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 ‘경제학 제국주의의 첨병, 사회자본론’

한 대학 매체에 글을 하나 썼다. 원래 청탁받은 제목은 ‘경제학 제국주의의 첨병, 사회자본론’이었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사회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사회자본론’이라는 제목이 더 큰 활자체로 덧붙어 있다. 나쁘지 않다.

원래 저쪽에 보낸 파일엔 각 내용단락 앞에 로마자 대문자로 수자를 붙여두었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니 그게 빠져 있다. 어떻게 인쇄되어 나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인터넷에 있는 것은 조금 산만한 느낌이다. 물론 그건 애초에 내 잘못이기도 하다.

이 글은 <중대신문>에서 기획한, ‘사회적인 것’이 현재 사회과학에서 다뤄지고 있는 현황과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한 시리즈물 중 하나다. 여튼 사회학자도 아닌 내게 좋은 기회를 허락해 줘서 고맙다.

(참고로, 글 맨마지막에,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수차례 소개하기도 했던 IIPPE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그냥 슬며시 암시를 주는 것에 그쳤다. 소심했나…)

*                         *                         *

I. 최근 영국에서는 보수당 출신의 데이빗 카메론 총리의 주도로 ‘big society’라는 것이―우리로 치면 ‘공정사회’와 같이―커다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카메론의 같은 당 대선배 마가렛 대처 전총리의 저 유명한 선언, 즉 “사회 따위는 없다”라는 선언과 재밌는 대비를 이룬다. 후자가 줄잡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의 ‘과잉’에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한다면, 카메론의 최근 기획은 대처의 선언 이후 땅에 떨어졌던 ‘사회’의 권위를 적정 수준에서 바로 세워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위와 유사한 사태 전개를 지성의 영역에서도 볼 수 있다. 대처의 선언과 궤를 같이 해서 사회의 불가능성을 핵심 테제 중 하나로 삼는 포트스모던적 경향이 지성계를 휩쓸고 지나간 뒤,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사회’의 과잉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카메론의 ‘big society’라는 것이 결국은 개인들의 자조(自助)와 이웃 간의 친목 강화 등을 강조하는, 낡은 대처리즘에 새 옷을 입힌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게 드러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자본’이라는 개념도 그간 특히 여러 사회과학의 분과들이 경제학화(化)하는 과정에서 실추되었던 ‘사회적인 것’의 의의와 권위를 회복시키기보다는 바로 그 경제학화의 새로운 방식으로 채용되고 있을 따름이다. 요컨대, 경제학이 그 특유의 방법론을 가지고 여타 사회과학 분과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나아가 이를 자신의 발아래 복속시켜 나가는 현상을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라고 부른다면, 특히 최근 20-30년 사이에 그 제국주의의 전위대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사회자본 개념이라는 얘기다.

II. 최근 사회과학은 그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정의되는 사회자본‘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다양한 정의들에서 공통으로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인간관계’ 자체다. 즉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다.” 더 많은 양질의 인간관계를 맺을수록 당신의 삶은 개선될 것이며, 따라서 이를테면 미국의 백인이 고도비만에 시달리는 것도 수많은 아프리카 흑인이 굶주림에 죽어가는 것도 모두 사회자본이 부족한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사회자본 개념의 문제는 그것이 마치 모든 사회적 이슈들의 해결책인 듯이 제시되고 있으면서도 내용상으로는 충분히 ‘사회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도 아니라는 데 있다. 즉 이 개념은 여타 사회과학들의 경제학화를 표상하지만 충분히 ‘경제(학)적’이지도 않고,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들에 걸쳐있지만 충분히 ‘사회(학)적’이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사회자본 개념은 특히 연구자들에게 묘한 안락함을 주곤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자본 개념이 지금처럼 많이 쓰이기 전부터 꾸준히 그것을 비판해온 벤 파인(Ben Fine)이 자신의 최근 저작, <사회자본의 이론들>(Theories of Social Capital: Researchers Behaving Badly, 2010)의 부제목을 ‘불량하게 행동하는 연구자들’이라고 지은 까닭이다. 이제 그들은 역사, 계급, 전통, 관습, 사회구조, 그리고 경제적 토대(!)를 참조하지 않고도, 단지 ‘사회자본과 xx’라는 식으로 얼마든지 손쉽게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벤 파인의 이 책은 내년 중에 나의 번역으로 국내에 나올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

