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양성화, 두 번째 이야기: ‘국민행복’에 반하는 지하경제양성화

◯ 주지하다시피 현재 ‘지하경제양성화’는 복지재원 확보라는 목적 아래 추구되고 있다. 그런데 사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국민 행복’, 다시 말해 ‘개인의 행복 추구’라는 박근혜 당선자 측의 핵심 모토에 정면 배치됨을 발견할 수 있다(박근혜 등에게 있어 ‘국민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서 작성된 “‘근혜노믹스’의 밑그림” 씨리즈 참조).

부분적으로는 앞서 heesang님의 덧글에서도 지적된 대로(링크), 지하경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존재이유’가 있다. 즉 어떠한 거래행위라도, 그것이 양성적으로 이뤄지든 음성적으로 이뤄지든 상관없이, 그것이 실제로 행해지는 이상 그 당사자들에게 일정한 ‘편익'(benefit)을 제공한다는 얘기다. 주류경제학의 용어를 빌면, 지하경제는 파레토개선 효과가 있고, 그런 한에서 지하경제의 존재는 좋은 것이다.

흔히 지하경제라는 말에는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위와 같은 사정을 염두에 두면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 또는 shadow economy) 대신 ‘인지되지 않은 경제'(unrecognised economy)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아래서 보겠지만, 여기엔 온갖 좋은 것들도 많이 들어갈 수 있다. 동네 눈길 치우기, 대학생 과외, ‘아.나.바.다’ 등등.

그런데 만약 지하경제가 위와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굳이 ‘양성화’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어떤 거래가 양성적이냐 음성적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거래로부터 거래 당사자가 (적어도 그러한 거래가 없을 때에 비해)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하경제를 좀 더 공식화해서 더 효율적으로 만들자는 얘기는 할 수 있어도, ‘양성화’하자는 것은 좀 이치에 안 맞는다. 거꾸로 말하면, 이미 음성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어떤 거래를 ‘양성화’한다는 것은, 거래 당사자들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우리는 그 ‘목적’이 뭔지를 안다. 바로 ‘세원 확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과정(양성화)에서 동시에 ‘개인 행복’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한에서 ‘지하경제양성화’는 ‘국민 행복’이라는 박 당선자의 핵심 기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몇 가지 사례를 들어서 따져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먼저 지하경제양성화의 첫 번째 타겟으로 나온 ‘가짜석유’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가짜석유가 유통되는 것이 왜 나쁜가? 각종 부수적인 부작용들이 있긴 하지만, 결국 가짜석유라는 것도 그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상당한 편익을 제공하는 상품 아닌가? 정부의 입장에서야 물론 가짜석유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길 수 없다는, 그야말로 매우 중요한 단점이 있지만, 개인 입장에서야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만약 가짜석유 시장과 진짜석유 시장이 정확히 나뉘어있고 또 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된다면, 개인은 자신이 선호하는 쪽에서 소비를 하면 그만이다. 가짜석유 사용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들을 감수하고 값싼 비용으로 석유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전자를 택할 것이고 이 부작용이 두렵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지하경제양성화’를 명목으로 그들이 ‘가짜석유’라고 규정한 재화를 시장에서 근절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진짜석유’에 비해 ‘가짜석유’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며, 이때 그들의 편익, 즉 ‘행복’은 줄어든다. 요컨대 이러한 개개인들의 선택권이 보장될 때 ‘국민 행복’은 극대화될 것이며, 사실 바로 그것이 주류경제학의 가르침이다.

두 번째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최근 의사나 변호사를 포함한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고, 이때 그들이 저지른 주요한 ‘죄목’은 바로 ‘소득신고 누락에 이은 탈세’다. 박근혜의 인수위원회의 생각은 바로 그러한 누락된 소득을 잡아내(=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세수를 늘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끝일까? 꼭 쌍꺼풀 수술을 해보지 않으신 분들도, 병원에 가면 소비자에게 ‘현금으로 하겠느냐 카드로 하겠느냐’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는 것쯤은 아실 것. 당연히 현금으로 할 때가 싼데, 흔히 사람들은 그 까닭이 자신이 현금으로 지불하면 카드수수료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더 싼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카드수수료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세금이다. 즉 위 선택지의 의미는 ‘현금으로 지불해서 나의 탈세를 도와주면 그 대가로 나는 너에게 쌍꺼풀 수술 비용을 깎아주겠다’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의사 입장에서는 대체로 현금 거래를 선호할 것인데, 그렇다면 소비자도 그러한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는 현금거래가 선호되겠지만, 당장 현금조달이 어려운 소비자로서는 카드로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란 바로 이러한 선택지가 소비자에게 주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제 모든 소비자가 자신의 선호와 관계없이 카드지불가격을 치러야 한다. 소비자의 행복? 애초부터 카드로 지불하고자 했던 사람은 상관없겠지만, 현금지불을 선호했던 소비자의 행복은 줄어든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양성화’의 결과 성형외과 의사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수입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가격이 오른다. 어차피 그들은 일정한 ‘독점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결정권도 가지고 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행복은 더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지하경제양성화는 어쩌면 저들도 의도치 않았던 결과까지 낳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국민 행복’은 더욱 훼손될 수 있다. 이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흔히 지하경제에는 마약이나 가짜석유 거래의 경우와 같은 ‘범죄’로 분류되는 거래행위들과 성형외과 의사나 동네 분식집 아줌마 등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탈세’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지하경제에는 이를테면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이뤄지는 거래도 경우에 따라서는 포함될 수 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대체 인터넷 중고장터를 양성화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아니, 왜 그것을 ‘양성화’해야 하는가??? 하여간에…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지하경제’의 정의(definition)가 명확하지 않은 것인데, 바꿔 말하면 ‘지하경제’에 대하여 제기하는 문제(여기에서는 ‘세수확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범위를 상이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거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또 예를 들어보자. 중고차 거래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등록된 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고 직거래를 할 수도 있다. 중고차를 팔고자 하는 A가 중고차 매매업자에게 자신의 차를 200만원에 팔 수 있다고 하자. 이때 매매업자는 같은 차를 B에게 300만원에 판다. 이때 그는 100만원의 사업소득을 남기고 이 중에서 일정액을 세금으로 낸다. 반면 직거래의 경우 A는 자신의 차를 예컨대 250만원에 B에게 팔 수 있을 텐데, 이때 둘은 업자를 거칠 때에 비해 각각 50만원씩의 이익을 더 본 셈이고, 정부는 어떠한 세수도 올릴 수 없다.

