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왜 굳이 자본론을?

불효자 생활을 1주일간 접고 엄마를 만난 첫날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날 9시 뉴스는 국정목표 1번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모자는 TV에 시선을 고정한채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 너도 창조경제 같은걸 하지 왜 마르크스경제학을 하냐?

자: (급당황) 저거 다 구라에요. blah blah !@#$%^%%^&%$%^%$#

모: 공부를 했으면 사회에 도움을 주는 일에 써먹어야지. 그래야 보람이 있지.

자: (더당황) 다 구라라니까. blah blah !@#$%^%%^&%$%^%$#

모: 쯧쯧

자본론 강독회 제1회 부정기 포럼 “불효자는 울지않고 자본론을 읽습니다”에서 이 주제로 거의 30분을 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사자 앞에서 말문이 완전히 막혔습니다. 아직도 스스로 왜 불효자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중언부언, 횡설수설한 것같고 결정적으로 여러 이야기를 떠들었지만 일관성이 떨어지는 듯 해서 낭패감도 들었습니다. 다른 급한 일들 때문에 미뤄 두었는데, 다시 불효자 생활로 돌아온 이상은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할 것 같아서 메모해 둔 것과 기억을 바탕으로 불효자가 왜 굳이 자본론을 읽는지 대폭 수정해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그때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연설(?)형식은 그대로 유지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녹취록 아닙니다 ㅋ). 다시 읽어보니 정말 진지한 간증이군요. 참. 그날 대잔치에 오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13시간 내내 정말 즐거웠고, 그래서인지 조금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역사유물론을 신뢰하는 일과 그것에 대해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역사의 진보라는 충만함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참고: 에베소서 4장 13-24)

먼저 이런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외국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보니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항상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과 만나 마르크스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잘 실감이 안납니다.

