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국채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통화안정증권을 이용한다). 이러한 분리 없이는 정부부채라는 개념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령 FRB가 재무부와의 협의 하에 민간이 보유한 미국 정부채권을 (새로 발행한 화폐로) 무제한 구매하고, 만기된 채권은 새로 발행한 채권으로 역시 무제한 교환한다면 미국 정부는 부채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FRB가 정부에 화폐를 길어올릴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을 제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정부채권이라는 일종의 매개를 활용하는 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에 정상거래라는 외관을 씌우기 위한 것일 뿐이다. 물론 부작용은 명백하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채권 판매대금은 곧장 시중에 풀릴 것이고, 물가와 금리가 급등해 경제활동이 대단히 위축될 것이다. 이런 노골적인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 of debt)를 방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보통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운영된다.

다시 말해 백금동전 주조 권한을 이용하면 미국 정부는 정부부채로부터 합법적으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지만, 동시에 중앙은행과 정부 사이의 경계는 실질적으로 허물어지고 만다. 미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수익률이 급등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 채권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은 그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다시 금화폐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할 것이다. 1조달러 백금동전 주조가 나쁜 아이디어라는 것은 아니다. 뭐 한번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의회에 대한 압박용도로도 훌륭하다.

[어쨌든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미국 재무부는 백금 동전 주조 권한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1월 13일 발표했다]

소위 양적완화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양적완화는 장기금리를 안정화시켜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하는 통화정책인데, 양적완화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탕감되는 채무는 전혀 없고 민간 부문으로부터 FRB로 정부채권이 대량으로 이동할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한 국가기관이 또다른 국가기관에 대한 주채권자로 되는데, 이것은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사태다 (참고로 FRB는 2012년 770억 달러, 우리돈으로 77조원의 이익을 냈는데, 대부분 채권에 대한 이자 소득이다. 애플 이익의 두 배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정리하는 차원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FRB 대차대조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간단히 요약해보자 (FRB의 최신 대차대조표는 여기 참조).

balance-2

  1. 현재 유통 중인 화폐의 총액이 1조달러, 재무부의 FRB 계좌 잔액이 3천억달러 (합계 1조 3천억달러는 FRB의 부채), FRB의 자산은 전액 금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2. 경기부양을 위해 FRB는 새로 발행한 화폐로 1조달러 어치의 미국 정부채권을 민간부문으로부터 구입한다. 정부채권 1조달러 어치는 FRB의 대변에, 민간부문의 FRB 예치금 1조 달러는 차변에 더해지며, 총자산은 2조 3천억달러로 늘어난다.
  3. 예치금을 인출할 때 FRB는 실물 화폐를 제공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 예치금 천억 달러를 인출하면, 유통화폐가 그만큼 증가한다. 경제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늘어날 수 있다.
  4. 재무부가 만기 도래한 2천억달러 어치의 정부채권의 원금을 상환한다. 차변의 재무부 계좌 항목, 대변의 정부채권 항목이 각각 2천억달러씩 줄어들고, FRB의 자산 총액도 그만큼 감소한다.
  5. 부채한도 증액이 어려워지자 재무부는 1조달러 백금 동전을 주조해서 FRB에 예치한다. 동전은 FRB의 자산항목으로 기입되며, 재무부 계좌 잔액이 1조달러 만큼 증가한다.
  6. 재무부는 부채 규모와 채권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FRB가 보유한 정부채권 전액을 되사들여 소각한다.

 4. 화폐는 부채가 아니다

이 정도로 백금동전 주조와 관련된 논의를 정리할 수 있겠지만, (불환)지폐의 신비로운 정체(?)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양적완화를 통해 창출된 (그리고 백금동전 주조를 통해 새롭게 창출될) 저 엄청난 금액의 화폐 혹은 부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양적완화를 통해 무려 2조 달러의 부채가 새롭게 발생했지만 사람들은 기껏해야 물가와 금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걱정할 뿐이다. 물론 담보가 있는 부채이고, 이 담보는 대부분 미국 정부채권이다. 하지만, 금리상승으로 정부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FRB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새롭게 창출된 화폐가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기입된다면 그것을 부채로 취급해야 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런데 명시적인 부채를 실질적으로 부채로 취급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재무부의 부채와 FRB의 부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재무부의 부채는 정부지출을 위한 부채다. 그래서 재무부가 1조달러 동전을 주조한다면 그 이유는 이 돈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재무부가 발행한 동전은 회계 상으로도 미국 정부의 부채로 간주되지 않는 것 같다. 미 정부 대차대조표에서 동전 관련 부채 항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대로 금욕주의자 FRB는 자신이 생산한 지폐를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대한다 (그래서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이 보유하는 한국은행권은 한국은행의 자산 또는 부채가 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 FRB는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엄청난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대상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주로 정부채권, 금, 모기지담보부증권 등). FRB는 화폐를 탄생시킨 “사회의 행동”(자본론 1권 2장, 111)의 일종의 대리자로 기능할 뿐,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진실로 지폐 보기를 돌같이 한다. (‘(33) 태초에 행함이 있었다’ 참조). 마치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의 권한이 교황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지상의 몸인 가톨릭 교회를 위해서 행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FRB가 발행한 지폐가 FRB의 부채라는 규정은 얼마나 황당한가? 1달러 짜리 지폐를 들고 FRB 사무실에 가서 ‘내가 당신들이 발행한 1달러 짜리 지폐를 가지고 왔으니 당신들 대차대조표의 자산항목에서 1달러에 해당하는 실물자산으로 부채를 갚으시오’라고 요구하면 아마도 미친놈 취급을 당할거다. 혹시 당혹스러워 할지도 모를 일이다. 화폐는 분명히 국가의 부채라고 법에 규정되어 있는 반면, 실질적으로는 부채라고 볼 구석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우선 부채에는 상환조건이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폐에 그런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부채는 법정화폐로 상환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니 1달러 짜리 지폐라는 빚은 1달러 짜리 지폐로 갚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보다 더 부질 없는 일이다. 게다가 부채가 부채일 수 있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상환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그 자산을 정리해주는 파산절차와 제도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화폐가 더이상 통용될 수 없는 비상 상황이라면 정부와 사회제도가 거의 붕괴 상태에 놓여 있을텐데 그때 누가 FRB의 파산과 자산정리 절차를 책임지고 진행할 것인가.