결국 만약 우리가 ‘사회적인 것’으로써 단순한 ‘인간관계’보다는 역사, 계급, 구조, 경제적 토대 등을 의미한다면, 사회자본 개념이 사회과학들에서 두루 융성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과학이 타락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한 징후로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III. 사회자본은 비록 전통적으로 경제(학)적 의미의 자본이 쓰이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항들을 묘사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그것은 소비되고 축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이다. 따라서 그것은 태생적으로 사회과학들의 경제학화에 봉사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실현된 것은, 현대적 사회자본 논의의 원조로 꼽히는 부르디외(Pierre Bourdieu)보다는 코울만(James Coleman)이나 퍼트남(Robert Putnam) 등을 거치면서였다. 특히 코울만은 원래 경제학에서 발달된 ‘합리적 선택’ 이론을 사회학에 적용시키는 데 열정적이었던 사회학자, 말하자면 경제학 제국주의의 영역에서 ‘일제의 조선인 앞잡이’에 해당하는 인물인 것이다.

원래 경제학 제국주의란 사회과학의 분과체계가 형성되는 과정(1930년대 초)에서부터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였다. 현실의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그 열렬한 옹호자가 있었는가하면 단호한 반대자도 있었다. 그 옹호논리라는 것도, 경제학 제국주의가 ‘계몽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이는 억제되기보다는 장려되어야 한다는, 현실의 제국주의의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이를테면 파슨스(Talcott Parsons) 같은 인물이 있는데, 1930년대 경제학에 대해 사회학의 고유의 영역을 확립하려던 그의 노력을 최근 저프 호지슨(Jeoff Hodgson)은 <어쩌다 경제학은 역사를 잊어버렸는가>(How Economics Forgot History: The Problem of Historical Specificity in Social Science, 2001)에서 ‘경제학 제국주의에 맞선 해방투쟁’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학 제국주의가 진정으로 융성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 개리 베커(Gary Becker)를 통해서였다. 기본적으로 그는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관한 것으로, 즉 합리적 개인의 효용극대화라는 문제로 변환시켜 경제학에서 적용된 수리적 방법에 따라 그것에 접근한다는 전략을 취했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친 <괴짜경제학> 저자들의 “그 어떤 주제도 경제학의 범위 너머에 위치할 필요가 없다”라는 선언도 이런 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괴짜경제학>의 무분별한 유행은 경계심을 가지고 봐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책이 심지어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점은 크게 걱정스럽다. 언젠가 본격적인 비판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와 같은 베커의 경제학 제국주의는 우리가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우리도 지난 1997-98년에 겪었듯이, 신자유주의란 세계 모든 나라에 시장만능주의적인 단일 모델에 입각한 경제 및 사회 전반에 걸친 재구조화 프로젝트였음을 떠올려보라.

IV. 그렇다면 경제학 제국주의 또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사회자본과 연결되는가?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시장의 실패’ 사례가 빈번해짐에 따라 경제학 제국주의가 자체변모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과 관계가 깊다. 요컨대, 경제학 제국주의가 지금까지는 경제학의 방법으로 여타 사회과학들을 무지막지하게 식민화해왔다면, 이제 그것은 자신의 한계(‘시장 실패’)를 인정하고 그런 한계가 드러나는 곳, 말하자면 시장이나 가격이 아니라 역사, 전통, 관습, 계급, 경제적 토대 등의 고찰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지점들을 ‘사회자본’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채워버렸다는 것이다.

V. 기실 경제학은 그 자신의 편협한 방법론과 시야로 사회과학 전체에 걸친 하나의 제국을 형성한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사회자본 개념은 최근 그런 야심이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통로 중 하나다.