제가 자본론을 읽고 간략한 의견을 적기 시작한 지 1년 남짓 됐습니다. 지금까지 126개의 글을 썼으니까 사흘에 하나 꼴이네요. 저에게는 자본론이 중요한 책이고 글로 표현한 이후에야 무언가를 정확히 알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자본론을 꼼꼼히 읽고 제가 이해한 내용에 대해 쓰기로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 깨닫고 알게 되는 것도 많구요). 관심을 갖고 의견을 주시는 분들이 생기면서 일종의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비봉판으로 1권(상)이 거의 끝나가니까 이 속도를 유지하면 자본론 3권을 모두 꼼꼼히 읽는데 앞으로 4년 정도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책이 아니라 하필 자본론에 대한 글쓰기인가. 오늘 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서울에 올라왔는데, 집이 양천구 신정동이었고 회사는 서초동이었습니다. 매일 두 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자본론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대학교 때 경제학 과목들을 수강하긴 했지만 마르크스를 따로 공부했던 적은 없고 운동권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때 자본론을 읽게 되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자본론 1권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적 착취의 존재를 해명하는 마르크스의 논증 방식, 그리고 리버럴리즘의 정수에 해당하는 자유, 평등, 소유, 벤담을 비판한 6장의 마지막 부분이 그랬습니다. 6장까지 읽고나서 자본론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는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완전히 백지에 가까웠어요. 수업을 듣고 세미나를 하면서 간신히 제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요새 그때 쓴 글을 보면 손발이 오글거립니다. 정말 무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예를 들면 저도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을 꽤 오랫동안 믿고 있었는데, 일종의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셈입니다.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애착과 경이감도 커졌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제 공부는 그 사람 속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는 가슴 떨리는 직감으로 시작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 그런 인간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인간관계가 보통 그런 것처럼 어려움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마르크스 공부에 대한 회의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부 그 자체만으로도 참 어려운데 인정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유 없는 비난이나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제 친구들은 장난삼아 저에게 빨갱이라고 하는데, 웃자고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돌아서면 씁쓸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공부를 하건 말건, 자본론에 대한 글을 쓰건 말건, 제 머리 바깥의 자본주의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령 제가 어떤 대단한 이론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실천에 기여하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훌륭한 이론이 잘못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고, 운좋게 올바른 실천으로 이어지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어느 정도 바꿔놓은 실천은 이론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이론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을 합니다. 마치 ‘시가 무슨 소용인가’ 혹은 인문학이 무슨 소용인가하고 묻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황현산 선생의 ‘시가 무슨 소용인가‘라는 글을 좋아해서 블로그에도 옮겨 놓았습니다. 이 글에서 황현산 선생은 감동을 주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시의 소용이 있다고 할텐데, 이것은 굳이 시가 아니더라도 가능하고 어쩌면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같은 수단이 더 유용할 것이라는 문제제기를 합니다. 시에 대한 수요는 대중물에 대한 수요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편이고, 시를 읽고 시인이 생산해낸 새로운 감수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온몸에서 진을 짜내는 노력이 필요한 시쓰기에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도 그 직접적인 효과는 미미하니 “시만 쓰지 않았으면 똑똑했을 사람이 어쭙잖은 시를 써서 바보 소리를 듣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황현산 선생은 시 그 자체에 대한 수요는 무시할만한 수준이지만, “시가 생산한 것은 어떤 방법과 경로를 거쳐서든 대중물들 속에 흡수되고 전파된다”고 합니다. 드라마나 대중물을 통해 표현되는 (때로는 익숙한, 때로는 신선한) 감수성들의 원천이 바로 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는 댄스뮤직에 의해 소비되는 방식으로 댄스뮤직에 침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물은 새롭고 시는 낡은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침투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글을 읽고 큰 위안을 얻었고 힘이 빠질때마다 되풀이해서 읽곤 합니다. 이론가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무기력함을 완전히 극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이론가가 생산한 (훌륭한) 이론이 그 자신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대단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좀더 넓은 관점에서 자신의 연구를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일정 수준의 품질(?)이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겠지만, 제 자본론 공부도 마찬가지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언젠가 어디선가 커다란 쓸모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어떤 이론인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서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루려면 일생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거는 엄청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연구하려는 학문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확신은 평생의 노력 이후에나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지요. 이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학문에 투신(投身)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어린아이 같은 초심을 건강히 키워나가는 것일테구요.