나는 오늘날 화폐로 통용되는 (불환)지폐는 절대 부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은 어떤 경우에도 중앙은행권 보유자에게 어떤 지급 의무도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환지폐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상품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FRB와 같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막대한 자산은 화폐라는 부채에 대한 담보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중앙은행의 자산일 뿐이다. 중앙은행은 그 나라 최고의 부자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어떻게 그렇게 막대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상품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적 부의 일반적 형태인 (상품으로서의) 화폐의 독점적 생산권한을 중앙은행에 사회적 행동을 통해 부여했기 때문이다.

5. 지폐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계의 화폐론

자. 이제 마르크스로.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화폐론은 상품화폐론이다. 많고 많은 상품들 중 하나인 금이 화폐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불환)지폐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것은 지폐가 진정한 화폐인 금을 대신하여 유통수단으로 기능함에 한해서이다).

그런데 적어도 1971년의 금태환 정지 이후에는 (불환)지폐가 명백히 유일무이한 화폐로 기능하고 있다. 문제는 (액면가에 비해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현저히 낮은 지폐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무가치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 있다. 액면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치를 갖는 지폐가 통용될 수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국가가 지폐를 법정 화폐로 지정해 통용을 강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무가치물인 지폐는 화폐가 될 수 없다. 화폐는 가치척도로서 기능해야 하는데 무가치물로 다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불환지폐가 상품화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자들은 지폐를 1) 신용화폐(부채)로,  2) 상징화폐로, 3) 혹은 (여전히 화폐인) 금의 대리물로 이론화해왔다. 내가 보기에는 셋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먼저 신용화폐론의 문제점은 이미 살펴본 바 있다. 부채가 아닌 것을 부채로 이론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시각의 글로는 김수행의 “자본론의 금화와 현재의 중앙은행권“을 참조).

금이 여전히 화폐이며 지폐는 금의 대리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채만수의 “금폐화론의 비과학성에 대하여” 참조). 불환지폐, 특히 미국의 달러화는 가치척도로, 유통수단으로, 지불수단으로, 세계화폐로, 퇴장화폐로, 전면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달러화가 화폐가 아니라면 화폐의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폐가 상징화폐라는 주장은 상품화폐론이 아닌 새로운 화폐론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의 상품화폐론에서 화폐는 그 자체로 사회적 부이지 화폐와 별도로 존재하는 사회적 부의 상징이 아니다. 가치척도의 기능은 화폐의 상상적 존재에 의해,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은 대리물을 통해 수행될 수 있다. 하지만, 화폐가 그 몸체 그대로 나타나야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의 축적을 위한 화폐 퇴장, 부채의 상환을 위한 ‘지불’의 경우에 그렇다.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지 않는 상징물은 결코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57) 금이 화폐로 기능한다는 것의 의미” 참조). 따라서 지폐가 상품화폐가 아니라 상징화폐라면, 마르크스의 상품화폐론을 폐기하고 마르크스의 이론에 입각해서 상징화폐론을 새로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시도 없이 지폐가 상징화폐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별 의미가 없다.

6. 지폐와 마르크스 상품화폐론

나는 심플하게 (불환)지폐가 떳떳한(?) 상품이고 따라서 마르크스 상품화폐론은 불환지폐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예전에 살펴본 것처럼 노동은 특수한 조건 하에서는 고능력 노동(potenzierte Arbeit)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109) 강화된 노동, 아니 고도화된 노동” 참조). 따라서 지폐의 생산에 매우 적은 노동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지폐는 무가치물에 해당하고, 상품화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다. 다시 말해 사회가 중앙은행에 지폐의 독점적 생산권한이라는 고도의 초능력을 부과했기 때문에 조폐노동자의 노동은 엄청난 고능력노동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노동이 얼마만큼의 고능력노동으로 작용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래와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1달러 짜리 지폐의 가치는 가격으로 표현되는 경우 언제나 1달러다. 1달러 지폐로 콜라 한 캔을 사먹을 수 있다면 (생산가격으로 전형을 배제할 때) 1달러 지폐의 가치와 콜라 한 캔의 가치는 동일하다. 물론 콜라 한 캔의 가치는 여러가지 이유로 (예: 콜라 생산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의 변화) 변동하고 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콜라 한 캔과 교환되는 1달러 지폐의 가치도 변동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노동의 복잡한 노동(혹은 고능력노동)으로의 환원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 이러한 환원의 어떤 구체적인 사례를 이론적으로 분해해서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단순노동에 비해 두배로 복잡한 노동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노동이 왜 복잡한 노동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 노동력의 양성비 등). 하지만, 그것이 왜 꼭 두 배인지를 완전히 해명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할뿐더러 별다른 이론적 가치를 갖지도 않는다.

