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첫 번째 해를 돌아보며

작년 2월 14일에 첫 번째 글을 올린 이래 이 블로그를 통해 128개의 글이 공개되었다. 1주일에 2-3개는 썼다는 얘긴데, 그에 비하면 요즘 기록이 확실히 저조하긴 하다. 그만큼 바깥 세상과의 교류에 둔감했다는 것이니 반성해야 할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내 사정도 있는 것이니 무리할 필요는 없겠다;;;

나름 즐겁게 운영하고 있었던 진보넷의 불로그를 접었던 것은, 좀 더 독립적인 블로그를 갖고도 싶었고 또 많은 사람들과 격의없이 어울리고 싶기도 해서였다. 그 첫 단계로 현재와 같은 도메인네임을 돈주고 사긴 했는데, 처음엔 여러 제약 때문에 기존에 제공되는 맞춤형 블로그(텍스트큐브.com)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7월이 되어서야 텍스트큐브를 떠나 wordpress 블로그툴을 이용해 사설 서버에 블로그를 만들 수 있었다. 서버는 진보넷을 이용한다(후원회원이 되어, 그 혜택으로 이용하는 형식). 이렇게 해서 결국 내가 원했던 형태의 블로그를 만들어낸 셈이긴 한데, 그래도 불만도 많고 (따라서) 개선하고픈 점도 많다.

개선하고픈 점으로는 제일 먼저 디자인을 꼽고 싶은데, 그건 어쩌면 눈에 딱 보이는 것이기 때문일 거고… 실은 ‘글’이 가장 맘에 안 든다. 특히 최근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많이 저하되고 있는 것 같다. ㅎㅎ;;; 그래도 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몇 가지 꼽아보려 한다.

1. IIPPE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

굳이 진보넷 불로그를 접고 이렇게 새로 공간을 만든 이유를 하나 꼽으라면, 아마도 그건 ‘IIPPE’가 아니었나 싶다(IIPPE(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 소개링크). 진보넷 불로그가 지나치게 신변잡기적인 성격이 커지는 바람에, 그것을 통해 어떤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어쨌든 지난 한 해,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가장 공들였던 일 중 하나가 바로 IIPPE를 알리는 일이었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는 IIPPE가 이 블로그 상단의 메뉴바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기 있는 17개의 글들은, 어쩌면 내가 이 블로그에서 가장 신경써서 쓴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 단순히 그건 이 블로그 안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 2008년 ≪마르크스주의 연구≫라는 국내 저널에 IIPPE를 처음으로 (간략히) 소개한 이래(링크), 나는 IIPPE를 우리나라에서 알리고 그 문제의식을 되도록 많은 이들과 공유하려고 애써왔다. 물론 이때는 내가 아직 런던에 있을 때라서 노력을 기울이는 데 많은 제약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작년 6월에 ≪사회경제평론≫이라는 국내 학술저널에 무려 31쪽에 걸쳐 IIPPE를 본격적으로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 이 글의 초고는 이 블로그에도 5회에 나눠 올린 바 있다(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링크).

그렇다면 이런 노력의 결과는? 내가 직접/간접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들인 노력에 비해 매우 괜찮은 수준이다. 노력이 부족했는데도 결과가 좋았단 얘기다. 이제 대충 IIPPE에 대해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들은 어느정도는 IIPPE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어제 진주에 있는 한 대학에 일이 있어서 다녀왔는데, 거기서 누가 나를 반갑게 맞으면서 IIPPE에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이제 할 일은, 홍보에 좀 더 열을 올리는 동시에 이제껏 확인된 관심들을 어떻게 조직화해내느냐가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힘들어도 끈기있게 노력을 기울이자… 그러려면 올해 계획중인 책 번역을 어서 해내야 한다!!!