만약 경제학 제국주의와 사회자본이 사회과학 전체를 타락시키고 있다면 이에 대한 저항도 필연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저항이란, 현실의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그렇듯 단순히 민족주의에 그쳐서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즉 그것은 단 하나의 분과학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만약 이 저항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사회적인 것’의 복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양한 사회과학 분과들을 아우를 수 있는 지적 기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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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thoughts on “[201010] ‘경제학 제국주의의 첨병, 사회자본론’

  1. 요즘 진화 게임이론 관련하여 논문을 쓰고 있는데, 저 역시도 “(순수)경제학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한편 경제학 내부에서는 몇 가지 주요 공리들(수요함수, 경제적 합리성 같은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식의 접근들에 대해서는 “이건 경제학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배제하는 경우들도 있죠. 편협한 경제학 규정들과 경제학 방법론의 타 분과로의 잠식이 공존하는 상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리모델과 통계학만 가지고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경제학 그 안에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방법이 다른 분야에 퍼지는 것도 뭔가 설명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마도 “객관적인 것 같은 복잡한 형식의 정치적 이용”의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1. 형님이야 경제학을 하시니, 흔히 쓰는 의미에서의 ‘앞잡이’는 정의상 될 수 없겠죠. ^^

      경제학의 ‘정의’ 문제는 재밌습니다. 결정적으로는 1870년대의 이른바 ‘한계혁명’을 겪으면서 경제학은 크게 그 범위가 축소되는데요, 재밌는 것은 이때 바로 그 혁명의 주역들(Jevons나 Walras)은 바로 그렇게 정의된 협소한 경제학(곧 그들이 말하는 ‘순수’ 경제학)의 한계를 무척 과감하고 공공연하게 인정했다는 것이죠. 적어도 그들에게는 “수리모델과 통계학만 가지고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던 셈입니다.

      에…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위와 같은 사실을 들어 제본스나 발라(또는 왈라스)를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는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닌 것이…… 이들이 경제학을 수리적 방법을 통해 ‘순수화’하고 있는 동안, 동시에 그들은 전통적으로 경제학이 다뤄오던 주제들, 즉 필연적으로 (수학으로는 결코 다룰 수 없는) 역사나 계급 등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들을 ‘응용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다뤘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렇게 ‘응용’이라는 이름으로 경제학이 가졌던 전통적인 특징들을 (그 core 이론으로부터) 떨궈낸 것이야말로 한계혁명의 진정으로 ‘혁명적’인 측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컨대,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학 제국주의’의 싹이 바로 한계혁명 자체에 들어있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제본스나 발라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봤을 땐(즉 그들의 ‘주관적 의도’에 비춰보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몇몇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즉 그들은 현재 맛탱이가 간 경제학을 바로잡아보겠다는 순수하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경제학의 한계를 허심탄회하게 인정할 뿐만 아니라 경제학에 온갖 새로운 요소들을 갖다 붙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엔 현재의 경제학을 더 강화시키는 결과만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런 문제는 앞의 다른 글에서도 일부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요새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부두(voodoo) 경제학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더군요. 경제학이 무슨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기반을 갖는 어떤 것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지 않고 거의 무당 굿하듯 한다는 얘기겠죠.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진화경제학, 행동경제학, 신경경제학 등등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진화/행동/신경 등이 도입되는 마당에 ‘부두’가 굳이 안 될 까닭도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부두 경제학’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이란 말인가? 당연히 아니겠죠. 오히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부두’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듯이(또는, 신자유주의 그 자체이듯이) 진화/행동/신경도 대안이 아니라는 겁니다(또는, 신자유주의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1. 으하하하 부두경제학!!!! 안살펴봐도 뭔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아 역시 이런 단어가 있었군요 ㅎㅎ 예전에 홍기빈 선생이.. 아마도 제 기억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였던 것 같은데..

