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에 비친 홉스봄 (홉스봄 on 지젝)

에릭 홉스봄(Eric J. Hobsbawm)에 대해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191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95세가 되는 그가, 최근에 미디어에 노출되는 회수가 많아졌다.

1. 새책을 냈다. ≪세상을 바꾸는 법: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야기들≫(How to Change the World: Tales of Marx and Marxism)이라는, 어떻게 보면 과격하고 또 어떻게 보면 말랑말랑한 제목을 단 책이다. 내 느낌은 ‘말랑말랑’에 더 가까운데, 하여간 이 영감님, 나이가 드시면서 귀여워지시는 것 같다. :)

아… 이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흑… 아마존 킨들로 그만 지르고 말았다. (-_-) 책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것이며, 통으로 새로 쓴 것은 아니고 여러 글들의 모음이다. 그 중에는 예전에 쓴 것들을 그대로 또는 재작업해서 옮긴 것도 있고, 새로 쓴 것도 있다. 물론 이미 출판된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그 중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도 많고 또 영어로 구할 수 없는 글들도 많다. 따라서 돈이 아깝진 않다!! (-_-) 아마 읽으면 더 안 아까울 거야..;;;

2. 책을 내서인지, 라디오에도 나왔다. BBC Radio4에서 매주 방송하는 ‘Start the Week’라는 프로그램에, 작년 하반기 우리나라 출판계를 덮쳤던 장본인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과 함께 게스트로 초대됐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들어보시길(링크). 홉스봄이 생각하는 ‘정의론’도 들을 수 있을 것. ㅎㅎ

3. 인터뷰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지난 일요일, ≪가디언≫ 일요일판, 즉 ≪The Observer≫에 실렸고, 최근 그의 엥겔스 평전이 우리나라에 번역되기도 했던 Tristram Hunt가 인터뷰를 맡았다(링크). 마르크스주의의 과거/현재/미래, 현재의 전지구적 경제위기, 사회민주주의의 평가와 전망, 현재 좌파가 직면한 과제들, 현재 영국의 정치 등등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그 중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심있어할만한 대목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상당한 의역이 가미됨).

[헌트] 마르크스주의 당과 관련, 당신의 저작에서 매우 돋보이는 것이 지식인들의 역할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당신의 Birkbeck과 같은 대학 캠퍼스에서 엄청난 흥분이 일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죠. 특히 Naomi Klein이나 David Harvey의 저작들, 또는 Slavoj Zizek의 ‘performances’를 보면, 거기엔 진짜 열광(enthusiasm)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은 이들과 같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대중지식인들로부터 흥분을 느끼는지요?

[홉스봄] 불라불라… (상당히 에둘러서 얘기함. 특히 위 세 사람의 이름은 전혀 언급하지 않음. 하여간 그의 대답은 “글쎄…”라는 말로 요약될 것 같음.)

[헌트] 아니, 그래서, 당신은 하비나 지젝 같은 이들이 뭔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냐니까요?

[홉스봄] 내가 보기엔 지젝은 ‘performer’라고 해야 옳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에겐 도발적으로 뭔가를 제기하는 능력이 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지젝을 읽은 사람들이 좌파들의 문제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방향으로 정말로 이끌렸는지에 대해선 확신 못하겠구먼.

아… 정말 이 대목에서 웃겨 죽는줄 알았다. 애초에 헌트가 ‘performances’라는 표현을 썼을 때는 굳이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 같은데(지젝은 런던에 머물고 있으면서 강연도 많이 했으며, 또 그의 강연은 진정 ‘performance’ 같으니까), 이를 재치있게 받아 우리의 홉스봄 옹은 “걘 그냥 광대야”라고 한 것 아닌가. 그것도, 첨엔 애써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헌트가 재차 물으니까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 거라는. ㅎㅎ 이 대목에서 또 놓치지 말하야 하는 사실: 지젝은 현재 Birkbeck 인문학연구소에 소속되어 있고, 홉스봄은 Birkbeck의 학장이라는 거. 어쨌거나, 웃음은 웃음이고, 홉스봄 할배의 마지막 말씀은 곱씹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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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thoughts on “최근 미디어에 비친 홉스봄 (홉스봄 on 지젝)

  1. 지젝은 광대로 불리우는 걸 거부하지 않겠지요. 광대의 자리를 재정의 해서 그렇죠.