후자와 같은 물물교환 시장이 대한민국의 한켠에서 매우 발달되어 있다.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에 가 보시라. 사람들은 이 시장에 참여해 각자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주고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편익 즉 ‘행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위의 예에선 250만원이 그러한 가격이다.

그런데 이때 ‘국민 행복’의 극대화를 위해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치고자 하는 ‘자애로운’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보자.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인데, 그러나 역시 ‘국민 행복’을 위해 이 정부는 ‘증세’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 훌륭한 정부가 고안해낸 방법은 ‘지하경제양성화’다. 즉 공식적으로 인지되지 않은 경제활동영역을 ‘공식화’함으로써 그로부터 세금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 아래 이 정부는 불법적으로 발달해 있는 가짜석유시장도 없애고, 의사나 변호사는 물론 동네 분식집 등에서 성행하고 있는 현금거래를 근절했다. 하지만 그랬는데도 돈이 모자란다. 어떻게 할까? 이제 저 물물교환 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눈을 돌린다. 저것도 경제행위가 아닌가? 그들에게 세금을 물려야 한다. 어떻게? 이를테면, 중고거래업을 활성화함으로써! 뭐, 요샌 협동조합이 붐이니까, 중고물품거래 협동조합을 활성화해도 되겠다. 이제 판매자는 자신의 물건에 대해 종전보다 낮은 가격만을 받을 수 있고, 구매자는 종전보다 높은 가격을 치러야 한다. 이 두 가격의 차액은 중고거래업자의 이윤과 정부의 세금으로 나뉠 것이다. 복지재원은 늘었지만, 어째…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다. (-_-)

 

◯ 이상에서 보듯, 지하경제양성화는 이미 그 지하경제에 참여하고 있던 이들의 ‘행복’을 침해하는 경향이 있고, 만약 지하경제양성화를 통해 일말의 ‘세수증대’를 꾀할 수 있다면 이는 그렇게 줄어든 ‘국민 행복’이 화폐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지하경제양성화로 조성한 재원으로 행해지는 복지란, 한쪽 주머니에서 빼앗은 돈으로 다른 쪽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때 정확히 같은 금액이 빠졌다가 되들어오는 것이라면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일정한 ‘비용’이라는 게 발생하지 않을 수 없고(다양한 행정비용, 횡령, 뇌물 등), 그 비용만큼 줄어든 금액만이 다른 쪽 주머니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복지도 뭣도 아니다!

나는 앞서 글에서 지하경제양성화란 ‘재벌증세 없는 보편증세’라고 했는데, 이상의 사정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앞에서 ‘재벌증세 없는 보편증세’라고 한 것은, 지하경제양성화가 결과적으로는 (1) 재벌을 제외한 부자들(의사, 변호사, 대형식당주인 등)의 주머니를 턺으로써, 나아가 (2) ‘부자’도 아닌 ‘그냥’ 자영업자의 쌈지돈을 갉아먹음으로써만 ‘세수 확보’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듯이, 지하경제양성화란 (다양한 유형의 재화/서비스 공급자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일반 소비자들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엔 가짜석유를 소비하는 준범죄자만 포함된 게 아니라, 쌍꺼풀이 없으면 취업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리는 대기씨와 조금이라도 아껴서 살림살이 꾸려가려는 영순씨 같은 보통의 우리 이웃들도 포함된다.

다시, 해답은 재벌과 부자에 대한 대대적인 증세뿐이다. 그것에 의거하지 않은 복지는 복지가 아니다. (끝)

[사족 1] 이상의 내용은 매우 rough하게 작성된 것이다. 즉 논란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중고시장에서 직거래를 하는 것보다 중고거래업자가 존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른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얘길 길게 할 수는 없고, 다만 내가 이런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란 뜻에서 남겨둔다ㅋ

[사족 2]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상의 내용은 ‘주류경제학’의 논리에 크게 기댄 것이다. 따라서 나의 ‘진심’이랑은 약간 거리가 있지만, 주류경제학을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계시는 분들이 ‘지하경제양성화’를 무분별하게 부르짖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에 한번 써봤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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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지하경제 양성화, 두 번째 이야기: ‘국민행복’에 반하는 지하경제양성화

  1. 저는 최근 과외시장에서 근10년만에 발을 뺐으나 중고폰을 사볼까하고 있습니다. 아 내가…라니. 여튼 쏟아지는 그네뉴스들에서 뭘 읽어내야 하나 혼란스럽던 차에 좋은 의견들 잘 보았습니다! 다음 시리즈도 기대할게요:)

    1. 다음 시리즈..는 없습니다!! (-_-) 좀 거창하게 표현하면 ‘개체와 구조의 관계’에 대해 하나쯤 더 써볼까 하는 생각은 있지만요 ^^;;

      아.. 그나저나, 과외! 저도 십년쯤 몸담았었지만.. 등록된 중개인을 거치지 않은 과외선생은 모두 범법자로 간주해 잡아넣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하경제양성화입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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