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Stiglitz on Keynes

Stiglitz, J., 2010. The Non-Existent Hand. Review of Keynes: The Return of the Master by Skidelsky, R. London Review of Books [Online] vol. 32 no. 8 pp. 17-18. Available from http://www.lrb.co.uk/v32/n08/joseph-stiglitz/the-non-existent-hand [Accessed 19 April 2010].


스티글리츠는 흔히 “정보경제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고 (내 기억엔)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도 그에 대한 기여 덕분이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전세계적인 경제대란 속에서, 그리고 특히 그에 대한 처방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는 종종 “케인스주의자”로 여겨지곤 한다.

위에서 링크한 글은 최근에 한국에도 번역된 케인스 전기의 저자인(스티글리츠가 표현하듯이 “Keynes’s great biographer”인) Robert Skidelsky 경의 최근작 《Keynes: The Return of the Master》(2009)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서평이다. 여기서 그는 (스키델스키의 손을 거친) 케인스에 대해 코멘트하면서, 그와 자신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The present crisis should lay to rest any belief in ‘rational’ markets. The irrationalities evident in mortgage markets, in securitisation, in derivatives and in banking are mind-boggling [. . .] If we are to design policies to prevent crises or to deal with them when they occur, it is essential to understand the critical flaws in the standard paradigm. It is here that Skidelsky goes astray.

오늘날 케인스주의자로 자의든 타의든 규정되는 사람들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그 중 스키델스키는 “케인스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말하자면 ‘강경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리뷰되고 있는 책에서 그는 (스티글리츠는 언급하지 않지만) 심지어 (케인스가 창안했다고 할 수도 있는) 거시경제학이 (‘미시적 기반micro-foundation’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거시경제에 대한 진정한 안목을 기르기 위해 “거시경제학자에겐 미시경제학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매우 과감한 주장까지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스티글리츠는 현재의 공황에는 금융적인 측면이 많이 개입되어 있으며 케인스의 기본 문제의식은 실업(과 유효수요)에 있었으므로, 오늘날 문제가 되는 금융시장의 운영이나 규제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고 반박한다. 대신 그는 케인스 이후 여러 케인스주의자들에 의해 여러 유용한 시각들이 발달했음을 상기시키는데, 그럼으로써 그는 스키델스키가 그런 성과에 정당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다시 케인스로!”라는 급진적인 모토를 내세운다고 비판하는 셈이다.

그러나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글리츠는 케인스 및 케인스주의가 이룬 업적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임은 물론이다.

Keynes’s great contribution was to save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 if they had had their way, they would have imposed policies that weakened the economy and undermined political support for capitalism. The regulations and reform adopted in the aftermath of the Great Depression worked. Capitalism took on a more human face, and market economies became more stable. But these lessons were forgotten. Thatcher and Reagan ushered in a new era of deregulation, growing inequality and weakening social protection. We are now seeing the consequences, and not just in greater instability. Keynes’s insights are needed now if we’re to save capitalism once again from the capitalists.

위에서도 드러나듯이, 스티글리츠가 힘줘 강조하는 것은, 케인스의 통찰을 이어받아 케인스 이후에 많은 이론적 진전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이어받고 복원해야 할 것은 케인스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경제학을 재편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및 시장이란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인 요소들을 늘 품고 있다”라는, 주로 케인스 이후에 지각되고 발전된 사고에 기반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은밀히 (또는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재편은, 스티글리츠를 대표로 하는 이른바 ‘post-Washington consensus’론자들에 의해 특수한 방향으로 실현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한 좀 더 급진적인 비판도 존재한다. 그런 비판을 내세우는 대표적인 논자인 Ben Fine의 글 중 하나(〈지구화와 발전 개념의 비판적 검토: 정치경제학의 역할은 무엇인가?〉)가 국내에도 번역/소개된 바 있으며, 이런 비판은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IIPPE)‘라는 이름으로 좀 더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IIPPE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다른 글도 참조할 수 있다.
Print Friendly, PDF & Email
SNS로 공유하기!

One thought on “[기사] Stiglitz on Keynes

  1. 다시 보니까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어,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게 낫겠다:

    위 글에서는 마치 스티글리츠가 무척 좋은 사람인 듯이 묘사된 것도 같다. 물론 그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인상도 꽤 좋다. 그러나 그가 내세우는 현재의 경제적 파탄과 경제학의 실패에 대한 처방은 일면적이고 지극히 현상 변호론적이다. 왜 그런가?

    위에서 스티글리츠는 케인스로 돌아가기보다는 케인스 이후에 이뤄진 이론적 진전/성과에 주의를 기울이자고 말한다. 이 주장은 언뜻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것이 위치한 맥락이 중요하다. 즉 그것은 위에서와 같이 ‘케인스로 돌아가자’라는 주장과 함께 놓였을 땐 매우 사려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테면 ‘주류경제학은 틀려먹었다.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라는 좀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 앞에선, ‘무슨 소리냐, 주류경제학 그런대로 쓸만하다’라는 변호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 본문 말미에 링크된 Ben Fine의 글에서, 스티글리츠의 이런 변호론자적인 성격이 잘 드러날 것이다.

    이상이다. 덧붙여, The Economist 최근호에 나온 다음 기사도 참고할만하다.
    http://www.economist.com/business-finance/economics-focus/displaystory.cfm?story_id=15908207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