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는 노동자/서민에게 이로운가

요새는 생각을 해도 글로 잘 남기질 않는다. 그래서 생각이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같고… 어쨌든 생각을 정리해놓고 타인과 나누는 것은 매우 유익하고 바람직한 일. 좀 더 분발합시다다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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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prices) 얘기를 해보겠다. 현재 5개월째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이것은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가장 두드러지게는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인플레이션은 우리에게 악몽같은 것으로 자리잡은 게 아닌가 한다. 그러한 악몽이 ‘공통의 기억’으로 지리하고 있기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살인마를 ‘그래도 전두환이가 물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았지..’라고들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전두환이가 실제로 물가를 잘 잡았는지, 또는 80년대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물가가 전두환 덕분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얘기하기로 하고… 하여간 ‘낮은 물가’는 한국인에게(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대표적인 서민정책으로 자리잡았고, 이를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데 정말로 낮은 물가, 좀 더 정확히는 낮은 물가상승률(inflation rate)이 서민들에게 좋은 것인가? 내 대답은 (흔한 통념과 달리) 꼭 그렇진 않다는 것이다. 이때의 물가가 생활필수품목들의 그것이라 해도 결론은 같다. 이론적으로 말해 서민들, 특히 노동자들에게 물가는 중립적이다. 왜냐하면 물가상승—특히 생활필수품의—이 있더라도, 그것은 보통 임금상승으로 흡수될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현실적으로는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에 못 미치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저물가정책’이 반드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여기서 임금이란 마르크스와 고전정치경제학을 따라  노동자의 하루 생계비를 의미한다. 따라서 물가상승이 있는데도 화폐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하루 노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생산이 원활히 돌아가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물가상승시 임금을 그에 맞게 올리는 것은 무엇보다 자본가 자신을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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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가상승은 곧 임금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물가가 낮게 유지되는 것을 좋아한다. 즉 그들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데 이해관계를 갖는 것이다. 80년대의 전두환이나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물가를 잡으려고 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그래서다.

바로 그것이 마르크스가 19세기 곡물법(Corn Laws)에 대해 했던 얘기다. 자본주의가 본격화하기 이전부터, 지주들의 나라였던 영국은 자국 곡물가격의 경쟁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외국산 수입곡물에 높은 세금을 매겼다. 그러나 산업자본가가 부상하고 기존의 농노들이 자본가에게 고용된 임노동자로 전환함에 따라 곡물법의 반동적 속성이 드러났다. 자본가가 일정수의 노동자를 고용해 더 많은 이윤을 거두려면 임금이 가급적 낮아야만 하는데, 대표적인 노동자의 필수품이던 곡물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곡물법의 존재는 임금을 낮추는 데 방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자본가들은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구 지배세력인 지주들을 상대로 ‘내전’을 벌였다. 결국 19세기의 첫 1/3을 지내면서 영국에서 곡물법은 폐지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자는 운동을 보수층에서 견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값싼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국내 쇠고기 가격을 낮춰 노동력의 재생산비용을 낮출 것이며, 이것은 자본가에게 고스란히 이익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자본가들이 낮은 물가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자본가들은 삼성 갤럭시 전화기가 싼 것을 좋아할까? 스마트폰이 온국민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 따라서 값싼 스마트폰은 노동자의 임금을 떨어뜨릴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의 수입곡물이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한우 쇠고기 등과 달리 갤럭시폰은 그 자체로 100% 자본의 생산물이다. 따라서 갤럭시폰의 가격이 낮은 것은 그것의 생산과 무관한 자본가들에겐 이롭겠지만 그것을 만들어 파는 자본가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다(더구나 갤럭시폰의 제조사는 한국의 대표 자본 삼성 아닌가). 곧 갤럭시폰의 가격을 둘러싸고는 자본가들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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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낮은 인플레이션은 노동자와 서민에게 이로운가? 이제껏 설명한 바에 따르면,

첫째, 이론적으로 말해 물가의 상승은 결국 임금의상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므로 물가수준은 노동자에겐 중립적인 반면,
둘째, 원칙적으로 자본가들에겐 낮은 물가가 이롭지만,
셋째, 임금재(=생필품)를 국내의 자본가가 만들 경우엔 임금재 생산 자본가와 그 외의 자본가 사이에 이해관계 대립이 있다.