2. Marx, 경제학, ≪자본(론)≫

결국 나는 ‘마르크스’, 그리고 그의 ‘경제학’에 대해 연구하고 말하는 사람이다. 경우에 따라 나는 그것을, ‘경제사상사’라고 하기도 하고 또 ‘국제무역론’ 내지는 ‘세계경제론’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블로그에서 내가 가장 신나게(!) 썼던 포스트들은 바로 그런 주제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본(론)≫에 대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주저 ≪Das Kapital≫의 국내 번역(본)에 대한 포스트들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하나만 꼽자면: 강신준 교수의 <자본> 완역출판에 부쳐링크). 참고로 밝히면, 앞의 링크에서 예고했던 글은 ≪마르크스주의 연구≫ 2010년 겨울호에 ‘Das Kapital의 성격과 그 번역에 대한 몇 가지 이슈: 새로 완역 출판된 ≪자본≫ 서평을 겸하여’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링크). 조만간에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앞의 논문의 ‘후기’ 격으로, 간단하게 하나 할 생각이다.

굳이 ≪Das Kapital≫의 번역이 아니더라도, 지난 한 해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포스팅을 다수 했다. 기억나는 것 몇 가지를 꼽아보면…

  • “사회” 관점의 지성사적 의의(링크): 이 블로그에서 내가 ‘실질적으로’ 처음으로 쓴 글.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경제학의 발달사에서 마르크스가 차지하는 의의를 밝힌 것이다.
  • 경철수고, 또는 마르크스의 지적발달에서 정치경제학의 의의(링크): 앞의 글이 마르크스와 그를 둘러싼 지적 배경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이 글은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발달의 각 분절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젊은 마르크스’와 ‘성숙한 마르크스’ 사이의 관계.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보고 자극받아 쓴 것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 What’s in a name? 자본론 vs 자본: ‘비판’의 의미에 대하여(링크): 이 또한 위 글로 촉발된 논쟁의 결과물이다. 어딜가나 논란이 되는 마르크스의 ‘비판’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간명하게 밝힌 글이다. 더불어 ‘Das Kapital’의 우리말 제목으로 ‘자본’보다는 ‘자본론’이 차라리 낫다는 이상한(?) 주장도 내놓고 있다.
  • 이른바 철학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링크): 이 글은 뽀삼님의 요청으로 쓴 것이긴 한데, 결과적으로는 동문서답이 되고 말았다(뽀삼님이 뭐라 하셔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문서답은 되었어도, 제목 그대로 ‘이른바 철학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힐 수 있는 기회였다. 이 또한 사실은 앞의 두 개의 글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런 것들 말고도, 학술대회 참관기 두 개를 썼던 게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MEGA에 대한 것이었고([학회참관기] MEGA 작업의 새로운 새로운 접근과 맑스의 재해석링크), 다른 하나는 알튀세르(의 현재성?)에 대한 것이었다(“빈곤”과 “과대망상”: 알튀세르 심포지엄에 다녀와서링크). 둘 다 취지는 좋았던 기획이었는데, 내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진 않았다. 이건 물론, 주최측에 대한 내 불만이나 반감의 발로는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좋은 취지의 기획들이 그런 식으로만 실현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반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의 지식계에서 마르크스, 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실망감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나타낸 적도 있었다. 지금 언뜻 떠오르는 것은, 현재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지성계에서 꽤 이름이 높으신 두 분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썼던 두 개의 글이다. 하나는 블로거 로쟈님에 대한 것(안습, 로쟈의 ‘유토피아적(?) 광기’, 링크)였고, 다른 하나는 철학자 진태원님에 대한 것(지도는 잘 그려야 한다 –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에 대한 코멘트, 링크)이었다. 전자가 ‘마르크스’가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었다면, 후자는 마르크스 ‘경제학’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전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에 대해선 ‘뭘 그렇게까지…’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나눈다면 마르크스가 현대사회에서 진정으로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영역은 ‘사회과학’에, 다시 말해 그의 ‘가치이론’ 또는 ‘정치경제학 비판’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진교수 같은 분께서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마르크스를 불러들이는 방식엔 한계가 크다고 보며, 또한 같은 맥락에서 그가 그린 ‘지도’는 허망해 보이기까지 한다.

