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2)

III. 경제학의 위기: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정치경제학으로

경제위기라는 것이 실은 그 전부터 장기간 누적되어 온 경제의 모순들의 일시적인 폭발이듯이, 경제위기를 통해 드러나는 경제학의 위기, 그리고 뒤이어 그 위기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되는 경제학 개혁을 위한 청사진들도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따라서 IIPPE를 포함한 현재 진행중인 경제학 개혁을 위한 프로젝트들을 볼 때, 이 각각의 입장들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개혁을 필연적이게끔 만드는 경제학의 고질적인 병폐로 무엇을 꼽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1. 경제학의 위기에서 사회과학의 위기로: 경제학 제국주의

IIPPE가 현재의 (주류)경제학에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이는 간단히 말해 경제학이 자신이 그 대상을 대하는 특유의 방식을 여타 사회과학들에 퍼뜨림으로써 그들을 ‘식민화’하고 있음을 일컫는 개념으로, 언뜻 봐서는 경제학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닌 것도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경제학의 위기를 그것이 처한 좀 더 폭넓고 역사적인 지적 맥락 안에서 파악하고 그 해결을 구하는 발본적인 성격의 문제제기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근대 분과학문 체계 안에서 편협하게 정의된 ‘경제’라는 영역―이에 대응해 그만큼 편협하게 정의된 ‘정치’, ‘사회’, ‘역사’ 등과 구별되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반영하기도 한다. 즉 경제학 제국주의를 통해 IIPPE는 경제학의 위기를 사회과학 전체의 위기로 파악하는 셈이며, 바로 여기에 경제학의 위기에 대한 다른 대안적 접근들에 비해 IIPPE가 갖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고전정치경제학’(classical political economy)의 시대엔 (정치)경제학이 어느 정도 학제의 모습을 갖춘 거의 유일한 ‘사회과학’이었다. [흔히 ‘고전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를 마르크스가 고안했다고 하는데, 그에 따르면 그것은 스미스(Adam Smith)에 의해 집대성되고 리카도(David Ricardo)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이후 쇠락—마르크스의 용어로는 ‘속류화’—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보다 일반적으로 ‘고전정치경제학’은 대체로 밀(John Stuart Mill)까지를 포괄한다.] 따라서 ‘경제학 제국주의’란 적어도 두 가지 운동을 전제한다고 봐야 한다. 즉 실질적인 ‘식민화’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으려면 먼저 경제학은 여타의 사회과학들과 구분되도록 그 자신을 하나의 특수자로 정립시켜야 한단 얘기다. 바로 이와 같이 시간차를 둔 두 가지 운동이, IIPPE의 주요 멤버인 밀로나키스(Dimitris Milonakis)와 파인이 최근에 공동으로 낸 《정치경제학에서 경제학으로: 경제이론의 발달에서 방법과 사회적인 것, 역사적인 것의 행방을 중심으로》(From Political Economy to Economics: Method, the Social and the Historical in the Evolution of Economic Theory, 2008) 및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괴짜경제학으로: 경제학과 다른 사회과학들 사이의 경계이동》(From Economics Imperialism to Freakonomics: The Shifting Boundaries between Economics and Other Social Sciences, 2009)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책은 최근 비주류경제학 및 비판적 사회과학 분야의 권위있는 상을 연달아 수상한 바 있다. 즉 전자는 2009년도 군나르 뮈르달 상(Gunnar Myrdal Prize)을, 후자는 같은 연도 아이작/타마라 도이처 상(Isaac and Tamara Deutscher Memorial Prize)을 받았다. 이는 저자들의 개인적인 영광이라기보다는 현재 IIPPE와 같은 기획이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지를 방증(傍證)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요컨대 경제학 제국주의가 문제인 것은, 이미 그런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경제학 내부에서는 그 대상이 되는 사태를 바라보는 매우 편협한 안목과 방법론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학문분야로서의 ‘경제학’이 성립되는 과정, 밀로나키스와 파인에 따르면 ‘정치경제학’이 ‘경제학’으로 변모되는 과정과 일치하는데,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개입된다. 첫째, 그 자체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과학일 수밖에 없는 경제학이 ‘사회적인 것’ 및 ‘역사적인 것’과 절연함으로써 자신의 대상을 크게 제한시켰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제 경제학이 다루는 효용, 초기부존자원(endowments), 투입물, 산출물, 생산함수 등은 시간, 공간, 맥락 등으로부터 유리된 보편적인 범주로 재구성된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런 축소―“사회적인 것에서 개체적인 것으로, 그리고 인간행위에서 효용극대화로”(Fine, 2000, p. 12)―의 과정에서 경제학은 동시에 ‘보편과학’으로 설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는 것인데, 덕분에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경제학이 응용될 수 있는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된다. 둘째, 경제학은 이렇게 재정의된 범주들을 다루기에 알맞은 독특한 방법들을 고안해낸다. 이는 곧 “반증가능성(또는 통계학적 방법을 통한 경험증거와의 근사성), 추상적 가정으로부터 출발하는 공리적 연역, 특수한 종류의 방법론적 개체주의(효용극대화), [다양한 주체/행위들을] 한데 얽는 개념으로서의 균형(과 효율성) 등에 대한 집착”에 다름 아니다(Milonakis and Fine, 2008, p. 5). 결국 어림잡아 1870년대의 ‘한계혁명’(marginalist revolution)에서부터 수학적•통계학적 기법들이 마침내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 제2차세계대전 직후 약 10여 년 동안의 형식주의(formalist) 혁명, 케인스의 《일반이론》 출판(1936년)보다 훨씬 뒤에 이뤄진 케인스주의 혁명,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통화주의 반혁명 등을 거치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앞서 제시한 특징들을 공고히 하면서, 심지어 거의 모든 ‘거시’경제학적 이슈들을 ‘미시’적 기초라는 이름으로 해소시키면서, 경제학은 오늘날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모습을 차츰 띠어갔다.