셋째, 유통화폐량은 불환지폐상품의 가치 결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모든 상품이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상품은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킬 때에만 가치며, 사회적 필요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아무도 안 사는 쓸모 없는 상품은 가치를 갖지 않고, 사회적 필요를 초과하여 생산된 상품 역시 가치를 갖지 않는다 (혹은 모든 개별 상품의 가치가 하락한다). 화폐도 상품이기 때문에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유통에 필요한 화폐가치의 총량은 특정 시점에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보다 많은 화폐가 유통되는 경우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반대의 경우 화폐가치는 상승한다. FRB에서 양적완화가 화폐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통화폐량을 신중히 관리하는 이유다. 중앙은행 예치금은 화폐가치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유통화폐량에 의해 결정되는 화폐가치에 의해 평가될 뿐이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하는 경우 중앙은행은 오직 자산만을 갖는다. 무려 2조 8천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FRB는 세계최고의 부자이고, 원하는 만큼 이 부의 크기를 늘릴 수 있다. 이것은 물론 마르크스가 말한 “허위의 [하지만 실재하는] 사회적 가치”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른바 시뇨리지 – [지폐의 액면가 빼기 지폐의 생산비용] – 가 허위의 사회적 가치에 해당한다). 달리 표현하면 FRB가 보유한 엄청난 부는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행동이 만들어낸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의 부산물이다.

상품의 생산자로서 중앙은행은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내부에 있다. 그는 화폐라는 상품을 생산하고, 이 상품을 가치대로 판매한다 (화폐로 정부채권이나 금을 구매). 이렇게 축적된 엄청난 부는 중앙은행 자신의 것이다. 동시에 중앙은행은 이윤을 목적으로 화폐를 생산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외부에 있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엄청난 초능력인 화폐발행권은 이 화폐가 통용되는 상품경제권 전체를 위한 것이다.

등가교환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중앙은행의 자산은 사회 공동의 자산이 아니다. 등가교환은 여타의 경제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제주체의 존재, 그리고 이 경제주체의 배타적 재산처분권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의 자산이니 결국 모두의 자산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은 중앙은행의 자산을 여타의 사회구성원의 자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방식으로만 존립가능하다. 이 경계를 허물면 불환지폐 화폐시스템 역시 허물어질 것이다. 중앙은행의 자산을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을 그리고 이 화폐시스템이 그 일부인 자본주의 상품경제를 철폐해야 한다. 그 전에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남는다.

일단은 이 정도.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직 연구와 지식이 부족하다.

마르크스주의적 불환지폐론, 마르크스주의적 중앙은행론은 아직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출발점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상품화폐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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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thoughts on “(120) 1조달러 짜리 백금동전과 마르크스 상품화폐론 – 번외편

  1. 매우 흥미로운 글을 이제서야 읽을 수 있었네요. :) 저야말로 화폐에 대해서는 공부가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전무’해서(그냥 역사서랑 이론서 몇 권 본 정도죠ㅋ) 딱히 자신있게 뭐라 하긴 그렇고요… 다만 한 가지만 덧붙이면…

    결국 오늘날 통용되는 화폐가 상품이라고 하시면서도, “상품의 생산자로서 중앙은행”이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내부에 있기도 하고 외부에 있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네요(끝에서 네 번째 단락). 여기에 대해 저는 이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화폐를 상품이라고 보더라도 중앙은행을 “화폐(상품)의 생산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 “화폐의 생산자”는 중앙은행이라기보다는 한국조폐공사이고, “화폐의 생산자”라는 지위에 걸맞게 이 회사는 공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제조업”에 속합니다. 즉 조폐공사는 화폐를 생산해 일정한 가격에 한국은행에 파는 것이죠. 물론 (법적 분류상 “공공기관”이긴 하지만 동시에 “제조업 기업”인) 한국조폐공사는 이 과정에서 일정한 이윤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영국도 비슷한 사정인데, 미국은 어떤지 모르겠군요(주화발행과 지폐발행의 주체가 다르다는 것은 heesang님 덕분에 알았지만, 그렇게 알고 보니 나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화폐생산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판단도 재고가 필요할 듯 싶습니다.

    이렇게 화폐의 생산이 한국조폐공사의 역할임을 인식하게 되면, 중앙은행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당장에 떠오릅니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우리는 결국 “강제통용력”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 즉 중앙은행의 “권한”은 자신이 그 생산자로부터 예컨대 1천원에 구매한 상품(여기서는 1만원짜리 화폐)을 1만원에 시중에 팔 수 있는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사태를 이렇게 보면, 즉 “[화폐의 직접생산자(조폐공사)] --> [화폐의 강제통용자(중앙은행)] --> [경제/사회]”라는 틀로 보면(여기서는 조폐공사와 한국은행을 분리시킨 것이 핵심입니다), 고전적인 ‘상품화폐’ 시대(저는 솔직히 이런 게 진짜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자유무역 시대’와 같이 신화적 단순화이거나 ‘단순상품유통’과 같이 추상논리적 단순화라고 저는 봅니다. 하여튼요!ㅎ)와 오늘날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즉 금의 직접생산자가 조폐공사에, 자기 얼굴을 일정한 크기와 모양의 금덩어리에 찍는 국왕이 중앙은행에 해당한다면, 뭐가 다른가 하는 점이죠. 기껏해야 “씨뇨리지”의 크기 차이 정도일텐데.. 적어도 “일반이론” 차원에서는 그런 것쯤은 무시해주는 것이 상례이므로, 결국 둘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heesang님의 주장과 같네요 :)

    시간도 없고 해서.. 일단은 이 정도로 할게요 :)

    1. 저는 조폐공사를 한국은행의 일종의 하청업체라고 생각했습니다. OEM 방식 생산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조폐공사를 생산자로 본다면 한국은행권을 무제한 찍어서 아무에게나 팔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한국은행이 주문한 만큼만 생산하고, 한국은행에만 납품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조폐공사가 화폐를 생산한다기보다는 한국은행이 조폐공사를 통해 화폐를 생산한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옛날과의 차이점은 저도 씨뇨리지의 크기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1.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OEM 방식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이 얘긴 계속 더 해봐도 좋겠습니다. 제 방식이냐 아니면 heesang님 말씀대로 OEM 방식이냐, 그것도 아니면 제3의 방식이냐를 가리는 것은, 적어도 “올바른 출발점(과 방향)”을 정하는 데 유용할 테니까요!)