3. 시의성 있는 몇몇 글들

이상의 두 주제는, 이 블로그 상단의 메뉴바에도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나 나름대로 ‘테마’로 삼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거기 속한 글들은, 적어도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겐 언제든 읽힐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위에서 열거한 글들은 시간이 지나도 종종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그때 시의성 있는 글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런 글들 중에는 나름대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쓴 것들도 있으며, 그런 글들이 그것이 직접적으로 겨냥한 사안의 ‘시효’가 다함에 따라 누구도 찾지 않게 되는 것은, 글을 쓴 사람으로서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물론 어떻게 보면, 일개 블로거가 쓴 글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쓴 시의성 있는 글들이 잊히는 것은, 우리 사회를 달궜던 그야말로 ‘핫’했던 이슈들이 휙휙 바뀌어가고 또 그럼에 따라 그렇게도 치열하게 다뤄졌던 문제들이 잠깐 사이에 모든 이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 크다. 이를테면 올 상반기 나름 뜨거웠던 ‘삼성 불매운동’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이슈들이 계속해서 잊히는 동시에, 그것들과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구체적인 발현형태만 다를 뿐인 문제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올해들어 잇따라 터지고 있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들이, ‘삼성 불매운동’이 겨냥했던 그 문제들과 무관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경우, 앞서의 이슈를 다뤘던 경험이 나중의 이슈를 접했을 때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을까. 나는 좀 회의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지난 한 해, ‘핫’했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내 개입의 흔적들 중 기억나는 몇 개를 추려보면…

  • [2월20일] <아바타>를 보고: 제국주의와 피부색깔. 어떤 제국주의냐? (링크): 아바타가 우리나라에 개봉한 것은 2009년이었고, 원래 이 글은 진보넷에서 neoscrum님과 논쟁을 한 뒤에 남아있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은 것이었다. 하여튼, ‘아바타’라는 영화도 그렇고, neoscrum님의 관련 글들도 그렇고, 한때 각각의 영역에서 커다란 논란이 되었었다.
  • [5월4일]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링크): 이 글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까? 그 글이 처음 나왔을 때, 주요(?) 블로그들과 트위터는 그 글에 대한 코멘트들로 그야말로 넘쳐났었다. 그 글의 논지에 동의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그런 논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의견을 위 글에서 밝혔다. 좀 뒷북이기도 하고 해서 별다른 주목도 덧글도 못 받았던 것 같다. ㅎㅎ 그러나 ‘아이폰’에 대한, 별 근거 없는 ‘찬양’과 ‘때리기’가 공존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미디어 현실을 보면, 좀 힘이 빠지긴 한다.
  • [6월6일] (김상봉 교수의) 삼성 불매운동 (링크): 김상봉 교수의 글에 논평하는 형식으로, 삼성 불매운동에 대한 내 생각을 비교적 자세하게 밝혔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나 최근 삼성전자의 자살사태 등을 생각하면, 역시 불매운동보다는 삼성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먼저다. 나름 공들여 쓴 글인데 별로 읽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어, 그러고보니, 최근 어떤 분이 덧글을 달아주시기도 했군;;)
  • [9월25/28일] 불법 다운로드의 정치경제학 (링크1, 링크2): 이것도 나름 ‘핫’한 이슈였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글의 서두에 거론된 <참세상> 기사는 많은 덧글과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어떤 면에선 매우 열렬한 ‘불법 다운로더’로서 나는 원래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관심을 나름 적절한 수준에서 펴놓은 것 같다. 앞으로 좀 더 다듬고 발전시킬 부분이다.
  • [10월1일] “소비”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트 피자” 논란에 부쳐 (링크): 통계를 보니, 지난 한 해 내 블로그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글이다. 아마도 언젠가 나한테 크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는 어떤 유명인께서 악의적으로 자기 트위터에 언급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이마트 피자’ 이후 ‘통큰 치킨’이 등장하는 등, 사태는 새로운 국면들을 맞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 그나마 처음엔, 기존에 제대로 제기되지 않았던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나름 자부심이 있었지만 — 언젠가 좀 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 [10월8일] 북한의 이른바 “권력 세습”에 대한 메모 (링크): 매우 간단한 메모였는데 여기서 언급하는 까닭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해서 사태를 다시 봐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봐야 이건 내가 깊이있게 다룰 수 있는 문제는 결국 아니다. 하지만 지금와 돌이켜봐도, 북의 ‘후계 정치’를 ‘권력 세습’이라고 지극히 단순하게 규정한 뒤, 그에 대한 비판을 강요하는 것은 그다지 쌈박해 보이진 않는다.
  • [12월2일] ‘맷값 파동’에 대한 부질없는 상념 (링크): 해당 사태에 대한 나의 복잡한 심경을 반영하듯, 이 글도 정돈되지 않아 보인다. 여러 생각들이 뒤죽박죽 얽혀있다. 그래도 각종 매체에서 ‘엇나간 재벌 도련님’을 성토하고 있을 때 사태를 좀 다른 시각에서 봤다는 점에서는 나 스스로 점수를 주고 싶다. 더욱이, 이 엉망인 글이 조본좌님의 훌륭한 글(링크)에 작으나마 자극을 드린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이것들 말고도 보기에 따라선 몇 개 더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 뭔가 내용이 있는 건 저 정도지 싶다. 그밖에 특기할 만한 것 하나만 더 꼽자면, 해외 언론의 기사들을 몇 차례 소개한 것이 있다. 시기에 따라 그것이 뜸할 때도 있고 잦을 때도 있는데, 그 빈도는 내가 얼마나 언론매체들을 열심히 봤는가 하는 것에 대체로 비례한다. ;;; 좀 더 열심히 살자..!! ㅎㅎ