    트위터 타고 들어 왔습니다. 좋은 글들 잘 보고 가요. 자주 들르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님 얘기도 맞는 말씀이네요. 과연 지젝은 그런 사람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홉스봄님 말씀의 핵심은, 지젝이 광대냐 아니냐, 또는 ‘어떤’ 광대냐라기보다는, 그로써 대표되는 어떤 ‘세력’--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요--에 대한 우려가 아닐까 싶네요(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젝이나 하비 등에 대해 논평해달라는 헌트의 요구에 즉각 대응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도 싶고요). 그리고 그 우려의 성격--또는 그 폭과 깊이(!)--에 대해선, 위 인터뷰만 잘 봐도 짐작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결국 ≪세상을 바꾸는 법≫에 더 잘 나와있겠지만요..

  2. 저는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새 것이나 다름없는 홉스봄 통사 시리즈 3권을 5만원에 구입하고 매우 흡족해 했더랍니다ㅎ (근데 언제 읽는담?!)

      1. 이거 덧글을 다른 데다 달았네요. New Statesman 글에 달았어야 하는데 ^^;

        그런데, 이거 덧글 삭제를 못하는 건가요? ㅎㅎ

        1. 덧글 삭제는 저만 할 수 있습죠. 뭐 그냥 놔두죠. ㅎㅎ 실은 그 기사를 본 순간 번역하고 싶었었죠. 참느라 혼났습니다 ^^;;;

  3.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봤는데, 그간 이 책 리뷰가 꽤 올라 왔네요. 제일 재밌어 보이는 건 LRB에 실린 이글턴의 리뷰고(http://www.lrb.co.uk/v33/n05/terry-eagleton/indomitable), NLR에 그레고리 엘리엇도 리뷰를 썼군요(최근 전기도 썼겠다, 읽어 보고 싶은데 회원이 아니라 볼 수가 없네요). 이글턴 리뷰는 길고 쉽지 않아 보여 그냥 스크롤하는 식으로만 봤습니다.

    그 외에 프랜시스 윈이나, 존 그레이, 패트릭 워드(Socialist Review에)가 리뷰를 썼는데, ‘현실 사회주의’ 문제에 관한 홉스봄의 태도가 확실히 걸리긴 하나 봐요. 특히 패트릭 워드 글을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이 재밌거나 이 책에 관해 뭔가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이 사람(혹은 이 사람이 속해 있는 경향)의 생각이나 글 쓰기 패턴 등을 확실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말이죠. ㅎㅎ

    1. 와… 리뷰 많네요. 고맙슴다. ^^ 이글턴 글은 봤는데.. 홉옹 좋아하시는 분들은 좀 서운할 수도 있겠다 싶네요. 뭐, 전반적으로 보면, 주절주절 딴죽거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홉옹에게 지나친 감정이입(동일시)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귀담아들을만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ㅎㅎ

      하여간, 홉옹님의 저 책은 짬날때 조금씩 보는데, 분명 재미는 있습니다. 잘 모르던 정보도 많이 담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마르크스가 19세기 말 ~ 20세기 초 영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는지를 다루는 부분이 특히 좋았어요. 그리고, 이를테면… 아직 그람시 부분은 읽지 않았는데, 좀 부정적으로 한마디 했던 이글턴과는 달리, 저는 그람시가 처음으로 여기저기서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됩니다. ^^

      1. 그렇군요. 그냥 훑어 봤을 땐, 이글턴이 좋게 이야기하는 줄만 알았는데. 꼬장꼬장하니 그냥 넘어가진 않았나 봐요. ㅎㅎ

        이 책과 관련해 제가 궁금하고 기대하는 것도 것도 EM님이 말씀하신 그런 부분인데요. 그람시가 영국에서 수용되었던 시기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말이에요. 그런 이야기들의 소중함(?)을 영국에 사는 이글턴은 잘 못 느낄 것 같기도 하고…이글턴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맥락은 모르지만서도. [미완의 시대]를 볼 때도 그런 점이 재미가 있었는데, 이 책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네요. ㅎㅎ 영어로 읽기엔…

        1. 뭐… 공산당원 홉스봄을, 신좌파 내지는 트로츠키주의자라고 할만한 이글턴이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진 않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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