        1. 제 얘긴 결국, 사태의 열쇠를 “화폐 생산 노동(의 비상한 복잡성)”에서 찾는 것이 좀 성급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인데요… 가장 단순한 까닭은, 복잡노동과 단순노동의 차이는 일단 주어진 사회 안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데, 누구도 조폐공사에서 돈 찍어내는 노동을 ‘비상하게 복잡한’ 노동이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폐공사는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늘상 욕을 먹습니다ㅋ)

        이런 문제가 금화폐의 경우엔 별로 부각되지는 않겠습니다. 적어도 ‘원칙상’으로는 금화폐에서 실질가치(=금생산에 든 노동량)와 명목가치는 일치하니까요. 또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도 심각하게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죠. 반면 지폐의 경우에서는 나름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그러나 만약 위에서 우리가 동의한대로 금화폐와 지폐가 본질상 차이가 없는 것이라면, (금화폐만 봤을 땐 잠재돼 있다가) 지폐의 경우에 중요하게 부각되는 문제를 오히려 거꾸로 금화폐의 경우에 투영시켜, 금화폐의 경우에 대해서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heesang님은, 금화폐의 경우에 문제가 없었으니 지폐의 경우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씀하신 셈이 됩니다.)

        2. 다른 한편, 그간 화폐생산노동 그 자체에 주요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도록 만든 사정도 있는데요, 언뜻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지폐란 금화폐 또는 ‘진정한 화폐’의 대용물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는 “진짜 화폐/금”과 “종잇장에 불과할 수도 있는 지페” 사이의 가치 차이가 문제로 되는데(마르크스주의 화폐이론가들이 씨름했던 문제 중 하나죠), 이를 해소하는 데 “지폐생산노동”에 주목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3. 끝으로, [직접생산자, 강제통용자, 경제]라는 틀에 입각해서 보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떠오릅니다. 첫째, 금/지폐의 “생산” 그 자체, 둘째, 그렇게 생산된 금/화폐에 강제통용력이 부여되는 방식.

        생각해보면 이 둘은 마르크스 자신의 논의에서는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전자의 문제를 거의 생략했고, 후자의 문제는 “상품세계의 공동작업”이라는 식으로 추상적인 차원에서 가름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다른 고전정치경제학자들에겐 전자가 나름대로 상당한 (그러나 결국은 지엽적인) 흥밋거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후자는 현대의 경제학자들(마르크스주의 화폐이론가들)이 (대체로 전자의 문제는 거의 외면한 채) 집중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흠.. 발전시킬 점들이 많네요… (-_-)

      2. 강의하느라 힘드셨을텐데 깊이있는 코멘트까지 남겨주셨네요 :)

        1. 일단 OEM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생각해보도록 하구요.

        2. 화폐생산노동이 복잡한 노동으로 작용하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노동의 복잡도의 문제는 그 노동 자체가 갖는 복잡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가령 의사의 노동이 복잡노동이라고 하는데 모두들 동의하는 편이죠), 그 노동이 어떤 환경에서 수행되느냐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인쇄라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노동이 강제로 통용되는 화폐의 인쇄라는 맥락에서 수행되는 한 복잡노동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채만수 소장의 경우에는 동의할 수 없는 시각이겠지만요. 결국 독점이 독점가격의 원천이냐 혹은 노동의 고능력화의 원천이냐의 이슈가 되겠습니다. 복잡노동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다분히 전략적이구요. 겉보기에는 노동이 거의 필요 없어도 실제로 가치는 상당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요.

        3. 말씀하신대로 강제통용의 문제는 금화폐나 지폐에 모두 적용이 될 것 같고 (특히 금화폐의 마모에 의한 가치상실에도 불구하고 액면가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요), 역시 금화폐의 강제통용도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동의합니다. 화폐의 역사를 공부해야 할텐데 이건 사실 엄두가 안납니다 ㅎㅎ

        4. “공동작업”과 관련해서는 요새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에서도 썼지만 중앙은행과 중앙은행의 막대한 자산이 공동작업이 나타나는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전 코멘트에서도 지적하셨듯이, 중앙은행을 상정하지 않은, 혹은 정치권력을 전혀 가정하지 않은 단순상품유통 류의 모델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과연 중앙은행 류 외의 다른 방식의 “공동작업”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어요. 유로화를 발행하는 ECB 같은 경우는 좀더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드네요, 특히 현재의 유럽의 현실에서는 개별 국가들이 쉽게 부채를 화폐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공동작업”이 일국의 범위를 넘어선 예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2. 일반인의 직관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불환화폐가 상품처럼 보이는 이유는 “화폐로 세금(공역)을 납부할 수 있다’에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하고 (즉 자신의 노동을 국가에 무상으로 제공해야하고),금이든 불환 화폐든 정부에 그것을 건네주면 갈음한 것으로 본다는 규칙이 만들어졌고, 따라서 화폐는 국가로부터 노동으로 인정받고, 이것이 “무가치해 보이는” 화폐가 가치를 획득하여 상품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이유 같습니다.