        불황이 올 경우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것을 주문한 뒤:

        i) 흥할 경우: “거봐 내말이 맞지”
        ii) 불황이 지속될 경우: “제대로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대충 이런 구조가 먼 옛날 신관이 백성들을 통제했던 메커니즘과 비슷비슷하다라는 식의 얘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건 그거고,

        결국 양적인 분석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가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듀메닐/레비, 폴리, 보울즈 선생이 지금은 제 롤모델입니다만, 인문/역사/철학에는 참 막막해서.. 스스로 판단을 못내리겠더군요. (이럴땐 자꾸 ‘공돌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여하튼! IIPPE 소개글도 가서 봐야 겠군요.

        1. 불황 말씀을 하셔서… 저는 요새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루비니란 양반이 불황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 어떤 친구는, 이 분은 마치 고장난 시계와도 같은 분이라고 하더군요. 즉 맨날 불길한 얘기만 하는 사람이라, 마치 고장난 시계가 하루에 두 번 맞는 것과 같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그가 ‘닥터 둠’이라고 불리는 것은 매우 적절한데, 언젠가 그가 토론회에 나온 영상을 보니, 그는 자신을 일컬어 ‘닥터 둠’이 아니라 ‘닥터 리얼리스트’라고 하더군요. 재밌는 분입니다. ㅎ

          전 개인적으로는 ‘수리모델’과 ‘통계학’을 구분해서 보려는 입장이고, 대체로 후자에 대해선 활용할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아마도 z0nam님께서도 비슷하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결국엔, 경제이론의 의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를 둘러싸고 중요한 차이가 생길 것 같네요. 이를테면, 주어진 자료로 뭔가를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예측하고 추정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저는 전자를 옹호하는 반면 후자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인데, 만약 그렇다면 자료라는 것은 보조적인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렵겠죠…

        2. 사실 간단한 게임이론 같은것만 생각해봐도 예측이 안되죠. 예측을 예측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한계지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1. 고맙습니다. 제가 어서 논문을 끝내야 번역도 순조롭게 될텐데 말입니다.. ㅠㅠ

      그나저나 와해님 계시는(?) 연구소 또는 그 주변에서 재밌는 토론회가 연달아 벌어지고 있더군요. 모두 제가 관심있는 것들인데… 어째 다른 일들과 겹치는 바람에 참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좋은 기회가 또 오길 바랄뿐입니다;;;

    1. 네, 제가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IIPPE이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

  2. 왠만한 글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첨 읽었긔… 뭐 읽었어도 까먹었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사회자본이라고 쓰는군요… 처음 듣는 이 느낌… 너무 인간관계가 강조되고 페북도 대따 뜨고 참 나는 전반적으로 당황스러운데 페북 등 소셜 네트웤이 뜨는 여러 조건 중의 하나로도 이해가 되네여

    근데 올해는 벌써 내후년이긔.. 벤 파인 책은 없긔

  3. 선생님 다 사연이 있는 줄로 알지만 자꾸 번역 즉 소개가 늦어지면 언젠가 (올해나 내년 쯤?) 국내 사회과학의 EI 경향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으실지도 모릅니다..ㅎㅎ
    그리고 글마다 태그를 여럿 달아주고 계시지만 따로 태그 검색할 창으니 쫌 무용합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거라면 내놓아주삼. “사회자본 헐?”이라고 쳤는데 딱 나오면 뿌듯해지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1. 네~ 객자의 의견반영 감사해요. 제가 좋아하는 보라색도 여기저기 생겼네요. 책임론은 물론 농담인 거 아시죠…ㅎㅎ 천천히 하나하나 제대로 성취하시길! 그리고 오늘 날씨가 거시기했는데 토론회는 잘 마치셨는지.

        2. ㅎㅎ 보라색 좋아하시는 분이 많나보네요. 역시 다들 약간씩 뭔가 이상.. ㅎㅎ 토론회는.. 네, 잘 됐습니다. 그래도 제가 홍보(?)를 좀 한 덕분인지, 외부 참석자도 좀 오셨고요. 앞으로 더 잘 해야겠죠 :)