저는 (이성적) 지식에 우선하는 것이 (감정적) 신뢰이고, 지식과 신뢰를 병행해서 쌓아가는 방식을 통해서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제가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에 비유했는데, 공부에서도 우선 필요한 것은 공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인 것 같습니다. 신뢰를 통해서 공부를 계속해갈 수 있는 힘을 얻고, 공부를 통해서 신뢰의 합리적 내용을 확인하는 그런 종류의 신뢰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령 가치론을 버리자는 주장을 접하면 마음이 많이 불편해 집니다. 제 친구 가치론은 참 매력있고 진중하고 지적이고 따뜻합니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쉽지 않지만 그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신뢰와 애정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친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욕하고 멸시하고 따돌립니다. 그의 마성에 끌려 잠깐이나마 우정을 나눴던 이들조차도 불꽃같은 열정의 순간이 지나가면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그에게 질려 확 돌아서 버리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애초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보다 심하게 욕하고 비판하기도 하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친구를 욕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욕을 합니다. 누구보다도 그를 더 아낀다고 말하면서 그의 진면목을 왜곡합니다.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제 신뢰는 주류경제학은 틀렸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옳다라는 식의 신뢰, 그러니까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이 현실정합성이 더 뛰어난, 더 과학적이고 더 치밀한 이론이라는 식의 신뢰에 그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인데요.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이전의 철학자들에서와는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이 자본주의를 철폐하려 노력,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과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에 대한 신뢰는 자본주의의 영속성을 설파하는 신고전파 경제학 류의 이론들에 대한 즉각적인 불신으로 나타나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이러한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개입으로, 즉 실천의 길로 내몹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입니다. 의식을 물질의 작용의 결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수한 방식으로 조직된 물적/사회적 생산이 우리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의미에서의 유물론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본주의적 의식을 낳습니다. 착취의 사회적 관계는 은폐되고, 대신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지배하는) 등가교환이 본질적인 사회적 관계라는 (지배적) 의식이 생겨납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의 물적/사회적 생산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그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내적법칙들은 자본주의를 안으로부터 좀먹고 있는 법칙들이고 (물론 마르크스는 법칙적 필연성이 반경향들이나 역사적 우발성과 공존하고, 따라서 직접적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자본주의의 작동은 자본주의의 소멸이라는 필연적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역사유물론은 우리의 의식 배후에서 끊이지 않고 도도히 흐르고 있는 진보의 흐름입니다. 자본주의의 철폐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마침내 철폐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물적/사회적 생산의 필연적 산물로서, 역사유물론은 하나의 자연법칙이기도 합니다.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이 자연법칙의 관철로서의 자본주의의 붕괴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식적 활동과 무관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도리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식적 활동을 자연법칙이 관철되는 하나의 방식이자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한편으로는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Heesang – 즉, 역사를] 자연사적 과정”으로 간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필연적 종말이라는 자연법칙은 인간을 통해서만 작동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의식, 자본주의적 인간상,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철폐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소수의 혁명가가 전세계의 핵무기 통제권을 장악한 다음에 정치협상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끝장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의식, 새로운 인간상,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러한 변화가 얼마나 오래 지탱될 수 있겠습니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개인주의, 이윤추구원리와 같은 견고한 삶의 양식이 종래에 사회를 다시 자본주의로 후퇴시킬 것입니다. (사회적) 의식이 (사회적) 존재에 우선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의식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존재의 변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존재와 의식 사이의 관계는 단선적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의식의 변화가 존재의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일종의 비유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발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겪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변화는 종교적 대오각성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성령강림이라는 결정적인 사건 이후, 믿는 사람들은 함께 지냈고 모든 것을 공동 소유했으며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기독교적 사회주의를 구현했습니다. 이 진보적이고 놀라운 변화로 인해 예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고도 하지요. 어쩌면 의식의 변화가 존재의 변화에 완전히 선행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초대교회의 모습은 물적/사회적 존재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인간의 변화 없이도 자본주의가 그 자신의 (경제적) 모순 때문에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만다는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의 의식적 선택이 중요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본주의 사회가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영원불멸의 사회라는 전도된 의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저는 자본주의의 내적법칙이 야기하는 불안정성과 자기파괴성이 자본주의의 극복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의식을 생산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론의 역할은 부차적입니다. 이론은 의식의 토대와 그 함의를 체계화할뿐 의식 그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나 그의 이론과는 무관하게 어느 순간 우리 각자는 어느 편에 설 것이냐라는 결정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자본의 논리를 따를 것인가, 자본의 논리를 거부할 것인가. 물건과 기계의 논리로 향하는 넓은 길로 인도하는 커다란 문인가, 인간의 논리로 향하는 협착한 길로 인도하는 좁은 문인가. 파란약인가, 빨간약인가.