    이 규칙은 가상의 세계인 온라인게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죠. 게임시스템이나 NPC들은 게이머들에게서 세금을 걷고 있고(물약 판매등), 그 세금은 게임내 화폐로 납부해야만 하죠. 이것을 통해 비로소 게임내화폐들은 게이머들의 노동(몬스터사냥)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마침내는 게임 안을 벗어나 현실에서 실제 화폐와 교환되기도 하는거죠. (아마도 이걸 현질이라고 할겁니다.)

    그런데 만약 게임내 세금시스템이 사라진다면? 게이머들이 게임내화폐를 보관하거나 자신의 아이템과 교환해야할 근본 이유가 사라지는거고, 게임내화폐는 누가 공짜로 줘도 안받는 쓰레기가 될겁니다. 실제로도 그렇구요. 이것은 현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겠죠.

    1. 말씀하신대로 세금을 (불환)화폐로 납부한다는 점도 있고 채무상환이 화폐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명시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화폐이기 때문에 세금납부와 채무상환에 사용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그 반대라기보다는요.

      온라인게임의 예를 드셨는데, 제 생각에는 게임내 화폐는 일종의 신용화폐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게임사업자들이 게임내 화폐에 대해 (자기앞수표처럼) 지불의무를 갖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요. 상장된 게임업체 대차대조표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부채라면, 게임 내 세금시스템과 무관하게, 게임업체는 개임내화폐를 현실의 법정화폐로 교환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반대로 현실에서 세금을 원화로 더 이상 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더 이상 원화가 화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상품경제가 존속하는 한은 화폐가 존재해야 하는데, 무엇인가 새로운 화폐가 나와야 하겠지요. 기존의 달러화나 유로화 아니면 엔화를 사용할 수도 있겠구요.

  3. 1. 제 반론의 요지는 “정부가 세금을 원화로 더 이상 받지 않는다면”이 아니라, “정부가 더 이상 세금을 걷지 않는다면” 과연 불환화폐가 화폐로써 통용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거죠.

    화폐이므로 사용가치는 당연히 없을테고, 세금납부수단으로써의 쓸모까지 없다면, 그것은 그냥 ‘숫자가 적힌 종이’에 불과한거고, 그러면 바보가 아닌 이상 사용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는 그 종이들과 자신이 생산한 재화를 교환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님께서는 “현실에서 세금을 원화로 더 이상 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더 이상 원화가 화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셨습니다. 제 주장이 바로 그것인거죠. 만약 미국정부도 유럽연합도 일본도 세금을 걷지 않는다면? 님 말씀대로 그 화폐들(달러, 유로, 엔화) 역시 더 이상 화폐가 아닌거겠지요. 그 나라들에서 화폐가 아닌 것이 한국에서 화폐로 사용될 수도 없을테구요. 결국 “각국 정부들이 불환화폐로써 세금을 걷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화폐일 수 있다”는 저의 주장을 님께서도 인정하신거 같은데요;;

    2. 게임화폐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님과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다른 종류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게임내화폐는 게임회사에서 현금을 받고 판매하는 사이버머니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이머들이 몬스터를 사냥해서 취득하는 가상화폐를 말하는거죠. 리니지의 아덴같은거요.

    게임내화폐에 대해서 추가 설명을 드리자면, 온라인게임이 만들어내는 가상세계안에서도 경제시스템이 존재하고, 그것은 현실의 경제와 거의 흡사합니다. 게임화폐는 그 세계안에서 통용되는 교환과 지불수단이라는 점에서 현실의 화폐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그 가상화폐는 (꼭 그런건 아니지만) 게이머가 직접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취득할 수 있습니다. 바로 노동이죠. 실제 게이머들은 게임화폐를 취득하는 지루한 작업을 ‘노가다’라고 부르기도 하구요. 즉 게이머들의 현실의 실제 시간과 등가물입니다. 즉 게임속경제에서는 게임화폐가 게이머들의 가상노동을 표현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게임화폐 자체는 게이머들에게는 아무런 사용가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게이머들은 더 많은 게임화폐를 보유하기 위해서 안달을 하죠. 심지어는 현실의 실제화폐로 다른 부유한(?) 게이머들로부터 구입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걸 현질이라고 하죠.

    이게 왜 그러냐면, 게임화폐는 사용가치는 없지만 쓸모는 있기때문입니다. 모든 게이머들은 게임속 정부라고 할 수 있는 NPC에게 세금을 납부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게임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 게임에서는 국세청같은 곳을 만들어서 직접 걷는 형태도 있고, 통행료라든지 무기강화비용이라든지 이벤트참가비 같은 형태로 걷습니다.게임속정부가 물약같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데, 현실의 각국 정부들이 행정이나 치안 안보서비스를 제공하고 세금을 걷는 형태와 유사한거겠죠.)

    암튼 경제학을 전공하신다니, 온라인게임이 만들어내는 가상세계속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해보시는 것도 흥미로우실 것 같습니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모두 존재하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인들도 등장하고, 범죄집단도 등장하고, 자본가도 등장하고, 독재자도 등장합니다.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한 반란과 혁명이 벌어지기도 하구요. 게임시나리오가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게 아니라 게이머들이 그런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죠.