이렇게 경제학이 스스로 ‘경제’라고 규정한 매우 협소한 지반 위에서 하나의 보편과학의 면모를 갖춰가는 동안 다른 사회과학 분야들도 각각 나름의 지적 전통과 자원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경제학 제국주의’를 위한 조건이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을 따지자면 경제학 제국주의는 193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Swedberg, 1990), 그것이 본격적으로 행해진 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게리 베커(Gary S. Becker)를 통해서다.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눈으로 교육, 가족, 범죄 등과 같은 전통적으로는 비경제적 문제로 여겨지던 것들을 해석한다.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는 “합리적 선택이 나타나는 곳이라면 경제학 바깥에서도 크게 번성했고, 베커에게 있어 합리적 선택이란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한 경제적 접근을 의미한다”(파인, 2006[2004], 400쪽). 한편 경제학 제국주의에 대한 전형적인 옹호로는 Lazear(2000)을 볼 수 있다.] 파인이 ‘낡은’ 제국주의 경제학이라 부르는 이 경향은 그러나 그것이 의도하는 것만큼 큰 재미를 보지는 못한다. 개별 이슈들을 경제학적으로, 즉 효용을 극대화하는 개별주체들의 행위를 통해 균형에 도달한다는 ‘시장 과정’의 결과로 해석하고 의미부여하는 것이 말로야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경제학의 방법과 기법의 낯섦은 그것이 여타 사회과학들이 다루는 문제들―본질적으로 ‘사회적’인―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난점을 해결해준 것이 대체로 20여 년 전부터 본격 등장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다. 물론 이것은 단지 경제학과 여타 사회과학들의 간의 관계에 대한 것만은 아니며, 경제학 내부의, 나아가 경제 자체의 좀 더 본질적인 전환을 반영한다. 파인(Fine, 2000; 2008; 파인, 2006[2004])에 따르면, 과거 경제학 제국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신고전파 경제학이 대체로 완전한 시장 및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철두철미한 믿음에 기반했으며, 때문에 그런 믿음 또는 가정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들을 다루는 데 상당히 제한적이었던 반면, 최근엔 정보 비대칭성과 시장 불완전성을 수용하는 움직임이 경제학 내부에서 서서히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학은 ‘거시적’ 내지는 ‘사회적’ 현상들의 ‘미시적 기초/동기’를 강조하는 태도를 계속해서 견지하면서도 “정보의 비대칭성 및 불완전성을 끌어들임으로써 왜 시장이 때로는 파레토 효율적인 수준에서 청산되는지, 왜 때로는 청산되지 않는지, 나아가 왜 어떤 때는 시장이 아예 형성되지조차 않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Fine, 2000, p. 14).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다. Fine(2010) 참조. (국제)개발(development)이라는 측면에서 스티글리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으로는 Fine and Waeyenberge(2006) 참조.] 결과적으로,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에서는 다루기 어려웠던 제도•관습•문화 등은 이제 “시장 불완정성에 대한 이성적•비시장적 반응, 심지어 집합적 반응”으로 이해되고,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는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보다 한 단계 높은, 그것을 넘어서는 두 가지 과업을 성취해 낸다. 첫째, 그것은 비경제적인 것, 비시장적인 것, 또는 사회적인 것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둘째, 비록 그것이 여전히 방법론적 개인주의(효용 극대화 형태의 합리적 선택)에 의존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사회이론의 언어와 개념을 기꺼이 빌려오고 변용하고자 한다(파인, 2006[2004], 401쪽).