반자본주의의 편을 택해 좁은 문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종말이라는 자연법칙의 에이전트로 탈바꿈합니다. 에이전트로서 우리는 새로운 생산관계, 새로운 사회적 관계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상, 새로운 삶의 양식을 빚기 시작합니다. 어떤 인간상, 어떤 삶의 양식이 만들어질지, 이것이 새로운 사회에 적합할지 그렇지 않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행히 우리를 추동하는 역사유물론의 도도한 흐름은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 자본주의를 마침내 벼랑 끝으로 인도하는 피리부는 악사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성취해내고야 맙니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이론가의 좌절과 고민은 자신의 공부가 어쩌면 생각한는 것보다 훨씬 큰 쓸모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깨달음으로,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허위를 깨부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무엇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제 몸을 맡기고 있다는 안도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인간을 행동으로 내모는 자연법칙 (혹은 역사유물론)은 동시에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과연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언제 어디서든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여기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세상과의 정면대결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생각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낸 사람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통해서 좀더 구체적인 상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목사, 순교자, 예언자, 스파이였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입니다. 1906년에 태어나서 1945년에 죽었는데, 엄청난 천재였습니다. 22살에 쓴 박사학위논문(Sanctorum Communio; 성인들의 공동사회)은 세계신학계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정치적 통찰과 용기도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집권한 것이 1933년인데요. 이때는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곧바로 히틀러 비판을 시작합니다. 이후 히틀러와 나치 지지세력이 주류를 형성한 독일 개신교와 대항해 고백교회의 설립과 그 활동을 주도하고 (독일 주류 개신교에 대한 그의 절망은 ‘종교없는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 religionsloses Christentum)라는 놀라운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교회일치운동을 매개로 히틀러에 대한 저항운동에 참여합니다. 2차 대전이 시작된 후에는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비밀결사의 일원으로 독일군 정보부의 이중첩자로 활동하면서 독일의 저항세력과 연합군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이 비밀결사가 주도한 히틀러 암살 음모 중 하나가 영화 발퀴리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쉬타우펜베르그(Claus von Stauffenberg) 대령의 히틀러 폭살 시도이지요.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여기에 가담했던 본회퍼도 결국 처형을 당합니다.

본회퍼에게는 다른 기회가 있었습니다. 1939년 본회퍼를 아끼던 사람들이 나치의 주요 타겟중 하나였던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는 미국에서의 안전하고 풍요로운 생활 후에는 전후 독일 기독교 재건에 참여할 명분이 없음을 깨닫고 한달 만에 독일로 돌아옵니다. 고난의 길을 기꺼이 선택한 것입니다.

히틀러 폭살이 실패한 것이 1944년 7월입니다. 이 소식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접한 본회퍼는 감옥에서 친구인 베트게(Eberhard Bethge)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세상의 문제들과 정면대결하면서 적극적으로 세상에 개입하는 것, 즉 생의 현세성을 통해서만 믿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이 뛰어난 신학자가 이미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믿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현세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오래전 자신의 친구인 프랑스 목사와 일생의 목표에 대해서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이 프랑스 목사의 목표는 성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본회퍼는 훌륭한 기독교인인 그의 친구가 아마 성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회고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대답에 일종의 저항을 느꼈다면서 자신은 믿는 것을 배우고 싶다라고 대답했다고 편지에 언급하는데요. 그러니까 본회퍼는 어떤 잘 짜여진 프로그램(그 프랑스 목사의 경우에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에 따라 생활하고 , 어떤 체계적인 교리를 받아들이는 방식만으로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기에 불충분하다고 본 것입니다. 좌충우돌하면서 현실의 문제와 정면대결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달리 표현해서 현세를 완전히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만 믿음을 갖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방식을 통해서만 마침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단념하고 자신을 신의 손에 온전히 통째로 맡길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일[heesang – 암살의 실패!!]”에 대해 “감사와 평화”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좌절을 통해서만 믿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신에 대한 믿음, 신뢰는 그의 삶을 통째로 던진 이후에만 온전히 획득할 수 있는 무엇이었습니다. 끈질긴 의식적인 노력 이후에야 세상의 최고존엄, 궁극의 본질에 가까이 갈 수 있으며, 바로 그 순간에야 자신의 의식적인 노력을 신의 뜻의 발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본회퍼는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저는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어떤 정해진 답이나 운동의 방식에 집착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영역에서건 실천의 영역에서건) 현실 속에서 현실의 문제와 부딪히면서 실패와 절망을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역사유물론의 도도한 흐름에 대한 신뢰를 더 단단히 다져가는 것.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역사유물론에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맡기는 것. 이것은 관념적 결단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끈질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회고적인 삶의 태도일 것입니다. 말씀은 거창하게 드렸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이런 생각은 관념적 선언에 불과할 것입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이후 공부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제 공부가 충분히 현세적이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적어도 이론의 영역에서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에 비추어 구체적인 현실의 발본적 변화를 위해 발전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역사유물론을 믿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일생을 바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모든 것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 역사유물론의 에이전트로 살아왔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과 안도가 간신히 찾아오기를,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일”에 대해 “감사와 평화”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형장으로 떠나는 본회퍼처럼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삶의 시작이다“라는 고백을 내뱉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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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thoughts on “불효자는 왜 굳이 자본론을?