  4. 추가로 조금 더 설명하자면,

    님의 견해는 “세금이 없어져도 불환화폐는 화폐로써 계속 통용이 될 것이다” 이고, 저는 그럴 수 없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왜 게임을 예시로 든거냐면, 예전에 어떤 게임사가 세금시스템이 없는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미처 만들지 못한채로 급하게 오픈을 한거죠). 몬스터를 사냥하면 게임화폐가 드랍되기는 했습니다. 처음에는 화폐로써 기능을 하는 것 같더니, 얼마지나지 않자 게이머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지?” 하는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교환을 거부하기 시작하더라구요. 공인된 게임화폐는 존재하는데, 대용화폐가 등장하더라구요. 아이템강화주문서가 큰 액수의 화폐로, 몬스터 사냥할 때 드랍되는 각종 물약들이 작은 액수의 화폐로 물물교환 비슷한 형태로 가더라구요. 한달여 지난 뒤에 게임사에서 세금시스템을 패치를 했고, 그때부터 화폐로써 통용이 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1. (그런데 예전에 그 피노키오님이신가요? 그러시다면,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 저는 게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따라서 길게 덧붙일 능력은 없지만, 하나만 말씀드리면, “화폐”에 대한 사유를 전개시키기에는 온라인 게임보다는 현실이 더 적합한 “텍스트”라는 것입니다. 전자는 오직 후자에 대한 연마가 되어있을 때 보조적인 의미 정도는 있을 수 있겠죠.

      하여간에.. 세금과 화폐의 관계에 대한 님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예를 들어 아랍에미레이트의 조세부담률이 1% 안팎임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5. 피노키오님. 먼저 흥미로운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논지도 불환지폐의 통용과 (세금납부에 이용되는) 법정통화의 문제로 좁혀 주셨고, 게임화폐에 대한 설명도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야구게임만 하는데, 이제 온라인게임을 시작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

    1. 세금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도입된 게임화폐가 화폐로서 통용되지 못한다는 예를 드셨는데요. 그렇다면, 저는 가령 리니지에서 세금제도를 없애면 리니지의 게임화폐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게임화폐가 세금납부뿐만 아니라 아이템 구매, 심지어 현실화폐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화폐는 세금이 없어지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필요할테고, 제 생각에는 사용자들이 리니지 게임화폐를 폐기하고 물물교환의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게임화폐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서요. 불환지폐가 경제 내의 화폐로 성립되는 과정에서는 세금을 불환지폐로 납부해야 한다는 명확한 강제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화폐로 성립된 이후에는 세금납부 여부가 불환지폐가 화폐로 기능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소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2. 그런데 저는 법률에서 규정하는 법정화폐의 정의에 세금납부가 포함된다는 점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언뜻 드는 생각이지만 피노키오님이 제시해주신 사례가 ‘불환지폐의 화폐로서 성립’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화폐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3. 말씀하신대로 온라인 게임 내의 경제는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게임회사는 게임화폐라는 툴을 통해서 사용자들이 더 많은 게임을 하도록 유도 혹은 강제하는 것 같고, 같은 이유로 게임화폐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꽤 노력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부채나 채권 같은 개념이 있으면 무지하게 재미있겠네요. 게임회사가 세율을 높이거나 중앙은행처럼 아이템을 사고 파는 방식을 통해서 통화량을 관리하기도 하나요?

    1. 1. 계속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번데기앞에서 주름잡는게 분명할텐데;;), 불환화폐 역시 교환가치를 갖고 있을테고, 그 교환가치를 부여하는 물질적인 조건이 무엇일까하는 거죠. 사용가치도 없고 세금납부수단이라는 쓸모도 없다면, 결국 사람들끼리 “이 종이는 화폐이다”라고 합의하는 어떤 비물질적인 약속에 의해 교환가치가 부여되고 있다라는 말씀처럼 들려서 뭔가 갸우뚱스러운거죠. ‘화폐생산노동의 비상한 복잡성’이라든가 ‘강제통용’같은 논의들에는 그런 딜레마가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마르크스경제학이 불환화폐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2. 저 역시 불환화폐가 화폐일 수 있는 이유가 많이 궁금하죠. 혹시 불환화폐는 “이 사람은 생산에 이만큼의 기여를 했음”이라고 국가가 발행해주는 권위있는 증명서와 같은거라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구요. 정부가 발행하는 증명서는 그저 종이에 뭔가가 적힌 인쇄물에 불과할 뿐인데도 이따금 비싼 가격에 판매되기도 하는거니까요.

      3. 부채나 채권같은건 잘 모르겠는데, 일부 게임에는 간접적인 형태의 고리대금업같은것도 있는것으로 알아요. 게임화폐로 고가의 아이템을 구매하고, 그 아이템을 일정기간 대여해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게임들이 있죠. MMORPG 게임에서 통화량이나 게임속경제의 안정적인 관리는 굉장히 중요한 서비스일겁니다. 리니지같은 엔씨소프트의 게임들이 유독 인기가 많은 이유가 탁월한 통화량관리능력 때문라는건 거의 상식이죠. 아마 온라인게임 좀 해본 사람치고 “아덴은 현금이다” 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여튼 일반인의 속터지는 뻘소리일 수 도 있는 주장에 성실하게 답변해주고 응대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1. 잠시 끼어들어도 될까요? 제가 지금까지의 대화를 이해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불환지폐가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그건 단지 그 지폐에 적힌 숫자가 상징하는 상품들의 총합이 아닐까 해요. 이를테면 최근에는 5만원짜리 지폐가 나오긴 했지만 10만원은 수표로 발행되죠. 그 차이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수표라는 형태는 만원짜리 지폐에서는 보다 감추어진 약속이라는 것을 훨씬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돈을 수표형태로 보관하고 잘 깨지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쉽게 말해서 그 수표로 전환할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상상을 깨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1조에 대해서는 아예 감각이 없어요. 1조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해줘야 비로소 1조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깨닫는거죠. 제가 생각하기엔 화폐에 적힌 숫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숫자는 그만큼의 생산물을 의미하고, 화폐보유액에 따라서 그 숫자가 갖는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이건희에게 1억은 줘도 그만, 잃어버려도 그만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십년 정도 걸려야 모을까말까한 돈이에요. 화폐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그 의미는 밖에 있다고 생각해요. 화폐의 역사를 연구한 사람들 중에는 화폐에도 계급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과거에 화폐는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었고, 지배계급에게는 지불수단으로서 사용되었다고 해요. 영주가 여행을 가는데 거기서 물건을 사기 위해 몇수레를 끌고 갈 수 없으면 그 고장의 상인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죠. 그러면 자기 재산을 담보로 증서를 써주는데 이 증서가 약속이죠. 그런데 이 증서가 상징하는건 결국 자기 재산인 집이나 땅 같은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증서는 담보물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결국 상인은 그 증서를 갖고 있는 동안 담보물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상상하게 되고, 영주는 상인에게 빌린 돈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소유하게 될 물건들을 상상할 수 있는거죠. 돈이란 그것이 다른 물건과 교환되어서 상품으로 실현되기 전에는 상상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1. 1. 저도 화폐의 가치는 그 구매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구매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화폐의 가치가 우선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구매력이 생기는 것이지, 구매력이 먼저 존재한 후에 사후적으로 가치가 결정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화폐의 가치에 대해서는 본문에 언급한대로 유통화폐량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2. 당연히 화폐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그 밖 (즉, 사회적 약속) 에 의미가 있습니다. 왕이 왕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나서 왕인 것이 아니라 왕이라 불러주는 사람들 때문에 왕인 것처럼요.