4. 현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생각들

2008년 이후 세계경제의 대격변 이래로 세계경제를 괴롭히고 있는 병폐의 진단과 처방, 그리고 향후 세계경제의 바람직한 진로에 대한 논의들이 온갖 매체들을 장악하고 있다. 비록 나는 주로 이론적인 측면에만 집중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문제는 내 전공과도 관련이 있어 드문드문 그에 대한 내 생각을 펼치기도 했다. 이를테면…

  • [6월23일] 자선자본주의? 선물경제? (링크): 최근의 경제위기 내지는 ‘경제학’의 위기를 맞아, 경제 자체는 물론 그것을 이론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뭐냐는 질문이 동시에 제기되곤 한다. 여기에 다양한 답변들이 내려지고 있는데, 그 중 매우 유력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선자본주의’라는 모델이다. 흔히 ‘자선’이라고 하면 빌 게이츠 같은 거부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은 얼마든지 ‘한 달에 만원이면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릴 수 있습니다’ 류의 ‘소극적 자선’과 상통이 가능하다. 이런 모델은,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겐 그 나름의 ‘선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줄 수 있다는 장점을 갖지만, 사회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결여하고 있다.
  • [6월29일] Krugman, depression, 4대강 그리고, 세금을 거둬! (링크): ‘긴축이냐 팽창이냐’라는 문제를 상정하면, 이 글은 크게 봐서 크루그만의 ‘재정팽창’에 손을 들어주는 형식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크루그만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글에서 나는, 우리나라는 현재 크루그만 식의 ‘정부 역할론’을 옹호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 ‘재원 마련’에는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 [8월2일] Shiller on stimulus: 고용이냐 성장이냐 (링크): 앞서의 크루그만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Shiller에게도 비판적인 편인데, 흥미롭게도 이런 ‘온건한’ 사람들조차도 한국경제라는 맥락 안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입장에 있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덧글에서 Neopool님께서 적절히 지적해 주셨듯이, 앞의 포스트와 함께 쌍으로 묶여, ‘케인스주의 정책의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정도로 이름 붙여질 수 있겠다.
  • [7월19-20일]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링크1, 링크2): 그들을 ‘낙관론자’라고 해야할까? 어떤 이들은 최근 경제적 격변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입에 올리곤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애매모호한 개념이고,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끝났다고 할 수도,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가 끝났는가’라는 것은 ‘말장난’으로 전락하기 쉬운 헛된 질문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좀 더 의미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 [8월18일] Kay on Robber Barons: ‘프레임’이란 이런 것! (링크): John Kay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다. 이 포스트는 그가 쓴 한 칼럼에 대한 코멘트로, 나는 여기서, 최근 세계경제의 병폐를 진단하고 그 해결을 구하고자 하는 수많은 ‘지성’들이 (의도적으로든 의도적이지 않든) 일정한 ‘프레임’에 갇혀있으며, 그들이 내놓는 처방들을 읽고 또 그에 영향을 받는 이 지구상의 ‘선량’들이 그 ‘프레임’과 그에 따른 한계를 감지해내는 것이 어려움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런 ‘지성’들에는 위에서 말한 Paul Krugman이나 Robert Shiller,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라면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대안’을 성급히 내놓는 이들이 포함된다.
