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자연력과 과학 그리고 외부성

우리는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생산력은 자본가에게 아무런 비용도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내는 자연력이다. 생산과정에 적용되는 증기, 물 등과 같은 자연력도 역시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 자본론 1권 15장, 518; MEW 23, 508

경쟁균형의 존재를 가정하는 주류경제학에서 일반적인 생산요소는 그 한계생산만큼의 보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임금 = 노동의 한계생산; 이자율 = 자본의 한계생산; 그래서 경제적 이윤=0. 생산에 기여하지만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 그러니까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는 생산요소의 경우, 이것을 생산요소라고 칭하지 않고 생산과정에 “양의 외부성”이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보통 양봉장 옆의 정원 – 벌이 공짜로 식물의 교배에 기여한다 – 이나 과학기술 – 자동차 생산에 대한 뉴턴의 기여는 보상받지 않는다 – 이 양의 외부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이렇게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생산에 기여하는 것들을 – 여기에는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생산력”이 포함된다 – 마르크스는 “자연력”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자연력”은 주류경제학의 양의 외부성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전류의 작용범위 안에서는 자침이 편향한다든가, 주위에 전류가 돌고 있으면 철에서 자기가 발생한다는 법칙 등은 일단 발견한 뒤에는 한푼의 비용도 들지 않는다.

과학이 주류경제학에서 “양의 외부성”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마르크스는 과학을 “자연력”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와 주류경제학의 차이는? 주류경제학이 사용가치의 경제학이라면 가치론은 가치의 경제학이다. 사용가치의 생산에는 토지, 노동, 기계, 도구, 자연력 등이 필요하지만, 가치의 생산의 경우에는 (토지, 기계, 도구, 자연력 등을 이용하는)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 (물론 가치생산에서 기계, 도구는 과거노동의 결정체로 전환된다). 증기, 물,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자연력, 과학 등등은 사용가치의 생산에 기여하지만, 그리고 때때로 공짜로 더 많은 사용가치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리고 가치생산의 전제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직접 가치를 생산하지는 못한다. 가치가 사회적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증기와 물과 협업과 과학이 인간 사이의 관계에 끼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부성의 가치론 같은 것은 없다. 잊지말자. 가치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기계는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지만 가치형성과정에는 언제나 일부씩만 참가한다

사용가치의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동력기, 전동장치, 작업기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기계가 생산에 참여한다. 가치생산의 관점에서는 기계는 과거노동의 결정체에 불과하며 (그것이 동력기, 전동장치, 작업기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상품생산과정에서 마멸되는만큼의 가치를 최종생산물에 이전할 뿐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지만, 가치형성과정에는 (그것이 공짜로 사용되기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다.

재밌는 것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내생적 경제성장이론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지식, 과학, 기술의 양의 외부성 – 정확하게는 지식생산의 생산성을 높이는 외부성 – 을 제시한다는 사실에 있다. 앞에서 외부성의 가치론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경제성장의 가치론 같은 것도 없다. 가치론의 관심은 자본축적에 – 이것은 성장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 그리고 자본축적과정과 더불어 함께 축적되는 모순과 그 결과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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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138) 자연력과 과학 그리고 외부성

  1. 희상님

    잘 지내셨어요?
    넘 오래간만이네요.

    1. 사소한 오류:

    처음 인용문은 “MEW 23:407″이네요.

    2. 희상님 설명에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약간 미묘한 표현

    “이렇게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생산에 기여하는 것들을 – 여기에는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생산력”이 포함된다 – 마르크스는 “자연력”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자연력”은 주류경제학의 양의 외부성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문맥에서 맑스가 몇 가지 범주를 교차시켜서 설명하고 있으니
    이에 따라 좀 더 섬세하게 설명해야 할 듯해요.

    자연력이라고 하더라도,

    1) 사회적 노동의 자연력 vs. 그렇지 않은(?) 자연력
    2) 자연력 vs. 인간 손의 형성물
    3) 비용이 드는 것 vs 비용이 들지 않는 것

    a. 예컨대, 풍력 그 자체는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내지 않은 자연력
    (물론,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간 손에 의한 형성물이 필요하지만요.)

    b. 또, 예컨대, 조력(潮力)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c. 오늘날 물(or 수력)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낸 자연력이겠지요.
    ex) 수도물, 물 from 저수지/댐
    또, 오늘날 물은 대부분 맑스 시절과는 달리 그것을 소비/이용할 때 비용이 들지요.

    반면에, 빗물은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낸 자연력은 아니고
    소비/이용할 때에도 비용이 들지 않지요.
    (물론,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간 손에 의한 형성물이 필요하지만요.)

    d. 지열(地熱)은 어떠할까요?

    e. 산업 에너지(석유, 가스, 전기 etc)는?
    이 경우는, 자연력의 범주에 넣기보다는 통상 원료 등과 같은 범주에 넣어야 하겠지요?

    3. “마르크스의 “자연력”은 주류경제학의 양의 외부성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희상님의 취지는 알겠지만요,
    정확한 표현은 아닌 듯해요.

    주류경제학의 외부성 범위 안에
    맑스가 말하는 “사회적 노동의 자연력”이 들어간다고 봐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와 같이 표현하는 것은 좀 이상해요…

    주류경제학의 양의 외부성에는
    바로 그런 자연력 이외에 다른 많은 것이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4. 오늘날은 약간 다른 방향/맥락에서
    자연 vs. 주류경제학에서의 음의 외부성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할 듯해요.

    즉, 현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자연 생태를 파괴하는 것 말이지요.

    ex) 이용할 때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물(as 자연력) = 해수
    그러므로, 핵 발전소를 바닷가에 짓는 거겠지요.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에서 보듯이,
    계산불가능한, 천문학적 음의 외부성/비용을 낳음/치뤄야 함….

    하기야, 원자력이라는 것 자체가 맑스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인데다가.
    심지어, 인공 방사성 동위 원소는 자연 자체에는 없는 것이니…쩝

    1. 이재현 선생님,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르크스는 비봉판 523페이지에서 “기계가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가 적으면 적을수록, 기계는 더욱 생산적이며, 기계의 봉사는 더욱 자연력의 봉사에 가까운 것으로 된다” -- 가치이전이 적다는 것은 비용이 적다는 것이므로, 이전되는 가치가 0에 가까워지면 기계를 공짜로 이용하는 셈이지요. 기계를 공짜로 이용한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기계의 봉사는 더욱 자연력의 봉사에 가까운 것으로 된다”고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연력이라는 표현을 자연이 제공하는 능력이라는 측면보다는 공짜로 이용가능한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자연의 산물이건 노동의 산물이건, “자연력의 봉사에 가까운 것으로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같은 이유로 양의 외부성과 동의어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로 제시하신 물의 경우에는 이것을 자연력이라고 할 수 없겠죠. 자연의 산물이지만 공짜로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적하신대로 음의 외부성 혹은 외부 불경제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큰 해악 중 하나이겠습니다. 다만, 제가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음의 외부성을 가치론의 시각에서 다루지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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