          3. 돈이 상상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돈을 상징으로 보는 관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채도 상징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채가 상징에 불과하다고 하면 엄청난 사태가 발생하겠죠 :)? 하물며 부채도 상상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돈이야 말로 더 말할 것 없겠습니다.

        2. 여전히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화폐의 가치는 교환가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저는 화폐의 가치는 구매력 + 알파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어느 시기에는 납세자들만 투표권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화폐를 Vermögen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힘의 크기를 나타낸다는 말이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능력의 차이는 비슷해요. 그런데 이게 숫자로 나타나면 확연히 차이가 나요. 그리고 이런 환상을 지탱해주는건 외부에 있는 상품세계라고 생각해요. 밑에서 플레티늄(혹은 플레티넘)에 관한 얘긴 platinum bullion coins에 관한 글을 좀 더 보고싶다는 말이었어요. 좀 더 발전시켜주실 수 있을까요. 만일 플레티늄이 금을 대체한다면.. 플레티늄은 예물로 만들 때 제작기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요. 확실히 금보다는 귀금속이죠.

        3. 화폐가 그것을 가진 사람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권력도 많죠. 그런데 돈이 많으면 권력이 많다고 해서 화폐의 가치가 ‘구매력 + 알파’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화폐의 가치가 아닌 ‘쓸모’가 구매력 + 알파라면 저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플레티넘이 왜 중요한지는 제가 잘 이해가 안됩니다. 금이 플레티넘으로 대체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4. 제가 괜히 얘길 꺼냈나봐요. 거꾸로 질문을 당하니 할 말이 없네요. 그래도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화폐의 가치는 교환가치밖에 없다는건 하나의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굉장히 정합적인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전제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화폐의 가치는 교환가치라고 했을 때 이 때의 화폐는 상품으로서의 화폐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폐를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화폐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죠. 이것이 맑스가 비판한 화폐물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맑스가 말했듯이 화폐는 그 자체가 목적인 것입니다. 원래 물체가 갖고 있는 물리적 크기를 Größenwert라고 합니다. 이 크기는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숫자로 나타납니다. 이 때 크기는 객관적 크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겁니다. 이를테면 모든 시간은 객관적으로 똑같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괴로운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사물에 상상적인 가치를 부여합니다. 보드리야르는 가치를 사용가치, 교환가치, 상징가치, 기호가치 이렇게 네 개로 나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으실겁니다. 하지만 저는 화폐가 상품이 아닌 기호로서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폐물신이죠. 그리고 저는 이것이 바로 불환지폐가 화폐일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는 특정한 계기가 오지 않는한 계속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자신을 화폐에 투영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한 건 돈이 있어야 구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니까 상당히 실질적인 겁니다. 하지만 돈이 그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준다고 생각하는건 불합리합니다. 그리고 그런 불합리한 생각은 불합리하게 조직된 사회에 부합하는 사고방식으로 생각해요.

          플레티늄은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네요. 제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러고싶지 않네요. 항상 느끼는거지만 heesang님 글은 뭔가 중요한 걸 지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물어보면 또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제가 문제인건지, 아니면 heesang님이 문제인건지 잘 모르겠어요. -_-

        5. 혹시 관심이 있으실지도 몰라서 글 하나 소개할께요.

          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sc=50000006&cm=%C4%AE%B7%B3&year=2012&no=558936&relatedcode=&wonNo=

          저는 이러한 일들이 부르주아 사회의 전제인 추상적 개인, 무차별적 노동이 낳은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의 이 부분에서 종교를 화폐로 바꿔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차별화된 노동력에 대해서 다시 얘기할 수 있다면.. 이 얘긴 그때로 미루죠.

          비종교적 비판의 기저는 이것이다 :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획득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미 자기 자신을 다시 상실해 버린 인간의 자기 의식이고 자기 감정이다. 그러나 인간, 그는 결코 세계 바깥에 웅크리고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 그는 인간의 세계이며 국가이며 세간世間이다. 이국가, 이 세간은 전도된 세계이므로 종교, 즉 전도된 세계의식을 생산한다. 종교는 이 세계의 일반 이론이요, 이 세계의 백과사전적 개요이며, 통속적 형태로 된 이 세계의 논리학이요, 이 세계의 유심론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며, 이 세계의 열광이요, 이 세계의 도덕적 재가載可이며, 이 세계의 장엄한 보충이요, 이 세계의 일반적 위안 근거이자 정당화 근거이다. 종교는, 인간적 본질이 아무런 진정한 현실성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인간적 본질의 환상적 현실화인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그 정신적 향료가 종교인 저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6. “저는 화폐가 상품이 아닌 기호로서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폐물신이죠. 그리고 저는 이것이 바로 불환지폐가 화폐일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 화폐가 기호로서 기능한다는 점에 대해서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품으로서의 불환지폐가 화폐이기 때문에, 그 화폐가 ‘기호’로서 기능하게 되고 화폐물신주의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daydream님은 그 기호로서의 가치 때문에 불환지폐가 화폐가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구요.