특히 마지막의 자본 간 이해대립은, 오늘날과 같이 임금재의 품목이 다양할 수록 복잡하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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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이 그렇게 단순(이미 얘기가 충분히 복잡한가?^^)하진 않다. 뭔 소린가 하면… 자, 일단, 이상과 같은 까닭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낮은 인플레이션을 선호한다. 이를 간단히 ‘저물가정책’이라 부르자. 이미 지적했듯, 이러한 저물가정책은 흔히 서민정책으로 포장되곤 하는데,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그것이 사실은 서민정책이 아니라 ‘자본가 정책’임을 깨달으셨으리라(서민정책이 ‘아니다’가 아니라, 자본가정책 ‘이다’라는 게 중요하다).

여기까진 오케이? 오케이! 그런데 혹시 ‘저물가정책’이 (단순히 노동자/서민과 무관한 것을 넘어) 노동자/서민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정책이라면?

그런데 실제로 그렇다. 대충 이런 스토리다, 자.. 우리나라에서 보통 ‘저물가정책’이란 ‘국가가 물가를 잘 관리한다’라는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난다. 그보단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통제—즉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저물가정책이다. 심지어 정부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산정에 고려되는 상품들의 품목을 조작하기까지 하면서 물가관리를 한다.

예를 들어, 유가가 급등해서 전반적인 물가상승이 불가피해졌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기업에게 석유는 직간접적으로 원재료를 이루므로 이는 그들에게 원가상승 요인이 되며, 각 기업들은 자신들의 상품가격을 올리려 한다. 만약 가격상승이 실현되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생활비 상승에 대응해 임금이 오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가상승 때문에 전반적인 물가상승이 예상될 때 국가가 개입하면? 일단 이에 따라 당장 물가가 오르지 않으므로, 그러한 국가의 조치는 ‘민생정책’으로 환영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국가의 행위가 원가상승요인 자체를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즉 유가가 올랐지만 자신의 생산물의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면 기업은 이윤에 압박을 받는다. 만약 기업이 그런 압박을 스스로 감수한다면, 이 또한 별 문제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현실에서 기업들은 대개 그런 부담들을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떠넘긴다. 잘 알려진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농산물가격이 올랐을 때 동네밥집의 반찬양이 줄어드는 것은 많은 분들께서 겪어보셨을 것. 다른 하나의 방법은 노동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예컨대 원가상승압박을 상쇄하기 위해 그들을 더 혹사시킬 수도 있고, 이는 감원/해고와 동반될 수도 있다.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방식은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다(이때 저물가는, 거꾸로, 이렇게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유지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근거가 된다).

이렇게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고 선전되는 국가의 ‘저물가 정책’이 사실은 그들을 목조르는 악몽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처럼 노동자들의 힘이 특히 약할 경우엔 비용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시도가 훨씬 쉽게 관철될 것이다. 결국 ‘저물가정책’이란 본질상 ‘저임금정책’이 아닌가! 이상한가?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겉만 노동자/서민정책인 ‘저물가 정책’을 폐기하고, 당장 물가인상을 혀용하며, 그에 따라 즉각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흠… 아마도 이 대목에서, ‘모든 서민이 노동자이지는 않지 않은가’라며 임금인상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주장할 분도 계시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물가인상-임금인상을 억제하자는 것은 답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저소득자/빈민에겐 국가가 현물로든 현금으로든 보조해주면 된단 얘기다. (끝)

[사족] 이제까지, 사태가 마치 국가의 정책에 의해 전개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 이면엔 자본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노동자-자본 간의 투쟁, 즉 자본의 동학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모든 것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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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저물가’는 노동자/서민에게 이로운가

  1. 프랑스 대혁명 당시 상인들의 사재기와 투기는 상퀼로트들의 분노를 샀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급진파는 가격제한법을 도입하지만 실제로 이 법이 적용된 분야는 오직 임금이었습니다. 아마 이러저러하게 은폐된 관계들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혁명 당시 프랑스는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는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1. 진작에 ‘음.. 좋은 말씀이군. 좀 더 말씀해주세요!!’ 해놓고 정작 이제야 답글을;;;

      사실은 써놓고 보니 매우 불만이 많은 글이 되었는데… 향후 가다듬을 점이 많습니다 ^^;;

    1. 사실 이 글은, 속편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인데… 아직 속편은 엄두도 못 내고 있네요 ^^

      대신 다른 글을 하나 썼는데요, 미-EU FTA에 대한 얘기도 좀 가미했으니, 제가 빚(?)은 갚은 셈이죠? ㅎㅎ

  2. 확실히 장바구니 물가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은 기만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동자들의 지출의 상당부분이 주거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지요.

    1. 매우 올바른 지적입니다. 다른 물가는 다 낮춘다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물가… 주택임대료 낮출 생각은 않는 저 기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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