    1. 아, 그날 좀 늦으셨었군요. 그날 대부분 처음 뵈어서 제 얘기를 할 때 누가 계셨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 ㅋㅋ 24601님의 간증도 조만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네 번째로 간증 파일을 들은 것도 같고, 최고의 완결판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참 좋습니다.
    이 글로써 ㅎㅅ샘도 제 블랙리스트(글을 잘 쓰시는 죄로 평생 스토킹당함)에 이름을 올리셨음을 알립니다. :)

    1.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니 영광입니다 :) 하지만 아직 부족한게 너무 많습니다. 글로 정리는 했지만 지금도, 뭔가 여전히 찜찜하고 불안한 느낌이 지워지지가 않아요. 왜 약간 긴 글을 쓰고 나면 항상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1. 요샌 점점 효자가 되어가 “불효자를 놉니다”를 부를적에 흥이 안난다고 말했다는 김대중 마스터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시군요.

      “우리들의 가장 약한 인륜을 파고들며 유혹합니다
      (. . .)
      어머님 우리는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 . .)
      피눈물을 뿌리며 싸움터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시면 행진곡 풍의 “불효자는 싸웁니다”가 되겠군요;;;

    2. 아. 너무 좋은 시네요. 그런데 “당신 속에 도사린 적의 혓바닥을 냉혹하게 끊어 버리는” 같은 표현은 또 무섭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텐데요. ㅠㅠ

  2. 잘 읽었습니다. 믿는 것을 배우고 궁극에서 얻는 것이 ‘자유’겠죠. 자본론 읽기도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 줄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흠.. 모처럼 덧글을 다셨는데.. 스팸처리라니;;; 미안요. 글고 승진하신 거 온라인에서도 ㅊㅋ드립니다! ㅎㅎㅎ

  3. 불효녀는 철철 웁니다 ㅜㅜㅜ 그 날 일찍 가려고 했는데 엄마랑 싸운다고 늦게 갔거든요..레알 불효녀임 아효…….주옥같은 말씀을 놓쳐서 너무 아쉬워요..그래도 글로나마 접하니 훈훈하네요…특히 (이성적) 지식에 우선하는 것이 (감정적) 신뢰이고’ 로 이어지는 문장이 너무 맘에 와닿네요 아멘!

    1. 자본론을 읽는데 그치지 않으시고, 엄마와 싸움까지 하셨다니 레알이신데요? ㅋㅋ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엄마와 이제는 싸움조차 하지 않는 더 레알한 불효자입니다 ㅜㅜㅜ 전화기 속에 아들 사진은 없고 외손자 사진만 가득하니 이제 효도는 5살 짜리 제 조카에게 맡겨야 할까요? 그건 그렇고 사진과 기억을 모두 더듬어 보았는데, 그날 안 오신게 맞죠?

  4. 이렇게 또 정리해 주시니 좋습니다. 몇 사람의 도움을 거쳐 마르크스와 접신하는 저로서는 그 매개자들에 대한 감정적 신뢰도 참 중요해요. 이런저런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신뢰나 영적인 감화 등의 태도가 금기시된 듯한 상황에서마저도 그렇습니다. 그 신뢰의 배경에는 훈훈한 외모와 성격, 강렬한 문장에서 비롯되는 개인적 호감도 있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지적 성실함과 진지함, 솔직함 이런 것들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함이 분명하거든요 :)
    조금만 더 분발하셔서 어머니를 위한 작은 효자내러티브도 개발하시길 응원합니다..ㅎㅎ

    1. 앞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고 솔직한 무당(?)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대부분의 굿은 EM님이 책임지시겠지만요 :)