          “이것은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는 특정한 계기가 오지 않는한 계속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상품으로서의 불환지폐가 화폐이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 혹은 결과이지 그 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플레티늄은 아직도 어떤 맥락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자료를 찾아볼 수는 있지만 맥락을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7. 플레티늄을 찾아봤더니 일상에서는 이미 플래티넘이라는 단어로 굳어져 있어요. 제가 최근에 알라딘에서 책을 좀 샀더니 제 회원등급이 플래티넘이에요. 실버등급보다 골드등급이 더 높고 골드등급보다 더 높은게 플래티넘이에요. 어떤가요. 플래티넘이 미래에는 금을 대체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자꾸 저한테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 마세요. 제가 알면 왜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겠어요. 제가 heesang님한테 가르쳐주지.

        8. 지난해 9월경에 앰플라츠에서 파업이 일어나서 플래티넘 가격이 상승했어요.

          http://info.finance.naver.com/marketindex/news/newsRead.nhn?officeId=013&articleId=0002071959&category=exchange

          이번달에는 앰플라츠가 광산을 폐쇄해서 다시 플래티넘 가격이 상승했어요. 근데 이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경기회복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11683191

        9. daydream님 플레티넘이 금보다 귀하고, 그래서 앞으로 금을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취지이신 것 같네요. 제가 거기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백금이 금을 대체하는지의 여부는 일단 불환지폐에 관한 논의와는 별도의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10. 저는 아직 모르는게 많고 지금으로서는 꼭 제가 알아야할 일도 아니지만 플래티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면 불환지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냥 간단히 뉴스를 검색한 느낌으로는 플래티넘 자체보다는 플래티넘과 금의 비율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아직은 화폐는 금이라는거죠. 금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불황에는 금을 사요. 플래티넘 값이 오른다는건 경기가 살아날 조짐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http://www.ft.com/intl/cms/s/0/3ef062a2-5b23-11e2-8ccc-00144feab49a.html#axzz2IblnvpgA

          I now have so many questions I don’t know where to start. Like – where would the Treasury get a trillion dollars’ worth of platinum?

          It doesn’t need to, any more than the Federal Reserve is obliged to put a hundred dollars’ worth of paper and rag into every hundred dollar bill. A small coin with “One Trillion Dollars” stamped on it will do.

          1조 달러 가치의 플래티넘을 어디서 구할거냐? 그냥 동전에 찍으면 된다.

          불환지폐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소리 같아요.

      2. 1. “결국 사람들끼리 “이 종이는 화폐이다”라고 합의하는 어떤 비물질적인 약속에 의해 교환가치가 부여되고 있다라는 말씀처럼 들려서 뭔가 갸우뚱스러운거죠” -- 저는 “이 종이는 화폐다”라는 합의가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의식적인 합의는 아니지만요 (마르크스는 금이 “사회의 행동”에 의해 화폐가 되었다고 보는데, 그것을 상품소유자들이 “본능적으로 상품 본석의 법칙들에 순응”한 결과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종이에 그림과 글을 적어놓고 그것을 아무나 생산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 (중앙은행)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특수한 상품을 만들어 낸 것이죠. 그런데 마르크스 경제학자 중에 저처럼 불환지폐가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2. 문제는 이 종이가 지적하신대로 그 자체로는 어떤 사용가치도 갖지 않기 때문에 그교환가치가 사회의 합의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다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영화 DVD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DVD 안의 영화라는 컨텐트는 어떤 특수한 (“비물질적인”) 사회적, 문화적 맥락(예를 들면 ‘유행’을 들 수 있겠네요) 하에서만 생산비용을 훨씬 넘는 교환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맥락을 벗어나면 DVD도 그냥 번쩍이는 도너츠 모양의 은색원반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런 사용가치를 갖지 않겠죠. 그럼 측면에서 저는 사회적 합의가 “비물질적”이지만 실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쪽지가 가치를 갖게 하는 배후의 “사회의 행동” 역시 그 자체로는 비물질적이지만, 물질적인 것들만큼이나 실재적이라고 생각하구요.

        3.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불환지폐를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상징이라거나 부채라거나 아니면 여전히 금의 대용물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한데,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본문에서 비판했습니다.

        4. “이 사람은 생산에 이만큼의 기여를 했음” -- 여기에는 순환논법의 문제가 있습니다. 화폐가 생산에 대한 기여분을 표시한다면, 이 기여분이 우선 화폐와 무관하게 계산되어야 할 것이구요. 계산을 하려면 공통의 척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화폐가 공통의 척도이지요. 화폐를 설명하기 위해 화폐를 상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5. “일반인의 속터지는 뻘소리”라고 하셨는데, 사실 제기하신 문제가 화폐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화폐의 본질에 대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저는 아직 본적이 없습니다.

      1. 저는 플레티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보니 원소기호는 Pt이고, 원자번호는 78번이네요. 일년에 수백톤 정도만 생산되기 때문에 엄청 가치가 높고 주요한 귀금속 상품이라고 합니다. 암치료에도 사용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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