  • [11월30일] 달러와 세계경제: 시론 (링크): 최근 세계경제에 대한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달러의 지위에 대한 문제다. ‘세계화폐’로서의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데는 거의 모든 관련논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서 진보진영에서는 국제통화시스템을 좀 더 안정적인 방식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과거의 금본위제나 브레튼우즈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치않게 내놓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현재 그런 대안의 실현가능성은 별로 없으며, 만약 그것이 실현된다면 어쩌면 우린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 글을 ‘시론’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언젠가 좀 더 본격적인 생각을 펼칠 생각에서였는데, 어서 그럴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에고… 이상으로, 작년에 이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훑어봤다. 생각해보니, 2008년을 보내면서 비슷한 포스팅을 진보넷에서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랑 비교해보니 몇 가지 면에서 그다지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좀 더 분발해야겠다. 블로그에 대해서든, 삶에 대해서든. 앞에서, 이 포스팅을 통해 ‘한 해를 결산’해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이건 ‘새해 다짐’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화이팅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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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S&M, 첫 번째 해를 돌아보며

  1. EM님께서 작년에 쓴 글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올 해도 변함없이 좋은 글을 올려주시는 EM을 기대하겠습니다(^-^).

  2. EM님 글이 너무 뜸한 거 아니냐 싶었는데,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그래도 알차네요. ㅎㅎ

    여기서 몇몇 글들은 저도 깊게 읽고 물어 보고 싶었던 것도 있고, 또 몇몇 글은 사실 제대로 읽어 보지도 못했습니다…그냥 이렇게 흘려 보낼 건가 아쉽기도 하고. 올해에는 EM님 글에 저도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ㅎㅎ

    1. 허… 어디서 글이 너무 뜸하다는 말씀을 하세요! (흠.. 하긴 구멍님 글은, 종종 출판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보고 있긴 합니다만..ㅎ) 하여간 좀 더 알차고 쫄깃하게 살자고요.

  3.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다시 읽어보기 편하겠습니다ㅎㅎ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앞으로도 많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EM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제는 정말 걸음마 연습하듯 글쓰기에 노력을 기울이는 한 해를 보내고 싶네요!

    1. 네, 이렇게 정리 한번 해놓으면, 제가 나중에 보더라도 좋더라구요. 아, 그때 그랬었지.. 이런거요 ^^ 풀님 활동, 기대하고 있을게요.. 힘내세요!! 😀

    1. 저야 보시다시피 잘 지냅니다 ㅎㅎ 글에 참조하셨다는 표시와 함께 링크까지 걸어놓으셨는데요 뭐 ^^ 하여간 요즘 조본좌님 활약(?)을 지켜보는 것도 한 가지 재미랍니다. 계속해서 좋은 활동 보여주세요. 새해, 건강하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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