  4. 저기 좋은 글 잘 봤는데요 ㅎㅎㅎㅎ 마지막에 ‘기실 경제학은 그 자신의 편협한 방법론과 시야로 사회과학 전체에 걸친 하나의 제국을 형성한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요 부분에서 반박하고 싶은 게 있어서 쫌만 쓸게요. 사실 학문이란 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는건데 경제학을 너무 나쁘게 말씀하시는 거 같아서요 ㅎㅎㅎㅎㅎ 저는 이게 일부 극단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그러니깐 사람의 나쁜 버릇을 깔려고 하신 게 말이 헛나오신 거로 보이거든요 ㅎㅎㅎㅎㅎ
    첨에 경제학 특유의 객관화(계량 및 통계화, 합리적 개인에 대한 가정 같은 걸 뭉뚱그려서 일케 얘기할게요)하는 방법론이 다른 사회과학에 맹목적으로 퍼지는 게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신 건 동의해요. 근데 그게 경제학 자체의 문젠 아니에요. 이런 방법론이 불완전하다는 건 경제위기 분석하면서 밥 먹고 사는 경제학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굳이 객관화라는 작업을 하고, 이게 주류경제학이 된 이유는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주관적인 개인의 경제생활을 분석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 거 뿐이에요. 개인의 행태 하나하나를 완전히 분석할 수 있다면 굳이 글케 객관화하지 않았어요. 이런 경제학의 방법론이 다른 학문으로 여기저기 퍼진 건, 뭐 게임이론을 사용하는 분야만 봐도 아시겠지만다른 학문도 이런 방법론을 써먹을만한 게 있었기 때문이고요.
    짧게 쓰려는 게 넘 길어졌는데 어쨌든 경제학 자체가 그 자신의 편협한 방법론과 시야로 사회과학 전체에 걸친 하나의 제국을 형성한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절대 아닌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물론 여타 학문에 다소의 영향을 주고받고 하긴 하겠죠. 근데 그건 학문의 일반적 속성이지 경제학 특유의 속성은 아니에요. 경제학은 착합니다 다루는 사람 중 이상한 사람이 몇 있는 거 뿐이죠 ㅎㅎㅎㅎ

    1. 요새 바빠서 간만에 들어왔는데… 마침 이런 덧글이 딱! (이건 201님한테 하는 말씀 아님. 다른 분들께 하는 말임.)

      (이제부턴 201님께) 안녕하세요. 모처럼만에 비교적 긴 덧글이라 더더욱 반갑습니다. 거두절미하고… 그러니까… “객관화”라고 201님은 말씀하시는데… 그게 그다지 “객관화”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고요, 사실 계량화나 합리적 개인 가정 따위에는 저는 별 불만 없어요.

      나머지는… 음, 이렇게 말씀을 드릴게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같은 거 좀 훔쳐보신 모양인데, 본인의 견해를 말하기 전에 책 몇 권은 더 읽기를 권할게요. 혹시 경제학 전공자이실 수도 있겠는데… 어디 가서 전공자라고 하지 마세요. 민망합니다…

  5. 논문에 책 번역까지 많이 바쁘시겠어요. 얼마전에 EBS에서 자본주의라는 다큐멘터리를 했었는데 벤파인 교수가 나오시더군요. 많이 늙으신것같았는데..ㅎㅎ 책 번역이 나오면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사회과학을 하면서 늘 경제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왜 자녀의 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경제학의 논리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그때 좀 충격먹었었는데
    사랑이나 결혼 성적행동같은 것까지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야하는지 전 잘 모르겠더라구요.근데 벤 파인 교수의 책을 읽어보면 거기에 대한 비판도 있을 것같아서 좀 챙겨보고싶어지네요…번역 화이팅…논문도 잘 마무리하시구요…건강하세요…

  6. 왜인지 덧글표시가 안되어서 EM님 코멘트는 없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길비는 마음은 여기에 남겨두고 갑니다.^^

    1. 덧글 잘 보여요 :) 애정어린 말씀 고맙습니다. 제가 요새 트위터도 도통 못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뵈었던 것 같네요. 건강하시고요, 자주 이야기 나눠요!

      그나저나 말씀하신 그 프로그램도 봐야 하는데… 정신이 없네요. 그래도 7월에 선생님 뵈었을 땐 좋아보였어요. 힘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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