      댓글을 보고 효자내러티브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60년 넘게 크리스찬이신 저희 어머니를 위해서는 신약성서 사도행전의 필요에 의한 분배와 관련된 구절을 암송하고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뭐라고 반박하시겠어요? 물론 권위에 순종하라는 구절로 반박하실 수도 있겠지만 ㅋ

  5. 당일에도 좋았는데 글로 써주신 것도 너무 좋으네여.. 제가 당일에 다른 사람들의 발언도 녹음하기 위해 매우 애를 썼으나 다른 사람 건 제끼고 희상 쌤 발언만 잘라서 공유할까 싶슴미다만 어캐 생각하세요? 안 괜찮지만 않다면 돼요~~ ㅎㅎ 저는 지금 녹음판과 글을 비교하며 읽고 듣고 있슴 ㅋㅋ 엄마와의 에피소드 너무 조으다 ㅋ

  6. 당일에도 좋았는데 글로 써주신 것도 너무 좋아요. 제가 당일에 다른 사람들의 발언도 녹음하기 위해 매우 애를 썼으나 다른 사람 건 제끼고 희상 쌤 발언만 잘라서 공유할까 싶슴미다만 어캐 생각하세요? 안 괜찮지만 않다면 돼요~~ ㅎㅎ 저는 지금 녹음판과 글을 비교하며 읽고 듣고 있슴 ㅋㅋ 엄마와의 에피소드 너무 조으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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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 이 놈들이… 이 놈들이 우리 사무실 아이피를 기억하고 내가 사무실에서 댓글 달 때만 내 존엄한 이멜 주소로 등록하게 해 주네… 너무 후진 스팸 차단 플러그인 쓰시는 거 아니에욧???? ㅜㅜㅜㅜ

    1.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교를 하시고 계실 줄이야 ㅜㅜ 많이 다르죠?

      녹음은 내용상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현장분위기가 담겨 있다는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 ㅋㅋ 공유하셔도 좋습니다. 질의응답만 지워주세요. 제가 제 친구들 욕한 부분이 있어서… 나름 착한 애들이거든요. 상처받을수도 있고 ㅋㅋ

      그리고 스팸차단은 옘님께…

      1. 비교는 아닌데;;;; 배포하려면 형식적이나마 파일을 한 번 검토해야 하니까 검토하면서 같이 본 거에요;; 글구 친구들 언급한 건 질답 말고 본문 중에 나오는데… 적..절히 지워보지요;; 메일로 파일 보냈으니 한 번 들어보시긔.

  7.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하신 궁극에 도달하는 것이 본회퍼가 말하는 ‘자유’에 도달하는 것이겠지요.
    자본론을 읽는 것도 그러한 ‘자유’를 위한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 본회퍼가 맑스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그의 지적 성실함을 고려할 때 그냥 넘기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맑스 만으로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필수과목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어린 시절에 스파르타쿠스단에 대해서 접했을 것 같긴 한데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8. 희상쌤..저 왔었어염 늦게 ㅜㅜ 냐옹이라고 기타치던 소녀 ㅋ 엠피삼도 있겠다 잘 듣겠습니다~~~~~!

    1. 아하하. 근데 제가 간증 중에 냐옹님을 분명히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래서 meow가 의성어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제했던 것입니다 ㅎㅎ

    1. 자꾸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 달면 어떡해!!
      @heesang, meow = nyaong = aa입니다 ㅎㅎㅎ
      그러니 평소에 덧글을 자주 달았어야지ㅋ

  9. 여튼, 참 힘든 일이군요. 자본론을 읽는다는것은..
    글에대한 감탄을 하고 난뒤, 제자신을 돌아보니 영화관에서 나온 느낌입니다.(‘나는 안될꺼야’측면에서;;)

    1. 저도 새벽에 일어나면 침대에 앉아서 이거 뭐하러 하나 안될거야 하는 생각을 매번 하는걸요. 그래서 같이 서로를 북돋으며 읽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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