사태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로의 이행은 신자유주의의 첫 번째 국면에서 두 번째 국면으로의 전환을 나타낸다. 그 첫 번째 국면에서 신자유주의란 시장에 대한 맹신을 기반으로 국가가 사적 자본과 시장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체제였고, 그렇게 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이 바로 금융부문이었다. 범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이런 정책은 주로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의 ‘원조’ 정책을 통해 전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그로부터 빚어진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목격해왔다. 현재의 범지구적 경제위기는 바로 그 최신의 형태다.

신자유주의의 두 번째 국면이란, 바로 이렇게 그 스스로 만들어낸 파괴적인 결과들을 자체 내에서 교정하고자 하는, 즉 “제3의 길(Third Wayism)이나 사회적 시장 따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반동”을 가리킨다.

첫 번째 국면이 국가가 시장을 통해, 특히 금융시장을 자유화함으로써 특정 이해관계를 북돋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국면에서는 이와 같은 충격요법의 결과 및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국가가] 꾸준히 개입하는 데 따른 결과를 개선시킬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리하여 원칙상 강조점은 어떻게 하면 시장이 일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들 것이냐에 두어진다(Fine, 2008, p. 13).

이리하여 신자유주의적 경제 또는 경제학은 전보다 훨씬 더 ‘사회적인’ 색조를 띠게 되고, 그것이 앞서 묘사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와 겹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시장 및 경제적인 것은 불완전한 것으로, 그리하여 비시장적인 것, 비경제적인 것으로써 보완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 어떤 장막이 그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가 본래 합리적 선택 접근에 의존하고 있음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불완전 정보를 일종의 분석적 도구로 인식함으로써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가 제한적으로만 수정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직 이 점만 가지고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결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의 범위가 크게 증가한다. …… 비대칭적 정보라는 새로운 어휘는 베커식의 기발함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new) 장(場)을 열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파인, 2006[2004], 401-2쪽).

따라서 최근 경제학이 그 내부에서뿐 아니라 특히 다른 학제와 맞닿은 경계에서, 즉 신성장이론, 신무역이론, 신경제사회학, 신제도경제학, 신복지경제학, 신정치경제학, 신경제지리학, 신개발경제학, 신가계경제학, 신노동경제학, 신금융경제학, 신경제사 등 각종 ‘새로운’ 이름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양상이야말로 경제학 제국주의가 띠고 있는 현재 형태다.

이 대목에서, 2005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어 2009년 말까지 세계적으로 4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괴짜경제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저자들은 “현대 사회의 삶의 표층을 벗겨내어 그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자기들의 목적이라면서 “그 어떤 주제도 경제학의 범위 너머에 위치할 필요가 없”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한다(레빗•더브너, 2007[2006], 29, 32쪽). 그러나 파인에 따르면 이는 그가 좀비경제학(Zombieeconomics)이라 부르는 것이 띠는 가장 대중적 형태일 뿐이다.

이런 접근은, 결코 도전받지 않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가장 좁아터진 기술적 도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신의 역사는 물론 자신의 방법론 및 그에 대한 대안들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대안들을 비과학적이고 엄밀성이 결여되었다며 내치는 것 외에는 그것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 죽은(dead) 것이나 다름 없다. 여기엔 범지구화(globalisation)와 같은 체계(system)에 관한 개념, 권력과 갈등에 관한 개념이 없으며, 경로의존성, 초기조건, 여러 모델들과 균형들 사이의 선택 등을 정의하는 것 외에는 역사적•사회적 특수성에 관련된 분석범주들의 의미를 이해하려고도 않는다(Fine, 2008, p. 14). [그러나 동시에] 그와 경합하는 관계에 있는 패러다임들을 배제하고 흡수함으로써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 자신의 영역과 소재를 점취한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독성으로] 감염시킴으로써 …… 자신과 같은 성질의 존재로 뒤바꿔버릴 여타 학문분야들의 육체를 끊임없이 갈구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살아있다(alive)(Fine, 2009, p. 888).

좀비―그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죽었으면서도 끊임없이 살아있는 육체에 붙어 그 생명력을 빨아먹는, 그러면서 그것이 손대는 것마다 자기와 마찬가지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 이렇게 좀비와 같은 경제학은 그 스스로 전통적으로 다뤄왔던 대상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새로 받아들인 대상들에 대해서도 무기력하기만 할 뿐이다. (계속)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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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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